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공연 날, 르네아는 새 대신 자기 이름을 걸었다.
출입문 옆 작은 칠판에 분필로 쓴 이름이었다. 환영과 출연, 르네아 바셀. 그 아래에는 출연과 움직임, 세르단 에브라고 적었다. 분필이 한 번 부러졌고 마지막 글자는 조금 올라갔다. 펜이 고쳐 줄까 물었다. 르네아는 이 정도 기울어진 이름도 자기 것이라고 답했다.
세르단은 칠판의 자기 이름보다 그녀의 이름을 먼저 읽었다. 르네아는 갑자기 글자를 지우고 싶어졌다. 구경하던 이브론이 잘 보인다고 말했다. 괜히 그에게 화가 날 뻔했다.
“선생님, 얼굴이 빨개요.”
펜이 말했다.
“공연 전에 말을 시키지 마.”
“제가 아니라 분필이 그런 것 같은데요.”
그녀는 손등으로 볼을 닦았다. 붉은 도료였다. 새 의상의 단추를 칠하다 묻힌 것이었다. 펜이 깨끗한 천을 건넸다. 세르단이 옆에서 웃음을 참았다. 르네아는 그가 참는 걸 보며 오히려 더 웃고 싶어졌다. 아침부터 두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는 날이었다.
해가 진 뒤 극장 문이 열렸다. 스물네 개의 의자에는 젖은 외투를 벗는 사람과 장갑을 벗지 않는 사람이 뒤섞여 앉았다. 첫날 새를 봤던 아이는 아버지 옆에서 두 손을 무릎 밑에 넣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르네아는 막 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미안해졌다. 펜에게 막이 내려가면 마음껏 박수쳐도 된다고 꼭 한 번 더 말해 달라 부탁했다.
관객이 앉은 뒤 뒷문을 닫았다. 입구 반사판은 덮인 채였다. 이브론은 스물다섯 번째 의자를 들여놓지 않았다. 팔 수 있는 자리를 비워 둔 것과 처음부터 의자가 없는 것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객석 밖 통로에서 서서 봤다. 르네아는 무대 뒤에서 그 등만 보고도 오늘 그가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알았다.
“손은 어떻습니까.”
세르단이 물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펴 보였다. 구리실 자국은 남았지만 피부가 벌어진 곳은 없었다. 매듭을 묶고 푸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녀도 그에게 지금 괜찮은지 물었다. 세르단은 바닥이 조금 출렁이는 느낌이 있으나 곧게 걷는 데는 괜찮다고 답했다. 상태가 바뀌면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르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단은 그녀가 손을 내미는 동안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은 손등을 한 번 마주 댔다. 막이 오르기 전에 하는 인사. 지금 새로 생긴 작은 버릇이었다.
펜이 줄을 당겼다. 커튼이 올라갔다.
무대는 비어 있었다. 르네아는 빛을 만들지 않고 관객을 먼저 봤다. 앞줄 노인의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고, 왼편 아이의 구두 끝이 의자 아래로 흔들렸다. 예쁜 관객 같은 것은 없었다. 제각기 다른 하루를 지내고 여기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자기 이름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그녀는 왼손으로 구리실을 당겼다. 어둠 속에서 붉은 난간이 자랐다. 오늘은 어제보다 길이가 짧았다. 넓은 객석만큼 무대를 크게 만드는 대신 가까이 놓인 난간 하나를 골랐다. 팔에 전해지는 무게는 분명했으나 손목을 꺾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다음 세르단이 빛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회전하지 않았다. 객석 끝을 향해 세 걸음 걷고 멈췄다. 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르네아는 그가 소품 없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먼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보고 싶었다. 그녀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배를 놓치셨어요?”
오늘은 그녀가 먼저 물었다. 어제 연습 때 둘이 바꾼 시작이었다. 기다리는 여자보다 먼저 말하는 여자가 그녀에게 잘 맞았다. 세르단은 난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를 확인하는 동작을 했다. 무대에서 온몸을 돌리지 않아도 망설이는 마음이 보였다.
“표를 사 놓고도요.”
“다음 배를 타면 되잖아요.”
“다음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르네아는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웃음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다음 대사를 빨리 한 적이 있었다면 오늘도 그랬을 터였다. 그녀는 관객이 숨을 돌리는 동안 자신의 손목도 편다는 것을 알았다. 세르단은 실을 보는 대신 그녀의 얼굴을 봤다.
“목적지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죠.”
그녀가 말했다.
“그럼 돌아오면 됩니다.”
“돌아와도 되는 곳인지 모르잖아요.”
세르단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은 그의 것이었다. 무대 위 남자는 배를 놓쳤고, 지금의 세르단은 말을 고르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녀가 먼저 끝내 줄 대사는 아니었다.
“기다리는 분이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르네아는 대답할 말이 분명히 있었다. 있어요, 라는 짧은 말. 혀끝에 닿아 있던 그 말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여기 있어야 한다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도 가고 싶은 여자를 연기하고 싶었다. 그녀가 쓴 대본인데 그녀가 변하고 있었다.
르네아는 객석을 한 번 봤다. 아이가 턱을 앞으로 내밀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난간 위로 오른손을 조금 올렸다. 실을 잡지 않은 손이었다.
“아직은 없어요.”
세르단이 고개를 들었다. 르네아는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바꾼 말의 다음을 그가 대신 만들어 주길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대사를 끝냈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있는데요.”
“어딥니까.”
그녀는 그의 오른손을 봤다. 아주 짧은 시선이었다. 세르단도 그걸 봤다. 옆자리 제빵사의 아내가 숨을 들이켰다. 르네아는 객석의 작은 반응을 들으면서도 남자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자기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렸다. 손이 닿는 장면은 대본에 있었다. 언제 닿을지는 두 사람이 골랐다.
