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은 짐을 놓고 달렸다.
화요일 저녁, 잔돌의 작은 화면에서 흰 유니폼 셋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운반 블록은 중간 받침에 멈춰 있었고, 한결이 다음 손잡이를 잡을 때까지 아무도 무게를 옮기지 않았다. 도하는 재생을 멈췄다.
“저기까지 그냥 간다고요?”
“그래서 발을 보라고 했나 보네.” 유탁이 말했다.
영상은 백선이 공개한 연습 경기였다. 미오가 선수 인터뷰에 덧붙인 전체 화면에는 시간과 코스 길이가 함께 나왔다. 도하는 특별한 분석 자료라도 얻은 기분으로 눌렀다가, 누구나 볼 수 있는 화면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백선은 자신들이 뭘 하는지 보여 줘도 상관없다는 듯 움직였다.
첫 받침과 다음 고리 사이에 긴 빈 통로가 있었다. 도하는 그걸 한 번에 이을 물건을 찾았다. 운반 블록, 회전 짐, 낮은 받침. 화면 속 선수의 발은 벌써 그 통로 절반을 지났다.
세빈이 줄자를 건넸다.
“먼저 우리 걸로 해 봐요.”
도하는 수선한 신발의 끈을 다시 묶었다. 어제 걷고 난 뒤 불편한 곳은 없었다. 오늘도 먼저 코트를 걸었다. 뒤꿈치가 바깥으로 꺾이지 않았고, 느리게 방향을 돌려도 발이 안에서 밀리지 않았다. 달리는 속도는 그다음이었다.
유탁이 출발 받침을 밀었다. 빈 받침 두 개로 긴 통로를 흉내 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육 미터가 조금 넘었다. 도하는 가운데 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가, 세빈이 줄자의 양 끝을 물건 표면에 대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도하 씨 손에서 삼 미터가 아니에요.”
“물건끼리죠. 압니다.”
“알면 말할 때도 그걸로 해요.”
조금 민망했다. 도하는 물건 둘을 자기 양팔의 연장처럼 보고 있었다. 자기가 가운데 뛰면 멀리 있는 둘을 계속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발이 어디에 있든 물건 사이 거리는 줄지 않았다.
실제 하중 시험은 작은 훈련 블록 둘로 했다. 도하는 하나씩 통째로 들어 일 초 넘게 유지하고 바닥에 내렸다. 기억하려는 감각을 분명히 남긴 뒤 각각 낮은 저울 위에 놓았다. 유탁이 받침째 뒤로 밀 수 있도록 끈을 연결했다. 주변에 발을 넣을 사람도 치웠다.
십 킬로그램씩인 블록이었다. 오늘 할 일은 최대치를 다시 찾는 게 아니었다. 도하는 한쪽에서 오 킬로그램만 덜어 반대쪽으로 보냈다. 한 손을 떼도 숫자는 오와 십오에 머물렀다. 둘 다 잘 보였다.
유탁이 천천히 뒤로 걸었다. 줄자가 삼 미터를 조금 지나자 두 저울이 십으로 돌아왔다. 도하는 연결이 끊길 걸 알고도 다시 손을 뻗었다. 손을 더 뻗는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유탁이 멈췄다.
“아까 화면에선 여기서 이미 다음 사람이 가 있었어요.”
유탁의 말에 도하는 줄자보다 긴 바닥을 봤다. 자기 머릿속에서는 능력이 끝난 다음에야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선은 그 전에 발을 옮겼다.
세빈은 도하를 의자에 앉혔다. 손은 떨리지 않았고 사용도 짧았지만, 시험 사이 간격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유탁은 블록을 다시 가져오는 대신 빈 받침을 옆에 놓았다. 무게를 쓰지 않고 해도 되는 부분을 고르는 손길이 빨랐다.
“중간에 받는 물건을 하나 더 놓으면요?” 도하가 물었다.
“그 자리에 둘 수 있는 경기 물건이 있으면 되죠. 이번 공개 코스에는 없어요.”
“저쪽 받침을 끌고 오면.”
“다음 구간 장비를 시작선 밖으로 미리 옮기는 건 안 된다고 적혀 있어요.”
