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하가 냉장고 손잡이를 놓칠 뻔한 순간, 차 옆 자전거의 뒷받침이 아스팔트를 긁었다.
자전거를 끌려던 주인이 욕을 했다. 그와 동시에 도하의 손목을 누르던 힘이 조금 약해졌다. 조금 전 혼자 통째로 들어 받침에 올렸던 소형 냉장고였지만, 무게 일부가 엉뚱한 쪽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놓지 마!”
도하는 반사적으로 무릎을 굽혔다. 옆에서 경사판을 잡고 기다리던 공유탁이 신발 뒤꿈치로 판을 눌렀다. 도하는 냉장고를 내려놓았다. 바퀴 달린 받침 위에서 원래 하중이 돌아오는 순간, 두 걸음 옆 자전거의 뒷받침이 다시 가벼운 소리를 냈다.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주인의 표정은 매우 험했다.
“방금 누가 당겼어요?”
도하는 자전거와 냉장고를 번갈아 봤다. 퇴근 도장을 찍은 지 사십 분이었다. 해림 물류센터의 수요일 잔업은 이렇게 끝나는 법이 없었다.
“그 자전거, 아까 제가 옮긴 건데요.”
“그러니까 왜 내 자전거를 또 만지냐고.”
“지금은 안 만졌습니다.”
말하고 나니 변명으로도 형편없었다. 십 분 전 차를 대려고 자전거를 두 걸음 들어 옮긴 건 사실이었다. 냉장고는 센터 물건이 아니었다. 체육관 앞에 버려진 중고품을 고쳐 쓰겠다고 유탁이 우겨서, 도하는 퇴근 후에도 허리를 쓰고 있었다.
도하는 양손을 폈다. 장갑 끝이 덜덜 떨렸다.
맞은편 오층짜리 체육관의 창문에서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짧은 머리 아래로 호루라기가 흔들렸다.
“흰 장갑! 둘 다 그대로 둬요.”
그녀가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동안 유탁은 자전거 주인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도하는 받침대 손잡이를 잡았다. 자전거 뒷바퀴에 시선이 걸렸다. 조금 전에는 그 얇은 바퀴가 냉장고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여자가 도착했다. 운동화 한쪽 끈이 풀려 있었지만 그녀는 먼저 자전거 브레이크를 확인했다. 이어 도하의 팔꿈치를 가볍게 짚었다.
“다친 데 있어요?”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목소리 말고 손 보고 대답해요.”
손가락이 제멋대로 오므라들었다. 도하는 주먹을 쥐었다가 통증 때문에 다시 폈다. 여자는 그걸 보고 자전거 주인에게 말했다.
“연결 현상 같아요. 체육관에 저울 있어요. 확인하고, 자전거 이상 있으면 우리가 살필게요. 지금은 아무도 타지 마세요.”
그녀는 이세빈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도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유탁이 틀어 놓던 운반전 경기에서 해설자가 여러 번 외쳤던 이름이었다. 화면 속 세빈은 다리가 꺾인 상태에서도 마지막 문을 밀었다. 다음 시즌부터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지금 눈앞의 그녀는 편의점 봉투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 도하에게 줬다. 그는 뚜껑도 열지 못했다.
“각성 처음이죠?”
도하는 웃음부터 나왔다.
“저 스물아홉인데요.”
“늦었다는 규정은 없어요. 처음인지 물었지.”
열두 해 전 해림 남쪽의 운동장이 사흘 동안 비스듬히 기울었다. 땅은 수평이었는데 공만 한쪽으로 굴렀다. 그 뒤로 무게를 건드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스포츠 뉴스에서는 중력 적응자라고 했고, 센터에서는 무거운 것 공짜로 들어 줄 사람이라고 불렀다.
도하는 어느 쪽에도 해당할 생각이 없었다. 양손이 제 뜻대로 펴지기 전까지는.
체육관 일층의 오래된 매트에서는 햇볕에 마른 고무 냄새가 났다. 벽에 걸린 간판에는 ‘잔돌’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높이 쌓인 짐 블록, 고리 달린 철문, 바닥을 가르는 흰 선. 도하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운반전 코트가 생각보다 작다는 사실에 조금 실망했다.
“여긴 연습장이고, 옥상은 쓰지 않아요.”
