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쳤는데 바닥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하는 지붕 아래에서 운동화 밑창을 닦았다. 먼지가 묻은 마른 고무와 물을 먹은 코트가 번갈아 손에 닿았다. 원정 가방을 내려놓을 때만 해도 줄을 어디에 설지 몰랐다. 지금은 어느 줄에도 서지 않고 기다리는 게 먼저였다.
첫 안내는 경기 지연이었다. 선수 확인은 지붕 아래에서 했고, 레인 점검이 끝날 때까지 장비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유탁이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세빈에게 건넸다. 그녀는 벤치 가장자리의 물기를 닦고 앉았다.
“실내 바닥이 그립네요.” 도하가 말했다.
“실내도 닦기 전엔 미끄러워요.”
유탁의 대답에 도하는 웃었다. 바로 그 바닥을 닦기 싫어했던 날들이 있었다. 여기서는 누가 밀대를 미는지만 자꾸 보게 됐다.
상대 팀 갈밭은 맞은편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다. 키가 큰 선수가 장갑을 벗어 말렸다. 도하는 그들 가방의 새 신발에 시선이 갔다가, 선수가 이전 신발로 다시 돌아가는 걸 봤다. 밑창을 손으로 문지르고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모습이었다. 새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답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세빈은 공지된 레인 그림을 펼쳤다. 첫 경사로 뒤의 내리막이 기존 경기장보다 길었다. 첫 짐을 세우는 선은 끝보다 앞이었다. 도하는 그 선만 보면 제동할 곳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앞에서 얼마나 일찍 줄여야 하는지는 아직 몸이 몰랐다.
직원이 선수들을 불렀다. 비는 멎었고 코트의 고인 물을 치웠다. 각 팀은 능력을 쓰지 않는 장비 확인과 낮은 속도의 이동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상태가 나쁘면 즉시 말하라고 했다. 도하는 발로 바닥을 쓸지 않고 천천히 걸어 봤다. 밑창이 붙었다. 그렇다고 빠르게 당겨도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유탁이 빈 받침을 밀었다. 도하는 끈을 잡고 멈춰 세웠다. 평지에서는 의도한 곳에 섰다. 세빈이 내리막 쪽은 별도로 확인하자고 했다. 셋은 받침을 들고 올라가지 않고 허용된 옆길로 옮겼다. 낮은 속도로 내려온 받침은 도하의 예상보다 반 발 더 갔다.
“여기서부터요.”
세빈이 기존 제동선보다 앞을 짚었다.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그쳤다는 말은 날씨 이야기였다. 자기 손이 끈을 받는 시간은 바꿔야 했다.
경기 장비는 여기서 처음 들었다. 도하는 첫 이십 킬로그램 짐, 경사로 받침 블록, 문 고리 블록을 하나씩 통째로 들어 일 초 넘게 유지했다. 행사 저울의 수치를 보고 손의 감각을 맞췄다. 가방도 집의 훈련 블록도 대신해 주지 않았다. 삼십오 킬로그램 짐과 고정 추와 문은 기억할 물건에 넣지 않았다.
유탁은 손잡이 잠금을 확인했다. 세빈은 무릎 상태를 말하고 평지에서 제동과 경로를 맡겠다고 했다. 젖은 경사로를 달려 올라갈 역할은 고르지 않았다. 도하는 자기도 미끄러지면 버티지 않고 신호를 내겠다고 답했다.
“삼 점보다 발목이 먼저죠.”
그가 말하자 유탁이 자기 발목을 봤다.
“일단 둘 다 들고 돌아가요.”
도하는 웃었다. 그건 자신 있는 말보다 오늘 필요한 약속에 가까웠다.
출발 신호가 났다.
첫 짐을 경사로 입구로 미는 동안 도하는 갈밭 레인을 보지 않았다. 유탁은 손잡이를 잡았고 세빈은 내리막 끝으로 먼저 걸어갔다. 도하는 하중을 옮기기 전에 받는 블록과 짐 사이를 봤다. 둘은 이 미터 조금 넘게 떨어져 있었다.
그때 레인 바깥 배수 홈에서 물이 번졌다.
도하가 손을 뻗기 전에 호루라기가 길게 울렸다. 심판의 양팔이 가로로 펴졌다. 유탁이 첫 짐을 평지에 멈췄다. 도하는 끈을 두 손으로 받았다. 아직 능력은 켜지 않았다. 직원이 바깥의 임시 덮개를 젖히자 고여 있던 물이 또 흘러나왔다.
