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낮, 르네아는 관객 네 명 앞에서 숨 쉬는 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설명할수록 자기가 숨을 못 쉬었다. 첫 줄의 제빵사 부인은 벌써 등을 곧게 펴고 앉았다. 옆자리의 신발 수선공은 옷깃을 풀었다. 이브론은 오늘 짧은 장면을 봐 주러 온 사람들에게 차라도 주자며 잔 네 개를 놓았다. 아무도 공연 표를 사지는 않았다. 대신 각자 가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미리 말했다.
르네아는 그 네 사람에게 완성한 연애극을 보여 주려던 것이 아니었다. 환영을 내린 뒤 두 사람이 남는 시간을 얼마나 둘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전날 세르단이 말한 자리가 밤새 생각났고, 아침에 빈 무대에서 해 보니 침묵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보는 사람이 있어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환영이 내려가기 전에는 박수 말고 그냥 보시면 돼요. 다 내려간 뒤에는 소리 내셔도 괜찮고요.”
그 설명까지는 익숙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마지막에는 제가 숨을 들이쉬면 시작해요.”
르네아는 세르단에게 하는 말을 객석 쪽으로 얼굴을 둔 채 했다. 제빵사 부인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르네아는 대본을 작업대에 놓느라 그 끄덕임을 보지 못했다. 펜은 커튼 줄과 등불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세르단은 무대 가장자리에서 발밑을 확인한 뒤, 오늘은 짧게 두 번까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의 손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르네아도 하지 않았다. 둘은 오늘 아침 인사를 하고 젖은 외투가 말랐다는 말을 나눴다. 그래서 어제의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대본을 펴는 동안 같은 손이 종이를 누르고 있는 것이 자꾸 보였다. 그녀는 연필을 왼손으로 옮겼다가 다시 오른손으로 바꿨다.
펜이 관객들에게 자리를 조금 안쪽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사용하는 회로는 오른편 하나뿐이었다. 앞쪽 쉬는 선에는 붉은 천이 그대로 덮여 있었다. 회전대도 봉인 상태였다. 르네아는 오른편 실에 낮은 빛의 판 하나를 올렸다. 실제 나무틀 안에 놓은 판은 발판으로 쓰지 않았다. 자기 그림자를 남길 옆빛을 확인할 정도였다.
한 사람씩 판을 보자 왼손으로 전해지는 힘이 달라졌다. 르네아는 매듭의 여유를 확인하고 숨을 골랐다. 네 사람이 모인 것만으로도 혼자 만든 빛과는 다른 형태였다. 아름답다고 말하기 전에 틀이 흔들리지 않는지 봐야 했다. 펜이 뒤의 받침을 한 번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단은 정한 세 걸음을 걸었다. 르네아가 목적지를 말하고, 그가 묻기 전 잠깐 기다렸다. 나무틀 바깥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생겼다. 그녀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전날 선착장에서는 손바닥을 뒤집어 잡았지만 오늘은 정해 둔 높이에 얹었다. 손등 가까운 그의 엄지가 조금 달랐다. 그 차이를 읽느라 제 대사를 놓칠 뻔했다.
“거기로 가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세르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려 주는 시간이 고마우면서도 얼굴이 뜨거웠다. 르네아는 여덟 박자를 세며 실을 풀었다. 빛의 판이 나무틀 안으로 낮아졌다. 여덟에서 마지막 가장자리까지 사라졌고 왼손이 비었다. 실제 틀은 무대 옆에 그대로 있었다.
이제 새로 해 보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세르단의 손을 놓고 숨을 들이쉬었다.
객석 네 명이 함께 숨을 들이쉬었다.
르네아는 고개를 돌렸다. 네 사람의 어깨가 제각기 다른 높이에 올라가 있었다. 수선공은 이브론이 준 찻잔을 입 앞에 든 채 멈췄다. 제빵사 부인은 르네아를 보고 있었다. 세르단은 아직 대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르네아가 관객 쪽을 보는 바람에 그의 차례도 오지 못했다.
