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블록은 도하가 세운 발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놓지 말고, 옆으로!”
도하는 손잡이를 잡은 채 옆선을 따라 뛰었다. 블록이 매트 끝을 지나기 직전 세빈이 제동 끈을 당겼다. 바닥의 고무가 길게 울었다. 무게가 돌아온 블록이 덜컹 기울었다가 두 바퀴로 섰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도하는 방금 자기가 바닥에 발을 대서 물건을 막으려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안전화를 신고 있을 때의 버릇이었다. 오늘 신발 앞에는 천밖에 없었다.
“미안합니다.”
“다친 데부터 확인해요.”
목요일 저녁이었다. 어제 체육관에서 돌아간 도하는 일곱 시간 자고 출근했다. 오늘도 물건을 들었지만, 무게를 옮겨 보지는 않았다. 손의 떨림은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어제보다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것과 모르는 것이 별개라는 사실은 방금 배웠다.
세빈이 바닥에 앉아 블록의 바퀴를 돌렸다. 도하는 반대편 손잡이를 잡고 섰다. 팔을 떠는 대신 얼굴이 달아올랐다.
“십팔 킬로그램을 덜어도 이건 이십 킬로그램짜리 물체예요. 이미 움직이고 있으면 계속 가요. 마찰이 줄어서 더 안 멈출 수 있고.”
“들어 보니까 거의 빈 것 같아서요.”
“들 때랑 밀 때가 달라요. 아까 뭐 하라고 했죠?”
“느리게 출발하고, 끈은 놓지 말라고요.”
“그걸 하면 돼요. 재능 말고.”
도하는 블록을 출발선에 되돌려 놓았다. 유탁이 제동 끈의 고리를 짧게 만들었다. 잘못 잡아도 손이 빠지지 않게 하되, 넘어지면 손목을 끌고 가지 않도록 풀림 장치를 달았다. 그 장치를 당기는 유탁의 손이 어제보다 침착했다.
“차도 가볍다고 브레이크 안 달진 않거든요.”
“너 어제 냉장고부터 달자고 했잖아.”
“그래서 오늘은 브레이크부터요.”
말을 주고받자 숨이 조금 돌아왔다. 도하는 물을 마시고 의자에 앉았다. 세빈은 추가 검사를 서두르지 않았다. 벽의 시계가 열 분을 더 간 뒤에야 저울 두 대를 다시 켰다.
검증한 범위는 의외로 작고 분명했다. 이십 킬로그램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옮겨 갈 수 있는 하중은 십팔 킬로그램. 더 많이 보내려 해도 저울은 이와 삼십팔에서 멈췄다. 여덟 초가 지나면 원래 숫자로 돌아왔다. 초시계는 두 번째 시도에서도 같았다.
“이보다 더 될 때까지 하면요?”
유탁의 질문에 세빈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되는 걸 확인했으면 됐어. 손이 망가질 때까지 같은 시험 하지 말고.”
삼 미터 경계는 바닥 줄자로 확인했다. 유탁이 받는 블록의 바퀴 받침을 천천히 밀자 표면 사이가 삼 미터를 넘는 순간 연결이 풀렸다. 두 블록이 동시에 둔탁한 소리를 냈다. 누가 숫자를 띄워 주지는 않았다. 도하는 저울과 초시계를 보고 나서야 자기 능력의 크기를 알았다.
한쪽 손을 떼어도 작동은 이어졌다. 대신 두 물건이 보여야 했다. 세빈이 두꺼운 가림판을 세우자 연결은 끊겼다. 고개를 돌려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포 영화 볼 때 쓰면 안 되겠네요.”
“그때는 연결할 짐부터 없애요.”
세빈이 시험표를 접었다. 표정은 진지했지만 유탁의 어깨가 들썩였다.
다음 시험에서는 유탁이 받는 블록을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도하는 무게를 보낼 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유탁이 블록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제야 감각이 돌아왔다. 살아 있는 몸이나 누가 들고 있는 물건에 하중을 얹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 붙었다.
“상대가 잡고 가는 짐을 무겁게 하면 이기는 줄 알았는데.”
“그 종목은 여기 없어요. 자기 레인이나 잘 봐요.”
도하는 조금 안심했다. 체격 좋은 사람의 팔을 마법으로 꺾는 경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세빈은 받는 블록 아래의 받침도 확인시켰다. 하중을 보냈다고 바닥이 저절로 튼튼해지는 건 아니었다. 얇은 플라스틱 뚜껑 위에 무게를 더하면 깨진다고, 유탁이 자기 공구함을 치우며 덧붙였다. 손에서 벗어난 무게도 누군가는 받는다는 말이었다.