세빈이 도하의 시선을 읽은 듯 말했다. 이어 쇠 손잡이가 달린 훈련 블록 두 개를 바닥에 놓았다. 각각 십 킬로그램. 자전거 주인도 팔짱을 끼고 따라 들어왔다.
“하나 들고 세 걸음 걸어 봐요. 힘들면 바로 놓고.”
“들면 되는 거예요?”
“일단 들 수 있는지부터요.”
도하는 블록을 들었다. 익숙한 무게였다. 물류센터에서 하루 동안 다루는 수백 개 상자 가운데 어떤 것은 이보다 무거웠고, 어떤 것은 너무 가벼워서 손이 먼저 던지고 싶어졌다. 그는 그런 상자를 더 조심했다. 안이 비었다고 적힌 상자에서도 깨지는 소리가 난 적이 있었다.
세 걸음을 걷고 내려놓았다. 다른 블록도 똑같이 했다.
세빈은 두 블록을 낮은 저울에 하나씩 올렸다. 사이 간격은 팔 두 개보다 짧았다. 숫자 둘 다 십에서 멈췄다.
“방금 뭘 했어요? 자전거를 보고 있었어요?”
“냉장고를 떨어뜨리면 누가 깔리겠다, 그 생각만 했어요.”
“그럼 이번에는 무게를 오른쪽으로 내려놓는다고 생각해 봐요. 손은 손잡이에.”
도하는 왼쪽 블록을 쥐었다. 오른쪽 블록을 보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팔 힘이 강해지는 감각은 아니었다. 내려놓을 자리 하나가 더 생긴 느낌. 왼손에 쥔 무게의 끝이 손바닥 바깥으로 길게 늘어났다.
왼쪽 저울이 영으로 내려갔다. 오른쪽이 이십을 가리켰다.
자전거 주인이 팔짱을 풀었다.
“와.”
도하도 같은 말을 했다. 짧은 탄성 사이로 세빈이 초시계를 눌렀다. 여덟 번째 눈금에서 두 숫자가 다시 십으로 돌아왔다. 도하의 손가락이 떨렸다.
“재능이 있네요.” 유탁이 말했다.
“있다는 건 알았고,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몰라.”
세빈은 생수병을 열어 도하 앞에 놓았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뚜껑을 여는 걸 보자 도하는 갑자기 자기가 이상한 쪽에 서 있다는 실감이 났다.
“큰 데서 검사받으면 돈 나와요?”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온 뒤에야 도하는 민망해졌다. 세빈은 웃지 않았다.
“검사만으로는 안 나와요. 선수로 뛰거나, 업무에 쓰거나. 다 몸값을 다르게 매겨요. 본인이 정할 일이고요.”
“회사에는 말하지 마세요.”
“제가 할 일이 아니죠.”
첫 능력. 첫 비밀. 그럴듯한 시작이어야 했는데, 도하는 내일도 분류 벨트를 따라 달리는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힘이 생겨도 출근 시간이 바뀌진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구역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더 컸다.
이후 검사는 충분히 쉬어 가며 했다. 십오 킬로그램 블록은 옮겨졌다. 이십 킬로그램에서 세빈이 멈췄다. 손이 떨리는 사람에게 더 시켜 볼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정확한 한계는 다음에 따로 재자고.
자전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바퀴와 프레임에 이상이 없는지 유탁이 확인하고 주인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도하는 빈 생수병을 양손으로 쥐었다. 세빈은 그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원하지 않으면 적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먼저였다.
“이걸로 사람도 가볍게 할 수 있어요?”
“적응자마다 달라요. 그런데 방금처럼 물건 둘을 잇는 유형은 보통 살아 있는 몸에 못 써요. 확인 없이 해 보지 말고.”
“높은 데서 뛰면요?”
“가벼워져도 부딪치는 속도와 몸은 그대로예요. 뉴스에서 날아다니는 선수들은 줄에 매달린 거예요. 화면이 잘 안 보여서 그렇지.”
도하는 생수병을 내려놓았다. 세빈의 설명은 꿈을 주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이 갔다.
“저 운동 잘 못합니다.”
“아직 운동하라고 안 했는데요.”
세빈이 처음으로 웃었다. 그때 출입문 쪽에서 거친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유탁이 돌아오다가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을 떼어 낸 것이었다. 문밖에서 우산을 접던 중년 여자가 그를 쳐다봤다.
“뜯어도 날짜는 안 바뀐다.”
