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는데 점점 무거워졌다.
금요일 저녁, 도하는 비어 있는 저울의 표시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숫자가 한 눈금씩 올라갔다. 옆 저울은 아예 켜지지 않았다. 유탁이 두 물건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털고 일어났다.
“바닥이 누르고 있나 봐요.”
“그럼 바닥을 들어야 되냐.”
농담이 끝나도 숫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송주가 수업 전부터 이상했다며 전원을 껐다. 연결선을 눈으로 살피고 평평한 다른 자리에서 다시 켜 봐도 같았다. 어느 쪽이 실제 하중을 제대로 읽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유탁은 저울 밑을 뒤집으려다 멈췄다. 바퀴 잠금이나 기계 손잡이는 볼 수 있지만, 수치가 틀어지는 전자 저울을 고칠 줄은 모른다고 했다. 도하는 고치면 쓰면 된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입을 다물었다. 신발을 맡기던 날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는 오늘 훈련 종이를 꺼냈다. 첫 줄에는 짧은 연결 뒤 손을 바꾸는 동작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자기가 혼자 더한 질문이 하나 붙었다. 십팔을 조금 더 편하게 쓸 수 있는가. 어제 받은 급여 안내를 읽다가 적은 문장이었다.
“최대치 확인하려던 거예요?”
세빈이 물었다. 도하는 질문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지 않았다.
“늘어나나 한번 보고 싶었어요. 새 팀 가려면 지금보다 나아야 하나 싶어서.”
“어제 그런 요구를 받았어요?”
“아뇨. 제가 붙였네요.”
말하고 나니 종이 속 회사가 실제 만난 사람보다 까다로웠다. 권나경은 지금 수치를 늘려 와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했었다. 도하는 자기가 만들어 낸 채용 시험을 퇴근 뒤 코트로 가져왔다.
세빈은 오늘 수치를 늘리는 시험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하는 손으로 느끼면 기존 십팔까지는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물으려다가 저울을 봤다. 빈 바닥에서도 숫자가 올라가는데, 자기 기분에 더 정확한 눈금을 붙일 근거는 없었다.
“늘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늘었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가 말했다. 유탁은 옆 저울 위에 올리려던 블록을 다시 바닥에 뒀다. 익숙한 훈련 물건을 자기 손으로 들어 봤다고 오늘도 같은 표시가 나오리라는 확인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도하는 등록하려고 들지 않았다.
송주는 저울을 수업 장비와 따로 놓고 사용하지 말라는 종이를 붙였다. 다음 주 초에 점검을 문의하겠다고 했다. 옆 체육관에서 검사가 끝난 저울을 빌릴 수 있는지도 먼저 알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오늘 밤 안에 다른 기구를 사 오는 계획은 없었다.
도하는 코트 가운데 섰다. 근무 뒤 남긴 힘도 있었고 일찍 온 시간도 있었다. 그 둘이 바닥에 갈 곳 없이 놓인 느낌이었다. 그냥 집에 가면 월요일 영상부터 이어진 일주일이, 남에게 보여 줄 것만 고르고 끝난 주가 될 것 같았다.
“그럼 뭘 합니까?”
목소리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세빈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도하는 자기가 묻기보다 오늘 저녁값을 돌려 달라는 사람처럼 서 있다는 걸 알아챘다.
유탁이 빈 받침을 밀고 왔다.
“이건 저울이 없어도 굴러가요.”
받침은 작은 소리를 내며 도하 앞에 섰다. 짐이 없다고 손을 놔도 되는 것은 아니어서 유탁은 제동 끈까지 가져왔다. 도하는 종이를 접었다. 여기에 없는 숫자를 찾아 쥐는 것보다 저 바퀴가 어디로 갈지 보는 편이 먼저였다.
송주는 수업 시간 전까지 코트 반쪽을 내줬다.
셋은 실제 경사로를 만들지 않았다. 평지에 출발 받침과 끝 받침을 놓고 그 사이에 돌아갈 모서리 하나를 표시했다. 바깥에는 사람이 건너는 길을 비웠다. 오늘 할 일은 무게 이동 없이 빈 받침을 천천히 옮기며 손과 발의 순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도하는 첫 끈을 잡았다. 유탁이 밀고 세빈은 앞의 굽이를 봤다. 근무 뒤 손에는 떨림이나 통증이 없었다. 유탁도 손목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오늘 정비소에서 오래 쥐는 작업을 해서 세게 당기는 연습은 줄이고 싶다고 했다. 세빈은 평지 걷기만 맡기로 했다.