도하는 어제 만졌던 훈련 블록에는 아무 느낌이 없다는 걸 말했다. 새로 들고 옮겨 놓자 감각이 돌아왔다. 오래된 물건을 얼마나 기억하는지는, 세빈이 다른 곳에서 배운 검사 방법을 알려 줬다. 같은 유형의 보통 범위가 여섯 시간이고, 도하도 앞으로 시간을 나누어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경우 하나 더 빨리 드러난 한계가 있었다. 등록하려고 마음먹고 들어 올린 물건 네 개까지는 감각이 남았다. 다섯 번째를 새로 기억하자 맨 처음 블록이 손바닥에서 사라졌다. 없어진 건 블록이 아니었다. 십 킬로그램이 그려지던 묘한 감각이었다.
“휴대폰 계속 들면 블록 잊어요?”
“기억하려고 들어야 하네요. 방금 물 마실 때는 그대로였잖아요.”
도하는 안도했다. 능력 때문에 전화도 못 받게 될 뻔했다.
그들이 다섯 개의 물건을 바닥에 늘어놓는 동안 송주가 삶은 달걀을 가져왔다. 유탁이 두 개를 한꺼번에 집자 세빈이 하나를 도하 쪽으로 밀었다. 도하는 껍질을 까며 물었다.
“우리 경기는 뭘 먼저 하면 이기는 겁니까? 영상 보면 끝에 다 소리만 질러서.”
“레인 하나씩 써요. 서로 상대 물건에 손 못 대고.”
세빈은 테이프 세 조각을 달걀 옆에 붙였다. 첫째는 이십 킬로그램 블록을 경사로 너머로, 둘째는 삼십오 킬로그램 블록을 굽은 길 너머로 옮기는 구간이었다. 각각 한 점. 삼십오 킬로그램 짐은 도착 받침에 놓으면 운반이 끝났다. 마지막 구간은 아흔 킬로그램 문을 열고 선수 셋과 첫 짐, 고리에서 뺀 블록이 선을 넘으면 마지막 한 점을 얻었다.
“제한 백팔십 초. 점수가 같으면 먼저 끝낸 팀. 다 못 끝냈으면 마지막 짐이 더 간 쪽.”
“사람끼리 싸우지는 않고요?”
“사람은 운동장 밖에서도 싸우면 안 돼요.”
유탁이 달걀을 뿜을 뻔했다. 도하는 말없이 테이프를 세 번 눌렀다. 세 구간. 두 번의 예선. 여덟 팀 안에 들어야 연습장 신청 기회를 얻는다. 마법을 배우는 것보다 그게 더 이해하기 쉬웠다.
아흔 킬로그램 문 뒤에는 도하가 어제 못 본 장치가 있었다. 문 양옆으로 두꺼운 쇠줄이 지나갔고, 반대편에는 오십사 킬로그램짜리 고정 추와 빈 고리가 달려 있었다. 이십 킬로그램 훈련 블록을 고리에 걸면 문을 드는 데 남은 힘은 십육 킬로그램 정도였다.
“그럼 우리 둘이 당기면 되겠는데요.”
유탁이 손을 뻗자 세빈이 끈 앞을 가로막았다.
“할 수는 있지. 그 전에 두 구간 뛰고 와서도 할 수 있나 봐야 해.”
문을 들면 뒷면의 멈춤쇠가 걸렸다. 그때 고리에 건 블록을 빼서 결승선으로 가져가면 됐다. 문 아래를 몸으로 떠받치는 건 금지였다. 손잡이가 아닌 쇠줄을 잡는 것도 금지였다. 도하는 금지된 동작 두 개 모두 처음 보자마자 떠올렸던 자기가 조금 싫어졌다.
“힘이 안 되면 보통 이상한 데를 잡아요.”
그가 중얼거리자 세빈이 말했다.
“그러니까 손잡이를 미리 찾는 거예요.”
마지막 문은 능력을 쓰지 않고 열어 봤다. 유탁과 도하가 함께 당기고, 세빈이 멈춤쇠를 살폈다. 세빈이 혼자 문을 당기는 시연은 하지 않았다. 몸을 숙일 때 그녀가 오른쪽 다리를 먼저 뒤로 빼는 걸 도하는 봤다.
“무릎은 계속 아픕니까?”
