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쉰이레째 아침, 유리는 어제 고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세온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첫 줄 뒤에는 의자를 하나 비워 두는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이 누구를 기다리는지는 아직 쓰여 있지 않았다. 유리는 책장을 급히 넘기지 않고 편지 옆에 놓았다. 보고 싶다는 말에 반드시 한 사람의 이름만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른손은 받친 천 위에 있었다. 어깨는 잠에서 깬 뒤에도 조금 당겼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어제 쓴 답장을 다시 봤다. 보관이 이백예순째까지 이어져 있다는 말, 온실에서 작은 싹 하나를 보았다는 말, 함께 조용히 쉬고 싶은 날이 있다는 말이 그대로 있었다. 두 후보 기간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고르지 않았다. 자기 일정과 몸을 더 보고 싶었다.
유리는 마지막 줄을 지울까 잠깐 망설였다. 같이 있는 동안 쉬고 싶다는 말이 만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처럼 읽힐까 걱정됐다. 세온이 그렇게 읽었다는 근거는 없었다. 종이를 앞에 두고 혼자 두 사람 몫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설명을 더하면 더할수록 자기 바람의 주어가 사라질 것 같았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에다였다. 오늘 전달을 맡기는 때를 숙소에 물어봤다고 했다. 아침 식사 뒤 창구가 열리는 동안이라면 받을 수 있다는 답이었다. 그는 봉투를 대신 가져다줄지 먼저 물었다. 유리는 오늘은 직접 걸어가고 싶고, 돌아오는 길에 마당 의자에서 잠깐 같이 쉬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 책을 가져와도 되는지 물었다.
“제 편지와 경쟁하지 않으면요.”
유리가 말했다. 에다는 편지보다 책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먼저 보내자고 답했다. 둘은 웃고 길을 나섰다. 친구가 가방을 들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들 수 있는 무게였고 종이를 넣은 곳도 자기 손이 닿는 자리였다. 도움을 받을지 묻는 말이 매번 받아야 하는 친절로 바뀌지 않아 좋았다.
전달 창구 앞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작은 꾸러미를 묶은 끈을 다시 고르고 있었다. 유리는 줄을 비켜 서서 기다렸다. 그 사람의 물건이 왜 늦게 묶였는지 묻지 않았다. 오늘 세온에게 보내는 편지가 마음속에서 서둘러도 앞사람의 손은 자기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창구의 얇은 덮개가 바람에 한번 들렸다가 내려왔다.
자기 차례가 되자 유리는 봉투를 건넸다. 받는 사람이 주소와 현재 전달 범위를 확인했다. 오늘 맡긴다고 세온의 책상에 바로 놓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경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기 손을 떠나는 순간에는 가방 안쪽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백쉰엿새째 쓴 답장이 오늘의 묶음 안으로 들어갔다. 더는 책상 위의 초안이 아니었다.
에다는 창구에서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유리가 돌아서자 곧바로 뭐라고 썼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의자까지 걸을지 중간에 쉬고 갈지 물었다. 그녀는 마당까지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 길은 전날과 같은 돌이 있었지만 어깨의 무게는 같지 않았다. 편지를 보냈다고 손이 갑자기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가방 끈을 조금 고쳐 잡았다.
마당 의자에는 햇볕이 절반만 닿았다. 에다는 자기가 먼저 앉으려다 유리 쪽 그늘을 봤다. 그녀는 오늘은 볕 있는 쪽이 좋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자리를 남겨 두고 옆에 앉았다. 배려를 받을 때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를 말할 수 있었다. 유리는 소매 끝의 따뜻한 부분을 만지지 않고 눈으로 봤다. 오른손은 여전히 받쳐 두었다.
에다가 꺼낸 책에는 책갈피가 두 장이었다. 하나는 실제 본 싹을 그렸고 하나는 앞으로 보고 싶은 잎 모양을 그렸다. 오늘은 어느 쪽이냐고 묻자 그는 먼저 본 것을 골랐다. 그림 아래에 어제 본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유리는 꽃잎이 없다는 것을 다시 지적하지 않았다. 친구는 이미 자기 그림에 말을 붙여 두었다. 같은 설명을 두 번 받아야 그림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림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자기 이야기를 짧게 써 보고 있다고 했다. 온실에서 들은 겨울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니었다. 끝을 잊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끝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가 자기 첫 장부터 바꾸게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유리는 그 말을 듣고 자기도 결말을 대신 정해 달라는 질문을 받을 것 같다고 웃었다.
“아니에요. 어디서 지루해지는지만 듣고 싶어요.”
에다가 말했다. 유리는 오늘 짧게 한 부분은 들을 수 있다고 답했다. 듣는 사람이 되었으니 마음에 드는 척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도 그런 약속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종이를 펴고 첫 문장을 읽었다. 온실의 이야기보다 문장이 조금 길었다. 자기 목소리를 따라가다가 중간에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야기 속 사람은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책을 다 읽으려 했다. 유리는 그 부분에서 웃었다. 에다가 일부러 웃긴 곳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등장인물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책을 덮을 곳을 계속 한 줄 뒤로 미루는 모습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친구는 종이를 보고 그 줄을 다시 읽었다. 자기도 그런 날이 있다고 답했다.
다음 문단에는 그 사람이 왜 나가지 못하는지 설명이 세 번 나왔다. 유리는 처음 말을 듣고도 알았다고 했다. 에다는 뒤의 문장을 지우려다가 펜을 멈췄다. 뒤에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꼭 지우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다시 읽고 어느 말을 남기고 싶은지 고를 수 있었다. 듣는 사람의 첫 반응이 곧 수정 명령은 아니었다.
