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팀은 출발 전에 도하의 신발을 봤다.
정확히는 뒤축이 바깥으로 닳은 운동화였다. 흰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시선을 올리자 도하는 괜히 발끝을 안으로 모았다. 남자는 손을 내밀었다.
“백선 이군, 한결입니다. 처음 뛰시죠?”
“신발에 적혀 있습니까?”
“신발 말고, 출발선 한참 뒤에 서 계셔서요.”
도하가 아래를 봤다. 빨간 선은 오십 센티미터 앞에 있었다. 그는 악수를 한 뒤 선까지 걸어갔다. 토요일 아침, 해림 서부 경기장은 체육관보다 훨씬 밝았다. 능력이 생긴 뒤 처음 맞는 토요일이었다. 금요일은 약속대로 훈련을 쉬었다.
관중석은 반쯤 비어 있었지만 빈 의자가 사람보다 더 크게 보였다. 송주가 맨 앞줄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잔돌의 줄넘기 학생 둘이 있었다. 응원 막대 대신 편의점 봉지를 들고 있었다.
“평가전이에요. 오늘 져도 내일 예선에 나가요.”
세빈이 세 번째로 같은 말을 했다. 도하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은 계속 젖었다.
백선 선수들은 경기 물건을 훑어보는 속도가 달랐다. 한 명이 블록을 들어 등록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손잡이를 확인했다. 한결은 마지막 문 뒤를 보고 곧 돌아왔다. 서로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잔돌은 이십 킬로그램 블록 세 개를 차례로 들었다. 도하는 첫 운반 블록과 경사로 옆의 받침 블록, 마지막 문에 걸 블록. 셋의 감각을 손바닥에 남겼다. 회전 구간의 삼십오 킬로그램 짐은 능력 대신 바퀴와 지렛대로 옮길 계획이었다. 네 개를 다 채울 이유는 없었다.
“바뀐 거 없죠?”
유탁의 질문에 세빈이 출발선 너머를 가리켰다. 두 번째 구간의 굽은 길이 연습장보다 좁았다. 마지막 문으로 이어지는 바닥은 살짝 경사져 있었다. 코스 공개 시간에 이미 본 차이였다. 도하는 그때 괜찮다고 했다.
지금 보니 괜찮다는 말이 좀 빨랐다.
심판이 두 레인 사이에서 손을 들었다. 큰 화면에 백팔십이라는 숫자가 떴다. 전광판의 숫자는 마법이 아니었다. 사람들 눈에 똑같이 보이는 숫자였다. 이상하게도 도하는 그것이 더 무서웠다.
관중석 통로에서 카메라를 든 여자가 손을 들었다. 지역 중계를 맡은 채미오라고 했다. 경기 뒤 짧게 말을 걸어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도하는 아직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미오는 웃고 카메라를 짐 쪽으로 돌렸다.
“그럼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부터 찍을게요.”
도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기 얼굴만 보는 것보다 짐을 보는 편이 나았다. 세빈이 마지막으로 끈 고리를 당겼다. 도하는 자기도 모르게 발끝을 출발선에 맞췄다. 카메라가 아니라 이제 옮겨야 할 블록을 봤다.
호루라기가 울렸다.
유탁이 출발 블록과 받침 블록을 붙들었다. 두 초 동안 하중이 빠진 짐을 경사로에 올리는 건 그의 몫이었다. 도하는 위쪽에서 끈을 받았다. 유탁이 손을 떼고, 도하가 손잡이를 잡았다.
무게를 옮기자 짐이 위로 들리는 대신 바퀴가 조금 편하게 굴렀다. 그는 끈을 끝까지 잡고 작은 보폭으로 뒤로 걸었다. 이번에는 세빈의 제동 신호가 들렸다.
“셋, 둘, 지금.”
블록이 멈춤선 안에서 섰다. 짧게 쉬는 동안 화면에 잔돌 일 점이 켜졌다. 관중석에서 비닐봉지 흔드는 소리가 났다. 도하는 웃을 뻔했다.
옆 레인은 이미 두 번째 구간이었다.
한결이 뒤로 달리고 있었다. 짐은 동료가 밀었다. 한결은 손을 대지 않은 채 제동 끈의 빈 고리를 받아 들었다. 상대도 몸이 셋인데, 셋보다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도하가 시선을 놓친 사이 유탁의 목소리가 커졌다.
“형, 이쪽!”