길어진 침묵 끝에 부인이 손을 들었다. 멈추라는 손바닥 신호와 달리 손가락 하나를 가볍게 세운 질문이었다.
“이제 내쉬어도 돼요?”
르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르단도 입을 다물었다가 어깨를 내렸다. 객석의 나머지 세 사람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자, 수선공의 찻잔에서 김이 옆으로 확 쏠렸다. 부인이 자기는 빵을 식히는 연습인 줄 알겠다고 말했다. 무대 옆에서 펜이 커튼 줄을 놓고 배를 잡았다.
하중은 이미 없었다. 르네아는 빈 왼손을 펴 보이며 지금은 웃어도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려다 자기도 다시 웃었다. 관객이 따라야 할 안전 신호와 배우끼리 맞출 숨을 한데 설명한 것은 그녀였다. 네 사람은 공연을 망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너무 성실하게 보고 있었다.
“제가 세르단 씨한테 한 말이었어요. 같이 숨 참으실 필요 없어요.”
“그 말을 저희 쪽을 보고 하셨잖아요.”
수선공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르네아는 그대로 인정했다. 이브론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오늘은 관객에게 시킨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르네아는 방금의 실수를 안전 설명에 넣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웃으며, 그냥 숨을 쉬게 두라고 했다.
세르단이 의자에 앉겠다고 말했다. 펜이 가져오려 하자 그는 옆에 있는 의자를 직접 가리켰다. 걸어가 앉은 뒤 물을 마셨다. 르네아도 실제 틀을 확인한 다음 객석 앞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는 실패한 침묵을 어떻게 줄일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웃음 때문에 다음 말을 기다리게 된 얼굴들이 보였다.
“두 분은 왜 말을 안 한 거예요?”
제빵사 부인이 물었다.
“제가 숨을 들이쉬면 이분이 말하고, 그다음 제가 대답하려고 했어요.”
“그걸 알고 보니까 싱겁네요.”
르네아는 눈을 들었다. 부인은 서둘러 재미없다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여자가 먼저 말을 할지 남자가 할지 모르겠어서 기다렸다고 했다. 둘 다 할 말이 있는데 엇갈리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공연 속 인물에게 한 말이었다. 르네아는 자기와 세르단을 그대로 들킨 것처럼 손가락을 접었다.
그녀가 만든 여자는 떠날 목적지를 말한 뒤 바로 대답을 얻으려 했다. 듣지 못한 답을 기다리는 사이 제 마음도 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르네아는 수첩을 펴고 두 사람이 말을 못 한 시간을 짧게 그었다. 정해 둔 여덟 박자와 달리, 이 시간에는 누구도 숫자를 세지 않아도 됐다.
세르단이 잔을 내려놓았다.
“르네아 씨가 저를 안 보고 관객을 보셨을 때, 저는 제 말을 삼켰습니다.”
“제가 차례를 안 줘서요?”
“아뇨. 여기서 말을 하면 지금 저쪽을 보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못 듣게 될 것 같아서요.”
그녀는 막 웃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자기 얼굴을 떠올렸다. 실도 손도 비었는데 무대에 남아 있었다. 무슨 모양을 만들며 대사를 해야 한다는 핑계가 없었다. 남자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사람이 자기가 될 수 있었고, 그걸 관객이 보고 기다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말해 볼게요.”
르네아가 말했다. 펜이 실을 다시 준비하러 일어났다. 그녀는 잠깐 손을 들어 조수를 멈췄다. 새 동작을 정지하라는 손바닥이었다. 펜이 줄에서 손을 뗐다.
“환영 없이요. 끝에서 시작해 볼래요.”
실을 잡지 않은 채 무대로 걸어가니 익숙한 바닥이 넓었다. 예전부터 그녀는 자기 이름을 걸고 여자의 대사를 해 왔다. 다만 장면이 끝날 때마다 먼저 손과 매듭을 확인했고, 할 일이 없는 몸으로 관객 앞에 서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이제는 그 시간까지 남의 목소리에게 맡기지 않고 해 보고 싶었다.