“뛸 수 있는 만큼만 뛰어요. 저도.”
자세한 사연은 붙지 않았다. 도하는 더 묻지 않았다. 자기 손이 떨릴 때 사람들이 자꾸 왜 그러느냐고 물었으면 싫었을 것 같았다.
유탁이 이번에는 자기 능력을 보였다. 양손으로 서로 다른 두 블록을 붙잡자 하나가 바닥에 내려앉고 다른 하나가 가볍게 들렸다. 사십 킬로그램까지 옮길 수 있지만 양쪽 손이 떨어지면 곧바로 끝났다. 최대로 길게 해도 이 초였다.
“형은 여덟 초잖아요. 저 네 번 하는 동안 한 번만 하면 되네.”
도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힘이 두 배 넘잖아.”
“대신 그동안 아무것도 못 잡아요.”
유탁이 양손을 폈다. 손바닥을 오가는 시선에 장난기가 없었다. 도하가 자기 수치만 들여다보는 동안 유탁은 벌써 남의 손이 빈 시간을 보고 있었다.
훈련은 구간 하나만 골라 했다. 유탁이 짧게 하중을 빼서 블록을 경사로 입구에 올렸다. 도하는 위에서 받을 블록과 옮길 블록을 미리 기억했다. 세빈이 앞에서 속도를 읽고 제동 끈을 잡았다.
첫 시도는 도하가 너무 늦게 무게를 옮겨 실패했다. 두 번째는 너무 빨라서 경사로 중간에 원래 무게가 돌아왔다. 다행히 블록은 막음턱에 멈췄다. 세 번째를 하자는 말을 도하는 꺼내지 않았다. 손등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세빈이 먼저 의자를 끌어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게 지금 멈출 이유예요. 되는 건 쉬고 나서도 돼요.”
도하는 앉았다. 유탁이 제동 끈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쉬는 동안 누군가 일을 한다는 게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일어나려 했더니 송주가 빈 달걀 껍질 통을 그의 무릎에 올려놨다.
“그럼 앉아서 이것부터 골라.”
달걀 껍질과 휴지를 분리하는 일은 고작 오 분이 걸렸다. 도하는 그 오 분이 훈련 중 제일 편했다.
송주는 토요일 평가전 대진표를 가져왔다. 공식 예선 전날, 동네 팀들이 백선 이군과 같은 코스를 한 번씩 뛰는 공개 행사였다. 져도 일요일 예선에 나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백선이라는 글씨에 유탁의 눈이 반짝였다. 프로 구단의 이군. 도하도 이름은 알았다. 휴게실 텔레비전에서 늘 흰 선이 그어진 유니폼을 입고 앞서 가는 팀이었다.
“상대가 너무 센 거 아닙니까?”
“그래서 연습이죠.”
“기분 나빠질 연습이요?”
“못 보는 걸 보게 될 수도 있죠.”
세빈이 대진표를 접었다. 도하는 손의 떨림을 숨기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이제 아는 규칙이 몇 개 생겼다. 물건이 가벼워도 멈추지 않는 것. 잘하는 사람도 다리가 아픈 것. 먼저 쉬는 사람이 꼭 팀을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
그는 마지막 문 앞까지 걸어갔다. 문은 여전히 무거웠다. 하지만 뒷면의 고리와 멈춤쇠가 보였다. 어제는 벽처럼 보였던 물건에 오늘은 순서가 생겼다.
휴대폰이 울렸다. 센터 단체 대화방에 토요일 추가 근무자를 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수당이 붙는 여섯 시간이었다. 도하는 화면을 한동안 들여다봤다. 손가락이 조금 멎자 지원 버튼을 지나 대화방을 닫았다.
“토요일에 올게요.”
말하고 나니 수당이 먼저 떠올랐다. 그다음에는 삼 미터짜리 테이프가, 마지막에는 자기가 받아야 할 블록이 떠올랐다. 생각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돈이 덜 필요한 건 아니었다.
유탁이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며 말했다.
“금요일은 쉬어요, 형. 우리도 작업 있어요.”
도하는 막 손에 쥔 물병을 내려다봤다. 능력의 다섯 번째 물건으로 등록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마시기만 했다.
토요일의 상대 팀 선수 명단 맨 위에는 한결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옆에 적힌 기록은 도하의 숫자보다 훨씬 컸다.
세빈은 그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숫자는 상대가 큰데, 레인은 똑같아요.”
도하는 제동 끈을 한 번 더 만져 봤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