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새로 쓴 여자는 상자를 열지 않았다.
르네아는 자기 방에서 첫 장을 읽었다. 여자는 시장의 빈 자리에서 물건을 판다고 했다. 그런데 손님이 값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고 상자도 열지 않았다. 다리를 쉬러 온 남자가 옆에 앉자 비켜 달라고 했다. 자기 가게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남자는 가게가 아니라 나무 의자라고 답했다. 르네아는 두 사람이 아직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다음 장에서 남자가 상자 안에 든 것을 알아맞히려 했다. 여자는 매번 틀렸다고 했다. 물건 이름이 길어질수록 대답은 짧아졌다. 르네아는 웃다가 가장자리 한 줄에 표시했다. 세 번째 추측 뒤에는 여자가 이기는 모습만 남았다. 웃음이 나던 사람이 이기려고 같은 말을 오래 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 부분을 먼저 표시한 것이 조금 미안했다.
오르사에서 돌아온 뒤 세르단은 이런 것을 썼다. 르네아가 보지 못한 낮의 방과 밤의 탁자가 종이 두 장 안에 있었다. 그녀는 그 시간을 칭찬해 주고 싶어 손을 멈췄다. 자기가 받은 것은 지난 며칠의 성실함을 확인하는 종이가 아니라 읽어 달라고 건넨 장면이었다. 그녀는 마음에 든 줄에도 같은 굵기로 표시하고 끝까지 읽었다.
여자는 사실 상자를 팔러 나온 것이 아니었다. 비가 들던 자기 방을 비우며 짐을 잠깐 맡길 자리가 필요했다. 남자는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라, 그 의자를 옮기라는 품삯을 받고 온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 앉아 있을 이유를 지키느라 같은 의자를 내놓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여자가 일어서고 남자가 상자를 들겠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여자는 손을 막았다. 이건 자기 짐이라며 작은 물건 하나만 맡겼다. 깨진 손잡이가 달린 찻잔이었다. 남자가 받을지 말지 알기 전에 장면이 끝났다. 르네아는 종이 끝을 오래 봤다. 기다리는 이유를 다 말하던 오르사의 문과 달랐다. 이번에는 자기가 한 사람의 손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실부터 내일 말하면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만나는 곳은 극장이 아니라 소멜의 가게 뒤 작업방이었다. 소멜이 정한 쉬는 시간 중 짧게 탁자를 빌려 주기로 했다. 그녀의 의상전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려고 방을 비워 둔 것도 아니었다. 세르단은 자기가 부탁했으며 정한 시간이 끝나면 바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종이 묶음과 자기 시간을 가져갔다.
그는 먼저 어디서 읽었느냐고 물었다. 르네아가 자기 책상이라고 답하자 입가가 움직였다. 그 웃음 때문에 그녀는 좋은 말부터 전부 하고 싶어졌다. 대신 마지막 찻잔을 받을지 궁금했다고 먼저 말했다. 남자는 그 대답을 적었다. 왜 궁금했는지 더 묻기에, 처음에 의자를 빼앗으러 온 사람이 마지막에는 제안받는 사람이 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간에는 저 여자랑 같이 앉고 싶지 않았어요.”
르네아가 말했다. 세르단이 눈을 들었다. 여자가 세 번씩 틀렸다고 말할 때 자기는 손님이 아니라 혼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했다. 남자는 그 부분을 읽어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좋다고 답하고 종이를 밀었다. 그가 여자 대사를 읽자 자기가 속으로 읽은 것보다 더 차갑게 들렸다. 웃기려고 빨리 붙였더니 더 그랬다.