삼십오 킬로그램 블록 앞이었다. 도하는 옆 레인을 보던 걸 들켰다. 유탁이 웃지 않았다. 도하는 손잡이를 잡고 회전 구간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힘으로도 짐은 움직였다. 문제는 좁은 모서리였다.
“안쪽 바퀴 멈춰요.”
도하가 왼쪽을 잡자 유탁도 왼쪽을 잡았다. 짐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도하는 급히 오른쪽으로 옮겼다. 세빈이 바닥 선을 가리켰다.
“지금은 도하 씨가 당기고, 유탁이는 밀어. 둘 다 돌리지 마.”
몇 초를 잃었다. 짐은 기울어진 채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똑바로 세워야 했다. 도하는 유탁의 숨소리가 자기 것보다 거칠다는 걸 들었다. 힘이 큰 사람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삼십오 킬로그램 블록이 두 번째 선 안의 도착 받침에 들어갔다. 여기 둘 짐은 다 옮겼다. 잔돌 이 점. 옆에서는 백선의 마지막 문이 올라가고 있었다.
“보지 말아요.”
세빈의 말이 늦었다. 도하는 이미 봤다. 한결이 먼저 들어가는 대신 뒤에서 짐을 받았다. 동료 둘과 짐이 선을 넘은 뒤에야 그가 뛰었다. 화면에 삼 점과 남은 시간 쉰두 초가 켜졌다.
백선 완주.
도하가 고개를 돌렸다. 잔돌에게도 시간은 있었다. 아흔 킬로그램 문까지 첫 운반 블록을 밀고, 고리에 이십 킬로그램 블록을 걸면 됐다. 유탁이 고리 블록을 걸었다. 도하는 첫 운반 블록에 손을 댔다.
거리는 두 미터 반쯤. 문 뒤의 블록도 보였다. 무게를 내려놓을 자리가 손바닥에서 열렸다.
“갑니다.”
첫 블록은 가벼워지고, 문 뒤의 추는 무거워졌다. 문이 천천히 올라갔다. 쇠줄이 울었다. 도하는 여덟까지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유탁이 첫 블록의 손잡이를 당겼다. 마지막에 운반해야 할 짐을 미리 가져가려는 움직임이었다. 도하는 여전히 문을 봤다. 넷.
그 순간 손바닥이 텅 비었다.
문이 내려앉았다. 바닥까지 떨어지기 전에 안전 걸쇠가 세게 물렸다. 쇳소리가 경기장을 긁었다. 세빈은 문 아래로 발을 넣지 않고 뒤로 빠졌다.
“중지!”
심판이 손을 들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 않았다. 안전 상태를 확인하는 정지였다. 도하는 자기 발밑을 봤다. 첫 운반 블록이 아까 자리보다 한 미터쯤 앞에 가 있었다. 문 뒤 블록과의 거리는 삼 미터를 넘었다.
유탁이 손잡이를 놓았다.
“이거 미리 옮기면 안 됐어요?”
도하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오려 했다. 왜 그걸 가져갔냐고. 줄자로 쟀지 않냐고. 그러나 유탁은 문 뒤에서 힘을 받는 블록을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도하는 자기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한결의 마지막 달리기가 떠올랐다. 백선은 마지막 사람까지 자기 차례를 알았다.
“제가 말 안 했어요.”
손등이 조금 떨렸다. 도하는 심판에게 상태를 그대로 말했다. 통증은 없고 손가락은 움직였다. 세빈은 그의 눈과 손을 번갈아 본 뒤, 다시 연결하기 전에 쉬자고 했다. 재개 뒤 남은 시간은 예순한 초였다.
짐을 뒤로 돌리고, 제동 끈을 낮은 바닥 고리에 걸었다. 물건을 바닥에 묶는 허용 장비였다. 유탁은 문 뒤에서 나온 고리 블록을 다시 확인했다. 세빈은 도하에게 지금 어떤 물건이 보이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왼쪽 운반 짐. 오른쪽 추. 간격 두 미터 반.”
“문 올라가면?”
“멈춤쇠 걸릴 때까지 둘 다 여기 둡니다.”
말로 하니 간단했다. 도하는 그 간단한 말을 왜 아꼈는지 알 수 없었다. 삼십 초쯤 지나 손이 잠잠해졌다. 세빈이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신호했다. 도하는 남은 힘을 모두 쓴다는 상상을 버렸다. 필요한 건 여덟 초 안쪽의 한 번이었다.
