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오늘 종자 인장을 꺼내지 않았다.
마흔하루째 날 오후, 가방은 찻방의 자기 의자 옆에 있었다. 전날 일몰에 종료한 닷새 노동의 인수와 잔여 지급은 이미 마쳤다. 오른손을 쉬게 한 오전에는 길게 쓸 문서도 받지 않았다. 약속한 짧은 오후만 빈 채 남겨 두었다.
세온은 정한 시각보다 조금 먼저 와 있었다. 탁자에는 잔 두 개 대신 물주전자 하나가 놓였다. 유리에게 오늘도 차를 마실지 물었다. 그녀는 따뜻한 물부터 마시겠다고 답했다. 어제 고른 시간이 오늘의 모든 선택을 미리 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잔을 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유리는 말을 준비하며 바깥을 봤다. 찻방 앞에 쌓인 눈은 가장자리부터 더러워져 있었다. 좋은 말을 하기에 완벽한 봄의 풍경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다음 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예전에 해 주신 말에 답하고 싶어요.”
유리가 말했다. 세온은 잔을 잡으려던 손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녀는 그 움직임을 보면서도 목 안의 긴장을 바로 없애지 못했다. 조사를 기다려 답하겠다고 한 사람이었지만 준비한 문장이 자기 마음보다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마음을 고백했던 작은 방을 기억했다. 함께 일한 고마움과 따로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었다. 지금 끝난 일도 있었고 집행이 남은 책임도 있었다. 자기 노동이 끝나려면 세상의 모든 미완이 닫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도 좋아해요.”
말을 끝내고 유리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세온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그가 웃기 전에 자기 다음 말을 찾았다. 좋아한다는 말을 조건 설명으로 바로 가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자기 말로 더 말할 수 있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싶고, 멀리 갔다 돌아오면 먼저 만나고 싶어요. 일 때문에 부르실 때 말고요. 서로의 연인이 되어 보고 싶다는 뜻이에요.”
세온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는 그의 침묵을 예전과 같은 뜻으로 채우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기가 물었다. 지금도 그 마음이 같으냐고 했다. 기다린 사람은 영원히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약속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자기 역시 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리는 그 말을 들은 뒤 처음 웃었다. 바로 앞의 사람이 정말 같은 대답을 했다는 사실은 혼자 준비할 수 없던 것이었다.
잠깐 말이 끊겼다. 찻방 안쪽에서 다온이 빵을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는 큰 일이 생기면 주변 소리가 안 들릴 것처럼 생각한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오늘도 빵칼은 단단한 껍질에서 멈췄고 누군가 다른 칼을 찾았다.
세온도 그쪽을 보고 웃었다. 유리는 자기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먹었던 빵이 생각난다고 했다. 어느 쪽이 더 딱딱했는지 둘은 기억이 달랐다. 그가 자기 몫이 더 단단했다고 하자 그녀는 보지 못한 빵의 속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리는 웃다가 오른손을 탁자 가장자리에서 뗐다. 통증은 좋은 말을 들은 오후에도 남았다. 세온은 그 손을 잡아 고치려 하지 않고 잔을 옮겨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오늘은 그냥 두고 싶다고 답했다. 왼손으로 잔을 들 수 있었다. 세온은 자기 잔을 가까이 당겼다. 도움을 하나 거절했다고 방금 시작한 마음까지 거절한 것처럼 읽지 않는 태도가 유리는 여전히 좋았다.
다온이 빵 접시를 가져왔다. 오늘은 특별히 달게 만들었냐는 세온의 질문에 원래 있는 빵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축하부터 하지 않았다. 유리는 작은 한 조각을 사고 싶은지 자기에게 물어볼 수 있는 그 평범함이 고마웠다.
각자 먹을 만큼을 골랐다. 세온은 찻방이 바쁠 때 대행실 이야기를 여기까지 가져오곤 했다며 오늘은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유리는 오늘 이야기가 모두 사적이어야 한다는 시험도 만들지 말자고 했다. 다만 일을 부탁하려면 부탁인 줄은 알게 해 달라고 덧붙였다.
“당신이 여기 계속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온이 말했다. 유리는 그 말의 뒤를 기다렸다. 그는 함께 있고 싶지만 떠날 일을 묻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도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처음부터 쉬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오히려 대답할 말이 생겼다.
그녀는 자기도 떠나는 날 아쉽다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떠날 수도 있었다. 순회 일을 유지하겠다는 조합 편지는 이미 보냈고 수신도 받았다. 새로운 배정은 아직 없었다. 사랑을 시작한 날 직업의 미래까지 한꺼번에 확정하지 않았다.
세온은 언제 떠날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리는 현재 정기 교통편을 알아봤지만 예약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손 상태와 자기 일정, 조합 회신을 보고 정할 생각이었다. 로델에 머무는 동안의 방과 식사는 현재 정한 기간의 비용으로 계속 받았다.
둘은 내일 이미 정해 둔 약속도 잠깐 말했다. 유리에게는 자기 손을 쉬게 할 오전이 있었고 세온에게는 대행실의 인수가 있었다. 그녀가 내일은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는 다음 가능한 때에 다시 묻겠다고 했다. 오늘 생긴 대답이 내일의 빈 시간을 모두 차지하지 않았다. 유리는 잔을 내려놓으며, 보고 싶을 때 자기도 먼저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인이 됐으니 방을 대행실 쪽으로 옮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리도 그 배려를 칭찬해야 할 일처럼 만들지 않았다. 둘은 앞으로 편지를 보내면 받을 곳을 확인했다. 공적인 문서가 가는 주소와 개인의 편지를 받는 주소는 같을 수도, 다른 칸일 수도 있었다.
