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편지의 첫 줄을 두 번 읽었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먼저 자기가 보낸 종이가 도착했다는 문장이 있었다. 이백마흔일곱째 쓴 편지였다. 이백쉰째 보낸 답이 벌써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백쉰사흘째 아침, 전달 창구에서 가져다준 봉투의 모서리가 가방 자국처럼 접혀 있었다. 세온은 이백쉰하루째 저녁에 썼다고 했다. 유리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이틀이 더 있었다. 그녀는 같은 날짜를 살면서도 언제나 조금 다른 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세 장의 표시를 읽는 일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기쁘게 받았다고 썼다. 일을 이미 마치고 값을 받은 뒤인 유리는 잠깐 웃었다. 그가 지금 알아 준 것은 시작할 때의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그 기쁨이 늦어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처음 해 보는 일을 앞두고 건넸던 마음이 뒤늦게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편지에는 영지에서 돌아온 일상의 소리가 있었다. 아침에 창문을 여는 손이 자기 것인 날이 좋았다는 말, 집무실 낮은 탁자가 드디어 다른 사람의 무릎에도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세온은 누가 고쳤는지 이름과 동의를 따로 확인했으므로 그 일화는 편지에 적어도 된다고 덧붙였다. 유리는 탁자를 만들 때 그가 말하던 높이를 떠올렸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로 낮추자는 뜻은 아니었다고 했다. 높은 탁자에서 일하는 편이 나은 사람도 있었다. 그 문장 뒤에 조심스러운 웃음 같은 빈칸이 한 줄 있었다. 유리는 거기서 실제로 그가 웃었을지 모르면서 자기도 웃었다. 남의 방에 맞는 가구를 자기 방의 옳은 답으로 가져오지 않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
마지막 쪽에서 그는 다음 만남에 관한 질문을 조금 바꿨다.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동안 서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나눠 보면 좋겠다고 했다. 쉬는 날을 함께 보내고 싶은지, 자기 일터 가까운 곳을 보여 주고 싶은지에 따라 길이 달라질 수 있었다.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묻지 않았다.
유리는 자기 방의 창을 봤다. 오래 같이 있으면 어떤 순간을 더 갖고 싶은지 지금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 아쉬웠으니 시간이 길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손님을 기다리며 몸을 더 쓰는 하루와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글을 읽는 하루는 같은 길이여도 달랐다.
그녀는 답을 쓰는 종이에 먼저 온실의 문을 그렸다. 가방을 붙잡은 천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세온이 그 가방을 대신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과, 그가 옆에 없어도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들려주고 싶은 뜻은 함께 있었다. 유리는 하나를 지우지 않고 펜을 내려놓았다.
오른손을 받친 천이 밤사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천 끝을 당기다가 어제보다 어깨가 덜 굳은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오늘 오래 쓸 수 있다는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레에게는 오전에 짧게 갈 수 있다고 답했다. 먼저 편지를 읽고 아침을 먹은 뒤에 나섰다.
공동 온실 앞에서 상자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흰빛이 섞인 여자였고, 에다보다 먼저 유리에게 자기 이름을 말했다. “테사예요. 이름보다 콩 상자로 기억하셔도 됩니다.”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유리는 오늘은 이름도 같이 기억하고 싶다고 답했다.
상자에는 두 종류의 씨앗 화분이 나뉘어 있었다. 테사는 지난번 나눔의 세 묶음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집에 남아 있던 씨앗을 옮겨 온 사람이었다. 유리는 다른 물건의 이름과 기록을 여기로 가져오지 않았다. 테사가 원래의 봉투를 보여 주었고, 지금 화분 옆 표에는 그 봉투에 있던 이름이 이어져 있었다.
문제는 날짜였다. 위에는 집에서 작은 그릇에 씨앗을 둔 날이, 아래에는 공동 온실로 가져온 날이 적혀 있었다. 테사는 위쪽 날짜를 기억해야 자기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 마레는 아래쪽을 알아야 이 자리에서 언제부터 돌봤는지 말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날짜를 지울 수 없었다.
