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세르단은 못생긴 새를 들고 왔다.
르네아가 수첩에 그렸던 것과 닮은 나무 새였다. 날개가 짧고 꼬리가 지나치게 길었다. 둥근 배 한쪽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홈이 파여 있었다. 그녀는 작업대에 놓인 새를 돌려 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제 그림을 고소하려고 만드셨어요?”
“새가 증언하려면 몸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얼굴로 보입니까.”
르네아는 새의 부리를 쓰다듬었다. 기분이 나쁜 새처럼 보였다. 그녀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훨씬 우아한 것이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이쪽이 좋았다. 남자가 자기 수첩을 기억했다는 점도 좋았다. 그런 생각은 어제까지도 작업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종류였는데, 하루 만에 쓸모가 바뀐 모양이었다.
그녀는 새를 작업대 한쪽에 세웠다. 세르단이 그 자리를 잠깐 바라봤다. 르네아는 눈치채지 못한 척 새의 그림자를 구리실에 대 봤다. 오늘 할 일은 새를 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무게가 한 무대에서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반사판에는 거친 갈색 천이 씌워져 있었다. 이브론이 새벽에 직접 씌웠다며 펜에게 세 번 자랑했다고 했다. 객석 맨 앞에는 펜 혼자 앉았다. 이브론도 보고 싶다고 했지만, 먼저 무대 고정대를 목수에게 확인받으러 가야 했다. 극장 주인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르네아를 조금 너그럽게 만들었다.
“한 번에 하나만 만들 거예요. 꽃병이나 의자. 사람은 못 만들어요.”
“사람이 이미 둘이니까 충분하군요.”
“한 명이 계속 말하면 부족할 수도 있어요.”
세르단이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목을 돌렸다. 바닥의 구리실 사이에 붉은 사각형이 생겼다. 빛이 위로 솟고 모서리가 둥글어졌다. 여자의 허리 높이쯤 되는 기둥이었다. 펜이 집중하자 그 표면이 조금 어두워졌다. 르네아는 손바닥을 얹고 눌렀다. 약하지만 분명한 저항이 있었다.
“박수가 없어도 무게는 생겨요. 한꺼번에 박수치면 급하게 늘고요. 어제는 사람이 많고 반사판까지 열려서 너무 빨랐어요.”
“그럼 박수 없는 공연은 가벼운 공연입니까.”
“가벼운 무대죠. 재미는 아직 몰라요.”
그녀는 사각 기둥을 접어 바닥으로 돌려보냈다. 여덟 박자가 끝난 뒤에야 다음 형태를 올렸다. 이번에는 긴 난간이었다. 세르단은 그 앞에서 잠깐 기다렸다. 허락을 기다린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르네아 쪽이 오히려 늦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난간에 두 손을 짚었다. 단정한 손가락, 어제 생긴 붉은 선.
“제가 움직이면 사람들은 저를 보겠죠.”
“그럴 것 같네요.”
너무 곧바로 대답해서 르네아가 먼저 눈을 내렸다. 세르단은 난간에서 손을 떼고 객석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세 걸음. 그리고 멈췄다. 펜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난간 표면의 빛이 다시 엷어졌다. 르네아는 손가락의 당김이 더 늘지 않는 것을 느꼈다. 누가 무엇을 보는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배우가 사람들의 눈을 데려오는 방법은 있었다.
“놀랍네요. 걷기만 했는데.”
“더 해도 됩니까.”
그녀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단은 오른팔을 들어 난간 위에 걸린 보이지 않는 물건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가슴에 가져왔다. 아무것도 없는 손인데 르네아는 무엇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졌다. 편지일까. 꽃일까. 너무 늦게 돌아온 대답일까. 남자가 그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왼발이 바닥을 놓쳤다.
크게 넘어진 것은 아니었다. 세르단은 난간을 짚었고 르네아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갔다. 기둥처럼 보이는 빛이 둘 사이에서 한 번 흔들렸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남자가 이미 균형을 찾고 있었다. 눈이 한 점을 찾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펜도 객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세르단은 바닥을 보며 숨을 두 번 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르네아를 봤다.
“회전은 못 합니다.”
장난기가 사라진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에게 설명을 재촉하지 않았다. 손안의 구리실을 천천히 풀었다. 난간이 사라지자 둘 사이에는 빈 바닥만 남았다. 붙잡을 것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르네아는 옆의 실제 의자를 가까이 끌어 놓았다. 세르단은 바로 앉지는 않았다.
“왼쪽으로 갑자기 돌면 바닥이 늦게 따라옵니다. 어두울 때도요. 오늘은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어제 제가 그린 건 직선이었어요.”
그가 눈을 들었다.
“춤을 부탁하신 줄 알았습니다.”
“공연을 부탁했어요. 회전이랑 같은 말은 아니잖아요.”
말을 하고 보니 너무 쉽게 들렸다. 르네아는 남자의 얼굴에서 그 생각이 닿을 자리를 찾았다. 세르단은 미소를 지으려다 그만뒀다. 그녀는 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상대의 삼 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어제의 그가 돌아보지 않고도 자신과 박자를 맞췄다는 사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대에 서고 싶은지는 당신이 정해요. 저는 걷는 장면을 만들 수 있고요. 그걸 보고 싶다는 뜻이에요.”
세르단은 의자에 앉았다. 펜에게 물을 부탁하는 말도 스스로 했다. 르네아는 자기 의자를 조금 떨어뜨려 놓았다. 친절해 보이려고 너무 가까이 앉는 것 역시 일종의 허세 같았다. 그녀는 장비 상자에서 어제의 수첩을 꺼냈다. 선 위의 사람 둘이 서로 등을 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왜 싸웠습니까.”
