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일흔째 아침, 유리는 먼저 보관 기한 종이를 챙겼다. 오늘까지 이어 맡긴 판과 병은 여전히 자기 쪽에서 받을 일이었다. 세온의 방문을 생각하며 고른 작은 방이 생겼다고 보관 장소가 숙소 안으로 옮겨 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른손과 어깨는 오래 쓸수록 당겼고 오늘도 받친 천이 필요했다. 그녀는 아침을 먹고 정한 길로 나갔다.
지난 며칠은 봉투를 기다리는 일만으로 채우지 않았다. 이백예순이레째에는 숙소에서 책을 읽었고, 이백예순여드레째에는 테사가 돌보는 온실을 짧게 찾았다. 싹의 새 잎은 친구의 낭독이 끝난 뒤에도 자라고 있었다. 유리는 기울기 하나를 보고 원인을 모두 말하지 않았다. 현재 돌보는 사람이 들려주는 변화와 자신이 오늘 본 작은 잎을 나눠 받았다.
그날 테사는 잎을 보고 싶어 온 것이냐고 물었다. 유리는 그것도 있고 바깥에 조금 앉고 싶었다고 답했다. 온실을 일하는 사람으로만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 앉을 몸이 아니라서 정한 자리에서 짧게 머물렀다. 마레가 자기 일을 마치고 지나가며 에다의 원고에서 좋아한 소리를 말했다. 유리는 친구에게 들은 것과 다른 줄을 그 사람 입으로 받았다.
에다는 그날 새 낭독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다시 읽어 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고, 자기 원고를 고치고 싶다고 했다. 유리는 세온이 방문한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무언가 준비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다면 직접 서로 물어볼 수 있었다. 마레가 남긴 원고 평도 유리가 대신 세온에게 보낼 물건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 둘을 같은 방에 넣는 데까지 자기 마음이 앞설 수 있었다.
이백예순아흐레째는 방에서 쉬었다. 아침에 몸이 전보다 가벼워 보여 손을 오래 썼더니 오후에 당김이 돌아왔다. 좋아진 순간 하나가 하루 전체의 힘은 아니었다. 유리는 쓰던 종이를 접고 누웠다. 짧게 적던 것은 새 답장이 아니라 자기 가져갈 책 목록이었다. 두 권을 한꺼번에 들 수 있는지보다 어떤 장면을 같이 읽고 싶은지가 먼저 적혀 있었다.
목록에는 서로 다른 책에서 기억한 문장이 있었다. 흔들리는 의자를 고친 뒤에도 사람이 오지 않는 장면, 수프를 데우는 사람, 방문자가 자기 신발 끈을 매는 친구의 글이었다. 마지막 것은 친구의 것이어서 따로 표시했다. 자기 기억만으로 원고를 흉내 내 보내지는 않았다. 세온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은 실제로 가져갈 수 있는 것 중에서 고르면 됐다. 마음속 도서관 전체를 방 하나에 넣을 필요는 없었다.
오늘 보관인은 현재 조건을 먼저 설명했다. 이백일흔다닷새째까지 같은 분리 방식으로 맡길 수 있었다. 유리는 비용과 기한, 지금 가진 돈을 다시 보았다. 두 번 이어 낸 값이 작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멈춘 시계가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더 긴 시간을 무조건 사 둘 수도 없었다. 그녀는 오늘 정할 수 있는 닷새를 골랐다.
실제 지급 뒤 새 종이가 나왔다. 이백일흔다닷새째. 판 하나, 봉인된 병 여섯, 빈 병 둘은 각각의 자리에 있었다. 허락된 바깥 확인에서 새 젖음은 눈에 띄지 않았고, 그녀는 병을 열거나 흔들지 않았다. 보관인은 남아 있는 옛 표시를 지우지 않았다. 새 날짜가 오래된 물건의 뜻을 덮어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늘은 조금 덜 답답했다.