에다가 둘 중 더 오래된 것을 크게 쓰면 어떠냐고 말했다. 테사가 그럼 왜 아직 안 나오느냐는 말을 더 듣겠다고 답했다. 말끝이 단단했다. 에다는 종이를 보던 손을 거두었다. 유리는 테사가 단순히 글자를 고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에게 자꾸 늦은 사람처럼 설명해야 했던 자리였다.
“씨앗이 아직 조용하다고, 제가 잊어버리고 둔 건 아니거든요.”
테사가 말했다. 유리는 그 말을 자기가 고쳐 쓴 문장으로 덮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느냐고만 묻지 않고 그동안 무엇을 해 왔는지 듣고 싶다고 했다. 테사는 원래 안내를 따라 자리와 상태를 봤고, 한 종류는 집 안에 계속 두기 어려워 옮겼다고 말했다. 밤마다 새로운 물을 주며 재촉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마레가 그 말을 들으며 자기 종이를 봤다. 당번 사이에 옮겨 적은 날짜가 온실에 들어온 날만 남아 있었다. 테사는 누가 그 종이를 보면 자기가 그제야 씨앗을 생각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됐다고 했다. 그는 오해를 막으려고 원래 날짜를 아래에 다시 썼다. 그런데 두 날짜가 나란히 놓이자 다른 당번이 화분을 두 번 옮겼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유리는 두 날짜가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같은 물건이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시작했는지 말해 주면 됐다. 테사는 자기가 처음 씨앗을 둔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물었다. 유리는 익숙한 전문 용어를 바로 적지 않았다. 그날 실제 한 일을 테사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했다.
그는 손으로 씨앗을 놓던 모양을 보였다. 마레는 그 동작을 보고 자기가 적었던 말이 너무 넓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씨앗을 두고 돌보기 시작한 날과 온실에서 맡아 보기 시작한 날을 각각 적었다. 글씨가 길어져 두 줄이 됐지만 두 사람은 자기 날짜를 가리킬 수 있었다. 유리는 그 순간 종이가 더 작아 보이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걸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을까요?”
테사가 물었다. 유리는 지금 온실에 있는 사람에게 실제로 읽어 달라고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답했다. 그녀가 읽는 사람을 대표할 수는 없었다. 마레가 옆 상자를 돌보던 주민에게 잠깐 물었다. 상대는 이름을 먼저 보고, 두 날짜를 차례로 소리 냈다. 그러고는 집에서부터 기다린 것이냐고 테사에게 물었다.
테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기다리는 날이 길었다는 말을 할 때 얼굴이 아까보다 편해졌다. 그 주민은 자기 씨앗은 다른 자리에서 아직 싹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새 대화가 생겼다. 유리는 그들이 싹의 속도를 서로 비교하는 시합으로 갈까 잠깐 걱정했지만, 주민이 먼저 원래 봉투를 남겨 두었느냐고 물었다.
에다는 책의 쉼표 이야기를 떠올린 듯 유리를 봤다. 이번에는 숨을 쉬는 곳보다 날짜 앞의 말이 사람을 바꾸고 있었다. 유리는 친구에게 자기 생각을 나중에 말해 달라는 눈짓을 하지 않았다. 에다가 직접 테사에게, 자기도 화분의 날을 언제부터 세야 할지 헷갈렸다고 털어놓았다. 유리는 그 대화를 들었다.
낮은 상자의 자리를 옮길 때는 테사가 먼저 화분의 위치를 골랐다. 마레가 다른 당번의 손을 불렀다. 유리와 에다는 통로 밖에서 기다렸다. 상자가 비켜나자 문에서 의자까지 길이 곧게 보였다. 앉은 유리가 가방을 무릎 가까이 두어도 다음 사람이 몸을 틀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온실이 갑자기 넓어진 것은 아니었다. 새 자리에서는 위쪽 선반에 손이 닿기 어려웠다. 테사는 자기가 자주 쓰지 않는 물건만 그쪽에 두겠다고 했다. 마레가 물기를 보는 자리도 새로 골랐다. 편해진 곳이 있으면 손을 더 뻗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유리는 모두에게 똑같이 편한 그림을 약속하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마레가 내일 오전 한 번 더 와서 실제 쓰는 모습을 함께 봐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한 번의 사례를 말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 자리를 고른 뒤 그 표시를 읽는 일까지 유리가 맡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녀는 종이 한 장을 고쳤으니 온실 전체를 맡으라는 말이 아니어서 좋았다.
