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델은 원고를 받자 가방에 넣는 대신 첫 장을 뒤집었다. 르네아는 마지막 장을 찾는 줄 알았는데 배우가 본 것은 맨 뒤의 이름이었다. 읽기 과정에서 시작과 소품을 함께 검토했다는 줄. 나델은 손가락으로 그 아래를 누르고 고맙다고 했다. 극장 복도에서 나누기에는 짧은 말이었다. 르네아는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상대의 반응을 조금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았다. 배우의 기여를 적는 일과 배우에게 그 글을 건네는 일 사이에도 문 하나가 있었다.
“끝은 아직 손으로 안 해 봤어요.”
그녀가 말하자 나델은 읽어 보고 나서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다른 연습에 들어가야 했다. 배우의 소매에는 흰 실밥이 붙어 있었고 손에는 먹다 만 빵이 없었다. 르네아는 자기 극에서 레온이 빵 봉지를 어디에 놓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질문 때문에 복도에서 나델의 손을 빌리지는 않았다. 원고가 이제 자기 가방 밖에 있었다. 상대가 돌아설 수 있도록 그녀도 벽에서 어깨를 뗐다.
극장 앞에서는 소멜이 커다란 천을 접고 있었다. 장인은 르네아의 외투가 바람에 뒤집히자 안쪽을 보고 실이 풀렸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작은 끝만 잘랐고 안감 수선은 아직이라고 답했다. 소멜은 자기가 맡을 수 있는 날과 품을 말했다. 르네아는 자기 지갑을 열어 확인한 뒤 짧은 수선을 부탁했다. 극에 옷이 나온다는 이유로 장인의 손을 그냥 쓰지는 않았다. 맡기는 옷은 공연 소품이 아니라 내일도 입어야 할 한 벌이었다.
외투를 벗자 팔이 조금 추웠다. 소멜은 다른 옷을 빌려주겠다고 하지 않고 실내에서 기다리거나 정해 둔 때 다시 오라고 했다. 르네아는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바깥에는 짧게 돌아가는 햇볕 길이 있었다. 그녀는 그 길을 골랐다. 세르단과 같이 걸으면 그가 고르는 그늘에 서곤 했지만 오늘 자기 팔에 닿는 볕은 자기 몫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제 극의 젖은 외투에는 볕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작업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세르단이 긴 판자를 안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르네아는 끝을 잡아 줄까 물었고 남자는 지금은 놓아도 되는 쪽을 먼저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판자를 받침 위에 내려놓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르네아는 외투 없이 돌아온 까닭을 말하고 나델에게 원고를 건넸다고 했다. 세르단은 “그럼 오늘 신발이 다른 가방으로 갔네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가 쓴 신발이 실제보다 가벼워 다행이라고 답했다.
남자는 판자 한쪽에 남은 못을 뽑았다. 르네아는 자기 의자를 가져다 앉고 그 옆에 빈 의자를 두었다. 이브론에게 받은 말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옷자락을 들어 길을 남기는 마지막 동작을, 한 사람이 레온과 시라를 모두 읽을 때는 어떻게 할까. 자기 손으로 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실제 젖은 옷 대신 마른 천을 집어 의자에 걸었다. 환영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천은 그대로 내려앉았다.
시라의 줄을 읽으며 옷자락을 들었다. 레온의 줄을 읽으려면 들고 온 신발을 내려놓아야 했다. 신발 대신 작은 나무 조각 둘을 쥐었는데 한 손에 천까지 모이자 나무 하나가 떨어졌다. 세르단이 손을 뻗지 않았다. 바닥에는 발이 없었고 조각은 안전한 곳에 멎었다. 르네아는 웃다가 말았다. 우스운 동작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방금 자기가 쓴 끝에서는 이 소리가 가장 크게 남았다. 길을 내주는 손보다 떨어진 신발이 먼저 보였다.
“이건 물건이 말을 이긴 거네요.”
세르단은 판자에서 시선을 들어 어떤 말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끝을 설명하고 동작을 한 번 더 보였다. 이번에는 나무가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옷자락을 올릴 손이 없어서 팔꿈치로 천을 밀었다. 남자가 웃었다. 르네아는 같이 웃으면서도 원고의 여백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글에서는 아주 간단한 사람 둘이 자기 손에서는 바쁜 사람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시라를 잠깐 맡아 달라고 하고 싶었다. 둘이 하면 당장 예쁜 끝이 나올 것 같았다. 세르단은 오늘 오후에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으러 갈 생각이라고 먼저 말했다. 누구에게 읽힐 약속은 아니고 운하 끝의 조용한 곳에서 혼자 소리를 내 보고 싶다고 했다. 르네아는 그러라고 답했다. 하지만 소리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딱딱하게 나왔다. 남자가 못을 담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같이 하고 싶었어요?”
“잠깐요. 제 끝만.”
그녀는 대답한 뒤 그 두 말의 차이를 들었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과 자기 원고를 움직여 줄 손이 필요했던 마음이 붙어 있었다. 세르단은 잠깐이라도 지금 일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알아요 하고 너무 빨리 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는 것보다 서운한 게 먼저 왔어요. 그래도 가는 게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 남자는 그 말을 듣고 다시 그릇을 들었다. 둘이 당장 서로를 편하게 만들어야 대화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세르단이 나간 뒤 방은 넓어졌다. 르네아는 빈 의자를 마주 보고 앉았다. 혼자 끝을 읽으려고 두 사람 몫을 한꺼번에 쥐는 일이 배우에게도 같은 어려움일까. 그녀가 배우의 손을 대신 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오늘 자기에게는 소품을 먼저 내려놓을 자리가 필요했다. 그녀는 나무 두 조각을 바닥의 마른 자리로 옮기고, 천을 들어 올렸다. 물건이 먼저 놓이자 팔꿈치를 쓰지 않아도 길이 났다.
