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아흔째 아침에는 먼저 보관소에 갔다. 유리는 오늘 기한이 끝나는 물건의 현재 조건을 받았다. 판 하나, 봉인 병 여섯, 빈 병 둘은 따로 놓인 상태로 이어졌다. 외장 검토를 끝낸 설명도 함께 남아 있었다. 그 설명을 다시 비용 내고 처음부터 확인하는 날은 아니었다.
담당은 이백아흔다섯째까지 연장하는 조건을 알려 줬다. 유리는 필요한 기간과 현재 비용을 듣고 실제로 지불했다. 날짜만 먼저 늘여 적고 나중에 값을 마련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물건을 계속 맡기는 것과 새 시계 확인을 시행하는 일도 이번 접수에서는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영수표를 받고 주머니를 닫았다.
시계 관찰 방법에 대해서는 당사자 답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담당은 그 상태로 제안을 보류해 두겠다고 했다. 유리는 곧 동의할 것이라고 대신 약속하지 않았다. 그녀가 받은 것은 검토 설명이고, 세온에게 실제로 보낸 것은 한정된 동의를 묻는 편지였다. 아직 남의 답을 자기 일정의 빈칸에 쓸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날보다 바람이 덜했다. 뜰의 의자는 말라 있었지만 유리는 바로 앉지 않았다. 오전에 이미 보관소까지 걸었고 계단을 돌아와야 했다. 앉으면 쉬기 좋다는 생각과 그 자리까지 더 걸어가는 수고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가까운 그늘에서 잠깐 서 있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현재 전달 창구에 편지가 와 있었다. 세온이 이백여든일곱째 쓴 답이었다. 유리는 방에 들어와 손을 씻고 종이를 폈다. 그는 그날 그녀의 이백여든넷째 편지를 실제로 받았다고 썼다. 뜰의 침묵과 다 읽은 책 앞의 마음을 읽은 사람의 대답이 종이 위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줄이 무심하지 않았는지 더 고칠 수 없던 밤을 떠올렸다.
그는 말없이 같이 앉고 싶다는 마음을 자기도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계속 침묵해야 잘한 만남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리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자기가 골라 보낸 자세가 두 사람의 새 규칙이 될까 걱정했을 수도 있었다. 그 속마음을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유리는 빈 종이에 말하고 싶으면 말해도 좋다고 먼저 썼다. 그것은 그에게 주는 허락이라기보다 자기가 바랐던 것을 고치는 말이었다. 함께 조용히 있어 보고 싶다는 제안이 말할 자유를 줄이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기 침묵을 잘 지켜 주는 사람만 가까이 둘 생각이 아니었다. 그의 말도 듣고 싶었다.
세온의 책은 편지를 쓰던 날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고 했다. 여행자가 돌아오는 결말이 아니라 남은 사람이 손본 문을 다른 손님에게 열어 주는 결말이었다. 그는 자기 예상이 틀려서 잠깐 책을 덮었다고 썼다. 유리는 읽으면서 웃었다. 서로 다른 책에 남겨진 집들이 둘의 편지 안에서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좋아한 마지막 소리는 경첩이 아니라 바깥의 발걸음이었다고 했다. 기다리던 사람인지는 끝내 말하지 않는 결말이었다. 유리는 그 책을 자기가 읽기 전에 끝을 들었지만 싫지 않았다. 그가 어느 대목을 골라 보냈는지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직접 읽을 때는 같은 소리를 다른 방식으로 들을 수도 있었다.
편지 끝에는 실제 일정 제안이 있었다. 이백아흔넷째 오후에 로델 쪽 업무를 정리하고 이동할 수 있는 범위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현재 일정과 몸이 괜찮다면 짧게 들르고 싶다는 말이었다. 유리는 그 날짜가 확정된 방문이 아니라 자기 답을 기다리는 제안임을 읽었다. 오늘은 답을 보낼 수 있는 회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먼저 자기 일정표를 폈다. 보관은 아흔다섯째까지 실제 연장했다. 아흔넷째 오후에는 이미 잡아 둔 외출이나 업무가 없었다. 몸의 상태는 그날 다시 봐야 했다. 유리는 긴 산책이나 온실 확인을 약속하지 않고 숙소의 앉을 자리에서 짧게 만나는 안을 썼다. 그가 원한 방문과 자기가 가능한 만남이 겹치는 범위였다.