유리는 내일 짧은 한 번, 현재 놓인 상자와 표시를 함께 보는 범위라면 맡을 수 있다고 답했다. 상태가 달라져 오래 앉기 어렵다면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말도 했다. 마레는 실제 마친 뒤 정한 사례를 건네겠다고 했다. 테사가 자기 씨앗의 결과까지 책임져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내일도 자기가 와서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에다가 조금 뒤에 따라왔다. 친구는 테사에게 너무 쉽게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유리는 직접 다시 이야기를 나눴지 않느냐고 답했다. 에다는 그러고 나서야 자기 화분의 날짜를 세는 것도 덜 부끄러웠다고 했다. 남보다 늦은 잎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다는 말이 뒤늦게 나왔다.
유리는 친구의 화분을 봤다. 늘어진 잎 하나와 조금 펴진 잎 하나가 같이 있었다. 둘 가운데 보기 좋은 것만 골라 오늘의 화분이라고 부르면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녀는 에다에게 어떤 잎이 먼저 보였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침에는 처진 잎, 지금은 펴진 잎이라고 답했다. 유리는 자기도 보는 때마다 다르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쉬는 동안 세온의 편지를 다시 폈다. 온실에서 두 날짜의 앞말을 고르던 테사의 손이 떠올랐다. 그녀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앞말을 더해 볼 수 있었다. 오래 만나고 싶은 것과 방문한 사람을 위해 하루 종일 서 있고 싶다는 것은 달랐다. 함께 지내고 싶은 날에는 자기 몸의 속도도 들어가야 했다.
유리는 다음에 온다면 자기가 온실에서 보는 자리를 잠깐 보여 주고 싶다고 썼다. 마레와 테사의 일은 그들이 허락한 만큼만 짧게 적었다. 종이의 글씨를 예쁘게 바꿔 줬다는 이야기 대신, 서로 다른 두 날짜를 지우지 않고 남긴 날이었다고 썼다. 그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볼지는 지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일을 보여 준 뒤에는 방으로 돌아와 쉬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 사이 세온이 혼자 책을 읽어도 좋고, 자기가 잠깐 잠들어도 서운한 약속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이 위에서 그 문장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하루가 오직 잠들지 않는 시간으로만 채워질 이유도 없었다.
편지는 오늘 보내지 않았다. 내일 온실 일을 마친 뒤 자기 몸이 어땠는지 덧붙이고 싶었다. 유리는 쓴 종이를 봉하지 않은 채 마른 서류 자리 안에 넣었다. 이백쉰째 보낸 답은 여전히 길 위에 있거나 이미 그의 손에 있을 수도 있었다. 이번 편지가 앞의 것을 추월해 모든 말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에 에다가 책을 돌려주러 왔다. 다 읽어서가 아니라 내일 자기가 읽고 싶은 짧은 글을 유리에게 골라 달라고 하지 않으려고 잠깐 두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유리는 빌리는 동안 계속 친구가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답했다. 에다는 그러면 다음에는 자기가 고른 곳에 종이를 끼워 오겠다고 했다. 돌은 책 속에 넣지 않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문을 닫은 뒤 유리는 낮은 탁자 앞에 앉았다. 세온이 편지에 쓴 탁자는 로델에 있었고, 자신의 것은 여기에 있었다. 멀리서 오간 종이가 두 탁자를 같은 가구로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손을 내려놓는 높이를 떠올리며 자기 손도 천 위로 내릴 수 있었다. 내일은 오늘 읽은 두 날짜가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