돌아오는 길에 유리는 작은 책을 파는 창을 봤다. 이백예순나흘째 적어 둔 제목이 있었다. 그녀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사지 않는다고 그 책을 원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 보관 종이를 받은 가방은 전보다 조금 가벼웠지만 주머니는 얇아져 있었다. 그녀는 자기 선택이 모두 우아하게 느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것은 여전히 아쉬웠다.
숙소에 도착하자 관리인이 새 봉투를 전했다. 발송 날짜는 이백예순여드레째였다. 유리는 손을 씻고 의자에 앉은 뒤 읽었다. 세온은 이백예순나흘째 그녀가 보낸 편지를 이백예순이레째 받았다고 썼다. 방의 조건과 서운할 수도 있다는 말, 자기 시간을 혼자 쓸 수 있어도 좋겠다는 문장을 읽었다는 답이었다. 그 줄들이 누군가의 눈에 실제로 들어간 뒤의 말이었다.
이어 그는 이백예순엿새째 보낸 예약 조건을 이백예순여드레째 받았다고 했다. 이번 묶음은 앞선 편지보다 빨리 왔다고 덧붙였다. 두 날짜를 나눠 쓴 덕에 유리는 어느 봉투를 읽고 한 답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자기 질문을 미리 안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실제로 보낸 말이 길을 지나 도착한 것이었다.
그는 별도 방의 비용과 변경 조건을 읽었으며 그 조건으로 머물겠다고 답했다. 자기 몫으로 정한 방이고 실제 지급도 도착해서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백일흔하루째 출발해 이백일흔이틀째 도착할 계획을 적었지만, 출발 당일 길의 현재 상태를 다시 받고 바뀌면 정한 전달 경로로 알리겠다고 했다. 유리는 종이 위 '계획'을 '출발했다'로 읽지 않았다. 다만 오늘 자기가 예약을 풀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서운할 수도 있다는 줄에 대한 답은 예상보다 짧았다. 자기도 같은 방에서 다른 일을 하려다 혼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서운하지 않다고 급히 말하는 대신 무슨 때에 그런지 이야기해 보자고 썼다. 유리는 그 대목을 오래 봤다. 기다려 주겠다는 대답보다 같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 지금은 더 가까웠다. 서로를 잘 아는 척할 필요가 없는 약속이었다.
그는 책을 한 권 가져갈 생각이라고 했다. 같은 장면을 좋아해 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유리가 깨어났을 때 자기가 어디를 읽는지 실제로 보여 줄 수 있는 책을 골랐다고 썼다. 유리는 제목이 적힌 다음 줄을 읽고 웃었다. 자기가 고른 것과 다른 이야기였다. 같은 방을 준비하면서도 두 사람은 각자의 페이지를 가져오고 있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졸면 놀리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이 반가웠다고 했다. 자기도 먼저 졸 가능성이 있어 공평하다는 답이었다. 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긴 방문 준비 끝에 사람 둘이 잠드는 이야기가 맨 끝에 있었다. 그 웃음으로 손의 당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그것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종이를 마른 자리에 내려놓았다.
관리인을 찾아가 현재 예약을 유지하겠다고 알렸다. 이백예순여드레째의 편지를 오늘 받았고 당사자가 조건을 읽고 답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아직 도착한 사람처럼 열쇠를 받아 두지는 않았다. 현재 예약은 그대로이고, 실제 입실과 지급은 그가 왔을 때 받기로 했다. 유리는 변경이 생기면 알릴 경로를 다시 확인했다. 숙소 사람의 다음 일까지 자기 종이로 맡아 둘 필요는 없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에다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기다린 것이 아니라 새 종이를 구하러 나가다 마주쳤다고 했다. 유리는 웃으며 오늘은 실제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친구는 오기로 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 조건으로 머물겠다는 답과 출발 계획을 받았고, 아직 길을 떠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기쁜 소식에도 시제가 있었다. 에다는 그럼 지금은 같이 기뻐할 때라고 말했다.