처음에는 쉬웠다. 도하는 짐을 받는 선에 빨리 닿았다. 유탁이 받침을 가져오자 끈을 바꿔 잡았다. 그런데 뒤에서 세빈이 멈추라고 했다. 받침이 끝 선에 닿기도 전이었다.
도하는 고개를 돌렸다. 자기 발이 지나온 길에 유탁의 제동 끈이 놓여 있었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통로는 다음 사람이 잡을 물건의 자리였다. 도하는 그 위를 한 번 밟고도 모르고 지나왔다.
“짐이 없으니까 빨리 간 건데요.”
“빈 받침도 형 발을 기다리죠.” 유탁이 말했다.
도하는 발을 들었다. 끈에 흙 자국이 남았다. 자기 손이 편하게 갈 자리만 확인하고, 다음 손이 어디서 끈을 줍는지는 지나쳤다. 저울이 잘됐어도 발견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은 받침을 되돌렸다. 세빈이 제동 끈 위치를 바꾸자고 했다. 유탁은 허용 고리에 걸어 두면 손잡이와 부딪칠 수 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 위치를 한번씩 해 봤다. 도하는 옆에서 같은 길을 빈손으로 걸었다.
모서리 안쪽은 짧았다. 그러나 도하가 먼저 가면 유탁의 팔을 가로질렀다. 바깥은 반 걸음 길어도 끈을 밟지 않았다. 도하는 세빈이 초시계를 들기 전에 바깥을 택했다. 빠른 길을 찾아왔는데 같은 길을 더 돌아가기로 했다.
두 번째에는 끈을 밟지 않았다. 대신 도하가 받는 선에서 몸을 너무 일찍 돌렸다. 유탁이 밀고 온 받침을 한 손으로 받으려다가 다시 두 손을 모았다. 빈 것이라 가볍게 멈췄지만 손목이 꺾일 방향이었다.
“이건 실제 짐이면 못 받겠네요.”
그가 먼저 말했다. 유탁은 고개를 끄덕이고 받침을 세웠다. 세빈은 그럼 실제 짐을 안 가져온 오늘 해 볼 것을 찾았다고 했다. 도하는 조금 웃었다. 못한 걸 찾는 데도 저울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받침 없이 셋만 걸었다. 도하의 손이 올라가면 유탁이 제동 위치를 말했고, 세빈은 그 앞에서 자기 경로를 골랐다. 소리로 전부 덮기보다 서로 볼 수 있는 손 위치를 정했다. 문이 없는데도 마지막 멈춤쇠를 보는 자리는 남겨 뒀다.
도하는 세빈에게 여기서 먼저 나가면 어떠냐고 했다. 그녀는 앞선다고 더 편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무릎이 돌아가는 각도 때문에 바깥 길이 낫다는 말이었다. 그는 알겠다고 바로 표시를 옮겼다.
잠깐 뒤 세빈이 그를 불렀다.
“제가 해 보겠다고 하면 해 보게 둬요. 아프다고 말할 때까지 무조건 시키자는 말은 아니고.”
“방금 하지 말라고 하신 줄 알았어요.”
“이 길이 낫다고 했죠. 그런데 표시를 여기까지 멀리 옮길 필요는 없어요.”
도하는 바닥의 조각을 봤다. 자기가 그녀를 위해 넓혀 둔 길은 다음 받침으로 가는 통로까지 밀고 나갔다. 세빈이 고른 보폭보다 더 크게 보호하려고 한 셈이었다. 그는 표시를 그녀 손 가까이 놓았다.
“그럼 직접 정해 주세요. 저는 저쪽에서 볼게요.”
세빈이 한 번 걸었고, 도하는 어디서 유탁과 겹치는지 말했다. 혼자 편한 길과 셋이 함께 쓸 길은 다시 조금 달랐다. 셋이 조각을 하나씩 옮기자 지나치게 넓어진 길이 코트 안으로 돌아왔다.
쉬는 동안 유탁은 자기 물병을 눕혔다.
