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사진보다 한 단 더 있었다.
도하는 마지막 발을 허공에 내밀 뻔하고 난간을 잡았다. 화요일 저녁이었다. 센터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는데도 계단 아래의 공기는 입 안에 오래 남았다. 유탁은 뒤에서 손전등을 켜지 않고 먼저 벽의 스위치를 찾았다. 송주가 안내하는 사람에게 불을 켜 달라고 했다.
형광등이 하나씩 들어왔다. 바닥은 생각보다 넓었다. 벽을 따라 가구를 치우면 첫 구간은 펼칠 수 있을 듯했다. 도하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저 끝에서 이 끝까지 걸을 거리를 셌다. 일요일까지 훈련할 곳과 시간을 보자던 약속이 머릿속에서 그 길을 먼저 달렸다.
“일단 물건 들이지 말고 보자.”
송주가 말했다. 도하는 메고 온 훈련화 가방을 다시 어깨로 올렸다. 오늘 신발을 바꾸겠다고 정한 사람은 없었다. 보고 나서 가능하면 잠깐 해 보자는 말을 자기 혼자 붙여 온 셈이었다.
안내인은 예전에는 작은 판매점의 보관실이었다고 했다. 바닥의 긴 사각형 자국이 선반 자리였다. 도하는 옛 선반이 버틴 무게와 움직이는 짐이 남기는 힘이 같은 것인지 물었다. 안내인은 정지한 물건을 쌓았을 뿐 운동 장소로 확인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송주는 그 말을 적었다. 괜찮을 거라는 답을 대신 얻어내려 하지 않았다.
유탁은 먼저 천장을 봤다. 가운데를 지나는 배관 아래에서 팔을 들다가 손을 내렸다. 닿아 보려는 동작도 멈췄다. 정비소에서 차를 올리기 전에 주변을 보듯, 그는 바닥의 수평보다 머리 위를 오래 살폈다.
“손잡이 세우면 여기 걸려요.”
도하는 예전 낮은 코트에서도 경기했다고 말했다. 유탁은 그때와 같은 높이가 아니라고 했다. 송주가 줄자를 꺼냈다. 셋은 안내인이 허락한 곳에서 높이를 재고, 펼친 훈련 받침의 치수와 비교했다. 배관 아래는 손잡이를 놓는 높이부터 부족했다. 양쪽으로 피하면 가운데 통로가 좁아졌다.
기억 속에서는 낮은 천장을 이긴 적이 있었다. 도하는 그 승리를 새 천장에 갖다 대고 있었다. 여기는 그날의 코트보다 작은 여유까지 없었다. 고개를 숙여 사람이 지나간다고 움직이는 손잡이의 길도 숙여지지는 않았다.
그는 계단 쪽을 돌아봤다. 장비를 넣는 일부터 별도 운반이 필요했다. 문 앞까지 온다고 코트 위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환풍기는 돌아가는데 바람이 어디로 나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유탁은 휴대폰을 높이 들고 환기구 위치를 사진으로 남겼다. 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작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탁이 자기 쪽으로 조금 비켜 서 달라고 했다. 둘 사이에 막혀 있던 길이 열렸지만 벽의 작은 창에는 여전히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로 괜찮다고는 못 하겠어요.”
유탁이 말했다. 고장이라는 진단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안내인은 지난 임차인이 팬만 따로 달았고 외부 배출까지 확인한 자료는 없다고 했다. 바깥 창은 대부분 보도 높이의 벽에 가려져 있었다. 지하 특유의 냄새에 운동하고 난 호흡이 더해질 장면을 도하는 처음으로 그려 봤다.
송주는 운동 장소로 쓸 때 필요한 환기와 바닥 조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내인은 지금 상태로는 답하기 어렵고, 고치려면 설치 범위를 따로 봐야 한다고 했다. 비용을 줄 수 있는지 묻자 아직 공사 내용을 정하지 않았으니 모른다는 답이 왔다.
그 답까지 쓰니 싼 임대 조건 옆에 비어 있는 줄이 늘었다. 도하는 자기에게 보였던 낮은 숫자를 다시 봤다. 월마다 나갈 돈만 보면 전에 살피던 곳보다 작았다. 하지만 배관을 옮길 수 있는지, 환기를 어떻게 고칠지, 장비를 어느 인력으로 넣을지에 붙을 숫자는 하나도 없었다.
“일단 들어가고 조금씩 하면요.”
