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사는 의자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가 다시 밀었다. 자리를 옮긴 상자를 보러 왔는데 막상 그 앞에 앉으려니 자기 집 물건을 혼자 차지하는 사람 같다고 했다. 유리는 옆에 있던 의자에도 사람이 앉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이백쉰나흘째 오전, 온실 지붕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밤부터 내린 비는 아침에도 가늘게 이어졌다. 유리는 문을 넘기 전에 젖은 가방을 어디 둘지 물었다. 마레가 비어 있는 걸이를 가리켰다. 어제의 가방이 오늘의 상자를 다시 적시지는 않았다.
유리는 약속한 의자에 앉아 오른손을 받쳤다. 오늘 몸으로는 짧은 시간만 머물 수 있었다. 마레가 다른 당번에게 그 말을 전했고, 멀리 있던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일어설 때까지 누구도 쉬지 못하는 시험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평소처럼 화분 밑을 보고, 누군가는 마른 천을 갈았다.
가장 먼저 온 사람은 빈 바구니를 든 아이와 그 아이를 데려온 어른이었다. 아이는 낮은 상자에 꽃이 있느냐고 물었다. 테사가 아직이라고 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유리는 아이에게 무언가 설명하려다가 테사가 손을 들어 말하는 것을 봤다.
“지금은 흙 위에서 볼 게 많지 않아. 그래도 여기 둔 것이 뭔지 읽어 볼 수는 있어.”
아이는 표를 들여다봤다. 씨앗의 이름을 한 글자씩 읽고, 아래의 두 날짜에서 멈췄다. 어른이 두 번 심었느냐고 물었다. 테사의 입가가 굳었다. 어제 잘 읽혔던 문장이 오늘도 같은 대답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마레가 유리를 봤지만 그녀는 바로 새 문장을 부르지 않았다.
유리는 어른에게 어느 말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었다. 상대는 두 날짜 앞에 각각 시작한다는 말이 있어서라고 했다. 첫 번째는 씨앗을 놓고 돌보기 시작한 날, 두 번째는 이 온실에서 맡아 보기 시작한 날이었다. 두 번의 시작이 눈에 걸렸다는 설명이었다. 테사가 자기 표시를 가까이 봤다.
그는 처음 날짜를 지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유리는 지우자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자기가 집에서 한 일이 종이 안에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해했다. 다만 다른 사람은 종이를 읽다가 서로 다른 자리를 못 보고 같은 동작을 두 번 떠올렸다. 유리는 날짜보다 장소의 말을 먼저 읽으면 어떨지 물었다.
테사가 종이를 돌려 자기 입으로 읽었다. “집에서”, 하고 한 번 멈췄다가, “이 온실에서”라고 읽었다. 마레가 그 두 말을 앞줄로 빼 적었다. 이번에는 어른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져온 것이냐고 물었다. 테사는 그렇다고 답하고 나서 웃었다. 어제 지키고 싶던 날짜가 그대로 있는데 질문이 달라졌다.
아이는 꽃이 언제 보이느냐고 다시 물었다. 어른이 이미 답했다고 타박하려 했으나 테사가 손을 내저었다. 아직 묻고 싶은 말이 남은 얼굴이었다. 그는 확실한 날을 모른다고 답했다. 자기는 씨앗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싶어서 매일 온다고 했다. 꽃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먼저 조그만 게 나와요?”
“이 씨앗이 잘 자라면. 하지만 오늘은 아직 보이지 않아.”
아이와 어른은 빈 바구니를 들고 옆 화분으로 갔다. 씨앗을 맡기거나 사 가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테사는 둘이 떠난 의자를 봤다. 꽃을 보여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표정을 더 짓지 않았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말해도 되는 자리가 생긴 듯했다. 유리는 그 말이 오늘 종이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마레는 바뀐 표를 작은 판에 붙였다. 그가 판을 내려놓는 순간 문 쪽에서 누군가 젖은 외투를 털었다. 천이 흔들렸고 바닥에 물방울이 퍼졌다. 낮은 상자가 예전 자리에 있었다면 모서리에 닿았을 물이었다. 지금은 물이 떨어질 곳과 책을 놓을 탁자 사이에 길이 나 있었다.