세르단은 자기가 여자를 너무 잘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물었다. 르네아는 상자를 안 여는 태도는 좋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가 틀린 것을 즐기기만 하면 나중에 짐을 부탁하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왔다. 무언가 지키는 모습이 추측 사이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자가 어떻게 고치면 되느냐고 묻자 그녀는 아직 문장까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두 번째 추측 옆에 손이 상자를 누른다는 동작을 썼다. 르네아는 그것만으로 맞는 답이 됐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읽을 때에도 손을 그렇게 놓을지 해 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말하고 나서야 배우의 말처럼 들렸다는 것을 알았다. 세르단도 펜을 멈췄다. 그녀는 종이를 당기지 않고 그 시선을 받았다.
“읽어 보고 싶으십니까?”
그가 물었다. 르네아는 그렇다고 답했다. 도면으로 만들 곳을 고르기 전에 저 여자의 말을 해 보고 싶었다. 상자 안을 먼저 설명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르단은 그 배역을 그녀에게 부탁할 생각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르네아의 목 뒤가 뜨거워졌다. 자기가 고른 자리라고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제안을 한 것이며 당장 답을 달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조금 애쓰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알겠다고 했다. 다만 둘이 같이 만들자는 말을 너무 빨리 다시 꺼낼까 봐 자기도 조심하고 있었다고 했다. 르네아는 지금이야말로 꺼내도 되는 때가 아니냐고 물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둘 있고 손에 장면도 있었다.
세르단이 잠깐 웃었다. 조심하는 일이 결정하지 않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그를 기다리는 대신 무엇을 같이 고를지 말하고 싶었다. 그는 여자 배역을 한 번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이 방에서 종이만 놓고 읽는 것이며 다음 제작이나 공연에 동의한 것으로 삼지 않겠다고 했다. 르네아는 자기도 그렇게 원한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탁자 끝을 시장의 의자로 정했다. 실제로 앉을 자리는 작업 의자 둘이었다. 소멜의 천과 재료는 건드리지 않았다. 르네아는 가방을 무릎 위에 얹고 첫 대사를 읽었다. 여기는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문장이었다. 소리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여자는 자기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려는 사람처럼 들렸다.
남자가 바로 괜찮다고 해 주지 않았다. 그는 대본의 대답을 했다. 자기는 의자를 옮기러 왔다는 줄이었다. 르네아는 자기가 서둘러 종이를 넘기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가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을 때 목소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대사는 물건을 보여 달라는 요구였다. 그녀는 가방 끈을 너무 세게 잡았다.
두 번째 추측에서 남자가 그 안에 새 의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대본에는 그 줄이 없었다. 세르단이 잘못 읽었다고 멈췄다. 르네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기가 무릎 위에 의자를 넣고 앉아 있는 여자를 떠올린 탓이었다. 남자는 한 줄 아래를 잘못 봤다며 종이를 돌렸다. 실수한 사람이 설명하는 동안 르네아의 어깨가 내려갔다.
다시 읽었을 때 여자의 틀렸다는 말이 달라졌다. 상대를 내보내는 대신 자기 가방을 더 가까이 당기며 말했다. 세르단이 그 차이를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상자를 열면 무엇을 팔아야 할지 모르겠는 여자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안에 든 물건의 값은 알아도 자기에게 남기는 값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대본에 없는 줄이었다.
남자는 그 설명을 여자 입에 넣지는 않겠다고 했다. 르네아도 그러면 또 자기가 기다릴 것이 사라질 것 같다고 답했다. 대신 첫 장의 여백에 자기가 지키는 물건이라고 적었다. 관객에게 보여 줄 문장이 아니라 다음에 읽을 때 손을 어디 둘지 기억하는 말이었다. 세르단은 자기 쪽에도 비슷한 메모를 했다. 무엇인지는 그녀가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지막 찻잔을 내미는 부분에서는 둘 다 멈췄다. 지금 르네아가 든 것은 빈 손이었다. 실제 잔이 없으니 손가락이 괜히 구부러졌다. 세르단은 다음에 연습용 물건을 따로 준비하자고 했다. 소멜의 잔을 빌려 써도 되는지 묻지 않았다. 오늘은 정한 읽기만 끝내고 어느 손이 움직였는지 말로 확인했다.
