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약속보다 먼저 종이를 샀다.
백여든나흘째 아침, 숙소에서 일찍 식사를 하고 공개 장터로 나왔다. 오늘 오후 세온을 만나기 전까지 자기 시간이 있었다. 가구 그림을 다시 깨끗하게 옮기려는 종이가 아니었다. 지운 자리를 그대로 남기고 다른 그림 한 장을 더 그려 보고 싶었다. 그녀는 얇고 잘 접히는 묶음을 골랐다.
상인은 종이를 들고 갈 수 있게 평평한 판 위에 놓아 줬다. 유리는 오른손으로 오래 들기 어렵다고 말하고 가방에 넣기 쉬운 쪽으로 묶어 달라고 했다. 상대는 필요한 부분만 도왔다. 그녀가 자기 비용으로 값을 치르고 물러났을 때 장터는 그대로 자기 소리로 움직였다. 작은 부탁 하나가 모든 사람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옆에서는 말린 열매를 팔았다. 유리는 색이 옅은 것과 짙은 것이 함께 놓인 모습을 잠깐 봤다. 어제 콩의 자국이 떠올랐지만 상인의 물건을 일의 연장처럼 검사하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 자기 몫을 물었고 현재 설명을 듣고 조금 골랐다. 오늘은 그 맛을 알고 싶어서였다.
가까운 공개 자리에 앉아 한 알을 천천히 씹었다. 생각보다 시었다. 유리는 웃으면서 물을 마셨다. 세온에게 보여 줄 멋진 종이를 먼저 만들려던 마음이 혀끝의 신맛에 잠깐 멈췄다. 그가 없는 아침에도 자신이 고른 물건은 예상과 다를 수 있었다. 그 작은 실패를 그에게 돌아가 보상받을 필요는 없었다.
유리는 가방에서 새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왼손으로 짧게 선을 그었다. 작업대가 아니라 오늘 앉은 자리와 발 앞의 길을 그렸다. 선은 반듯하지 않았고 오른손으로 그리던 때와 달랐다. 그녀는 그 차이를 지우지 않았다. 나중에 보면 이 날의 손이 어떤 속도였는지 조금 기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길의 반대편에는 다른 성인 한 사람이 묶음을 고르고 있었다. 유리는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자기 그림에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정해 넣고 싶지 않았다. 대신 묶음 아래로 내민 끈의 방향만 짧게 그렸다. 그 선을 보고 피식 웃었다. 요즘은 어떤 물건이든 손이 닿는 쪽부터 보게 됐다.
오전의 정한 조합 수신은 숙소에 돌아온 뒤 받았다. 공동 종자 현물 관리자가 이전 관찰의 설명을 보냈다. 자국을 처음 봤다는 두 작업자는 서로 다른 빛에서 다른 날의 비교분을 봤다고 했다. 같은 알을 계속 따라본 진술은 아니었다. 유리는 그 둘의 시간을 합쳐 한 알의 과거로 만들지 않았다.
새 유급 설명은 다음 날 짧게 받을 수 있었다. 현물 관리자가 현재 보관과 사용할 범위를 정하는 가운데, 그녀는 색 대조의 한계를 설명하는 역할이었다. 언제 자국이 생겼는지를 자신이 판정해 달라는 조건은 받지 않았다. 지금 주어진 설명만으로는 그 날짜를 새로 만들 수 없었다. 유리는 실제 역할을 확인하고 수락했다.
그 답을 마친 뒤 종이를 덮었다. 오늘 오후는 개인 약속이었다. 세온이 어제 만남을 받지 못했다고 오늘 모든 일을 옆으로 밀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다음 날 일을 맡았고 정한 반환 관련 설명은 원래 경로에서 받고 있었다. 다정한 시간이 생길 자리를 실제로 고르는 편이 좋았다.
약속한 공개 찻방 앞에서 세온을 만났다. 그는 조금 먼저 와 있었고 오늘 가능한 종료 시각을 말했다. 유리는 자신도 그 시간에 돌아가 쉬고 싶다고 답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아쉬움이 오늘의 시간을 끝없이 늘릴 빚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각자 마실 것을 골랐다.
유리는 아침의 시었던 열매 이야기를 했다. 세온은 웃으며 아직 남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기 몫은 있고 가게 음식에 섞지 않고 나중에 보여 주겠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가 먹고 싶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유리는 그럼 그녀가 과장한 것인지 구경하고 싶은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는 크게 웃었다. 어제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는 말을 너무 조심스럽게 꺼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보다 먼저 시린 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유리는 그 사실이 좋다고 직접 말했다. 세온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오늘 자기를 달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지 않아 좋다고 답했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봤다.
세온은 어제 실제로 만나고 싶었지만 정한 일을 마쳐야 했다고 말했다. 유리는 알고 있으며 그래도 아쉬웠다고 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없애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도 아쉬웠다고 답했다. 둘은 왜 더 빨리 말하지 않았는지 따지지 않았다. 지금 실제로 말할 수 있었다.
그가 오늘 더 오래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한테 갚을 저녁은 없다고 했다. 오늘 같이 있고 싶은 저녁은 있다고 덧붙였다. 세온은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차의 김이 둘 사이에서 얇아졌다.
유리는 아침에 그린 새 종이를 보여 줬다. 가구점의 그림이 아니라 빈 자리가 있는 길이었다. 세온은 이 자리에 그녀가 앉았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럼 자기가 안 나온 그림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원래 가구 그림에도 그의 얼굴은 없었다고 웃었다.