유리는 자기 가방을 봤다. 안에는 오래전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한 편지가 있었다. 오늘 그걸 꺼내 읽으면 자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설명하기 쉬울 것 같았다. 그러나 세온이 그 종이를 읽어야 오늘의 마음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어요.”
그녀는 내용 대신 그 사실만 말했다. 스스로를 너무 빨리 잘못으로 정리한 글이라고 덧붙였다. 세온은 지금 읽어 주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 주는 일과 넘겨주는 일 사이에 자기 손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자기 멈춘 시계를 만지지 않았다. 유리가 오늘 시간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찻방의 벽시계를 봤다고 했다. 그녀는 그 평범한 대답에 또 웃었다. 과거의 한 시간 말고 현재의 시계를 둘이 같이 볼 수 있었다.
바깥이 덜 추워졌는지 묻고 둘은 잠깐 걸어 보기로 했다. 긴 산책은 아니었다. 유리는 오른손을 따뜻한 소매 안에 넣고 자기 가방은 의자 옆에 두었다. 다온에게 현재 보관을 부탁하고 받을 시각을 말했다. 인장도 가방 안에 남았다.
찻방 앞길은 그늘진 쪽에 얼음이 남아 있었다. 세온이 먼저 멈췄다. 이 길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유리는 옆의 마른 길이 좋다고 했다. 둘은 길을 바꿨다. 마른 길에서는 발끝을 오래 내려다보지 않아도 됐다. 유리는 그제야 옆에서 걷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길모퉁이의 작은 가게에 씨앗 봉투가 걸려 있었다. 유리는 잠깐 보고 싶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오늘 문을 일찍 닫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럼 다음에 보겠다고 답했다. 세온도 영주 대행의 일이라는 말로 문을 더 열게 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그가 먼저 아쉽다고 말했다. 유리는 씨앗 봉투를 못 봐서냐고 물었다. 그는 오늘 시간이 짧아서라고 답했다. 그녀는 자신도 그렇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 서로 같아도 약속한 시간을 늘릴 이유는 자동으로 생기지 않았다.
유리는 쉬어 갈 낮은 담장을 봤다. 잠깐 서고 싶다고 말하자 세온도 멈췄다. 바람이 두 사람의 외투 자락을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자기 왼손을 소매에서 꺼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그에게 먼저 요구하지 않았다.
“이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세온은 좋다고 답했다. 그의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유리는 따뜻하다고 꾸며 생각하지 않았다. 둘 다 추운 바깥에 있었다. 손을 잡았다고 손난로가 사라지는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온이 힘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유리는 조금 느슨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가 힘을 줄였다. 그녀도 손가락을 편한 쪽으로 옮겼다. 특별한 기술을 배운 것처럼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이 싫지는 않았다. 말하면 바뀌는 작은 힘이 손바닥 사이에 있었다.
멀리서 수문 쪽 종이 들렸다. 현재 교대가 받는 시각이었다. 세온이 소리 쪽을 보자 유리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가지 않아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만큼을 듣고 손을 놓지 않았다.
찻방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손을 놓았다. 좁은 문과 지나가는 수레 때문에 각자 움직일 자리가 필요했다. 다시 잡아야 아까의 대답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리는 손끝이 조금 차가워진 것을 느끼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온은 처음 놓인 자리에서 가방을 돌려줬다. 유리는 자기 물건을 받고 잔을 정리했다. 세온이 오늘 일은 잘 끝났다고 말하려다 웃음을 멈췄다. 그녀는 오늘은 일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다.
약속한 짧은 시간이 끝났다. 세온에게는 저녁 대행실 인수가 있었고 유리에게는 손을 쉬게 할 자기 시간이 있었다. 둘은 다음에 보고 싶다는 말을 하되 날짜를 지금 억지로 채우지 않았다. 내일의 공적 일정은 각자 확인해야 했다.
문 앞에서 세온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리는 돌아봤다. 그는 오늘 말해 줘서 기쁘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역시 대답을 들어 기쁘다고 답했다. 누가 더 오래 기다렸는지 계산하는 말은 없었다.
방으로 올라온 뒤 유리는 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웃음이 났고 잠시 뒤 조금 불안해졌다. 앞으로 어려운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게 될지 아직 몰랐다. 지금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사실로 다음 모든 질문의 답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 불안을 인장에 맡기거나 옛 편지에 덧붙이지 않았다. 손을 쉬게 하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정상적인 봄이 오기까지는 아직 기다릴 날과 실제로 끝낼 일이 있었다.
아래층에서 리넷이 웃는 소리가 났다. 자기 근무의 물 관찰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유리는 오늘 새 상태를 묻지 않았다. 현재 담당이 받을 질문과 자기가 궁금해서 던질 말을 구별할 수 있었다. 오늘은 둘 다 잠시 내려놓았다.
저녁 전달에는 조합의 봉투가 왔다. 유리는 수신처를 보고 자기 편지함에 넣었다. 지금 당장 다음 일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으나 내일 읽을 종이는 생겼다. 함께 있고 싶다는 대답 뒤에도 그녀의 길은 계속됐다.
등불을 낮추기 전 유리는 왼손을 펼쳤다. 잡았던 손의 정확한 온도를 벌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느슨하게 해 달라고 말하자 힘이 바뀌었던 것은 기억했다. 그녀는 다음 봄에도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오늘 처음 서로를 연인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