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장수는 큰 꽃을 작은 꽃 세 송이 값으로 주겠다고 했다.
르네아는 큰 꽃을 보았다. 꽃잎 끝이 물러 있었다. 작게 묶은 흰 들꽃은 물 양동이 옆에서 제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것이 마이라에게 어울리는지 생각하기 전에, 어느 것을 들고 가면 더 성의 있어 보일지부터 셌다. 그 사실이 꽃을 고르는 일을 갑자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걸로 주세요.”
그녀는 흰 꽃 묶음을 골랐다. 세르단이 알려 준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잔잎 하나가 꽃잎 위로 뻗은 모양이 좋았다. 장수가 그 잎을 떼려 하자 그냥 두어 달라고 했다. 종이로 싼 줄기에 물기가 배어 나왔다. 향은 가까이 대야 겨우 났다.
큰물결의 작은 연습실 앞에는 낮은 의자가 두 줄 놓여 있었다. 오늘은 동료들에게 첫 장면들을 보여 주는 날이었다. 다음 달 공개 초연의 표를 파는 창은 닫혀 있었다. 르네아는 쪽지를 문 앞 사람에게 보이고 들어갔다. 세르단은 먼저 와 통로 쪽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꽃 대신 접은 외투가 있었다.
“꽃 취향은 당신이 알려 줬지만, 이건 제가 주는 거예요.”
르네아가 꽃을 들어 보였다. 세르단은 웃으며 자기 몫을 넣어 달라는 부탁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았다. 어젯밤 물오리의 팔걸이보다 오늘 의자 사이가 넓었다. 넓어진 만큼 편할 줄 알았는데, 남자의 외투가 그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늘은 바닥이 괜찮지만 끝나고 바로 일어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꽃을 무릎에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단이 몸을 설명하는 말과 그녀가 꽃을 어디 놓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나란히 흘렀다.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말은 내일의 몸까지 약속하지 않았다.
마이라는 무대 옆문에서 자기 의자를 직접 들고 나왔다.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이번에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연결만 보여 주겠다고 했다. 중간이 비어 있으니 아직 한 편을 다 본 것처럼 칭찬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앞줄의 의상 장인이 그러면 절반만 깎아 말하겠다고 받아쳤다.
르네아가 웃는 동안 마이라는 의자 하나를 무대 가운데 놓았다. 삼 년 전 포스터의 긴 치마 대신 무릎 아래가 자유로운 옷이었다. 한쪽 어깨에 걸친 외투는 지난번 연습 때 봤던 것이었다. 르네아는 해진 솔기를 찾으려다 시선을 멈췄다. 오늘 봐야 할 것은 옷의 낡은 곳이 아니었다.
등불이 그대로인 채 시작됐다.
외투를 맡기러 온 남자는 세르단이 아니었다. 목이 긴 젊은 배우가 옆에서 걸어 나왔다. 마이라는 그의 손바닥 위에 손목을 얹지 않았다. 외투를 반 접어 건넨 다음 의자를 창 쪽으로 옮겼다. 남자가 돌아올 자리 하나를 남긴 것처럼 보였다. 르네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 빈자리를 봤다.
그러나 마이라는 그곳에 발을 올리고 신발 끈을 고쳐 묶었다.
작은 웃음이 났다. 르네아도 웃었다. 기다리는 의자로 보였던 것이 자기 몸을 돌보는 발판이 됐다. 마이라는 끈을 다 묶자 의자를 다른 쪽으로 옮겼다. 무대에 창문은 없는데 시선과 어깨가 기울어지는 방향만으로 바깥이 생겼다. 환영사가 해 줄 일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젊은 배우가 외투를 들고 돌아왔다. 맡길 때보다 잘 접힌 외투였다. 마이라는 그것을 받아 몸에 걸치고, 아까 남겨 둔 자리가 아닌 문 쪽으로 걸었다. 발끝이 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르네아가 지난번에 좋다고 했던 그 짧은 걸음이었다. 자기 의견이 남았다는 반가움보다 먼저, 그 걸음을 실제로 고른 사람이 잘했다는 생각이 왔다.
