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탁의 사진에는 잔돌에 없던 코트가 있었다.
화요일 점심, 도하는 센터 휴게실에서 메시지를 열었다. 넓은 바닥 한쪽에 구간 장비가 접혀 있었다. 유탁이 새 장소를 찾았다는 뜻인 줄 알고 사진을 키우려는데 다음 문장이 왔다. 다른 팀에서 같이 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연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도하는 손을 멈췄다. 사진 속 선은 새로 칠한 것 같았다. 잔돌의 마지막 날 찍은 바닥과 나란히 놓고 싶지 않은 선이었다. 그는 누구냐고 물었다.
들풀이었다. 유료 관중석이 처음 생겼던 날 잔돌과 겨룬 팀이었다. 다음 대회부터 한 선수가 근무 사정으로 빠져 새 구성을 찾고 있다고 했다. 연락한 사람은 그날 뒤 제동을 맡았던 문해선이라는 선수였다. 유탁이 정비 지식을 보탠 장면과 뒤 끈을 옮겨 잡는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토요일에 만나 실제 역할과 훈련 시간을 듣기로 했다고 했다. 지금 바로 입단한다는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가 봐야지.”
도하는 그렇게 썼다. 짧은 말을 더 붙이고 싶어졌다. 그래도, 다만. 잔돌이 없어졌다고 정한 것은 아니고, 세빈이 회복하고 있고, 송주가 후보를 알아보고 있다는 말들이 뒤에 줄을 섰다. 그가 누르지 않은 말들은 자기 입 안에서도 충분히 크게 들렸다.
유탁은 오늘 저녁 잠깐 얘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도하는 자기 퇴근 시간을 보내고 정비소 근처에서 보자고 했다. 상대가 센터 쪽으로 와 주는 거리를 기본으로 잡지 않았다.
점심에 봤던 코트의 빈자리는 일을 하다가도 생각났다. 자기 것보다 좋은 자리로 보였다. 그래서 축하해야 할 것 같은 마음과 빼앗기는 것 같은 마음이 같이 올라왔다. 그는 둘 중 하나만 있었다고 꾸미지 않았다.
정비소 앞 식당에서 유탁은 먼저 물을 두 컵 따랐다.
도하는 국수를 시킬까 하다가 유탁이 고르는 밥을 같이 골랐다. 전에 셋이 국수를 먹은 기억을 이 자리에 얹으려던 것 같아 조금 민망했다. 유탁은 작업복 소매를 접고 자기 손을 씻으러 갔다. 손목 통증은 없지만 오늘도 일은 많이 했다고 했다.
돌아온 그는 휴대폰의 연락을 보여 줬다. 정해진 저녁 훈련이 주에 두 번 있고 주말에는 대관 시간을 나눠 쓴다고 했다. 비용은 선수들이 나눠 내는 구조였다. 정비소 근무를 그만두고 받는 월급이나 계약금은 없었다. 사진의 넓은 코트도 들풀이 소유한 공간은 아니었다.
도하는 그 설명에 조금 안심하는 자기 마음을 알아차렸다. 큰돈까지 주는 제안이었다면 붙잡을 말이 줄어들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물을 마시고 정작 중요한 것을 물었다.
“거기선 무슨 역할 하래?”
“하중 쓰는 구간하고 뒤 제동 번갈아 해 보자고요. 아직 같이 해 본 건 아니라서 토요일에 보고요.”
유탁은 양쪽을 직접 만져야 하는 자기 조건과 두 초 한계를 이미 말했다고 했다. 사진 한 장으로 그 팀에서 잘할 거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기 손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무엇을 할지 물어봐 준 것이 좋았다고 했다.
도하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걸 안 물어봤느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은 지금 유탁이 좋았다고 느낀 것을 지울 수 있었다. 잔돌에서 한 일과 새 제안의 장점을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저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건 아니에요.”
유탁이 말했다. 도하는 젓가락을 들다가 내려놓았다.
“알아.”