여자는 백송주 관장이었다. 빗물 묻은 팔로 서류 봉투를 가린 채, 유탁 손에 찢긴 종이를 도로 내밀었다. 도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글씨를 읽었다. 다음 달부터 실내 코트를 창고로 전환한다는 건물주의 안내였다.
“관장님, 아직 대회 신청할 수 있잖아요.”
“셋을 못 채웠잖아.”
유탁의 고개가 도하 쪽으로 돌아갔다. 도하는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건을 들어 주는 친구라는 이유로,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기까지는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대회는 다른 말이었다.
“신입도 됩니다. 지역전은 한 팀에 셋. 세빈 누나랑 저랑 형.”
“나 근무표가 있는데.”
“경기는 일요일이에요.”
“일요일엔 자야지.”
유탁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도하를 더 난처하게 했다. 유탁은 지난겨울 센터에서 잘린 뒤 정비 일을 시작했다. 첫 급여를 받자 이곳 낡은 샤워기부터 고쳤다. 도하는 자신에게도 고장 난 샤워기가 있다고 농담했었다. 왜 이런 데 돈을 쓰냐는 말을 조금 비겁하게 바꾼 농담이었다.
송주가 봉투를 책상에 놓았다.
“여긴 쉬러 와도 되는 곳이야. 능력이 생겼다고 다 쓸 의무 없어.”
도하는 매트 너머를 봤다. 구석에서 남학생 둘이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무게를 옮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줄이 발에 걸릴 때마다 누가 먼저 웃는지 겨루고 있었다. 저쪽에는 다리를 절며 공을 굴리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세빈이 손을 들어 보였다.
센터의 휴게실엔 의자 여섯 개가 있었다. 야간조는 열일곱 명이었다. 도하는 앉을 자리가 없으면 그냥 서서 잤다. 쉬라고 만든 곳에서 자기가 있을 자리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승하면 여기 안 없어져요?”
송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승한다고 건물주가 바뀌진 않아. 지역전 여덟 팀 안에 들면 시의 연습장 우선 배정에 신청할 수 있어. 다른 곳을 구할 시간을 버는 거지.”
“여덟 팀 안에 들려면 몇 번 이겨야 합니까?”
“이번 예선은 두 번. 참가 팀에 따라 대진은 달라져.”
도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아주 조금 덜 떨렸다. 그가 옮긴 열 킬로그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쪽에 놓였을 뿐이었다. 냉장고 밑으로 깔릴 뻔한 유탁의 발 대신, 자전거가 잠깐 그걸 받았다.
세빈은 어느새 장비함을 닫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대답할 때까지 훈련시키지는 않는 사람 같았다.
“한 번은 해 볼게요.”
유탁이 숨을 들이켰다. 도하는 손을 들었다.
“우선 한 번. 계약 같은 거 먼저 하지 말고.”
“검사랑 체험 훈련부터.” 세빈이 말했다. “그 뒤에도 싫으면 안 해요.”
송주가 새 종이를 꺼냈다. 거창한 선수 계약서가 아니라 비상 연락처와 운동 중 주의 사항을 적는 종이였다. 도하는 읽고 빈칸을 채웠다. 희망 포지션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어디 서는 게 덜 뛰어요?”
“그런 자리 없어요.”
“그럼 돈은요?”
“이번 예선 상금은 없어요.”
도하가 펜을 내려놓자 유탁이 급히 말했다.
“간식은 제가 삽니다.”
“너 돈 없어.”
셋이 동시에 웃었다. 송주는 웃지 않고 세탁 바구니에서 깨끗한 수건을 꺼내 도하에게 던졌다. 그걸 받는 손은 이번에는 제대로 움직였다.
밖에서는 비가 굵어졌다. 도하는 내일 출근 알람을 확인하고 운동화 밑창의 닳은 곳을 엄지로 눌렀다.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사기 전에 여기서 한 번 더 뛰어 볼 수는 있겠다고 고쳤다.
세빈이 코트 끝의 철문을 열었다. 사람 키보다 높은 문 아래에 붉은 선이 있었다. 위에는 아흔 킬로그램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 훈련은 저걸 여는 거예요.”
도하는 방금 들었던 블록을 봤다. 십오 킬로그램. 그 이상은 아직 확인도 못 했다.
“저걸요?”
“혼자 말고요.”
유탁이 도하 옆에 섰다. 세빈이 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매트 위에서 처음으로 한 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