유리는 세온이 자기 글을 듣기 위해 낭독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썼던 말을 친구에게 전해도 되는지 잠깐 망설였다. 그 문장만 전해도 된다고 세온이 편지에 밝혀 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대신 방문한 동안 누군가에게 자기 글을 들려주고 싶은지 본인이 고르면 된다고 말했다. 에다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유리는 그 대답을 바꿔 주려 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가 손에 든 빈 종이가 먼저였다.
점심 뒤에는 공동 방을 잠깐 보았다. 지금 앉은 손님이 있어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기 계획의 장소도 현재 누군가의 방이었다. 관리인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각을 다시 알려 줬다. 유리는 그 시간이 전부 둘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들었다. 같은 등불 아래서 다른 책을 읽는 꿈에는 옆 의자의 낯선 사람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꼭 방해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방에서 책 한 권만 골랐다. 다른 한 권은 놓고 가기로 했다. 손이 불편해서가 전부는 아니었다. 한꺼번에 좋은 장면을 다 보여 주려 하면 상대가 무엇을 읽는지 볼 틈이 없어질 것 같았다. 세온이 가져올 책을 옆에 둘 빈자리를 남기고 싶었다. 그 빈자리는 그의 의무가 아니라 자기가 덜 가져가기로 고른 공간이었다.
오후에 잠깐 누웠다가 깨어나니 햇빛이 방 반대편에 가 있었다. 세온이 실제로 와 있으면 지금 몇 장을 읽었을까 생각했다. 아직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유리는 창문으로 가서 길을 보지 않고 물을 마셨다. 멀리서 올 사람은 자기 출발 전날을 살고 있었다. 그녀가 종이를 오래 바라본다고 그 하루가 짧아지지는 않았다. 오늘 자기 쪽 휴식을 마저 받을 수 있었다.
저녁에 관리인은 식사 뒤 공동 방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유리는 도와주겠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몸을 더 쓰기 어려운 날이었다. 대신 자기 책을 나중에 어디에 두면 좋을지 물었다. 정한 선반 한쪽을 가리켜 줬다. 그녀는 아무 때나 선점해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 쓸 때 가져오겠다고 답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책까지 선반에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세온에게 쓸 새 답장은 길지 않았다. 이백예순여드레째 쓴 편지를 오늘 받았고 예약을 유지했으며, 보관은 이백일흔다닷새째까지 실제로 이어 맡겼다고 적었다. 출발 전 그가 읽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길의 급한 지시를 넣지 않았다. 자기는 한 권을 골랐고 다른 한 권은 방에 남긴다는 작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오늘 그의 답을 읽고 웃었다는 말도 썼다.
몸을 쉬었다가 정한 전달 창구에 그 편지를 실제로 맡겼다. 그녀는 제때 읽지 못하면 의미 없는 글을 보낸 것처럼 느끼지 않았다. 세온이 떠난 뒤에 받거나 돌아온 다음 읽더라도 오늘 자기 하루에서 쓴 말이었다. 서로 앞서 가려는 편지보다 뒤늦게 도착해도 남는 말이 있을 수 있었다. 창구에서 돌아오는 길은 짧게 쉬어 걸었다. 새 기한의 종이는 젖지 않은 가방 안에 있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에다는 밖에 있었다. 유리는 오늘 나눈 기쁨을 다시 확인하려고 친구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방에 남은 자기 컵을 씻고 물을 새로 받았다. 저녁의 작은 일은 기다릴 사람 없이도 끝낼 수 있었다.
밤에는 편지들을 날짜순으로 다시 묶지 않았다. 오늘 받은 한 장만 마른 자리에 뒀다. 내일이 되면 실제 출발 여부가 달라질 수 있고 그다음 날의 도착도 현재 길에 달려 있었다. 유리는 그 가능성을 안다고 보고 싶은 마음까지 줄이지 않았다. 멈춘 시계 옆에 별도로 놓인 책 한 권이 있었다. 누군가 오면 펼칠 준비가 됐지만, 오기 전에도 자기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