이번에는 유탁도 같이 셌다. 둘, 셋, 넷. 문이 올라갔다. 세빈이 옆에서 멈춤쇠를 확인했다.
“고정!”
다섯을 조금 지난 뒤였다. 도하는 바로 연결을 풀었다. 여덟 초를 채울 이유는 없었다. 유탁이 고리에서 블록을 빼 들었다. 도하는 제동 끈을 풀고 첫 짐을 밀었다. 세빈은 돌아가는 바퀴 옆으로 붙어 마지막 경사에서 속도를 줄였다.
세 사람과 짐이 선을 넘었을 때 남은 시간은 열네 초였다.
잔돌 삼 점.
백선 삼 점.
시간 차 서른여덟 초. 도하는 숫자 둘이 같은데도 졌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완주하면 이기는 줄 알았던 마음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몰랐다.
송주의 박수가 먼저 들렸다. 학생 둘도 따라 손을 쳤다. 도하는 허리를 숙였고 유탁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빈이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다리를 조금 움직이며 쉬라고 했다.
한결이 레인 사이로 걸어왔다. 그는 잘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하도 듣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짐, 묶고 갔으면 처음에도 열렸겠네요.”
“그건 저희도 방금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은 하시겠죠.”
끝이었다. 한결은 물통을 받아 들고 자기 팀 쪽으로 돌아갔다. 비웃음도 동정도 없어서 도하는 오히려 대꾸할 말이 없었다.
유탁은 잔디 매트 쪽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도하가 옆에 서자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급했죠.”
“나도.”
“형 능력 끊긴 거 보고, 또 제가 실수했다고 생각했어요.”
도하는 물병 뚜껑을 만지작거렸다. 유탁이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센터에서도 도하는 일의 흐름이 꼬이면 유탁에게 조금만 천천히 하라고 했었다. 누가 먼저 지시를 빠뜨렸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음엔 내가 보고 있는 거 말할게. 너는 네 쪽 얘기해 줘.”
“동시에 말하면요?”
“그럼 세빈 씨가 둘 다 닥치라고 하겠지.”
유탁이 웃었다. 도하는 그제야 옆에서 세빈이 듣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알고 있으면 미리 한 사람씩 말해요.”
그녀가 앉은 의자를 발로 조금 밀었다. 다리를 뻗을 자리가 필요해 보였다. 도하는 대회 물품 상자를 치웠다. 그 아래 세빈의 오른쪽 무릎 보호대가 보였다. 그도 처음에는 세빈이 몸을 아끼느라 다른 둘을 뛰게 한다고 생각했었다.
경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 멈추라고 외친 사람은 세빈이었다. 지는 중에도 멈추는 사람. 도하는 물병을 내려놓고 자신의 손을 폈다. 떨림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도하는 내일 물류센터에 가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손이 떨리자 능력을 쓰는 일이 단순한 퇴근 후 취미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몸이 경기장과 일터에서 따로 생기는 건 아니었다.
“오늘 오후엔 또 안 뛰죠?”
그가 묻자 세빈이 끄덕였다.
“코스는 볼 수 있어요. 손은 쉬고.”
처음으로 쉬겠다는 말을 도하가 먼저 했다. 유탁도 물병을 내려놓고 손목을 천천히 돌렸다. 누구 하나 뒤처지는 표정은 아니었다.
송주가 세 사람에게 귤을 하나씩 건넸다. 우승컵도 못 받았는데 우승한 얼굴이라는 유탁의 말에, 송주는 주황색 껍질을 엄지로 벗겼다.
“처음인데 사람도 짐도 다 돌아왔잖아.”
도하는 바로 동의할 수 없었다. 졌다. 내일은 연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돌아왔다는 말의 뜻을 조금은 알았다. 오늘의 실패를 다음 경기에 들고 갈 수 있었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데 한결이 벽에 기대 신발 끈을 매고 있었다. 그는 도하를 보고 출구 옆 작은 코트를 가리켰다. 천장이 낮아서 높은 장비를 쓸 수 없는 연습 구역이었다.
“내일 예선 코스 저 높이예요. 영상처럼 들고 뛰면 천장에 닿습니다.”
도하는 유탁과 세빈을 돌아봤다. 두 사람도 발을 멈췄다.
내일은 문이 아니라, 그 문까지 가는 길부터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