세르단이 옆에서 숨을 짧게 내쉬었다. 웃음인지 감탄인지 묻고 싶었지만 르네아는 무대를 계속 봤다. 남자가 의자를 집어 제 자리로 가져오는 데서 장면이 끝났다. 누구도 버림받은 모양으로 남지 않았다. 외투를 돌려받은 여자와 빌려준 의자를 가져가는 남자가 다른 문으로 나갔다.
구리실이 없는 바닥 위에서 박수가 났다. 마이라는 바로 인사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호흡을 돌렸다. 마지막이 너무 빨랐다는 말이 앞줄에서 나왔다. 반대쪽에서는 그 속도 때문에 외투를 받는 마음이 보였다고 했다. 두 사람이 다르게 말하는 사이 르네아는 꽃의 종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낮은종에서 자기 난간이 올라오는 속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저 여자에게는 환영도 필요 없는데. 그다음에는 자기 장면에도 의자를 하나 넣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좋은 것을 본 기쁨이 자기 공연의 모자란 곳을 셀 때만 쓰이고 있었다. 르네아는 무릎의 꽃을 내려다봤다. 남에게 주려고 사 온 물건까지 어느새 자기 점수를 재는 데 올라가 있었다.
“어땠어요?”
마이라가 가까이 와 물었다. 질문은 두 사람에게 했지만 르네아는 자기 차례를 피하지 않았다. 제 무대보다 좋았다는 말은 마이라의 작품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러운 구석을 감추느라 의자 다리가 튼튼하다는 이야기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발판으로 쓸 때 좋았어요. 저는 누굴 기다리는 자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끈이 풀려서요.”
“진짜로요?”
“연습하다 풀렸어요. 고치려고 앉았는데, 같이 하던 사람이 그걸 남기자고 했죠.”
마이라는 젊은 배우 쪽으로 턱을 들었다. 그는 다른 동료와 의자 높이를 재다가 두 손을 흔들었다. 자기 실수도 다음에는 남겨 달라고 했다. 마이라는 그의 대사 실수는 너무 길어서 외투를 두 벌 더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동료들이 웃었다. 르네아는 무릎에 놓인 꽃을 들어 건넸다.
“축하해요. 끝까지 보고 싶은 시작이었어요.”
마이라는 종이를 받아 코 가까이 가져갔다. 잔잎이 뺨에 닿자 웃으며 조금 비켰다. 르네아는 자기가 골라 남긴 잎을 기억했다. 세르단에게 이 취향을 아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건넨 꽃이 아니었다. 오늘 본 것을 좋다고 말할 자기 입이 있었다.
“첫 시연 꽃은 처음 받아요. 초연 때까지 말리면 엄청 낡겠는데.”
“그때는 새 꽃을 받으세요. 이걸 오래 버티게 만들지는 말고요.”
“좋아요. 오늘 것은 오늘 두죠.”
마이라는 물컵을 하나 가져와 줄기를 넣었다. 문 옆 탁자에는 다른 사람이 가져온 작은 배 두 알과 바느질 꾸러미도 있었다. 르네아는 제 방 창가의 배를 잠깐 떠올렸다. 잊고 둔 것이니 돌아가 확인해야 했다. 남의 축하 탁자 위 과일을 자기 무대의 약속처럼 붙들 이유는 없었다.
세르단은 외투를 받는 배우의 손이 전보다 낮아져 좋아졌다고 말했다. 마이라는 남자에게만 익숙한 말을 건네지 않고, 그 손을 받지 않는 쪽으로 고친 이유를 르네아에게도 보여 줬다. 셋은 한 동작을 잠깐 이야기했다. 르네아는 그 대화에 세르단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모르는 사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동료들이 돌아갈 때 소멜이 탁자 옆에서 나타났다. 무대 옷을 보기 위해 뒷줄에 앉았다고 했다. 그녀는 르네아의 잠금쇠가 잘 붙어 있는지 한 번 보고, 마이라에게 제 의상전의 날짜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네아는 빈 옷이 놓일 나무판 틈을 고쳤느냐고 물었다. 소멜은 직접 손으로 만져 보니 생각보다 넓었다며, 받침을 손질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들의 다음 달에는 서로 다른 무대가 있었다. 르네아는 전부 자기 일정으로 끌고 오지 않고 들었다. 자신에게도 다음 장면이 있었다. 그것이 오늘 아무것도 이기지 못했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큰물결을 나왔을 때 하늘은 흐려 있었다. 세르단이 운하 건너의 작은 악기점에 들러 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본 공연의 안내가 붙는 곳이고, 다음에는 그가 고른 공연에 같이 가자던 약속 때문에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표를 사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르네아는 낮은종으로 돌아가기 전에 시간이 된다고 답했다.
