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일흔사흘째 아침, 유리는 복도의 발소리를 듣고도 곧장 문으로 가지 않았다. 세온은 같은 건물 안에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잠을 덜 자야 할 이유는 없었다. 받친 오른손을 천천히 고쳐 놓자 어깨의 당김이 따라왔다. 전날 한 방에서 책을 읽고 잠든 일이 몸의 남은 시간을 바꿔 놓지는 않았다.
아침 식탁에서 세온은 먼저 와 있었다. 자기 잔에 물을 따르다 그녀를 보고 손을 멈췄다. 유리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빈 컵을 가리켰다. 물은 받고 싶었다. 그는 어느 만큼인지 물었고 그녀는 반쯤이라고 했다. 손잡이가 왼쪽으로 왔다. 어제도 그랬다는 기억을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오늘 같은 쪽으로 놓인 물건이 있었다.
빵은 식탁 가운데에 있었다. 세온이 먼저 잘라 놓지 않아 유리는 직접 가져올 조각을 골랐다. 한 조각을 받고 나니 생각보다 배가 고팠다. 그녀는 하나 더 먹겠다고 말했다. 그가 웃었다. 몸이 아픈 사람이 늘 덜 먹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얼굴인지 유리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번째 접시가 같은 쪽으로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오늘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숙소 뒤 작은 뜰까지는 유리가 쉬어 가며 걸을 수 있었다. 온실 구경을 하루의 의무로 삼을 필요는 없었다. 세온은 길에서 본 꽃 이름을 하나 물으려다가 책에서 먼저 본 이름을 떠올렸다고 했다. 유리는 그 이름의 꽃이 여기에도 있는지 자기도 아직 못 봤다고 답했다.
뜰에는 이름을 적은 판이 없었다. 화분 몇 개와 오래된 의자 둘이 그늘에 있었다. 유리는 꽃부터 살피지 않고 앉을 곳을 골랐다. 등받이 한쪽에 햇빛이 닿아 조금 따뜻했다. 세온은 맞은편에 앉았다가 그녀에게 지금 거리가 먼지 물었다. 유리는 멀다고 답했다. 그는 의자를 옮겨 같은 쪽에 앉았다.
가까워지자 말을 시작하기가 오히려 어려웠다. 편지에서는 자기 손의 불편과 방문의 날짜를 긴 줄로 적을 수 있었다. 지금 옆에는 소매에 묻은 길 먼지가 다 털린 사람이 앉아 있었다. 유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잘 만났다는 느낌이 남을지 잠깐 생각했다. 그러다 세온이 빈 잔을 어디 두면 좋겠느냐고 묻자 웃었다.
“저도 그걸 보고 있었어요. 의자 밑에 두면 잊을 것 같아서요.”
그는 마른 돌 위에 자기 잔을 놓고 그녀의 것은 손이 닿는 자리에 두었다. 유리는 그 동작이 끝나는 동안 말을 골랐다. 어제 그가 자기 방으로 돌아갔을 때 짧게 허전했던 이야기는 이미 했다. 오늘은 지금 가까이 있는데도 어색하다고 말했다. 세온은 자기도 그녀가 편지보다 훨씬 자주 웃어서 언제 말해야 할지 놓친다고 답했다.
유리는 자기가 실제로 얼마나 웃었는지 세지 않았다. 웃게 만든 사람에게 책임을 더 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은 말을 놓쳐도 된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했던 시간까지 나중에 자세히 보고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세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을 마셨다. 함께 보낸 날에 비워 둔 칸이 있어도 괜찮을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 뜰 끝의 잎이 뒤집혔다. 유리는 잎 뒷면의 빛을 보다가 작은 해충 흔적을 발견했다. 금세 손을 뻗고 싶어졌다. 지금 자기 화분도 아니고 이곳의 돌봄을 맡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숙소 사람에게 잎을 본 위치만 전했다. 담당은 오후에 살피겠다고 답했다. 유리는 누가 실제 확인했는지 알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버릇을 오늘 바로 따라가지 않았다.