세르단이 물었다.
“아직 안 싸웠어요.”
“등을 돌리고 있길래요.”
“어제 제가 사람 얼굴을 그릴 힘이 없었어요.”
물잔을 받던 그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 르네아는 연필로 한 사람에게 코를 그려 넣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코가 너무 길어졌다. 지우개가 없었다. 그녀가 당황하자 세르단은 종이 가장자리에 새를 하나 더 그렸다. 이번에는 둘 다 새를 보는 사람이 됐다.
“이러면 서로를 안 봐도 되겠네요.”
“서로 보고 싶으면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연필을 놓쳤다. 세르단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물잔이 작업대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작게 들렸다. 르네아는 질문을 극의 내용으로 돌릴 문장을 찾았으나 이미 늦었다. 그는 종이에 그려진 그녀의 못생긴 코를 가리켰다.
“한 사람부터 돌아보면 되겠죠. 천천히.”
르네아는 수첩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종이의 거친 끝이 걸렸다. 대단한 대답도 아니었다. 그런데 남자의 목소리로 들으니 다른 뜻이 되는 말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무대에서 잘했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깨달음에는 경계와 호기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점심 무렵 고정대를 확인한 목수가 나갔다. 받침 두 개를 새것으로 바꾸고 전면 회로 한 줄을 쉬게 하면 내일은 작은 시연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브론은 개장 날짜를 미루면 숙박 예약을 취소할 사람이 생긴다고 한숨을 쉬었다. 르네아는 그 한숨을 자기 일처럼 떠안지 않았다. 대신 공연을 열 분으로 줄이고 객석을 스물네 자리만 열자고 했다.
“열 분에 뭘 보여 주나?”
“두 사람이 만나서 헤어지는 정도요.”
“너무 짧게 사랑하는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도 있죠.”
그녀가 대답하자 세르단이 그녀 쪽을 보았다. 르네아는 지금 이 대화에서 빠져나갈 사다리가 있으면 사고 싶었다. 물론 예산은 없었다. 펜이 웃음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극장 안에는 도와주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이브론이 손님들에게 보낼 안내를 쓰러 간 뒤 둘은 다시 무대로 나왔다. 이번에는 환영을 만들지 않았다. 바닥에 분필로 난간의 길이만 그렸다. 세르단이 움직임을 찾고, 르네아는 손의 높이와 실을 풀 시간을 맞췄다. 서로 등지고 세 걸음, 멈춤, 한 사람이 뒤돌아보는 대신 다른 사람 쪽으로 옆걸음. 같은 얼굴을 보기 위해 반드시 몸을 돌릴 필요는 없었다.
“손을 잡아도 됩니까.”
그가 물었다. 르네아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구리실을 엮는 동안은 장갑을 끼지 못했다. 손톱 밑에는 붉은 도료가 남았고 둘째 손가락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도 같은 속도로 기다렸다.
“오른손으로요. 왼손은 실을 풀어야 해요.”
세르단의 손이 그녀의 오른손을 받았다. 꽉 쥐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빼면 그대로 빠질 정도였다. 르네아는 뜻밖에 조금 더 잡고 싶었다. 작업할 때 손이 뜨겁다고 느낀 적은 많았으나 대체로 인두 때문이었다. 오늘은 탓할 도구가 없었다.
“이렇게 걸으면 제가 끌고 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녀가 말했다. 세르단이 자기 손을 조금 뒤로 옮겼다. 그러자 둘이 나란히 서게 됐다.
“그럼 함께 가는 걸로 할까요.”
르네아는 대답 대신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보폭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가 그녀에게 맞추는 건지 오늘 자기 몸에 맞추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세 번째 걸음에서 물었다. 세르단은 둘 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 답을 마음대로 예쁜 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기억했다.
분필 선 끝에 도착했을 때 세르단은 손을 놓았다. 약속된 동작이었다. 르네아는 아주 잠깐 그가 다시 잡아 주기를 바랐다. 열 분짜리 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수첩보다 자기 손이 먼저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걸음을 뒤로 물리지 않고 무대 앞을 바라봤다.
“마지막에 다시 만나게 해요.”
“처음엔 헤어지는 극이라고 하셨는데요.”
“마음이 바뀌었어요.”
세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르네아는 묻지 않는 것이 좋으면서도 한 번쯤 물어봤으면 싶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이 그의 목 옆을 지나갔다. 오늘의 그가 포스터 속 남자보다 덜 눈부신지 그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대신 오늘 손을 잡았던 쪽이 더 가까웠다.
오후의 마지막 연습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끝까지 걸었다. 르네아는 실을 놓고, 세르단은 그녀가 없는 자리를 보았다가 반 발 옆으로 왔다. 막이 없어도 장면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펜이 객석에서 두 손을 들었다가 무릎 위로 내렸다. 박수치려던 손이었다.
“좋았어요?”
르네아가 물었다. 조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가 없으니 얼굴이 더 잘 보였다. 그녀는 그 조용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이브론이 접은 초대장 한 장을 들고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개장 공연 전날인 내일, 후원 손님 세 사람에게 짧은 장면을 보여 주기로 했다며 말했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초대장 뒷면을 내밀었다. 손님 한 명이 동행자를 데려온다고 적혀 있었다.
마이라 덴.
르네아는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번에는 아는 이름이었다. 도시의 공연 포스터에서 몇 번이나 본 무용수. 세르단은 그녀가 발음하는 동안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는 분이에요?”
“제 마지막 공연에서 상대역이었습니다.”
르네아는 손바닥에 남은 온기를 가만히 접었다. 아무것도 약속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그것과 별개로 알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가 마지막으로 손을 놓았을 때, 마이라는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