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아는 아침에 종이틀을 접어 상자에 넣었다. 약해진 선을 새 종이로 덧대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보았던 방을 보관하려면 그들이 앉았던 의자까지 붙잡아야 할 것 같았다. 식탁에는 이미 세르단의 잔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빈 의자를 그쪽으로 돌리고 앉았다. 어제의 관객석이 오늘의 아침 자리로 돌아왔다.
세르단은 빵을 자르다 원고를 꺼낼 듯 말 듯 했다. 르네아가 그 손을 보자 그는 오늘 저녁에 네 줄만 먼저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부가 아니라 고친 부분과 그 앞뒤였다. 그녀는 좋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어디 앉아 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빵 부스러기가 떨어져도 되는 곳이면 된다고 했다.
“그럼 여기 전부네요.”
그녀가 탁자를 가리키자 그가 웃었다. 르네아는 그 웃음을 듣고도 약속을 더 넓히지 않았다. 오늘 저녁 한 번이었다. 원고 전체를 듣겠다는 뜻도, 다음 공연을 함께 만들겠다는 뜻도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쓴 네 줄을 기다리는 일은 그것만으로 자꾸 길어졌다. 그녀는 낮에 자기 일을 할 종이를 따로 폈다.
오전에 마이라의 전갈이 왔다. 이틀 뒤 낮은종의 빈 연습시간에 새 동작을 보여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무용수는 자기가 궁금한 것이 발보다 어깨의 시작이라고 적었다. 르네아는 그날 손목을 오래 쓰는 일을 잡지 않았고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장소와 시간을 다시 받아 적은 뒤에야 종이를 접었다. 세르단에게 동행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남자는 점심을 챙기다 그 약속을 들었다. 잘 보고 오라고 말했다. 르네아는 당신도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가 지금 자신의 초대를 대신 넓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르단은 마이라가 자기에게도 묻는다면 그때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그 말은 딱딱하지 않았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친한 사람의 초대에는 친한 사람 수만큼 다른 문이 있었다.
낮 동안 그녀는 종이틀이 빠진 탁자에서 접힌 선을 그렸다. 창이 된 모양보다 손을 뗀 뒤 서 있던 모양이 자꾸 떠올랐다. 이번에는 안쪽을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채울 것이 무엇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물기둥이나 은빛 새를 올리면 쉽게 한 장면이 될 터였다. 그녀는 새 대신 빈 동그라미를 그리고 한참 보았다.
바깥방에서 세르단이 작은 소리로 한 줄을 읽었다. 문을 두드리는 말은 들리지 않고 한숨처럼 짧은 숨만 들렸다. 르네아는 귀를 기울이다 펜을 내려놓았다. 오늘 저녁에 들려주겠다는 말을 받았으니 지금 틈으로 먼저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부엌문을 닫고 물을 올렸다. 끓는 물의 소리가 원고와 자기 사이에 얇게 놓였다.
저녁에는 둘이 채소를 썰었다. 남자가 칼을 내려놓은 뒤 눈이 조금 피곤하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지금 읽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밥 먹고 쉬면 짧게 가능할 것 같지만 그때 다시 말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답했다. 기대하던 줄이 잠깐 멀어졌다. 멀어졌다고 남자의 피로가 자기 부탁을 거절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자 세르단은 창 반대쪽 의자에 앉았다. 르네아는 잔을 씻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오늘 목과 눈이 길게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한 부분은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간에 멈춰도 좋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그 말만 들으면 자꾸 끝까지 괜찮은 얼굴을 만들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남자는 그럼 실제로 물을 마시겠다고 답했다.
그가 첫 줄을 읽었다. 누군가 방 안에서 문고리를 만지고, 바깥 사람이 두 번 두드렸다. 르네아는 그 바깥 사람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 줄에서는 안쪽 사람이 문 옆 의자를 비켰다. 세르단은 손으로 실제 문을 치지 않았다. 읽는 목소리 사이에 작은 공백이 있었고 그녀는 그 공백을 두드림처럼 들었다.
네 줄 뒤에 남자가 멈췄다. 르네아는 아직 바깥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서는 아직 이름이 없다고 답했다. 그녀가 이전에는 어땠느냐고 묻자 그는 바깥 사람이 먼저 자기 이름을 말했었다고 했다. 바꾼 뒤에는 안쪽 사람이 먼저 물어야 했다. 그녀는 문고리가 사람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 조금 서늘했다고 말했다.
“들어오라는 장면으로 들렸어요?”
그가 물었다. 르네아는 그렇다고 답했다. 남자는 자기는 나가려는 사람 옆으로 다른 사람이 도착하는 장면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문 옆으로 비킨 의자를 떠올렸다. 들어올 자리를 만들었다고 읽었던 동작이 자기 길을 내는 동작일 수도 있었다. 같은 의자 하나가 두 방향으로 놓였다.
르네아는 그 뜻이면 첫 줄에 나갈 짐을 보여 주면 어떠냐고 말했다. 세르단은 원고 모서리를 만졌다. 그녀는 그가 곧 적을 것이라고 기다렸다. 남자는 짐을 넣으면 너무 일찍 답을 줄 것 같다고 했다. 르네아는 입을 다물었다. 자기 종이의 빈 곳은 오래 보게 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 남의 빈 문에는 금세 짐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알아듣지 못한 것을 고치라는 말로 바꿨다고 말했다. 세르단은 못 알아들은 것도 필요하게 들었다고 답했다. 다만 짐을 둘지는 아직 고르고 싶다고 했다. 르네아는 웃으며 그 짐은 자기가 들어다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자가 종이를 무릎 위에 내려놨다. 네 줄의 평이 당장 새 원고가 되지 않아도 대화는 계속됐다.