배를 기다리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이라가 잘하니까 제 무대를 더 크게 만들고 싶었어요.”
세르단은 운하 쪽을 보던 얼굴을 돌렸다. 르네아는 그가 위로할 말을 찾기 전에 자기 말을 더했다.
“의자를 쓸 때는 저도 의자를 쓰고 싶고, 안 돌아오는 발을 보면 제가 돌아본 게 싫고요. 분명히 보러 갔는데 자꾸 제 것만 보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 의자가 필요합니까?”
“아뇨. 제가 의자에 발 올릴 장면이 없어요.”
말하고 나니 우스워졌다. 세르단도 웃었다. 그가 마이라보다 그녀가 낫다고 하지 않아 르네아는 자기 질문을 계속할 수 있었다. 좋아 보인 물건을 전부 가져오면 자기 이야기가 좋아지는 줄 알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때문에 무대 뒤에 둔 쓸모없는 장식만 상자 둘이었다.
“저는 르네아 씨가 말하기 전에 실부터 보는 순간이 궁금합니다.”
세르단이 말했다.
“한 손은 바닥에 있고, 얼굴은 저를 보고 있죠. 그때 제가 들어도 되는 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게 느려서 답답한 건 아니고요?”
“답답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말을 먼저 했더니, 제가 듣기도 전에 제 말을 한 사람이 됐죠.”
그녀는 난간 앞에서 그가 너무 빨리 물었던 연습을 떠올렸다. 자기 장면에도 남의 좋은 장면처럼 더 보고 싶은 순간이 있을 수 있었다. 그걸 남자가 알아봤다는 기쁨과, 자기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함께 왔다.
“환영이 내려간 뒤에는요?”
르네아가 물었다. 그가 잠깐 생각했다.
“더 남아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요.”
그녀는 수첩을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 여기 온 일까지 전부 연습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남겨 두고 싶은 말을 기억으로 갖고 돌아가도 됐다. 그는 앉을 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천천히 승선했다. 르네아도 뒤따라 통로를 건넜다.
작은 배가 운하를 가르는 동안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르네아는 비를 막으려 외투 깃을 세웠다. 꽃을 주고 온 손이 가벼웠다. 빈손으로 돌아가도 오늘 좋아했던 장면은 남았다. 자기 이름의 무대는 다른 사람의 꽃이 시들 때까지 기다렸다 피는 것이 아니었다.
건너편에 내려 악기점 안내를 보고 나니 비가 굵어졌다. 점원은 젖은 안내를 접어 처마 안으로 들였다. 세르단은 아직 공연을 고르지 못했다고 했다. 르네아는 괜찮다고 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을 다음이라는 말에 맞춰 고를 필요는 없었다.
돌아가는 선착장에서는 배가 뜨지 않았다.
빗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상류에서 내려온 긴 짐배의 밧줄이 걸려 통로를 막았다고 했다. 뱃사공들이 배를 붙들고 줄을 풀고 있었다. 서두르는 승객이 언제 가느냐고 묻자, 줄이 풀리면 알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르네아는 지붕 아래 빈 벤치를 가리켰다. 세르단이 먼저 앉고 그녀가 한 사람 몫을 남겨 두었다.
그는 젖은 소매를 접었다. 르네아도 외투 끝을 무릎에서 털었다. 작은 물방울이 두 사람 사이 빈 나무판에 맺혔다. 꽃을 받을 때는 그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 지금은 손 하나가 그 빈 곳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말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