세빈이 이번 주 코스 안내 그림을 펼쳤다. 첫 구간 끝과 회전 구간 사이가 길어진 코스였다. 문 장치는 같지만, 구간을 잇는 통로에 짐을 잠깐 세울 수 있는 표시가 두 군데 있었다. 그건 능력을 잇기 위한 추가 추도, 자유롭게 옮길 블록도 아니었다. 그냥 멈출 자리였다.
도하는 종이를 밀었다. 될 방법마다 규칙이 길을 막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본 유탁이 연필로 빈 통로를 따라갔다.
“이건 걸어가면 되잖아요.”
“걸으면 늦지.”
“계속 연결할 방법 찾는 것보단 빠르겠는데.”
도하는 대꾸를 찾다가 못 찾았다. 유탁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작았다. 그래서 더 또렷하게 들렸다. 힘을 쓰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을 자기가 괜히 어려운 길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첫 운반 짐 대신 빈 받침을 구간 끝에 뒀다. 유탁이 옆에 섰고, 세빈은 다음 구간 입구로 먼저 걸어갔다. 도하는 끈을 풀고 유탁에게 손잡이를 넘겼다. 둘이 같이 밀면 빠를 것 같았지만 좁은 통로에서 서로 보폭이 맞지 않았다. 도하가 뒤에서 속도를 늦추자 유탁의 팔이 한 번 꺾였다.
“둘 다 같은 손잡이 잡지 말아요.” 세빈이 말했다.
도하가 손을 놓았다. 유탁이 받침을 밀고, 도하는 비어 있는 옆길로 다음 받침까지 갔다. 짐 없이 걸으니 먼저 닿았다. 세빈은 그에게 제동 끈 끝을 건넸다. 유탁이 가져온 받침을 도하가 받아 세웠다.
멈춤선 안에서 바퀴가 섰다. 힘을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도하는 초시계를 봤다. 빨랐다. 그러나 이건 빈 받침이었다. 실제 이십 킬로그램을 유탁 혼자 밀어도 같은 속도가 나온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그 말을 세빈보다 먼저 했다. 세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확인할 건 뭘까요?”
“누가 먼저 가고, 누가 짐을 받아야 하는지요.”
도하가 끈을 돌려줬다. 처음에는 자기가 달려가 받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세빈이 그 자리를 맡아 봤다. 그녀가 지름길로 걸으면 유탁이 짐을 갖고 도는 동안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도하는 출발 쪽의 장비를 제자리에 놓은 뒤 뒤따라갔다.
유탁이 약간 빠르게 밀었다. 세빈은 제동 끈을 낮게 당기고 두 발로 물러났다. 빈 받침이 서는 자리까지 거리가 남았다. 그녀는 급히 달리지 않았다. 대신 더 일찍 손을 내렸다.
“짐이 있을 때는 여기서부터 줄여.”
유탁이 바닥에 짧은 테이프를 붙였다. 도하는 그 선을 눈으로 기억했다. 세 미터 선 밖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신호가 생겼다.
줄넘기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 가까웠다. 코트 반쪽을 비워야 했다. 유탁은 한 번만 실제 중량으로 가 보자고 했지만, 도하는 자기 신발 안쪽을 먼저 확인했다. 걷기와 느린 전환은 괜찮았고, 오래 당기는 건 아직 해 보지 않았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내일 신발 괜찮으면 해 보자.”
유탁이 잠깐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공구함에서 작은 솔을 꺼냈다. 바퀴 틈에 낀 머리카락을 빼냈다. 도하는 옆에서 테이프 끝을 눌러 붙였다. 훈련을 멈췄다고 저녁이 갑자기 쓸모없어지지는 않았다.
송주가 학생들을 들이며 물었다.
“오늘 새 기술은 뭐야?”
“힘 안 쓰고 걸어가는 겁니다.”
“다들 대단한 걸 배웠네.”
송주는 진지하게 답했다. 유탁이 먼저 웃었고 도하도 웃었다. 학생 하나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나서자 송주는 그럼 준비 운동부터 하라고 했다. 줄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코트 가운데를 채웠다.
도하는 벤치에서 신발을 벗었다. 뒤꿈치가 조금 따뜻했지만 쓸린 자국은 없었다. 수선한 고무를 엄지로 눌러 봤다. 더 비싼 신발을 신었어도 물건 사이 거리는 삼 미터에서 끝났을 것이다. 발이 할 일을 능력한테 넘길 수는 없었다.