말이 나오자 도하는 자기 발을 봤다. 오늘 신고 온 출근 신발 앞코에 센터 먼지가 남아 있었다. 조금씩이라는 말로 넘길 일을 자기 일터에서 들었으면 제일 먼저 미간을 찌푸렸을 것이다.
유탁이 벽에서 떨어졌다.
“조금씩 하는 동안은 어디서 뛰어요?”
도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위험한 부분을 피해서 몇 가지 동작만 하자고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몇 가지를 하러 매번 장비를 계단 아래로 내리고, 남은 장소를 따로 빌리면 싼 월세의 모양이 달라졌다. 둘이 걸어 본 것만으로도 아직 알지 못하는 조건이 많았다.
안내인은 바로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송주는 고맙다고 답하고 더 볼 곳을 확인했다. 셋은 출입문이 열리는 방향과 계단 폭, 물이 고인 자국을 살폈다. 도하는 처음에 가장 넓다고 생각했던 바닥 한가운데 다시 섰다. 머릿속의 출발선이 배관 앞에서 끊겼다.
이곳의 잘못은 아니었다. 상자를 보관하던 방에 자기가 결승문을 들여놓고 싶어 한 것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유탁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도하도 따라 하다가 웃음이 났다. 운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종료 뒤처럼 물을 마셨다. 송주는 건물 입구에서 안내인에게 오늘은 계약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건을 고칠 수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빈 약속도 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범위에 맞지 않아서 후보에서 빼겠다는 답이었다.
유탁이 계단문을 한번 보고 먼저 돌아섰다. 도하는 길 건너 버스 정류장의 시계를 봤다. 화요일 저녁이 한 시간 남짓 지나 있었다. 훈련할 수 있는 날을 찾으러 와서 또 하루를 쓴 것 같았다.
“그래도 싸긴 했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송주가 곁에서 들었다.
“빈 냉장고 싸게 샀다고 밥이 생기진 않지.”
“냉장고보다 계단이 먼저 배부르겠어요.”
유탁이 말했다. 셋이 웃었다. 도하는 웃고 나서 아까 자신이 가방을 내려놓던 것을 떠올렸다. 계약도 없이 들어갈 뻔한 사람의 신발은 아직 가방 속이었다.
송주는 가까운 식당에서 잠깐 앉자고 했다. 도하는 밥을 먹고 왔다고 답했다. 유탁도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셋은 음료 하나를 나눠 주문하는 대신 각자 마실 것을 사서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오늘 장소를 거절한 대가로 또 밥값을 쓰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도하는 일요일 약속을 꺼냈다. 남아 있는 닷새 안에 더 볼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유탁은 그날 같이 말하기로 했으니 말하면 된다고 답했다. 문을 하나 봤다고 자기 대답이 바뀌지는 않았고, 안 맞는 문을 골랐다고 기다릴 날짜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급하니까 더 싼 걸로 하자는 건 안 할게요.”
유탁이 자기 무릎 위에서 빈 병을 굴렸다. 도하는 고맙다고 답하려다가 자기도 그렇겠다고 말했다. 동료를 잔돌에 남게 해 놓고 그 선택에 어울리는 건물부터 빨리 만들려 했던 마음이 있었다. 선택은 건물이 받아 주지 못해도 그 사람의 말로 남아 있었다.
송주는 다음 후보에 전화하기 전에 오늘 거절한 이유를 셋이 같은 말로 알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하는 낮은 천장이라고 답했다가 고쳤다. 실제 장비와 사람의 여유가 부족한 천장, 확인하지 못한 환기, 계단을 포함한 운반 비용이었다. 싼 곳이라도 그 세 가지는 지워지지 않았다.
유탁은 정비소의 부품 상자에도 빈칸이 있어야 꺼낼 수 있다고 했다. 도하는 월세 표에서 빈칸을 없애려 했는데 정작 방 안에는 빈칸이 모자랐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둘 다 바로 웃었다.
수요일 저녁, 도하는 세빈에게 사진 두 장을 보여 줬다.
통화할 시간을 먼저 정하고 보낸 것이었다. 배관 아래 줄자와 계단 입구였다. 그는 현장에서 본 사실부터 얘기했다. 세빈은 화면 너머에서 오래 걷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이 보고 필요한 판단을 했는지 물었다.
“유탁이 먼저 손잡이 높이를 봤어요. 저는 길이만 보고.”