유리는 그 사람이 몸을 돌릴 때 가방이 뒤 의자를 스치는 것을 봤다. 상자를 옮겼다고 모든 걸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의자가 하나 더 들어오면서 빈 길의 가장자리가 달라졌다. 테사는 자기가 처음에 의자를 밀었던 쪽을 가리켰다. 한 자리는 벽 쪽으로 조금 더 붙여도 괜찮겠다고 했다.
“어제 그림으로는 둘 다 들어갔는데요.”
마레가 말했다. 말투에 웃음이 조금 섞였다. 유리는 지금 의자에 자기 몸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답했다. 에다가 옆에서 다리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세 사람이 웃는 동안 마레가 빈 의자를 옮겼다. 유리에게 일어나 그 모습을 보기 좋게 해 달라는 부탁은 없었다.
잠깐 뒤 물받이를 보던 다른 당번이 자기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어제보다 자국이 줄었지만 비가 더 오는 오후까지 같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마레는 그 말대로 받아 적었다. 바닥이 지금 마른 곳도 어제부터 영원히 마른 곳이 되지는 않았다. 유리는 지붕을 울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새 봄을 부르지 않은 온실에서도 날씨는 매번 새로 왔다.
테사는 자기 화분의 가장자리에 눈을 가까이 댔다. 흙 사이에 밝은 점이 하나 보인다고 했다. 에다가 몸을 숙이려 하자 그가 보이는 자리만 가리켜 주었다. 유리에게도 와서 봐 달라는 눈길이 왔다. 그녀는 지금 깊이 숙이면 오래 앉기 어렵다고 말하고, 마레가 평소 보는 사람과 같이 봐 주면 좋겠다고 했다.
잠시 동안 모두 조용해졌다. 유리는 누군가 실망했을까 걱정했지만 테사가 곧 자기 얼굴을 들었다. 지금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봐도 된다고 했다. 그와 마레는 흙을 파헤치지 않고 표면을 살폈다. 작은 밝은 것이 식물인지 다른 조각인지 지금은 분명하지 않았다. 테사는 오늘 보았던 위치를 자기 말로 남기기로 했다.
자라는 순간을 가장 먼저 알아보지 못하면 오늘 일을 놓치는 것 같던 마음이 유리 안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녀가 씨앗의 얼굴을 대신 이름 붙이지 않아도 테사는 내일 자기 화분을 볼 수 있었다. 일을 맡았다는 이유로 모든 눈이 자기 쪽에서 끝날 필요는 없었다. 유리는 받친 손의 손가락을 편한 쪽으로 조금 옮겼다.
에다가 책을 꺼낸 것은 쉬는 시간이었다. 마레가 온실에서 짧은 글을 들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던 일을 기억하고 가져왔다고 했다. 유리는 오늘 읽는 일을 새로 맡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에다는 자기가 읽고 싶다고 답했다. 누구에게 사례를 받아야 할 만큼 준비한 것은 아니고, 두 사람이 듣고 싶으면 한 문단만 읽을 생각이었다.
테사는 자기가 낱말을 잘못 알아들으면 중간에 물어도 되느냐고 했다. 친구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유리는 몸이 허락하는 동안 들을 수 있었다. 에다는 비가 오는 장면을 골랐다. 지붕 밖의 비와 책 속의 비가 처음에는 비슷하게 들리다가 곧 다른 박자로 나뉘었다.
책 속 사람이 젖은 외투를 의자에 걸쳤을 때 테사가 손을 들었다. 여기라면 걸이에 두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에다가 책을 닫지 못하고 웃었다. 글 속 인물은 온실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지금 의자가 비어 있어서 그 모습을 상상하기 쉬웠다. 유리는 원래 이야기를 바꿔야 그 웃음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다는 다음 줄을 읽다가 기침을 했다. 마레가 물을 가져오는 동안 테사는 자기가 어릴 때 듣던 겨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에는 피지 않는 꽃을 매일 보러 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끝에 어떻게 됐는지 묻자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유리는 꽃이 피었다고 대신 끝내 주지 않았다.
“그럼 그 사람은 아직 가고 있겠네요.”