그녀는 오래 앉아 있자 어깨가 당겨 잠깐 쉬고 싶다고 말했다. 에다는 종이를 덮었다. 아직 두 문단이 남았지만 오늘 다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유리는 이야기 속 사람이 문을 여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웃었다. 그 웃음 뒤에 오늘 읽은 부분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끝을 모르는 이야기에서도 둘은 실제로 한 장면을 나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는 자기가 세온에게 보내고 싶었던 방을 생각했다. 그 안에서 언제나 둘이 같은 페이지를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쉬는 동안 그가 다른 이야기를 읽고, 깨어난 뒤에 어디까지 갔는지 물을 수 있었다. 에다가 방금 남겨 둔 두 문단처럼 아직 모르는 부분이 옆사람에게 있어도 좋았다. 그녀는 그 장면을 편지에 더 쓰려고 되돌아가지 않았다.
방에 도착하자 테사의 짧은 전갈이 와 있었다. 오늘은 온실에 오지 않아도 되고 싹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었다. 소식만 전하려고 숙소 사람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유리는 웃었다. 보러 오라는 부탁이 없는 소식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고맙다는 답을 전했고 오늘의 싹을 직접 봤다고 자기 종이에 적지는 않았다. 들은 소식이 놓일 자리는 따로 있었다.
점심 뒤에는 빌린 책을 혼자 읽었다. 아침에 의자를 비워 둔 사람이 기다린 것은 먼 곳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 의자는 다리가 흔들려 고칠 때까지 비워 둔 것이었다. 유리는 앞장으로 돌아가 웃었다. 자기가 먼저 보고 싶은 장면을 넣어 읽었던 것이다. 세온을 기다리는 의자였으면 더 좋은 이야기가 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책 속 사람은 자기 방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에다에게 그 일을 말하고 싶었지만 바로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친구도 자기 원고를 볼 시간이 있었다. 대신 작은 종이에 ‘의자가 흔들렸어요’라고 적었다가, 그것만으로는 숙소의 의자를 고쳐 달라는 말처럼 보인다는 것을 깨닫고 책 제목을 덧붙였다. 짧은 글이라고 늘 더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쪽지를 책갈피 옆에 두었다.
책을 내려놓고 창문을 잠깐 열었다. 마당에서 젖었던 의자 하나가 마르고 있었다. 숙소 사람이 앉아도 되는지 먼저 살피고 안쪽으로 가져갔다. 유리는 책 속 의자를 실제 의자와 비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오늘 이 의자는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하는 물건이었고, 책 속에서는 다른 이유로 비어 있었다.
오후 늦게 보관 기한을 다시 봤다. 이백예순째까지라는 글자가 있었다. 오늘은 아직 그날이 아니었다. 유리는 남은 돈을 세고 다음 며칠에 필요한 지출을 나눴다. 이백쉰나흘째 온실에서 받은 사례는 실제 받은 몫이었지만 끝없이 남는 돈은 아니었다. 다음 조건을 미리 들을 수 있는 때를 보관인에게 정한 경로로 물었다. 오늘 새 비용을 내거나 새 담보를 맡기지는 않았다.
그 뒤에는 손을 쉬었다. 돈을 세던 왼손도 오래 같은 자세로 두면 불편했다. 그녀는 장부를 덮고 창밖의 작은 잎 그림자를 봤다. 온실의 싹인지 에다의 화분인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다. 창틀에 놓인 숙소 화분의 잎이었다. 세상의 모든 잎이 자기에게 온 소식의 증거가 될 필요는 없었다.
저녁에 에다가 찾아와 종이를 한 장 돌려주었다. 유리가 아침에 들은 부분에서 두 문장을 고쳤다고 했다. 왜 세 문장이 아니라 두 문장이냐고 묻자 나머지 한 문장은 자기가 아직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녀는 그럼 남겨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렇지만 나중에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웃었다. 누군가 의견을 받아도 자기 취향이 끝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유리는 흔들리는 의자 이야기를 했다. 에다는 자기도 기다리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둘은 책의 실제 문장을 다시 봤다. 앞에 이미 의자의 소리가 짧게 나와 있었다. 자기들이 놓친 줄이었다. 그녀는 세온에게도 그 장면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기다림을 잘 쓴 부분이 아니라 자기들이 잘못 짐작한 이야기를 함께 웃고 싶었다.
에다는 다음에 세온이 올 때 자기를 꼭 함께 앉혀 두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만나서 인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둘만 있고 싶은 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리는 아직 날짜부터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친구는 안다고 했다. 지금 말해 두면 자기도 다른 약속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고맙다고 했고 그 말을 세온의 동의로 바꾸지 않았다.
밤이 오자 마당의 의자는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사람이 비 예보를 듣고 옮긴 것이었다. 유리는 창문에서 그 모습을 보다가 자기 의자를 밀어 넣었다. 멀리 있는 사람의 자리를 영원히 펼쳐 두어야 기다리는 마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보낸 편지에는 같이 쉬고 싶은 방이 있었고 방 안에는 자기 생활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잠들기 전 읽던 책을 덮었다.
침대에 누워서 아침 창구의 묶음을 떠올렸다. 자기 봉투가 다른 사람의 꾸러미와 같은 방향으로 갔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자기가 실제로 보냈다는 장면은 있었다. 세온이 받을 때의 표정을 대신 쓰지 않아도 됐다. 내일 아침에는 오늘 보내는 쪽에 비어 있던 의자에 자기가 다시 앉을 수 있었다. 유리는 오른손을 편한 곳에 두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