“근데 말 안 하고 정하면 좀 이상해서요. 여기서 배운 것도 있고.”
“배운 거 돌려주려고 여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도하가 말했다. 유탁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 말이 시원한 허락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부터 자기 허락을 받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가 싫어져서 가는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 있지.”
도하는 답했다. 말을 하고 나니 조금 더 어려워졌다. 싸워서 떠나는 사람이라면 잘못한 일을 고치겠다고 할 수 있었다. 좋은 공간에서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더 좋은 말을 골라 주는 것만으로 그 공간이 생기지는 않았다.
밥이 나왔다. 둘은 숟가락을 들었다. 유탁이 아직 토요일도 안 됐는데 이별 밥 먹는 것처럼 굴지 말라고 했다. 도하는 웃다가 국을 쏟을 뻔했다. 그제야 유탁도 소리 내 웃었다.
다음 날 도하는 세빈과 통화했다.
유탁은 제안받은 이야기를 직접 세빈에게도 전했다. 도하는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토요일 다녀와서 유탁이 직접 말할 때 듣겠다고 했다. 어느 쪽이 더 나을지 셋이 표를 만들어 채우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 명 더 빠지면 우리 둘이네요.”
도하가 말했다. 세빈은 지금 자기는 선수 동작을 쉬고 있다고 답했다. 도하는 잠깐 조용해졌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이름 셋을 그대로 세고 있었다. 사람은 명단에 적힌 위치와 다른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맞네요. 제가 훈련할 자리부터 못 정했고.”
“유탁이 결정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고요.”
세빈이 말했다. 송주가 받은 후보 정보에서 가능한 시간과 비용을 볼 수 있고, 도하는 자기 근무표와 낼 수 있는 범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이 모이지 않았다고 기존 연습장 신청 자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배정 결과가 이미 나온 것도 아니었다.
도하는 자기가 기다린다는 말을 자주 잘못 쓰는 것 같다고 했다. 동료를 가만히 붙잡아 두고 다른 일이 먼저 해결되길 바라는 시간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세빈은 그 생각으로 유탁의 답까지 미리 정하지는 말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기 전 세빈에게 무릎은 어떤지 물었다. 회복 계획을 이어 가고 있고, 지도 시간도 정한 범위로 줄여 두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도하는 다음 주엔 괜찮겠느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자기 생활비를 적었다. 훈련에 쓸 돈과 교통비를 한꺼번에 크게 잡았다가 실제 남는 것을 보고 줄였다. 잔돌이 자기한테는 싸니까 좋은 곳이었다는 사실도 생각했다. 그 싼 차이를 관장이 혼자 메웠다면 다음에는 같은 값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가능한 범위를 송주에게 보냈다. 유탁이 남아야만 유효한 답이라는 단서는 붙이지 않았다. 지금 도하가 자기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몫이었다.
토요일 오후, 도하는 동네 세탁소에서 기다렸다.
아침에 맡긴 작업복이 나올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휴대폰에 유탁의 연락이 왔다. 들풀을 만나고 나오는 길인데 저녁을 먹을 수 있느냐고 했다. 도하는 가능한 시각과 동네 식당 위치를 보냈다. 방문이 어땠는지부터 길게 묻지는 않았다.
그는 비닐에 싸인 작업복을 들고 나왔다. 입단 상담을 하는 동안 자기는 다음 주 옷을 찾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유탁이 어느 팀에서 뛰든 정비소에 출근할 옷은 따로 챙겨야 할 것이다. 팀만 바꿔 입으면 하루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 앞에서 약속 시각이 지났다. 유탁은 버스가 밀린다며 먼저 먹으라고 했다. 도하는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다고 답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메뉴판을 읽었다. 기다리는 동안 새 장소 사진을 보내 마음을 돌려 보려는 생각이 한 번 들었다. 송주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사진이라 그는 꺼내지 않았다.
유탁은 십여 분 뒤 왔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도하는 괜찮다고 답하고 음식부터 주문했다. 이야기는 밥을 고른 뒤에도 들을 수 있었다.