그녀가 손을 얹자 세르단의 엄지가 손등 가까이에 멈췄다. 감싸 쥐지는 않았다. 르네아는 그 짧은 여백을 느꼈다. 관객이 둘을 봤고 난간도 보고 있었다. 팔에 걸린 무게가 조금씩 늘었다. 미리 정한 마지막까지 남은 시간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녀는 속으로 여덟을 세기 시작했다.
한 박자마다 구리실이 풀렸다. 세르단은 그녀와 세 걸음을 걸었다. 앞서지도 뒤에 남지도 않는 걸음. 여섯에서 난간이 무릎 아래로 낮아졌다. 일곱에서 붉은 빛이 실 사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덟에서 그녀는 왼손을 완전히 폈다. 남은 형태는 없었다. 무게도 더 이상 팔을 잡아당기지 않았다.
그때 세르단이 손을 놓았다.
천천히. 아침에 그녀가 부탁했던 속도로. 르네아는 빈 손이 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까지 자기 몸에 있게 두었다. 남자가 반 발 옆으로 왔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환영의 난간이 없었다. 더는 마법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거리에 서 있었다.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그가 물었다. 르네아는 어제보다 조금 늦게, 그러나 자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도 가고 싶어요.”
막이 내려왔다. 어둠이 둘을 가렸다. 박수가 시작됐다.
르네아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손가락을 봤다. 그녀가 엮지 않은 박수는 새 형태를 부르지 않았다. 소리는 그냥 소리였다. 그녀는 그걸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뒤늦게 알았다.
세르단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르네아는 그의 어깨가 내려가는 걸 봤다. 그가 괜찮은지 묻자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완전히 멀쩡한 하루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왔고 지금은 다시 인사하러 나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그 대답으로 충분했다.
펜이 막을 조금 올렸다. 두 사람은 무대 앞으로 걸었다. 이번에는 르네아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문밖의 이름을 보는 사람마다 우스운 글씨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웃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펜이 두 사람 앞에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새 나무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무대를 옮기느라 생긴 것이었다. 르네아와 세르단은 나란히 손바닥을 마주 쳤다. 그 작은 소리가 객석의 박수 뒤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이브론도 들어와 자기는 왜 빼냐고 했다. 르네아는 그의 손에는 분필을 쥐여 줬다.
“다음에는 직접 쓰세요. 스물네 석만.”
이브론은 분필을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며 웃었다. 오늘 저녁이 흑자인지는 아직 계산 전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녀의 무대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앉았다는 사실은 남았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뒤 아이가 무대 가장자리로 왔다. 아버지는 통로에서 기다렸다. 아이는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르네아를 올려다봤다.
“오늘 새는 안 와요?”
르네아는 쪼그려 앉았다.
“오늘은 두 사람이 왔잖아요.”
아이가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새도 와도 되느냐고 물었다. 르네아는 잘 연습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가 떠난 뒤 그녀는 작업대에 놓인 나무 새를 세르단에게 보여 줬다.
“저 친구는 오늘도 관객석에 못 앉았네요.”
“성격이 좋지 않아서요. 공연 중에 말을 할 겁니다.”
“주인 닮았네요.”
그가 웃었다. 르네아는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잡지 않았다. 한 사람이 그렸고 다른 사람이 깎은 새였다. 그녀는 새를 다시 제자리에 놓고 먼지가 묻은 손을 털었다.
“또 해요.”
세르단이 그녀를 봤다.
“공연을요?”
“그것도요.”
르네아는 자기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세르단도 이제 모른 척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에서보다 조금 느린 목소리로 빵집이 문을 닫기 전에 가자고 했다. 그녀는 배가 덜 익었으니 빵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적인 약속은 시시할수록 좋을지도 몰랐다.
펜이 로비에서 그를 불렀다. 손님 한 사람이 봉투를 맡겼다며 가져왔다. 짙은 청색 종이에 하얀 물결 세 줄이 찍혀 있었다. 세르단의 웃음이 아주 조금 멈췄다. 르네아도 그 문양은 알았다. 도시에서 가장 큰 객석을 가진 큰물결 극장이었다.
그는 봉투를 바로 열지 않았다. 먼저 펜에게 누가 왔는지 물었다. 회색 머리 남자였다고 했다. 공연을 끝까지 보고 갔다고. 르네아는 뒷자리에서 일어나 통로에 서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세르단을 알아보는 듯하면서도 인사를 하지 않았던 사람. 그녀는 그를 문밖의 칠판 앞에서 한 번 더 봤었다.
“다벨 오르일 겁니다. 예전 제작자예요.”
세르단이 말했다. 르네아는 손을 멈췄다. 반가운 소식인지 부담스러운 소식인지, 그가 말하기 전에는 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얇은 카드 한 장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 너머로 읽지 않았다. 다 읽은 뒤 세르단이 직접 알려 줬다.
“내일 정오에 만나자고 합니다. 새 배역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
“가고 싶어요?”
세르단은 카드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짧지 않은 침묵이었다. 르네아는 그가 무대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옆의 무대 하나만을 뜻한다는 약속은 없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원했던 것처럼 그에게도 아직 원하는 것이 있을 수 있었다.
“무슨 배역인지 듣고 싶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르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구리실을 보관함에 천천히 감아 넣었다. 세르단은 옆에서 그 일을 돕지 않고 기다렸다. 오늘 빵집에 가는 약속이 취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마지막 매듭을 묶고 그를 돌아봤다.
“그럼 내일은 당신이 대본을 먼저 읽어요. 빵집은 오늘 가고요.”
그가 웃었다. 빈 객석 너머로 칠판의 기울어진 두 이름이 보였다. 르네아는 그 앞을 지나며 불을 껐다. 이 무대의 다음은 아직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