세온은 얼굴보다 자리를 말한 것이라고 했다. 유리는 잠깐 종이를 봤다. 그가 바라는 말이 무엇인지 맞혀 주려고 서둘지 않았다. 그녀는 아침에 혼자 열매를 먹고 새 종이를 사고 앉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같이 있지 않은 시간이 자기를 덜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없는 그림을 보고 서운한 뜻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녀가 자기 아침을 가져와 보여 주는 것이 반갑다고 했다. 유리는 그 문장을 듣고 종이를 조금 돌렸다. 자기 선을 예쁘다고 칭찬받는 것보다 그 선이 생긴 시간을 실제로 들려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는 빈 길의 어느 쪽이 숙소 방향인지 물었다.
둘은 그림을 사이에 두고 각자 돌아갈 방향을 이야기했다. 세온의 길은 유리의 숙소보다 더 안쪽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보관지로 돌아갈 일정도 이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날에 걸쳐 이동하면 백여든일곱째 출발해 백여든여덟째 닿는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 운송 조건은 아직 받지 않았다.
세온이 그렇게 빨리 가야 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언제 정한 답을 받을지 물었다. 유리는 내일 자기 일을 마친 뒤 현재 운송 창구에서 묻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가 빨리 가지 말라고 하면 더 머물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말하면서 조금 겁이 났다. 자신의 선택이 약해 보일까 봐서였다.
그는 낮게 답했다. 더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건의 보관과 일을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유리는 그 대답을 듣고 손을 무릎 위에서 폈다. 상대의 아쉬움이 자기 이동을 금지하는 명령이 아니면 들을 수 있었다. 둘은 그만큼의 마음을 서로에게 남겼다.
가게의 소리가 잠깐 커졌다. 누군가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고 문을 닫았다. 유리는 잔을 왼손 가까이 옮겼다. 세온은 그녀의 오른손을 낫게 하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가 물을 때 그녀는 오늘 오래 쓰지 않아도 조금 피곤하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 앉아 있는 것이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녀는 손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세온이 좋다고 답한 뒤 자기 왼손을 내밀었다. 유리는 손의 방향을 보고 웃었다. 오늘은 서로 편한 쪽을 다시 골라야겠다고 했다. 그가 손을 바꿨고 그녀가 왼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익숙해지는 사이에도 몸은 매번 같은 자세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리는 가까이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좋다고 답했다. 둘은 의자를 조금 맞췄다. 그녀는 오늘 그가 보고 싶었다고 다시 말했다. 세온은 자신도 그렇다고 답했다. 짧은 입맞춤을 서로 원한다고 말한 뒤 가까워졌다. 유리는 떨어진 뒤 웃었고 그는 잔의 손잡이를 다시 찾았다. 어제 하루를 갚는 입맞춤은 아니었다.
잠깐 뒤 그녀가 아침의 열매 묶음을 가방에서 확인했다. 가게 안에서는 꺼내 먹지 않고 돌아가는 공개 길에서 자기 몫을 볼 생각이었다. 세온은 표정만으로 얼마나 신지 알 수 있겠다고 말했다. 유리는 그의 추정을 지금 시험해 주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오늘은 시험이 없는 날인 줄 알았다고 했다. 둘은 또 웃었다.
정한 종료 시각이 가까워졌다. 유리는 아쉬웠지만 더 있자고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몸을 쉬게 하고 싶다는 아까 말도 진짜였다. 세온은 그녀가 그림을 넣는 동안 기다렸다. 손을 잡은 채 단추까지 채우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 손으로 가방을 정리한 뒤 둘은 함께 일어났다.
공개 길에서 짧게 걸었다. 유리는 열매 묶음을 보여 줬다. 세온은 한 알을 자기 뜻으로 먹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몫에서 나눠도 괜찮다고 답했다. 그가 먹은 뒤 잠깐 말을 멈췄다. 유리는 그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지금은 판단보다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장면은 어떤 계약도 고치지 않았다. 멈춘 시계는 그대로였고 돌아받을 계절의 경과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유리는 그가 오늘 같은 신맛을 실제로 겪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좋았다. 자기 말만 듣고 다 이해한 얼굴보다 덜 멋졌고 더 가까웠다. 그는 다음에는 빵 쪽을 고르겠다고 했다.
갈라지는 곳에서 둘은 실제 귀가를 약속했다. 유리는 내일 일을 마친 뒤 운송의 현재 답을 받으면 알려 주겠다고 했다. 세온은 자신의 정한 시간을 맞춰 마지막으로 짧게 만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아직 약속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여백을 견디며 자기 숙소 쪽으로 걸었다.
방에 돌아온 뒤 실제 귀환을 보냈고 그의 답도 받았다. 유리는 가방에서 새 종이와 옛 그림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에는 일할 자리, 하나에는 혼자 앉았던 길이 있었다. 둘 다 그에게 보여 줬다. 어느 그림에서든 그의 자리를 증명하려고 억지로 선을 더 긋지는 않았다.
그날의 공식 수신은 정한 원래 반환 경로에서 왔다. 현재 물건의 관리와 대조가 이어졌고 새 최종 판정은 없었다. 남겨 둔 판과 여덟 병도 원래 지정 보관에서 받았다. 유리는 자기 이동 일정이 아직 문의 전이라고 정확히 알렸다. 마음으로 먼저 떠났다고 물건까지 돌아왔다고 적을 수는 없었다.
잠자기 전에 내일의 짧은 유급 설명 범위를 다시 읽었다. 자국의 과거 날짜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현재 분류를 어떻게 이어 받을 것인가였다. 유리는 날짜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모른다는 말만 남겨 모든 일을 멈추게 하지는 않으려 했다. 그녀는 노트를 덮었다. 내일은 모르는 시간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골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