갈밭도 짐을 세웠다. 누구도 다음 구간으로 뛰지 않았다. 기록 시계가 멎었다. 도하는 늦었다는 생각보다 끈을 계속 쥐어야 하는지부터 물었다. 직원이 바퀴 고정을 확인한 뒤 손을 놓으라고 답했다.
셋은 레인 밖으로 나왔다. 도하의 손에는 별다른 당김이 없었다. 유탁은 신호를 조금 늦게 들었다고 했다. 물줄기를 먼저 본 세빈이 손을 내린 덕분에 멈췄다. 도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기 신호 위치를 다시 떠올렸다. 소리가 묻힐 때 볼 손이 필요했다.
도하는 벤치에 앉았다. 갈밭 선수들도 지붕 아래로 돌아왔다. 키 큰 선수가 물병을 찾다가 빈 받침 쪽으로 다시 갔다. 심판이 아직 들어가지 말라고 하자 그는 멈춰 섰다. 도하는 자기 물병이 가방에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별것 아닌 준비가 대기 시간을 조금 편하게 만들었다.
사십 분쯤 뒤 새 안내가 나왔다. 양쪽 레인 모두 점수가 나기 전 시설 사유로 중지됐으므로 첫 위치로 되돌리고 백팔십 초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선수는 미끄러움이 남은 곳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재점검 뒤에도 문제가 있으면 경기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도하는 원래보다 시간이 생겼다는 생각을 버렸다. 상대도 같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자기가 얻은 것은 새 기록이 아니라 바닥을 한 번 더 볼 기회였다.
홈을 정리한 뒤 물이 더 넘어오지 않는지 직원들이 기다렸다. 젖은 곳을 모두 마른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심판은 남은 구간을 표시하고 각 팀이 낮은 속도로 확인하게 했다. 도하는 첫 내리막의 끝에서 손바닥을 내렸다. 유탁이 빈 받침을 늦췄다. 멈춤선 안에는 섰지만 잔돌의 실내에서 익혔던 거리와는 달랐다.
“더 당기지 말고, 더 일찍 줄일게.”
도하가 말했다. 유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빈은 그보다 앞에서 한 번 더 손을 보였다. 도하는 자기 신호 하나로 다 처리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다시 시작한 첫 구간은 느렸다.
유탁이 첫 짐을 경사로 입구에 올렸다. 아직 큰 하중을 옮길 필요 없는 평지였다. 도하는 물건 둘이 보이는 옆자리에 섰다. 세빈이 아래쪽 제동 위치에 닿자 도하가 짐 손잡이에 직접 손을 댔다. 받는 블록에 십팔 킬로그램을 보냈다.
짐이 가벼워졌다. 도하는 손을 떼고 끈을 쥐었다. 유탁이 미는 속도는 먼저 정한 낮은 속도였다. 내리막에 닿자 도하는 발을 크게 뒤로 빼지 않았다. 고무가 버티는 범위에서 작게 옆으로 걸었다. 두 물건은 여전히 보였고 표면 간격도 삼 미터 안이었다.
세빈의 손이 먼저 내려갔다.
유탁이 밀기를 줄였다. 도하는 끈을 당겼다. 바퀴가 느려졌지만 바로 서지 않았다. 받침이 멈춤선 쪽으로 조금 더 갔다. 발밑에서 고무가 얇게 울었다. 도하는 팔에 힘을 더 몰려다가 손바닥을 폈다. 이미 정한 정지 신호였다.
“멈춰. 더 밀지 마.”
유탁이 양손으로 손잡이를 버텼다. 세빈이 별도의 제동 끈을 받았다. 한 사람의 팔에 몰리던 당김이 나뉘었다. 바퀴가 멈췄다. 선을 넘지 않았다. 도하는 물건이 선 것을 확인한 뒤 다섯 초 안에서 연결을 풀었다. 무게가 돌아오며 받침이 낮게 눌렸다.
첫 구간 일 점이 켜졌다.
도하는 안도하다가 시계를 봤다. 남은 시간은 여든한 초였다. 백삼십이 초가 남았던 지난 경기와 달랐다. 구간 하나에 거의 백 초를 썼다. 재개 전에 걸었던 길이 실제 짐과 함께일 때는 이렇게 길었다.
갈밭은 벌써 둘째 구간으로 갔다. 도하는 빨리 따라가자고 말하려다 숨부터 골랐다. 첫 짐을 멈춰 둔 손이 조금 뜨거웠다. 떨림은 없었고 손가락도 잘 펴졌다. 세빈이 묻자 그는 상태를 그대로 말했다. 더 큰 힘으로 따라잡을 답은 없었다.