“둘 다 봐야 하죠.”
그녀는 여전히 회복 일정을 이어 가고 있고, 이번 주에는 길게 지도할 시간을 늘리지 않겠다고 했다. 도하는 새 장소가 나오면 와 볼 수 있겠느냐고 하다가 멈췄다. 가 볼 수 있는 동선부터 확인한 뒤 물어야 했다. 사진에 계단만 열 장 찍어 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통화를 마친 뒤 송주에게서 다른 후보의 답이 왔다. 도하의 버스 노선에서 멀지 않은 건물의 지상 작은 운동실이었다. 상시 임대만 하는 곳은 아니고 정해진 시간에 시험 사용을 의논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바닥 하중과 쓸 수 있는 기구, 소음 조건을 확인해야 했다.
도하는 그 소식을 유탁에게 그대로 옮겼다. 이번에는 새 체육관이 나왔다고 쓰지 않았다. 유탁은 토요일 낮에는 볼 수 있다고 했다. 송주도 같은 시각을 맞췄다. 금요일 퇴근이 늦어질 때 억지로 밤에 가는 계획은 빠졌다.
남는 이틀 동안 도하는 운동실 사진만 들여다보지 않았다. 출근하고 도시락을 씻고 훈련비에 쓸 수 있는 범위를 다시 봤다. 처음 보낸 상한 안에서도 교통비를 따로 남겨야 했다. 한 공간에 다 낼 수 없다는 말이 이제는 숫자 아래 실제 버스 노선으로 붙어 있었다.
센터에서 긴 상자를 돌릴 때 은식이 뒤를 봐 달라고 했다. 도하는 반대편 통로가 비었다고 답했다. 둘이 방향을 바꾸자 바닥의 수레가 길을 내줬다. 천장이 높아도 사람이 갈 곳을 안 보면 부딪힐 수 있었다. 반대로 잘 본다고 낮은 천장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금요일 점심에는 송주가 운동실을 쓰는 사람들의 시간표를 보내왔다. 도하는 빈칸을 보자 바로 자기 퇴근 시간을 넣었다. 유탁이 그 시각에는 정비소 마감이 덜 끝난다고 답했다. 그는 지우고 주말 칸으로 옮겼다. 둘이 같이 갈 수 있는 시간은 보기보다 적었다.
송주는 남은 회원의 수업 처리와 보관 비용을 지출에서 먼저 뺀 뒤 후보 비용을 비교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마친 연락도 있고 답을 기다리는 연락도 있었다. 도하는 전부 끝나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듣지 않았다. 끝난 몫과 남길 몫을 같은 통장 안에서 두 번 쓰지 않으면 됐다.
그날 밤 그는 옛 잔돌로 가는 버스에 오를 뻔했다. 익숙한 번호가 정류장에 서자 몸이 먼저 앞으로 갔다. 가방에는 신발도 없었다. 도하는 한 발 물러나 자기가 탈 버스를 기다렸다. 닫힌 건물 앞에 한번 가 보고 싶었지만, 그러고 돌아오면 씻고 잘 시간이 줄었다. 창문으로 자기 얼굴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잠깐 손을 흔들었다. 버스 안 누군가에게 인사한 모양이 돼서 그는 혼자 웃었다.
새 방은 옛 동선의 빈자리를 모두 채우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퇴근 뒤 정해진 시간에 바닥 하나를 쓸 수 있다면, 그 바닥에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수 있었다. 그는 토요일에 늦지 않도록 버스 환승 시간을 저장했다.
토요일에 가져갈 것은 신발보다 줄자였다. 도하는 가방을 열어 물병 옆에 넣었다. 걸어서 갈 길, 닫히는 시간, 장비를 세우는 높이를 차례로 적은 종이도 접었다. 선수들이 바로 쓸 코트를 상상하는 대신 실제로 안 되는 부분을 먼저 찾으러 갈 참이었다.
유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 계단 몇 개냐는 질문이었다. 도하는 입구 사진에는 없는데 그것도 가서 보겠다고 답했다. 잠깐 뒤 자기가 줄자를 가져온다는 답이 왔다.
그는 줄자가 두 개면 하나는 빌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썼다가 지웠다. 그냥 자기 것은 집에 두겠다고 했다. 가방 한쪽이 조금 가벼워졌다. 빈 곳에 훈련화를 넣고 싶어졌지만, 토요일은 아직 문을 보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