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일흔이틀째 낮, 유리는 숙소 창문을 열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길에서 마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같은 줄로 눈이 돌아왔다. 전날은 방에서 쉬었고 새로운 출발 소식은 받지 못했다. 세온이 이백예순여드레째 쓴 계획은 아직 그녀가 실제로 읽은 마지막 경과였다. 오늘 올 수도 있고 길 때문에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 둘을 아는 채로 책을 한 장 넘겼다.
복도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관리인의 목소리 뒤에 다른 낮은 인사가 섞였다. 유리는 책갈피를 먼저 끼우고 일어났다. 문을 열자 세온이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글씨보다 어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먼 길의 먼지가 옷자락에 옅게 남아 있었다. 그는 문턱을 넘기 전에 여기서 인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네. 지금은 여기 있어요.”
그녀가 답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여러 장 썼는데 처음 나온 대답은 자기 위치였다. 세온이 웃었다. 유리는 자기도 웃고 나서 가방 놓을 곳을 먼저 알려 달라고 관리인을 봤다. 그가 먼 길을 왔다는 반가움으로 복도 전체가 둘의 자리가 되지는 않았다. 현재 들어올 사람이 실제 방을 받을 때였다.
세온은 예약한 방과 비용 조건을 관리인에게 확인했다. 이백예순엿새째 유리가 맡긴 편지를 이백예순여드레째 받았다는 말도 직접 했다. 현재 입실을 받고 정한 값을 실제로 냈다. 유리는 그 앞에서 자기 주머니를 꺼내지 않았다. 그가 자기 몫으로 골랐다고 쓴 말이 현재 손의 동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관리인은 열쇠와 방을 쓰는 범위를 알려 줬다.
그가 짐을 두러 간 동안 유리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빨리 계단을 따라 올라가 방까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관리인이 현재 안내를 맡았다. 유리는 자기 오른손 밑의 천을 고쳤다. 직접 맞으러 멀리 나가지 않아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얼굴이 아직 자기 눈에서 가까웠다.
세온은 잠깐 뒤 내려왔다. 가방이 없어지자 손이 조금 가벼워 보였다. 그는 먼저 물을 마셔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유리는 자기 컵이 아니라 빈 컵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물을 받은 뒤 둘은 작은 식탁에 앉았다. 관리인은 다른 일을 하러 갔다. 유리는 편지에 쓴 기간과 지금 그가 앉아 있는 의자의 거리가 갑자기 짧아진 것이 낯설었다.
그는 이백일흔하루째 아침 현재 길 상태를 받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맡길 일은 앞서 전한 인수대로 받은 사람들에게 넘겼고, 출발 전 바뀐 사항도 그 사람들과 확인했다고 했다. 유리는 그 과정을 직접 본 것이 아니었다. 지금 본인이 전하는 경과로 들었다. 그렇지만 오늘 실제로 이곳에 와 앉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기 눈으로 알았다.
길에서는 예정한 곳에서 하룻밤을 쉬었다고 했다. 빨리 오려고 밤길을 더 밀어붙이지는 않았다는 말이 뒤따랐다. 유리는 다행이라고 했다. 기다린 사람에게 더 일찍 와 주려고 무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칭찬처럼 길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기 방문의 몸을 스스로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물을 두 모금 마시는 동안 그녀도 자기 잔을 들었다.
“편지에서는 이제 거의 같이 앉아 있었는데요.”
유리가 말했다. 세온은 지금이 더 어색하다고 답했다. 무슨 말을 할지 길에서 생각했는데 물이 먼저 필요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오래 준비한 만남이 멋있는 첫말 하나로 평가되지 않아도 됐다. 두 사람의 컵이 나란히 놓였다. 손잡이는 각자가 잡기 편한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식사는 숙소의 현재 방식으로 받았다. 세온은 빈 접시를 그녀 앞으로 밀다가 멈추고 어느 쪽이 편하냐고 물었다. 유리는 왼쪽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쪽에 놓았다. 그녀는 고맙다고 하고 자기 빵을 잘랐다. 끝까지 못 자른 부분만 도움을 부탁했다. 세온은 그 조각을 받고 다 자른 뒤 돌려줬다. 식탁의 모든 물건을 자기 손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제까지 손과 어깨가 어느 때 불편했는지 짧게 말했다. 좋아 보이는 아침에도 오래 쓰면 오후에 당김이 왔다. 세온은 오늘 같이 오래 걷자고 할 생각은 없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무 데도 안 나가야 한다고 정하지도 않았다. 유리는 지금은 이 식탁에서 조금 더 앉고 싶다고 말했다. 내일의 몸까지 오늘 점심에서 골라 두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가져온 책을 보여 줬다. 편지에서 말한 제목이었다. 실제 표지는 유리가 상상한 색과 달랐다. 그녀는 그 사실에 웃었다. 이름을 읽고 혼자 더 밝은 빛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온은 자기도 그녀가 읽는 책이 더 얇을 줄 알았다고 했다. 같은 방을 여러 번 글로 만들어 봐도 실제로 받는 물건은 조금씩 달랐다. 그 차이가 반가웠다.
에다는 식사 뒤 복도를 지나가다 세온을 만났다. 유리는 두 사람을 소개했다. 친구는 원고를 들고 있지 않았다. 세온도 글을 지금 읽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에다는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고 자기 볼일을 보러 나갔다. 세온이 잘 다녀오라고 답했다. 그 정도의 인사로도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이 됐다. 유리는 두 사람이 곧 친해져야 할 책임을 받지 않았다.