두 번째 삼십오 킬로그램 짐은 바퀴 받침째 옮겼다. 유탁이 밀고 도하가 앞 끈을 잡았다. 첫 짐을 지정된 자리로 보낸 세빈이 합류했다. 이번에는 모서리마다 멈췄다. 방향을 틀 때 바깥 바퀴가 덜 붙는 구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정면으로 당기려는 손을 고쳐야 했다.
관중석에서 누가 빨리 가라고 외쳤다. 도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말은 바닥을 말려 주지 않았다. 유탁이 앞을 보려고 몸을 기울이자 도하가 위치를 말해 줬다.
“오른쪽 바퀴 한 뼘. 지금은 그대로.”
짐이 낮은 가로대를 통과했다. 도착 받침은 보였다. 아직 굽이 하나가 남았다. 시계는 열아홉 초였다. 유탁이 이를 악물었지만 세빈이 손을 내렸다. 도하는 끈을 놓지 않고 속도를 줄였다. 여기서 밀어붙이면 선 안에 세우는 것보다 다시 끌어오는 데 오래 걸릴 수 있었다.
마지막 굽이에서 종료 신호가 났다.
짐은 도착 받침 앞에 못 미쳤다. 도하는 바로 손을 놓지 않았다. 유탁과 함께 받침을 세우고 심판이 고정을 확인한 뒤 끈을 바닥에 뒀다. 다 끝난 뒤에 사고가 나면 그건 점수판에 나오지 않는다고 세빈이 말했던 적이 떠올랐다.
잔돌 일 점. 갈밭 이 점.
패배였다. 첫 원정에 가져온 능력은 똑같았고, 결과는 달랐다. 도하는 마지막 문을 보지도 못한 자기 레인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와서 일 점이라는 말이 목 안쪽에 붙었다. 버스비와 밥값을 더하면 그 일 점은 더 비싸 보였다.
유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아래에서 더 빨리 받았어야.”
“아까는 같이 못 멈췄으면 영 점이었어.”
도하가 말했다. 위로하려고 꾸민 말이 아니었다. 선을 넘으면 첫 구간을 다시 해야 했고, 자신은 팔 하나로 당김을 버틸 생각을 했다. 유탁이 밀기를 멈추고 세빈이 다른 끈을 받은 뒤에야 섰다.
세빈은 젖은 보호대를 풀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무릎은 평소보다 뻣뻣하지만 날카로운 통증은 없다고 했다. 오늘 경기는 더 없으니 상태를 보며 쉬겠다고 했다. 도하는 자기 손을 펴 보였다. 약한 당김만 남았다. 물을 마시고 장갑을 벗었다.
갈밭 선수들이 악수를 청했다. 키 큰 선수는 자기들도 둘째 구간에서 멈추느라 문까지 못 갔다고 말했다. 도하는 그들이 점수를 쉽게 가져간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봤다. 반대 레인 바닥에도 같은 바퀴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첫 내리막, 잘 세우셨더라고요.”
상대의 말에 도하는 웃을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삼 점을 놓친 자리에서 일 점을 지킨 모습이 보인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패배를 성공이라고 바꿔 부를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늘 고쳐야 할 것은 그대로 남았다.
늦은 점심은 운동장 옆 지붕 아래에서 먹었다.
유탁이 가져온 빵은 하나만 남았다. 도하는 미리 정한 밥값 범위 안에서 따뜻한 국수를 샀다. 면을 다 먹고 나자 젖은 바닥 때문에 쥐고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귀가 버스를 빠듯하게 잡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미오가 카메라를 들고 왔다. 다른 팀 경기까지 찍느라 오늘은 코트 가까이 못 왔다고 했다. 도하는 재시연은 못 한다고 먼저 말하려다가 그녀가 의자를 끌어오는 걸 봤다. 지금 이야기만 들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다시 하면 어디를 바꾸고 싶어요?”
도하는 첫 짐의 제동선보다 훨씬 앞을 가리켰다.
“저쪽에서부터요. 멈추는 자리가 아니라, 멈추기 시작하는 자리.”
미오는 그 방향을 찍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 나왔다. 도하는 저것만 보면 누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 세빈은 자기 빈 물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채우기 전에 운동장 바깥 연습 구역을 한 번 볼 거라고 했다.
도하도 천천히 일어났다. 발목은 괜찮았고 신발 속 양말만 조금 축축했다. 가방의 마른 양말을 꺼냈다. 다 쓸모가 없었던 원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돌아가는 차에서 이긴 척 웃을 필요는 없었다.
비가 그친 레인에는 여전히 긴 자국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