“저라면 받겠어요.”
르네아가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여자의 말을 하면서도 남자의 대답을 대신 골랐다고 웃었다. 세르단은 자기는 안 받고 싶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의자를 옮길 돈은 받았는데 남의 짐을 맡는 일은 새로 생긴 부탁이었다. 받지 않는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장면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르네아는 그럼 여자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것을 부탁할 수 있겠지요. 아니면 자기가 가져가고요.”
그 말에 르네아는 가방을 다시 봤다. 도움을 받는 순간을 멋지게 만들려고 여자의 물건을 빼앗으면 이상했다. 그녀는 받지 않은 손 뒤에도 여자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찻잔을 다시 넣고 일어나도 첫 장과 같은 여자는 아닐 수 있었다. 남자는 그 끝을 써 보고 싶다고 답했다.
약속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둘은 종이를 모았다. 르네아는 자기가 읽은 장에 표시를 남겼고 세르단은 원래 묶음에 새 장을 끼우지 않았다. 오늘 적은 것을 자기 방에서 먼저 정리하겠다고 했다. 둘이 손댄 흔적을 바로 공동작이라는 이름으로 묶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의견이 어디 들어갔는지 지우지도 않았다. 다음에 새 장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소멜이 돌아와 탁자를 확인했다. 두 사람은 빌린 시간을 지켰다고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르네아는 머리끈을 놓칠 뻔했다. 세르단이 잡으러 몸을 돌리려다 바로 멈췄다. 끈은 그녀 발밑에 떨어졌고 그녀가 주웠다. 그는 빠르게 돌면 오늘은 어지럽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알겠다고 답하고 끈을 다시 묶었다. 대본의 남자는 의자를 옮기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옆의 남자가 그 동작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운하 쪽 작은 벤치에 앉아 다음 만남을 정했다. 일 얘기만 할지 저녁도 같이 먹을지 그가 물었다. 르네아는 다음에는 먼저 연습을 하고, 끝난 뒤 따로 밥 먹고 싶다고 말했다. 세르단이 둘이 연습하는 것으로 답해도 되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배역만 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대답도 실제로 들은 약속이었다.
연습방과 시간은 다음 날 확인하기로 했다. 관객을 부르거나 표를 팔 날짜는 없었다. 두 사람이 이미 함께 만든 적 있다는 사실로 새 바닥의 사용까지 생기지는 않았다. 르네아는 극장 복도의 자기 상자가 비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오늘 손에 든 종이는 그 상자를 채우려고 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다시 하고 싶은 일을 골라 들었다.
세르단이 손을 내밀었다. 르네아는 잡고 싶었지만 먼저 물었다. 여자 배역을 읽고 싶다고 한 말이 부담스러웠느냐고 했다. 그는 조금 놀랐고 좋았다고 답했다. 다만 그녀의 기술을 쓰지 않는 장면을 제안하면 실망할까 봐 걱정했다고 했다. 르네아는 실망할 수도 있지만 오늘 자기가 원한 것은 그 여자의 말이었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제 빛도 쓰고 싶을 수 있어요. 그때 또 말할게요.”
남자는 그때 자기도 원하는지 답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원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지금 잡는 손을 헐겁게 만들지는 않았다. 손바닥은 따뜻했고 강가의 바람은 차가웠다. 르네아는 그가 자기 손등 위로 엄지를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종이의 어느 줄보다 그 작은 움직임을 오래 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여행 도면 옆에 대본을 놓았다. 두 번째 집게는 종이 마당 묶음을 붙들고 있었다. 첫 번째 집게로 대본의 모서리를 눌렀다. 두 묶음 사이에는 손바닥 하나만 한 빈자리가 남았다. 그녀는 거기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고 첫 대사만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덜 높았다.
상자를 닫은 여자가 종이 밖으로 조금 나왔다. 다음에는 상대가 내미는 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짐을 어디까지 맡길지 고르는 여자를 끝까지 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