그녀는 날짜 아래에 그날 몸이 더 당기면 쉬는 쪽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적었다. 세온도 이동 조건이 달라지면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상대를 위해 반드시 도착해야 좋은 사람이라는 규칙은 만들지 않았다. 다만 가능한 현재 제안에 좋다고 답했다. 유리는 종이에 쓰인 날짜를 보고 조금 웃었다.
시계에 관한 설명 편지는 이백여든엿새째 부쳤으므로 이번 답이 그것에 대한 동의일 수는 없었다. 유리는 시계의 한정 관찰에 관한 질문은 앞선 별도 편지에 있다고 짧게 알려 줬다. 아직 답하지 않아도 만남의 제안을 바꿀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시계가 두 사람을 같은 방에 앉히는 입장권이 되어서는 안 됐다.
그녀는 받은 편지의 침묵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세온이 말없이 앉는 시간을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좋아한 시간을 다른 날에도 그대로 재현해야 할 의무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유리는 자신의 답에서 잘된 장면을 반복해야 한다는 기색이 없는지 살폈다. 몸이 바뀌듯 그날 나누고 싶은 말도 바뀔 수 있었다.
에다가 점심을 먹으러 왔다. 유리는 날짜 제안을 받았다고만 말했다. 친구는 자기가 그날 방을 비워 줘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친구의 방은 원래 친구 것이고 공용 자리는 현재 조건을 받으면 된다고 답했다. 에다는 농담이었다며 웃었다. 유리는 웃으면서도 누군가의 생활 전체를 새 만남을 위해 비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은 공용실의 자리를 확인하러 내려갔다. 관리인은 아흔넷째 오후에 현재 손님들이 쓸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탁자 하나를 계속 비워 둘 수는 없었다. 유리는 곧바로 조용한 방을 따로 내달라고 하지 않았다. 바깥 의자가 마르면 그쪽을 쓰고 아니면 자기 방의 의자에서 짧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조건을 물었다.
방문객의 현재 출입 조건을 듣고 유리는 자기 방에서 짧게 만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받았다. 실제로 방문자가 왔을 때 접수를 해야 했고 머무는 범위도 정해져 있었다. 새 계절 계약이나 새 거처의 합의는 아니었다. 그녀는 세온에게 그 두 자리의 가능성을 적고, 그날 함께 골라도 된다고 했다.
에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아무것도 아닌 의자도 오래 보게 된다고 말했다. 유리는 자기가 의자를 그렇게 자주 보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방에서 옷을 자꾸 옮긴다고 했다. 그녀는 옷을 입어야 해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가 웃었다. 그 말에도 사실이 있었고 친구가 본 마음에도 조금의 사실이 있었다.
오후에 편지를 실제로 맡겼다. 전날까지 쓰던 종이의 책 앞장 이야기도 함께 들어 있었다. 세온의 책을 다 읽었다는 소식에 답했고, 같은 부탁을 서로 다른 날에 쓴 것도 알렸다. 유리는 창구에서 수신 날짜를 보장받지 않았다. 현재 회수에 맡겼다는 답과 표시를 받아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서는 아흔넷째에 읽어 줄 단락을 골랐다. 고른다고 그날 반드시 읽을 약속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목이 마르거나 말하고 싶은 다른 일이 생기면 책을 덮을 수도 있었다. 유리는 책갈피 하나만 넣었다. 읽을 대목을 종이로 모두 옮겨 쓰지 않으니 오른손이 덜 당겼다. 준비의 크기를 줄여도 마음은 그대로였다.