세빈이 웃으며 왜 그러냐고 묻자 표식으로 쓰는 줄 알까 봐 그렇다고 했다. 도하는 물병을 다시 세웠다. 오늘은 마시는 물건이라고 말해 주면 됐다. 물건이 쓸모 있어야만 바닥에 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손바닥을 폈다. 능력을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손은 평소와 같았다. 그렇다고 빈 받침 연습이 공짜로 몸을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센터에서 하루 종일 걸은 종아리가 묵직했다. 오늘 마지막 순서는 짧게 한 번만 더 하고 끝내자고 먼저 제안했다.
유탁이 빈 받침을 돌아봤다.
“기록은요?”
“시간은 안 쟀어. 끈은 덜 밟았고.”
“그걸 기록해요. 제 끈 수명 늘었으니까.”
도하는 웃고 종이에 썼다. 바깥 보폭, 받기 전에 몸 돌리지 않기, 짐보다 먼저 다음 손 위치 말하기. 숫자가 안 들어가니 훈련을 덜 한 메모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일 다시 오면 어느 자리부터 바꿀지 알 수 있었다.
세빈은 오늘 한 걸 무게가 실린 경기의 성공으로 쓰지 말자고 했다.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 받침에서 손이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과 이십 킬로그램을 같은 속도로 받아 낸다는 것은 다른 확인이었다. 저울이 돌아오고 몸 상태도 맞을 때 실물을 놓고 봐야 했다.
유탁은 종이에 자기 항목을 더했다. 미는 손을 놓을 때 받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는지 확인하기. 도하는 그 문장을 보며 마지막 내리막 영상을 떠올렸다. 기다려 준 사실만으로 자기 역할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돌아온 손을 제대로 받을 차례를 놓칠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손 신호가 한 번 늦었다. 도하가 먼저 손을 내렸는데 유탁은 세빈이 자리를 골랐는지 보고 있었다. 둘은 받침을 천천히 세웠다. 다시 하자는 말 대신 왜 다른 곳을 봤는지 물었다. 세빈은 먼저 정한 신호를 자신이 중간에 바꿔 말한 것도 있었다고 했다.
누구 실수 하나만 고르면 간단했다. 그러나 셋이 들은 말이 달랐다. 그들은 출발 전 신호를 한 문장으로 줄였다. 받는 손 준비됐으면 출발. 중간에 새 조건이 나오면 일단 세우고 다시 말하기.
도하는 그 문장을 읽고 끈을 감았다. 능력이 없었는데도 오늘 손이 놓인 자리는 여러 번 달라졌다. 최대치를 늘렸다는 말보다 동료에게 설명하기 쉬웠다.
줄넘기 학생들이 들어왔다. 셋은 코트에 붙인 임시 조각을 모두 떼고 빈 받침을 벽 쪽에 세웠다. 학생 하나가 오늘도 경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유탁이 했다고 하려다가 도하를 봤다.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연습했어. 힘은 안 쓰고 길만.”
학생은 그게 재미있느냐고 했다. 도하는 잠깐 생각했다.
“끈 밟으면 혼나거든. 피하는 재미.”
유탁이 쓰레받기를 들고 웃었다. 학생은 준비 운동을 하러 갔다. 대단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오늘 한 일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송주는 저울 둘을 책상 아래의 따로 정한 칸에 넣었다. 훈련 블록이 실수로 올라갈 자리가 아니었다.
도하는 나가기 전에 회사 질문 목록을 열었다. 시설 사진에서 공용 저울이 많다는 것만 보던 자신이 떠올랐다. 고장 나거나 확인할 수 없는 날에는 무슨 훈련을 하는지 물어보는 줄을 더했다. 좋은 시설은 멈추는 날이 아예 없는 장소라는 뜻은 아닐 터였다.
유탁은 현관에서 휴대폰을 귀에 댔다. 누군가에게 다음 일요일이냐고 되물었다. 도하는 신발 끈을 묶으며 기다렸다. 유탁은 통화를 끊고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송주가 문을 잠글 때까지 화면의 달력을 보고 있었다.
“일 생겼어?”
도하가 묻자 유탁은 아직 날짜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도하는 알겠다고 답했다. 미리 짐작해서 훈련부터 빼 주거나, 다음 경기에 꼭 나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그는 자기 종이를 한 번 더 폈다. 최대 수치 아래에 새 항목이 늘어 있었다. 오늘의 십팔은 측정하지 않았고, 여덟 초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사람의 손이 들어갈 길은 아까보다 잘 보였다.
유탁의 달력에도 그만한 빈칸이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