세온은 그녀가 손을 거둔 곳을 봤다. 유리는 스스로 웃었다. 쉬러 나온 사람도 잎의 구멍부터 본다고 했다. 그는 자기는 물이 흐르는 곳을 먼저 본다고 답했다. 뜰 끝 작은 홈에 떨어진 잎이 모여 있었다. 그가 일어나 치우지는 않았다. 둘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일을 보고도 오늘 그것을 자기 과제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세온은 무엇을 말하는지 물었다. 유리는 자기가 무언가를 보았을 때 그가 대신 모두 처리하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그는 잠깐 침묵하다 예전에는 그러면 도움이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유리는 오늘의 그에게 예전의 틀린 동작을 전부 설명받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의자에 함께 앉은 몸이 이미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해가 올라오자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다. 그녀는 뜰을 한 바퀴 돌려던 생각을 바꿨다. 지금 돌아가서 눕고 싶다고 말했다. 세온은 잔을 챙기고 옆에서 걸었다. 부축이 필요한지는 그녀가 먼저 자기 몸에 물었다. 지금은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짧은 길 중간에 한번 멈췄고, 그는 그때 잔을 다른 손으로 바꿨다.
방에는 전날 끼운 책갈피가 있었다. 유리는 아침에 읽지 않은 책을 받침에 놓았다. 세온은 자기 방에서 책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가 나가자 그녀는 혼자 눈을 감았다. 곧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를 세어 기다리는 일과 달랐다. 오늘의 침묵에는 머지않아 책장이 넘어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가 섞여 있었다.
다시 온 세온은 책 외에 천으로 싼 작은 물건을 들고 있었다. 길에 가져온 차였다고 했다. 숙소에서 마실 수 있는지 관리인에게 물었고 정한 잔을 받았다고 했다. 유리는 뜨겁지 않은 것으로 조금만 마시고 싶다고 답했다. 그가 향을 설명하기 전에 잔에서 마른 풀 냄새가 먼저 났다. 그녀는 그 냄새가 익숙한지 생각하며 천천히 마셨다.
차가 식는 동안 유리는 책을 읽었다.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소설의 주인공은 마침내 오래된 의자를 버리려 했다. 그녀는 그 대목에서 멈췄다. 세온에게 의자를 고친 사람이 왜 이제 버릴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그는 앞의 사연을 전부 읽은 사람이 아니라 지금 들은 장면으로 답했다. 자기가 앉을 의자가 더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유리는 그 해석이 조금 서운했다. 고친 물건은 끝까지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자기 안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세온은 틀리게 읽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끝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소설의 의자를 당장 살려 두기로 합의하지 않았다. 책에는 아직 뒤의 페이지가 남아 있었다.
점심 뒤 에다가 문을 두드렸다. 지금 잠깐 읽어 줄 줄이 있다고 했다. 유리는 세온이 같이 있는데 괜찮은지 먼저 물었다. 친구는 그에게도 듣겠느냐고 직접 물었다. 그는 듣고 싶다고 답했다. 유리가 대신 청중을 붙이지 않아도 원고를 쓴 사람이 오늘 자기 문장을 건넬 수 있었다. 에다는 의자를 하나 더 받아 앉았다.
읽은 것은 방문자가 신발 끈을 다시 매는 짧은 장면이었다. 전에는 문 앞에 있던 사람이 이번에는 계단을 한 칸 내려가 있었다. 유리는 그 한 칸 때문에 다음 말이 더 늦게 들린다고 느꼈다. 에다는 어디가 다른지 묻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세온은 마지막 문장 뒤에 잠깐 침묵했다. 누군가의 원고에서 잘 헤어지는 방법을 배워야 할 책임은 없었다.
그는 끈을 다 맨 뒤에도 서 있는 대목이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에다는 그 사람이 서운해서 그러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세온은 본인은 가도 된다는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읽었다고 답했다. 유리는 자기와 다른 쪽을 들었다. 자기는 누군가 붙잡아 주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같은 한 줄이 두 가지 부탁을 품을 수도 있었다.
