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뒤쪽에는 코트의 먼지가 남아 있었다.
도하는 자기 훈련화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준결승이 있던 달이 지나고, 잔돌이 이 건물에서 수업하는 마지막 날이 왔다. 닫는 날짜를 모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문 앞의 낡은 매트를 걷어 놓으니 처음 보는 입구 같았다.
그동안 셋은 한 번 국수를 먹었고, 세빈은 정해 둔 회복 일정을 이어 갔다. 짧은 탁자 모임은 있었지만 선수 동작을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도하와 유탁도 자기 일과 몸 상태를 맞춰 가능한 범위만 움직였다. 새 대회에는 신청하지 않았다. 잔돌이 어디로 갈지 역시 정해지지 않았다.
도하는 신발 안에서 접힌 종이를 찾았다. 전부터 넣어 두고 잊은 수선집 영수증이었다. 밑창을 새로 붙인 곳은 아직 버티고 있었다. 가장 비싼 새것을 사지 않고도 걸었던 날들이 신발 끝에 남아 있었다.
“그거 버리는 거 아니죠?”
유탁이 건너편 사물함에서 물었다. 도하는 가져간다고 답했다. 유탁은 잘됐다고 했다. 말투가 가벼워 도하는 신발을 가방에 넣기 전 한번 더 봤다. 건물이 닫힌다고 여기서 쓰던 물건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은 낮에 마쳤다. 도하는 센터 근무 뒤 저녁 정리에 왔다. 아이나 일반 회원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무거운 장비를 움직이지 않도록 송주가 시간을 나눠 뒀다. 세빈은 앉아서 개인 물건을 분류하고 있었다. 혼자 움직일 상자만 가까이 놓여 있었다.
기구를 옮기는 일은 따로 준비한 차량과 인력이 맡았다. 유탁은 반출 전에 자기 눈으로 본 손잡이와 고정 상태를 담당자에게 말했다. 능력으로 한 번에 들어내면 되겠다는 말은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도하 역시 새 물건을 들어 기억하지 않았다.
빌렸던 점검 저울은 돌려주기로 한 사람에게 따로 인계했다. 영점을 확인한 뒤 인수 날짜를 적었다. 예전에 고장 난 두 대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표시가 그대로였다. 그 두 대가 마지막 날 갑자기 고쳐져 새 장소로 가는 일은 없었다.
유탁은 드라이버를 꺼냈다가 자기 물건이 아닌 나사를 보고 넣었다. 남은 고정물은 송주가 건물 쪽과 확인할 일이었다. 모두 뜯어서 기념으로 챙기는 이사는 아니었다.
도하는 빈 사물함의 문을 닫았다. 손을 놓자 얇은 금속이 짧게 울렸다. 처음 체육관에 왔던 밤에도 같은 소리가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더 열어 안쪽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세게 닫지 않았다.
송주의 책상은 매트가 나간 코트 가운데 놓였다.
세빈이 정리할 내용을 함께 보자고 했다. 도하는 수업표나 남은 장비 목록일 줄 알았다. 송주가 펼친 것은 이번 달과 그 전 달의 돈이 적힌 종이였다. 정확한 항목 옆에 실제 낸 날짜와 아직 남은 몫이 나뉘어 있었다.
반출과 잠깐 보관에 쓸 비용, 남은 수업을 처리할 금액, 마지막 임대료. 도하는 손가락으로 자기 쪽 종이를 눌렀다. 수업료가 들어온 줄보다 나간 줄이 더 길었다. 몇 달의 빈칸에는 송주 이름이 적혀 있었다.
“관장님이 넣으신 겁니까?”
송주는 그렇다고 답했다. 수업이 줄어 임대료를 다 못 채운 때마다 자기 돈으로 메웠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적자 한 번이 아니었다. 도하는 페이지를 넘겼다. 다른 줄에는 송주 자신의 보수를 가져가지 않은 기록이 있었다.
“얼마나 오래요.”
세빈이 물었다. 송주는 해당하는 달을 짚었다. 도하는 전부 더한 숫자를 듣고 나서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관장이 자기 급여를 조금 늦게 가져가는 정도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다음 달이면 메워질 돈처럼 말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럼 우리 원정 간 것도.”