“좋았어요.”
유탁이 말했다. 도하는 눈을 들었다.
“코트 쓰는 시간 분명하고요. 손잡이 바꾸는 것도 다르게 해 보더라고요. 오늘은 설명 듣고 빈 받침에서 자리만 바꿔 봤어요. 능력은 안 썼고요.”
그는 실제 짐을 들고 경쟁하는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 훈련부터 참여하면 정비소 근무와 맞추는 시간을 더 확인해야 했다. 비용도 자기 수입 안에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늘 바로 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좋은 점도 아직 모르는 점도 구체적이었다.
도하는 그들이 너를 힘으로만 보지 않더냐는 질문을 다시 삼켰다. 유탁이 이미 자기 보고 싶은 부분을 보고 왔다. 그를 보호하는 척 판단을 되돌려 받을 자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경기를 하고 싶어?”
그가 물었다. 유탁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어느 팀 갈 거냐 말고요?”
“응. 네가 앞에서 다 밀고 끝내는 거. 그런 걸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유탁은 잠깐 생각했다. 식당 안에서 주문을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도하는 그 사이 대답의 모양을 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돌아와도 되는 경기요.”
유탁이 말했다. 도하는 그를 봤다.
“제가 큰 거 하고 나면 다 끝난 사람처럼 서 있지 않는 거. 뒤를 잡으러 돌아오면 누가 기다리고 있는 거요. 제가 기다릴 때도 있고.”
그는 잔돌에서 배운 게 그것이라고 했다. 오늘 들풀에서도 그런 자리가 있을 수 있어 보였다고 덧붙였다. 도하는 그 말이 좋으면서도 쉬운 결론을 만들 수 없었다. 원하는 경기가 꼭 한 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탁은 이번 빈자리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선에게는 내일 저녁까지 답을 주기로 했으니 직접 전하겠다고 했다. 잔돌에서 같이 틀린 것을 다음 경기에서 바꿔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설명이었다.
도하가 고맙다고 하자 유탁은 손을 들었다.
“대신 장소 없는데 계속 기다릴 수 있다고 하진 않을게요.”
도하는 알겠다고 답했다. 다음 주 일요일까지 각자 가능한 훈련 장소와 시간을 같이 보자고 했다. 그때에도 할 수 있는 범위가 전혀 안 나오면 다른 선택을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그동안 들풀의 자리를 남겨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번 제안을 거절하면 같은 기회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관장님한테 빚 갚으려고 고르는 건 아니야?”
도하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유탁은 고맙지만 그걸로 팀을 고르면 끝이 없겠다고 답했다. 정비소에서 일하는 것도 가족과 지내는 것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 선택을 관장에게 돌리지 않았다.
음식이 왔다. 도하는 숟가락을 들었다. 유탁에게 계속 같이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제야 사실대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시는 누구를 탓하지 않겠다는 큰 약속 대신, 다음 굽이에서 대답을 듣겠다는 약속은 그대로 있다고 덧붙였다.
유탁은 그건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웃었다. 다음 날 유탁은 들풀에 직접 답을 전했다고 알려 왔다. 상대는 다음 선수를 알아보겠다고 했고, 함께 나눈 연습 이야기는 고마웠다는 답도 왔다고 했다. 누구도 잔돌의 빈자리를 대신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저녁에 송주가 작은 지하 공간을 볼 수 있는 날을 보냈다. 아직 통풍과 층고, 실제 쓸 시간이 확인되지 않은 후보였다. 도하는 자기 근무 뒤 가능한 시각을 골랐다. 유탁도 함께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세빈은 현장에 오래 서지 않고 확인한 내용을 나중에 듣겠다고 했다.
도하는 달력에 약속 하나를 적었다. 들어갈 곳을 정한 표시는 아니었다. 문턱을 보기 위해 가는 날이었다. 그는 작업복 옆에 훈련화 가방을 놓고 지퍼를 닫았다. 함께 가겠다는 대답은 받았고, 이제 그 대답을 데리고 가 볼 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