에다는 둘의 답을 적고 원고를 접었다. 고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유리는 친구가 돌아갈 때 오늘은 끝을 더 읽어 달라고 붙잡지 않았다. 에다는 문밖에서 세온에게 남은 길 편히 가라고 했다. 세온이 고맙다고 답했다. 어제 인사한 두 사람이 오늘은 문장 하나를 같이 들었다. 그것으로 갑자기 서로의 사정을 다 알게 되지는 않았다.
친구가 간 뒤 유리는 침대에 조금 기대었다. 세온은 지금 자기 방에 가서 짐을 살피겠다고 했다. 돌아갈 준비가 오늘의 방문 안으로 들어왔다. 유리는 잠깐 서운했지만 그가 내일 처음 짐을 정리해야 하는 사람처럼 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저녁 전에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혼자 남자 오른손 아래의 천이 조금 미끄러져 있었다. 유리는 자리를 고쳐 놓고 창문 쪽을 봤다. 멈춘 시계는 여전히 같은 시간을 가리켰다. 판 하나와 봉인된 병 여섯, 빈 병 둘은 275일째까지 분리 보관 중이었다. 세온이 왔다는 사실이 그 물건들을 열어 볼 근거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날 할 보관 선택을 별도의 종이에서 확인했다.
저녁 식탁에서 세온은 내일 아침 현재 길 상태를 받고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늘까지 들은 길에는 변경이 없었으나 출발 전에 다시 보겠다고 했다. 유리는 아침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현재 생각하는 시각을 말했고 그때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녀는 먼 곳까지 배웅하지 않고 숙소 문까지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말을 마친 뒤에도 서운함은 그대로였다. 세온이 잠깐 기다렸다. 유리는 내일 간다는 말을 알면서 오늘 다시 들으니 조금 싫다고 했다. 그는 자기 뜻을 바꾸라는 말로 받지 않고 자기도 떠날 준비를 하며 더 머물고 싶었다고 답했다. 둘은 새로운 날짜를 급히 정하지 않았다. 오늘 하고 싶은 말에 다음 방문을 보증으로 붙이지 않아도 됐다.
식사 뒤 공동 방에는 자리가 둘 있었다. 다른 손님이 반대편에서 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낮게 말하고 각자의 책을 폈다. 유리는 의자를 버리려던 인물이 마지막에 그것을 다른 집에 주는 장면을 읽었다. 쓰임은 끝나지 않았지만 처음 고친 사람의 자리에서는 떠났다. 그녀는 그 부분에 책갈피를 끼우고 세온이 어디를 읽는지 물었다.
그는 길을 잘못 들었던 사람이 다시 같은 집을 찾는 대목을 보여 줬다. 이번에는 자기 이름보다 문이 열려 있는지 먼저 묻고 있었다. 유리는 그가 전의 장면을 기억한다고 느꼈다. 그 기억을 세온의 성격에 대한 좋은 증거로 만들지 않고 책 안에서만 들여다봤다. 지금 읽는 사람은 자기 옆에 있었다. 이야기를 그에게 다 돌려줄 필요는 없었다.
공동 방의 다른 손님이 깨어나 잔을 들었다. 유리는 소리를 너무 냈는지 잠깐 돌아봤다. 그는 목이 말라 깼다며 자기 책을 찾았다. 두 사람의 조용한 저녁 바깥에도 누군가 읽던 페이지가 있었다. 유리는 그 손님이 책갈피를 찾을 때까지 자기 책을 잠깐 무릎에 놓았다.
방으로 돌아갈 때 복도에 걸린 등불이 흔들렸다. 유리는 잠깐 멈춰 세온의 소매 옆에 왼손을 내밀었다. 그가 손을 펴자 손끝을 얹었다. 뜰의 잔을 놓던 돌보다 사람의 손은 따뜻했다. 오래 잡고 계단을 오르지는 않았다. 자기 문 앞에서 손을 놓고 내일 식탁에서 만나자고 했다. 문이 닫힌 뒤에도 손끝의 온기는 조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