휴대폰에서는 백선 영상이 멈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도하는 같은 장면을 다시 틀었다. 이번에는 한결의 손이 아니라 아무것도 잡지 않은 선수의 발을 봤다. 그 선수는 짐을 놓기 전에 이미 몸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앞으로 할 일을 준비하는 시간은 능력 수치 옆에 적히지 않았다.
한결은 긴 구간에서 무리하게 연결을 유지하지 않았다. 그의 능력이 얼마나 멀리 가는지 도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영상만으로 자기 한계와 같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만 연결이 없는 동안 다른 선수들이 손잡이를 옮기고 제동 자리에 서는 건 보였다. 상대도 빈 시간을 그냥 비워 두지 않았다.
“우리 삼 미터 끊기는 거 보고 길게 연습했겠죠?”
도하가 묻자 세빈은 잠깐 화면을 봤다.
“우릴 봤을 수도 있죠. 긴 코스라서 했을 수도 있고.”
“우릴 이기려고 준비한 거면 좋겠는데요.”
“그건 왜요?”
“우리가 준비할 만큼은 된다는 거니까.”
세빈이 웃었다. 도하는 그 말을 한 자기가 조금 낯설었다. 토요일에는 상대의 큰 숫자가 자기 숫자를 없애는 것 같았었다. 이제 상대가 연습하는 장면에서 자기들이 연습할 것을 골랐다. 여전히 백선은 빨랐지만, 빠른 데에도 순서가 있었다.
유탁은 자기 작업 일정을 확인하더니 수요일에는 조금 늦는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차를 마감해야 했다. 도하는 그럼 먼저 둘이 하겠다고 답했다. 말하고 나자 곧 신경이 쓰였다. 세빈과 둘이서 유탁 몫의 중량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빈 걸로 할게. 무거운 건 너 오면.”
그가 덧붙이자 유탁이 고개를 들었다.
“형이 먼저 다 해 놓을 줄 알았어요.”
“그러다 또 고장 나면 네가 고치잖아.”
“사람은 정비 못 한다니까요.”
도하는 알겠다고 양손을 폈다. 유탁이 웃으며 공구함을 닫았다. 공구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가 났다. 도하는 그 소리도 조금 전까지는 훈련을 늦추는 시간으로 들었었다. 이제는 내일 돌아갈 바퀴가 준비되는 소리로 들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도하는 손바닥을 폈다. 떨림은 없었다. 오늘 능력을 쓴 시간보다 걸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특별한 훈련을 못 한 것 같은 기분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무게를 옮기지 않는 동안 누가 짐을 맡는지 처음 제대로 본 날이었다.
유탁이 단체 대화방에 사진을 보냈다. 제동선 테이프가 매트 이음새와 겹치니 내일은 색을 바꾸겠다는 말이었다. 세빈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보일 위치로 해 달라고 답했다. 도하는 그 아래에 자기가 맡을 걸 적었다. 먼저 도착해서 끈 받기. 말없이 앞질러 가기와는 다른 일이었다.
이어 미오가 공개 코스 설명 영상을 올렸다. 이번 예선은 구간 사이에 멈춰도 별도 벌점이 없다는 안내가 나왔다. 시간만 계속 흘렀다. 도하는 멈출 수 있다는 문장을 두 번 들었다.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과 그걸 쓰면 늦어진다는 것이 같이 들어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기 팀의 일이었다.
화면 맨 끝에는 백선의 같은 코스 연습 장면이 잠깐 붙었다. 한결은 첫 짐을 동료에게 넘기고 빈손으로 다음 굽이를 향해 걸었다. 도하는 화면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어디에 닿아 누구를 받는지 끝까지 봤다.
버스가 급히 정류장에 섰다. 도하는 의자 앞 손잡이를 잡고 몸이 쏠리는 걸 막았다. 가벼워지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 여기서도 맞았다. 몸은 멈출 자리를 알아야 했다.
그는 수요일 훈련 메모에서 ‘세 미터 늘리기’를 지웠다. 써 놓을 때는 늘릴 수 있다고 믿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자꾸 그쪽만 보고 있었다.
대신 새 줄을 적었다.
세 미터가 끝난 다음, 누가 기다리고 있나.
도하는 그 질문 아래에 세빈의 이름을 썼다가 멈췄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먼저 가 있을 수 있는 사람. 내일은 그 차이를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