에다가 말했다. 테사가 한참 뒤에 웃었다. 자기는 끝을 잊어버린 것이 늘 미안했는데, 오늘은 누군가 계속 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고 했다. 유리는 봉투에 있던 말라붙은 잎을 떠올렸다. 잎 하나로 온실을 다 읽을 수 없듯 기억난 장면 하나로 그 사람의 어린 날을 다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함께 들은 웃음은 있었다.
읽기를 마친 뒤 유리는 오늘 맡은 일을 마쳤다고 말했다. 현재 놓인 상자의 표시가 두 날짜를 어디까지 구별하는지, 문에서 의자까지 실제 사람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봤다. 씨앗의 결과나 오후의 물기를 보장하는 말은 건네지 않았다. 마레는 바뀐 표를 자기 쪽에 두고 정한 사례를 실제로 지급했다.
사례를 받아 가방의 마른 안쪽에 넣는 순간 유리는 내일의 보관 기한을 떠올렸다. 작은 일을 끝내 받은 몫은 바로 자기 지출과 만났다. 그렇다고 그 일이 돈을 옮길 통로로만 남지는 않았다. 테사가 자기 날짜를 읽으며 잠깐 곧게 앉은 모습을 그녀는 기억했다. 값과 기쁨이 서로를 밀어낼 필요는 없었다.
나가기 전 테사는 꽃이 피면 알려 주겠다고 했다. 말을 끝낸 뒤, 싹이 보이거나 다른 변화가 생기면 먼저 알려도 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유리는 그 편이 좋다고 답했다. 활짝 핀 꽃만이 소식이 되어야 한다면, 둘은 그 사이 아주 오래 서로의 날을 모르게 될 수도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렸다. 에다는 유리와 함께 걸음을 늦췄다. 가방을 대신 들까 묻기에 그녀는 오늘 받은 사례와 종이가 젖지 않게 안쪽으로 넣어 달라고만 부탁했다. 어깨의 무게를 전부 다른 손으로 옮길 필요는 없었다. 친구는 마른 천의 끝을 맞춰 넣고 가방 입구를 닫았다.
숙소에 돌아온 뒤 유리는 곧바로 편지 앞에 앉지 않았다. 몸을 쉬게 하고 따뜻한 것을 먹었다. 창밖에서 에다가 화분을 비가 닿지 않는 자리로 옮겨 달라고 숙소 사람에게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도 혼자 모든 무게를 들지 않았다. 유리는 그 소리에 마음이 놓여 눈을 감았다.
잠깐 쉰 뒤 어제 쓰던 편지를 폈다. 온실에서 씨앗이 올라왔다고 쓸 수는 없었다. 대신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도 사람들이 앉아서 자기 이야기를 나눴다고 썼다. 자신이 몸을 숙이지 못한 순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계속 보았다는 말도 남겼다. 세온이 걱정할까 봐 그 줄을 지우지는 않았다.
유리는 다음 만남에 자기가 쉬는 동안 그가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문장 뒤에 말을 보탰다. 깨어났을 때 같은 방 안에서 다른 줄을 읽고 있으면 반가울 것 같다고 했다. 그저 오래 버티는 손님맞이가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갖고 싶은 한 장면이었다. 그녀는 오늘의 날짜를 적고 글을 마쳤다.
편지는 오후 전달을 받는 창구에 직접 맡겼다. 접수하는 손이 종이를 묶음 안에 넣었다. 유리는 자기 봉투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본 뒤 돌아섰다. 이백쉰째 편지의 답을 아직 받지 않았어도 오늘의 이야기를 보낼 수 있었다. 서로의 말이 반드시 한 줄씩 번갈아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에 돌아오자 보관인의 전갈이 도착해 있었다. 내일 끝나는 자리의 다음 조건을 오전에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자리와 같은 비용인지는 아직 종이를 보지 못했다. 유리는 가방 속 실제 받은 몫과 남은 돈을 세어 봤다. 오늘의 온실에서 할 일을 마쳤다는 안도와 내일 고를 자리의 무게가 한 탁자 위에 놓였다. 그녀는 두 종이를 포개지 않고 잠을 청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