시계의 겉유리에는 창틀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녀는 방법을 설명받기 전에도 볼 수 있었던 반사였다고 생각했다. 새로 아는 말이 생기면 원래 있던 모습도 더 특별해 보였다. 유리는 그 느낌을 새 현상의 발견이라고 쓰지 않았다. 실제 확인을 하기 전까지 시계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조건으로 남아 있었다.
저녁에는 빌렸던 책 받침을 다시 받았다. 현재 사용 조건은 전과 같았고 마른 천이 함께 왔다. 유리는 세온이 그것을 써 보고 싶다고 하면 관리인에게 별도로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빌려 준 물건이 자동으로 방문객에게도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자기 책을 올려 한 장을 읽었다.
아흔넷째를 생각하니 문득 너무 많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외장 검토가 끝난 일과 새 보관 기간, 친구의 원고와 시계 설명, 젖은 책 앞장까지 있었다. 유리는 그 목록을 쓰다가 펜을 놓았다. 편지로 이미 나눈 것을 모두 입으로 다시 확인해야만 실제 만남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오늘을 물어보는 데서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방문 시간을 한 시간 가득 채우는 장면을 상상했다가 지웠다. 세온의 담보였던 이름 붙인 한 시간과 현재의 만남을 겹쳐 세고 싶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은 그 기록을 대신 갚는 계약이 아니었다. 그가 자기 일을 마치고 와서 잠깐 앉는다면 그것으로 새 하루가 될 수 있었다.
유리는 책을 읽을 쪽 의자에 실제로 앉아 봤다. 세온의 자리를 비워 놓고 자기 팔꿈치가 어디에 닿는지 확인했다. 지금은 걸상을 조금 옆으로 빼면 됐지만 그가 오면 다리가 놓일 곳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자리를 표시하지 않았다. 둘이 실제로 앉은 다음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 책갈피가 들렸다. 유리는 바람을 막으려고 무거운 시계를 책 위에 놓지 않았다. 물건이 손에 가까이 있다고 다른 용도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천을 접어 책갈피 위에 놓고 바람이 덜 드는 각도로 창을 닫았다. 방의 사소한 준비도 현재 가진 물건의 범위 안에서 할 수 있었다.
세온이 오면 자기가 먼저 물을 따를지 그가 자리에서 가까운 잔을 잡을지 아직 몰랐다. 유리는 모든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려 애쓰고 싶지는 않았다. 필요한 때 지금 무엇이 편한지 말할 수 있으면 됐다. 그녀는 그날 부탁할 문장을 미리 외우지 않고, 물병을 자기 손이 닿는 쪽으로 옮겼다.
밤에 에다가 원고의 한 줄을 보여 줬다. 방문자는 손바닥을 문에 대지 않고 자기 옷자락에 펴 두고 있었다. 유리는 그 손이 문을 더 이상 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친구는 멈춘 사람이 꼭 떠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녀는 그 다음 줄을 아직 읽지 않았다. 원고에도 실제 만남에도 다음 동작이 남아 있었다.
유리는 책 앞장의 울음을 빛에 비춰 봤다. 완전히 펴지지는 않았다. 세온에게 이미 그 이야기를 보냈으니 감출 이유도 없었지만, 원래 감춰야 할 잘못도 아니었다. 그녀는 종이를 더 누르지 않고 책을 덮었다. 물건의 상한 자리를 함께 본다고 사람이 덜 소중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눕기 전에는 오늘 실제 끝낸 일을 짧게 떠올렸다. 보관은 아흔다섯째까지 지불했고, 아흔넷째의 짧은 만남을 좋다고 답한 편지를 부쳤다. 아직 세온이 그 답을 받은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시계 동의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의 며칠은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몸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었다.
불을 끄고 나니 내일 방을 어떻게 정리할지 생각이 났다. 책을 옮기고 의자에 놓인 작은 천을 털면 될 것 같았다. 당장 일어나 준비하지는 않았다. 오늘 남은 힘은 잠드는 데 써도 됐다. 유리는 아직 읽지 않은 그의 대답을 대신 만들지 않고, 종이에 쓴 날짜만 조용히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