그 방법은 글의 순서를 바꿨다. 레온이 신발을 쥔 채 시라에게 길을 요구하는 대신, 자기 신발을 먼저 놓고 상대를 봐야 했다. 르네아는 잠깐 마음이 식었다. 둘이 한꺼번에 서로를 알아차리는 끝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한 사람이 손을 비우면 그 아름다운 대칭이 깨졌다. 그녀는 그게 반드시 더 좋은 결말이라고 쓰지 않았다. 제 욕심을 알아볼 수 있도록 두 동작을 각각 종이에 그렸다.
그녀는 두 동작의 그림 아래 인물의 이름을 썼다. 먼저 물건을 놓는 손에는 레온, 먼저 바닥을 보는 눈에는 시라. 순서만 바뀐 줄 알았는데 시라에게도 먼저 할 일이 생겨 있었다. 르네아는 천을 들어 그 눈높이를 직접 봤다. 창밖은 안 보였고 상대가 선 문 쪽만 보였다. 옷을 든 사람이 방 전체를 내주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옷과 남의 신발 사이의 짧은 폭 하나를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 폭을 손으로 재다가 원고에 적던 화살표를 지웠다. 서로를 향하는 큰 화살표보다 두 사람이 따로 보는 작은 자리가 더 정확했다.
점심을 준비할 때는 의자 위의 천을 치웠다. 빵 부스러기가 천 안감에 들어가면 털어야 했다. 원고가 먹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르네아는 식탁 한쪽에 놓인 세르단의 글을 보고 손을 대지 않았다. 판자 옆 그릇에는 못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릇을 옮기기 전에 남자가 돌려 쓸 곳을 봤다. 남의 일을 존중하는 손이 항상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릇을 지나 접시 하나가 놓일 폭이면 됐다.
오후에 소멜에게 외투를 찾으러 갔다. 안쪽의 실은 겉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팔을 넣자 당기던 곳이 조금 느슨했다. 장인은 오래 입으려면 젖은 채로 의자에 걸어 두지 말라고 했다. 르네아는 웃었다. 자기 극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끝의 문제를 들킨 기분이었다. 소멜은 왜 웃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옷을 말리는 장면을 썼다고 말했다. 장인은 “그럼 말리는 사람이 왜 그 의자를 골랐는지도 알아야겠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녀는 시라의 의자를 생각했다. 레온이 오는 문에서 가장 먼 자리, 볕은 들지 않지만 비가 들이치지 않는 자리. 그 위치가 인물에게 실제로 중요하다면 양쪽의 예쁜 대칭보다 한 사람의 선택이 먼저 보일 수도 있었다. 르네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 생각을 따라갔다. 세르단이 없어 빈 무대를 쓴 것이 아니었다. 시라가 먼저 살고 있던 방에 레온이 돌아오는 극이었다.
남자는 저녁 전에 돌아왔다. 자기 글을 소리 내 읽다가 마지막 사람을 너무 늦게 내보낸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르네아는 고쳤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길다고 느낀 곳을 표시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기 천과 나무 조각을 가리키고 손이 모자랐다고 했다. 세르단은 그럼 오늘 둘 다 시간이든 손이든 너무 많이 잡았나 보다고 했다. 그 농담이 아까의 서운함을 없애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계속할 문은 열었다.
르네아는 나무 두 개를 먼저 내려놓고 천을 드는 동작을 보여 줬다. 남자는 시라가 기다려 주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는 시라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쪽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르단은 둘 다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자기가 그렇게 봤다고 답했다. 르네아는 그 차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종이에 적었다. 남자의 독해를 제 의도로 바로 고쳐 놓으면 나델에게 보일 다른 끝도 놓칠 것 같았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덜 친절해 보일까 봐 겁나나 봐요.”
말하고 나자 르네아는 자기가 원고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세르단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자기가 오늘 나갔을 때도 그랬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조금 그랬다고 답했다. 남자는 나가고 싶었고, 그녀를 혼자 두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르네아는 그 둘을 같은 일로 듣지 않도록 다시 물어볼 수는 있겠다고 했다. 앞으로 서운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나델에게서는 저녁에 짧은 말이 왔다. 원고를 끝까지 읽었고, 마지막에 먼저 내려놓는 물건을 정하면 손이 덜 바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함께 확인할 유급 읽기를 원한다면 다음 날 늦은 오전의 짧은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르네아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자기가 낮에 찾은 길과 비슷했지만 아직 배우가 어떤 순서로 움직일지는 몰랐다. 그녀는 정해 둔 작업비 안에서 한 번의 읽기가 가능한지 장부와 시간을 보고 답했다.
답을 보내고 나서야 세르단에게 그 시간에 가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자기 오전 작업과 겹치지 않는다고 했다. 르네아는 구경하러 오라는 말을 삼켰다가, 자기가 끝을 볼 때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말했다. 세르단은 이번에는 혼자 확인하고 돌아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조금 생각한 뒤 그러겠다고 답했다. 같은 방에서 같은 것을 봐야만 하루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밤에는 수선한 외투를 옷걸이에 걸었다. 안감의 새 실이 손끝에 닿았다. 그녀는 세르단의 외투 옆에 자기 것을 놓고 옷 사이의 틈을 조금 벌렸다. 말릴 물건은 없었다. 오늘 둘이 쓴 방에는 볕도 바람도 잠깐 다르게 들었다. 그녀는 남자의 손을 잡고 아까 돌아와 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와서 좋았다고 답했다. 아직 내일의 끝은 읽히지 않았지만, 오늘 건넨 원고는 다른 손에 있었고 자기 손에는 빈자리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