그는 안쪽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고르고 싶다고 했다. 르네아는 그 사람이 문을 열고 싶은지, 나가고 싶은지 한꺼번에 다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세르단은 잠깐 고개를 들었다. 그건 조금 더 듣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창을 만들고도 관객이 보는 곳을 고르고 싶었던 날을 떠올렸다. 그러나 자기 경험을 남자의 인물에게 그대로 입히지는 않았다.
르네아는 안쪽 사람이 의자를 치운 뒤에도 앉을 곳은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세르단은 하나 더 있다고 답했다. 그제야 그녀에게 방이 조금 보였다. 문 옆 의자는 통로를 막던 것이고 다른 의자는 창 가까이에 있었다. 그녀는 어느 것을 골라도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모양이 아니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제안보다 자기가 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남자는 그 말을 적지 않고 한번 되풀이했다. 르네아는 그가 자기 문장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는 잠깐 더 생각한 뒤 오늘 읽을 것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답했다. 앞뒤를 더 들으면 뜻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원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 읽는 사람이 멈춘 것이었다. 그녀는 물잔을 그의 손 가까이에 뒀다.
잠시 뒤 세르단이 한 가지는 평이 아니라 부탁이라고 말했다. 다음에 읽을 때 자기 문고리보다 자기 얼굴을 덜 봐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르네아는 조금 놀랐다. 그는 그녀가 다정하게 봐 주는 것이 싫다는 뜻은 아니고, 어느 줄에서 얼굴이 바뀌는지 보고 있으면 자기도 듣는 사람을 달래는 쪽으로 읽게 된다고 했다.
르네아는 어제 틀 앞에서 자기도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남자의 부탁을 자신이 이미 배운 일로 작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음에는 종이 쪽을 보거나 나란히 앉아 듣겠다고 답했다. 남자가 좋다고 했다. 사랑하는 얼굴을 안 보는 것이 어떤 저녁에는 더 가까운 듣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입맞춤할 때도 옆으로 볼까요?”
그녀가 묻자 세르단이 웃으며 그건 원고 밖이라고 했다. 르네아도 웃었다. 서로의 작품에 주는 권리와 서로에게 바라는 다정함을 한꺼번에 정리하지 않아도 됐다. 남자는 잔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손목이 편한 쪽으로 잡은 뒤 가까이 다가갔다. 짧은 입맞춤 뒤에도 네 줄은 여전히 네 줄이었다.
등불 아래서 그는 원고를 접었다. 르네아는 그 종이를 자기가 읽어 봐도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 오늘 들은 것만으로 저녁이 충분했다. 대신 다음에 읽을 사람을 정했는지 물었다. 세르단은 펜에게 한번 묻고 싶다고 했다. 펜은 극장 일을 마친 뒤에야 시간을 낼 수 있었고 아직 부탁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그럼 그 답을 기다려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입 밖에 나오자 르네아는 자신이 다음 관객에도 들어가 있다고 미리 생각한 것을 알았다. 세르단은 그녀도 들어 주면 좋지만 반드시 같은 자리에 앉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녀는 조금 서운하다고 바로 말했다. 남자는 그녀를 보았다. 그 얼굴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읽는 대신, 자기가 왜 서운했는지 차근히 골랐다.
처음 들은 사람이니 그다음 줄도 먼저 듣고 싶었다. 그 마음을 문장으로 말하고 나자 조금 우스웠다. 르네아는 원고에 자기 의자를 못 박고 싶지는 않은데 망치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세르단이 작게 웃었다. 그는 먼저 듣고 싶다는 말은 좋지만 그 약속을 매번 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럼 이번에는 자신이 펜에게 묻기 전에 그녀에게 먼저 묻겠다고 했다. 다음 읽기를 함께 듣고 싶은지였다. 르네아는 듣고 싶다고 답했다. 다만 마이라를 보는 날에는 자신의 귀도 이미 많이 쓸 것이니 같은 저녁은 피하고 싶었다. 남자는 그날을 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기 시간을 실제로 놓아 보고 한 자리를 남겼다.
르네아는 탁자 위 원고 곁에 자신의 마이라 약속 종이를 놓았다. 서로 다른 이름이 다른 줄에 있었다. 세르단은 그 종이를 보고 방문객을 한꺼번에 불러 밥까지 먹이면 일이 줄겠다고 농담했다. 그녀는 그러면 자기가 마이라의 어깨보다 냄비를 더 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남자는 그럼 냄비는 오늘만 보겠다고 했다. 그는 식사한 그릇을 들었다.
둘은 부엌에서 남은 일을 나눴다. 르네아는 물기를 닦고 세르단은 낮은 선반을 채웠다. 남자가 문 옆으로 의자를 밀자 그녀는 아까 원고처럼 들릴 것 같다고 말했다. 세르단은 지금은 내일 아침 지나갈 길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그 말이 좋았다. 작품이 쓰는 집과 사람이 사는 집이 번갈아 제 모양을 가질 수 있었다.
잠들기 전 르네아는 자기 빈 동그라미 아래에 문을 그렸다. 안에 무엇을 넣을지는 아직 몰랐다. 남자의 네 줄에 답하려는 작품을 만들 생각도 아니었다. 다만 빈 곳을 만들고 사람이 오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어느 장면에서는 사람을 부르기보다 나갈 자리를 먼저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세르단이 그녀를 부르자 르네아는 펜을 내려놨다. 아직 다음 줄이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원고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며 등불을 낮춰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잠깐 웃다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작품의 질문이 늘 따라오지는 않았다. 어두워진 방에서 그녀는 먼저 손을 뻗었다. 오늘은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