한동안 앉아 있자 어깨가 당겼다. 유리는 자기 방에서 누워야겠다고 말했다. 세온은 여기서 책을 읽고 있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 대답을 듣고도 곧 일어나지 않았다. 편지에서 부탁했던 장면이 바로 다음에 있었다. 자기 방에서 같이 있자고 말해도 되는지 지금 자기에게 물었다. 방을 따로 얻은 약속과 자기가 초대할 수 있는 시간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제 방에서 읽으셔도 좋아요. 제가 잠들 수도 있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세온은 잠깐 침묵한 뒤 지금 같이 있어도 편한 것이냐고 물었다. 유리는 그렇다고 답했다. 불편해지면 먼저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도 자기 쉴 때가 필요하면 돌아갈 수 있었다. 문은 조금 열어 두고 싶다고 그녀가 말했다. 세온은 그 선택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둘은 각자의 책을 가지고 방으로 갔다.
유리는 침대에 기대 손을 받쳤다. 세온은 책상이 아니라 등받이 있는 의자를 골랐다. 그녀가 고른 자리를 한번 보고 실제로 몸을 기대 보더니 자기에게도 편하다고 말했다. 유리는 그가 내내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자기 몸을 확인하고 있었다. 가방에서 꺼낸 책이 무릎 위에 놓였다.
그녀는 두 장을 읽다가 줄을 놓쳤다. 세온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침묵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유리는 눈을 감았다. 잠들기 전에 무슨 장면을 읽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은 깨어난 뒤에 해도 됐다. 받친 오른손의 불편은 남아 있었고, 그와 같은 방에 있다는 반가움도 같이 있었다.
깨었을 때 창문의 빛이 조금 옮겨져 있었다. 세온은 의자에 앉아 같은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자 곧 일어나지 않고 먼저 깼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그렇다고 답했다. 목이 조금 말랐다. 물을 마실 수 있게 컵을 가까이 받아 들고 나서야 자기가 여러 봉투에 나눠 적었던 질문을 꺼냈다.
“어디를 읽고 계세요.”
세온은 페이지를 펴 보여 줬다. 길을 잘못 들어 다른 집에 도착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보다 이름부터 말하는 것이 이상해 잠깐 멈췄다고 했다. 유리는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는 처음부터 다 설명할지 물었다. 그녀는 지금 장면에 필요한 만큼만 듣고 싶다고 답했다.
대답을 듣고 나자 그 사람이 이름을 먼저 말하는 이유가 조금 달라 보였다. 유리는 자기는 미안해서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온은 본인은 인정받고 싶어서라고 읽었다고 했다. 둘은 한쪽 해석을 고르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보고 다른 쪽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기다리는 동안 자기와 같은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좋았다. 깨어난 뒤 새로 들을 이야기가 있었다.
세온은 책을 내려놓고 잠깐 눈을 감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 방으로 가서 누워 쉴지 생각하다 지금은 이 의자에서 짧게 쉬겠다고 했다. 몸을 불편하게 세워 둔 채 그녀를 지키려는 것은 아니었다. 유리는 자기가 읽던 책을 폈다. 잠깐 뒤 옆에서 고르게 숨을 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소리를 낮추려고 책장을 아주 느리게 넘기다가 웃었다. 종이가 나는 소리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세온은 그 소리에도 깨지 않았다. 유리는 책을 계속 읽었다. 흔들리는 의자를 고친 사람은 마침내 기다리던 사람을 만났지만, 처음 물은 것은 그날 왜 오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저녁을 먹었느냐였다. 그녀는 자기 식탁의 빈 빵 접시를 떠올렸다.
세온이 눈을 떴을 때 유리는 같은 질문을 돌려받았다. 어디를 읽느냐는 말이었다. 그녀는 페이지를 보여 주고 지금은 저녁을 먹었는지 묻는 장면이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는 실제로 먹었다고 웃었다. 유리도 웃었다. 편지에서 나눴던 약속은 큰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잠깐 서로 자고, 일어나서 상대의 페이지를 물은 일이 있었다. 오늘은 그것이 실제였다.
저녁 전 그는 자기 방으로 가서 짐을 조금 정리했다. 유리는 붙잡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자 보고 싶은 마음이 곧바로 다시 생겼다. 그 마음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가 같은 건물 안에 있어도 잠깐 아쉬울 수 있었다. 대신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짧은 아쉬움을 말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당장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눌러 놓을 필요는 없었다.
다시 만난 식탁에서 유리는 그 말을 했다. 세온은 자기도 자기 방 문을 닫을 때 생각보다 허전했다고 답했다. 둘은 그러면 계속 같은 방에 있자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각자 조금 쉬고 다시 나와 지금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그는 이백일흔나흘째 돌아가는 현재 일정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유리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돌아갈 날이 있어도 오늘 함께 앉은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판과 병은 이백일흔다닷새째까지 분리 보관으로 이어 맡겼다고 그녀가 전했다. 멈춘 시계도 그대로였다. 세온은 새 답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늘 그 답을 받으러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의 손이 탁자 위에 놓였다. 유리는 자기 왼손을 그 옆에 둘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손끝이 가볍게 닿았다. 아픈 오른손은 받친 천 위에 남아 있었다.
밤에 자기 방으로 돌아온 유리는 책갈피를 한 장 뒤로 옮겼다. 오늘 읽은 줄이 있었다. 세온은 다른 방에서 자기 책을 마저 볼 수도 있고 먼저 잠들 수도 있었다. 그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물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그녀는 문을 두드려 확인하지 않았다. 오늘 함께 깨어난 방의 빛을 기억하며 책을 폈다. 내일 다시 페이지를 물을 사람이 같은 건물 안에서 자기 밤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