유탁이 말했다. 송주는 그건 아니라고 잘랐다. 각자 낸 교통비와 밥값은 그들이 냈고, 대회 관중석 수입은 잔돌로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본 부족분은 체육관 운영의 돈이었다. 모든 좋은 기억을 한 사람의 몰래 낸 값으로 바꿔 적지는 않았다.
도하는 자기 신발 가방을 봤다. 지금 돈을 조금 보태겠다고 하면 무언가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방을 열어 주머니를 찾으려다가 멈췄다. 자기가 이번 달 낼 수 있는 돈도 모르면서 먼저 손을 들면, 송주는 다시 다른 사람 대신 빈칸을 계산해야 했다.
“왜 말 안 하셨어요?”
유탁이 물었다. 송주는 책상 위의 종이를 모으려다 내려놓았다. 다음 모집이 조금만 나아지면 돌아올 줄 알았다고 했다. 선수들이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운영 걱정까지 얹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저희는 괜찮은 줄 알았잖아요.”
유탁의 말 끝이 올라갔다. 도하는 그가 크게 말한 것이 낯설었다. 유탁은 관장이 다 해 줬으니 고맙다고 먼저 해야 할 사람처럼 앉아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여기 와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당사자로 화를 내고 있었다.
송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했어야 했다고 했다. 그 말 뒤에 자기 체육관이니 자기 마음이라는 문장은 오지 않았다. 도하는 그 침묵이 고마우면서도 이미 나간 돈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세빈은 종이를 한 번 더 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지도 대가로 받기로 한 것과 이미 받은 것을 먼저 확인했다. 송주는 해당 줄을 짚었다. 이번에 드러난 밀린 보수는 송주 자신의 몫이었다. 남의 돈까지 대신 포기한 것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었다. 도하는 처음으로 그 차이를 똑바로 읽었다.
수업을 남긴 회원의 처리는 개별로 확인하고 있었다. 새 장소가 생기면 그대로 옮겨 가면 된다는 안내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소도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그 약속을 받을 사람은 아직 없었다. 도하는 마지막 수업에 오지 못한 사람의 칸을 봤다. 닫힌 문 뒤에도 끝내야 할 일이 남았다.
“다음 장소 계약금부터 떼 놓으면 안 되겠네요.”
도하가 말했다. 송주는 마지막 정리 비용을 먼저 두고, 다음 장소에 쓸 수 있는 돈은 그 뒤에 보겠다고 답했다. 가진 돈을 전부 다음 문 앞에 놓으면 오늘 건물을 비운 사람들이 뒤에 남게 되는 셈이었다.
유탁은 다음에도 관장이 부족하면 채우는 방식이냐고 물었다. 송주는 아니라고 답했다. 도하는 대답만 적어 두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때 멈출지 없는 아니오는 자기의 다음엔 신호하겠다는 말과 비슷했다.
셋은 송주가 실제로 가진 운영 돈과 앞으로 쓸 수 있는 상한을 보았다. 도하와 유탁의 월급을 수입 칸에 미리 넣지 않았다. 큰 대회에서 받을지 모를 보상이나 영상이 잘되면 들어올 광고비도 없었다. 새 장소에서 수업할 사람이 몇 명일지는 아직 가정이었다.
송주는 그 가정의 수업료가 들어오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범위로 보겠다고 했다. 당장 넓은 코트 하나를 온전히 빌릴 수 없으면 구간 훈련과 대관을 나누는 안도 비교하자고 했다. 어느 장소에서 그렇게 할지는 고르지 않았다. 오늘의 종이가 미래 건물의 도면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도하는 운영을 같이 고친다는 말을 자기가 임대 계약까지 대신 고른다는 뜻으로 쓰지 않기로 했다. 송주가 계약과 돈을 책임지고,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는 시간과 비용은 결정 전에 보여 주기로 했다. 세빈은 수업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범위를 먼저 말하겠다고 했다.
“저도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제 생활비 보고 말할게요.”
도하가 말했다. 다 같이 보태면 해결된다는 결론은 아니었다. 정해진 훈련비를 낼지조차 다음 조건을 본 뒤 고를 일이었다. 유탁도 자기 가능한 돈과 시간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관장에게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금액 없는 청구서로 남기지는 않았다.
송주는 종이 빈 곳에 다음 확인 날짜를 적었다. 그때까지 받을 실제 보관 견적과 남은 수업 처리 결과를 옆에 썼다. 도하는 많은 계획보다 오늘 모르는 것이 줄어드는 약속으로 들었다.