세르단이 괜찮다면 한 번 더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의자에서 바로 움직이지 않고 물을 한 모금 더 마신 다음 왔다. 르네아는 평행한 선 옆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난간이 없었다. 그녀는 어느 손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몰라 치마 옆의 나무 잠금쇠를 누르다가 놓았다.
이번에는 객석을 향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같이 가도 됩니까.”
세르단이 기존 마지막 대사를 했다. 르네아는 대답 대신 입을 열었다 닫았다. 남자가 자기 대신 웃지 않는 것을 봤다. 그녀는 그 침묵 속에서 방금의 수선공과 찻잔이 떠올랐다. 왜 하필 가장 부끄러울 때 그런 모습이 떠오르는지 몰랐다. 웃음을 억누르려 하자 입술이 더 이상해졌다.
“제가 먼저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요.”
말이 나왔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그녀가 바로 덧붙였다.
“한 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말한 걸로 하게.”
세르단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된 정중함이었다. 제빵사 부인이 손수건을 입에 댔다. 르네아는 자신이 쓴 적 없는 대사가 자기 인물을 더 잘 아는 것 같아 묘했다.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남자도 웃고 나서 한 발 물러섰다. 회전하지 않고 발을 옮길 자리를 먼저 확인한 동작이었다.
그녀가 숨을 들이쉬었다. 이번에는 객석이 따라 하지 않았다.
“같이 가실래요?”
그가 대답하려는 순간 르네아가 작은 손짓으로 기다리게 했다. 부인의 어깨가 다시 흔들렸다. 그녀는 남자의 대사를 빼앗으려던 게 아니라 제 말을 한 번 끝까지 해 보고 싶었다. 손에 실이 없어도 볼 것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제가 표는 샀는데, 목적지를 고르는 건 좀 늦거든요.”
세르단이 그녀를 봤다. 그가 이번에 대답할 시간은 그녀가 줬다.
“기다리겠습니다. 배는 먼저 보낼까요.”
“배까지 보내면 또 표를 사야 하잖아요.”
네 사람의 웃음이 한꺼번에 났다. 르네아는 이 말까지 대본으로 옮길지 아직 몰랐다. 다만 지금 웃음을 준 사람이 환영의 기술만 보여 준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무릎을 세우고 뛰거나 남자 주위를 돌아야만 배우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말의 서툰 끝에서 상대를 보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짧은 시험이 끝나자 관객들은 약속한 시간에 돌아갔다. 수선공은 다음에도 숨을 참으라면 따를 것이니 제대로 말해 달라고 했다. 르네아는 다시 고개를 숙여 웃었다. 부인은 찻잔을 돌려주며 다음 표가 열리면 알려 달라고 했다. 네 사람이 좋다고 했다는 사실이 다음 공연의 만석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끝을 보고 싶다는 말은 실제로 들었다.
르네아는 수첩에 오늘 살아남은 대사 셋을 적었다. 실이 없는 마지막 장면은 더 고쳐야 했다. 그러나 자기 목소리를 다른 배우로 바꿔 넣을 생각은 지웠다. 세르단에게 앞으로의 여자 역도 자기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환영을 마친 다음에도 무대에 남아 상대역을 끝까지 하겠다고.
“그럼 그동안 실은 제가 정리해요?”
펜이 물었다. 르네아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조수는 커튼 줄을 한 손에, 치울 나무틀을 다른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가 빈손으로 더 오래 서 있으려면 누군가는 그동안 다른 것을 붙들어야 했다. 기쁜 결심이 남에게 새 일거리로 도착하는 얼굴을 그녀는 지금 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셋이 같이 나눠 보자. 오늘은 원래 하던 데까지만 해.”
그녀는 펜의 손에서 나무틀을 받아 벽에 세웠다. 세르단은 앉아 대본에 방금의 말을 적었다. 르네아는 자기 이름이 놓일 자리를 보다가, 그 아래에 적힐 다른 이름들을 처음부터 다시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