책상을 치우자 바닥이 더 넓어 보였다.
도하는 자기 걸레를 잡고 의자가 있던 곳을 닦았다. 코트 선이 선명하게 남은 부분과 햇빛에 흐려진 부분의 색이 달랐다. 지난번 첫 짐을 세웠던 자리로 걸어가 보려다가 걸레를 끝까지 밀었다. 오늘은 그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쓸 날이 아니었다.
세빈은 자기가 맡은 가벼운 상자를 닫았다. 불편해져서 먼저 가겠다고 했다. 송주가 알겠다고 답했다. 유탁은 문까지 같이 가며 가방을 들지 물었다. 세빈은 자기 것을 들고 대신 문만 잡아 달라고 했다. 도하는 수건이 접힌 의자를 벽에 옮겼다.
그녀가 나간 뒤에도 정리는 계속됐다. 먼저 간 사람 몫까지 버텼다는 농담은 하지 않았다.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할 일을 처음부터 세빈에게 얹지 않은 일정이었다. 닫는 날의 감상 때문에 회복 계획이 하루 없어질 수는 없었다.
유탁은 마지막 사물함 밑에서 낡은 머리끈을 찾았다. 주인을 모르자 송주가 분실물 봉투에 넣었다. 도하는 그런 것까지 다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송주는 남의 물건을 자기가 폐관한다고 버릴 수는 없다고 답했다.
“신발도 하나 남았어요.”
유탁이 말했다. 한 짝이 아니라 작은 실내화 한 켤레였다. 마지막 수업에서 두고 간 사람에게 연락을 해 뒀다고 했다. 그 사람은 내일 낮에 따로 받기로 했다. 건물 안에 그대로 남겨 두는 대신 송주가 자기 가방에 챙겼다.
도하는 자기 훈련화의 끈을 가방 안에서 한 번 눌렀다. 돌아올 자리를 표시하려고 신발을 놓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다. 새 장소도 없는 지금 자기 물건을 여기 남기면, 결국 누군가 내일 다시 찾으러 와야 했다.
그는 가방 지퍼를 닫았다. 미련도 사람이 실제로 들고 나갈 수 있는 모양이어야 했다.
마지막 확인을 마친 뒤 송주가 전등을 껐다.
유탁이 휴대폰을 들었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송주는 문 앞에 서자고 했다. 도하는 빈 바닥 전체가 나오게 찍으려다가 셋의 신발이 보이는 각도를 골랐다. 세빈에게도 나중에 사진을 보냈다. 함께 안 섰다고 그녀가 이곳의 마지막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건물 쪽에 넘길 확인과 열쇠는 송주가 맡았다. 도하와 유탁은 바깥에서 기다렸다. 체육관을 닫는다는 말은 전등 하나를 끄고 모두 돌아서는 장면보다 오래 걸렸다. 남은 연락과 정산은 내일도 있었다.
유탁이 길가 턱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도하는 집에 갈 거냐고 물었다. 그는 오늘은 조금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도하도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었다. 가방 속 신발끼리 작은 소리를 냈다.
“이제 훈련 안 하면 변명은 쉬워졌네요.”
유탁이 말했다. 도하는 무슨 변명이냐고 물었다. 코트 없어서 못 한다는 대답이 왔다. 그는 웃었지만, 그러면 다른 데라도 당장 구해 오자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곳이든 들어가면 된다는 약속을 오늘 돈 종이 앞에서 이미 버렸다.
“쉬는 날 한 번 볼래. 훈련 말고.”
도하가 말했다. 유탁은 영상을 보자는 거면 싫다고 했다. 도하는 그것도 빼자고 답했다. 셋이 가능한 다음 일요일 낮에 잠깐 만나기로 했다. 세빈에게 묻자 앉을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답이 왔다.
송주가 뒤에서 걸어왔다. 손에는 열쇠가 없었다. 그는 남은 처리를 마치면 알려 주겠다고 했다. 도하는 알겠다고 답했다. 고생했으니 이제 다 잘될 거라는 말은 입에서 꺼내지 않았다.
대신 가방을 고쳐 멨다. 밑창을 수선한 신발은 가방 안에 있었고, 평소 출근 신발은 발에 있었다. 내일도 신을 것은 남아 있었다. 도하는 유탁과 나란히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