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교환표의 맨 위에 자기 조합 이름을 적었다.
품종도 수량도 아닌 이름이 먼저 생기자 리넷이 펜을 멈췄다. 다온은 그 줄을 읽고 의자를 조금 당겼다. 세온은 탁자에 올려둔 목록을 유리 쪽으로 밀지 않은 채 기다렸다.
“제가 그 조합 소속이에요. 보관 종자 목록을 본 적이 있고, 연락을 전할 길도 알아요.”
유리가 말했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제가 아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르시면 안 되고요.”
다온이 물었다. 거래가 성사되면 유리가 따로 받는 몫이 있느냐고. 유리는 이번 교환의 중개 대가를 약속받은 것은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관계가 없다고 쓰지는 않았다. 이후 조합이 다른 조건을 보내면 결정 전에 다시 알리기로 했다.
리넷은 한유리, 품종 상태 확인이라고 적었다. 주문 결정과 물건 인수는 공동회가 맡았다. 사흘 계약은 내일 일몰에 끝났다. 유리가 여기에 남아 모든 운반을 지휘한다는 칸은 만들지 않았다.
탁자 아래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세온이 문 아래의 바람막이가 밀린 것을 보고 몸을 숙였다. 문을 닫아 버리는 대신 천을 원래 자리에 고쳤다. 부엌으로 오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그가 돌아와 앉을 때까지 표의 다음 줄을 비워 뒀다.
공동회가 내놓을 수 있는 물건은 생각보다 적었다. 저장 식량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남는 종자라고 적힌 작은 주머니도 열어 보니 다음 봄 시험 파종용이었다. 유리는 그것을 교환물에서 뺐다. 눈앞에서 싹이 나지 않았다고 놀고 있는 씨앗은 아니었다.
“삼실은 남아요. 수로 덮개 묶고 두 꾸러미.”
다온이 말했다. 곁의 노인은 그중 하나가 다음 달 보수용이라고 지적했다. 남은 몫이 반으로 줄었다. 세온이 자기 창고에서 더 보탤 수 있는지 묻자 다온은 목록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오늘은 한 꾸러미만 적었다.
유리는 값이 맞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 선택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온실이 로델의 겨울을 모두 맡아 줄 이유는 없었다. 리넷이 표의 오른쪽에 거절할 수 있음이라고 쓰다가 글씨를 조금 작게 고쳤다.
“우리가 싫다는 답을 받으면 씨앗은요?”
그녀가 물었다. 유리는 저장실 문 쪽을 봤다.
“지금 지키는 일을 계속해야죠. 다른 답이 올 때까지 살리는 게 우리 일이에요.”
리넷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도 그 답이 가볍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묻는 순간 이미 도움받은 것처럼 숨이 놓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저장실의 장작은 아직 이 마을의 것이었다.
연락지는 다음 날 남쪽으로 가는 정기 수레에 맡기기로 했다. 조합의 가까운 공동 온실까지는 길이 열려 있었다. 눈 때문에 더 먼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며칠이 걸릴 수 있었다. 답을 가져오는 수레의 시간까지 확인한 뒤 사람들이 흩어졌다.
유리는 잠들기 전 저장실을 한 번 더 봤다. 은빛콩의 작은 싹 끝이 천에 닿고 있었다. 리넷이 덮개를 너무 낮게 놓은 탓이었다. 그녀는 아직 자기가 정리한 자리를 고치기 싫은 얼굴을 했다가 유리가 빈 받침을 가져오자 함께 높이를 바꿨다.
천이 올라가고 싹은 더는 눌리지 않았다. 그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안쪽의 흙 냄새가 조금 달라졌다. 유리는 새 봄을 한 방울도 쓰지 않고 씨앗의 자리를 넓혔다.
문가에서 세온이 물었다.
“오늘은 언제 쉬십니까?”
“이 상자까지만요.”
그가 말없이 상자를 봤다. 유리는 자기 대답을 듣고 웃었다. 세온이 밤마다 했을 법한 말이었다.
“고칠게요. 지금 쉬고, 아침 교대 때 다시 봐요.”
세온은 더 권하지 않고 등불을 들었다. 그녀의 가방을 가져갈지 묻지도 않았다. 유리는 자기 짐을 메고 그가 비춰 주는 눈길을 걸었다.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것은 짐이 줄어서가 아니었다.
셋째 날 아침, 연락지가 수레를 탔다. 유리는 온실에서 남은 병의 봉인을 확인했다. 일곱 개는 그대로였다. 첫 병에서 사용한 열량은 기록판과 병에 남은 흔적을 대조했다. 공급 중단 뒤에도 온실 경계는 관리 중이었지만 추가 볕을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다온은 식량표를 펼쳤고 유리는 실제 사용분의 반환 몫을 적었다. 최악의 사흘 전체 사용량 옆에 있던 큰 수보다 작았다. 그러나 작은 수에도 다음 수확의 곡식이 들어갔다. 다온은 그 칸을 지우지 않았다.
오르만의 교대자가 숲 소식을 전했다. 뿌리의 물기는 유지됐고 떨어진 꽃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무 곁 덮개는 아직 감시가 필요했다. 유리는 오늘 종료 때 자기 계약 경계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사람을 다시 맞췄다. 숲과 수문에 같은 사람을 두 번 배정하지 않도록 다온이 이름을 옮겼다.
점심 무렵 리넷이 찻방 문으로 달려왔다. 수레 바퀴 소리를 들었다며 장갑도 한쪽만 낀 상태였다. 유리는 따라 뛰지 않았다. 리넷에게 나머지 장갑을 건네고 함께 길로 나갔다. 수레에는 작은 서류함이 있었고 종자 상자는 없었다. 돌아오는 수레에 조합 보관 담당자도 동행했다. 다른 물품을 인수하러 온 길에 교환 조건까지 협의할 권한을 받아 왔다고 했다. 다온은 그 위임 범위를 확인했다.
답장은 생각보다 짧았다. 가까운 공동 온실에는 요청한 은빛콩의 여분이 없었다. 대신 찬 땅에 맞는 다른 콩의 보관분 네 주머니를 교환할 수 있다고 했다. 품종 이름과 채종일, 보관 중 확인한 상태가 적혀 있었다.
“네 주머니면 다 심을 수 있지 않아요?”
리넷이 물었다. 유리는 주머니의 기준 무게와 예상 파종 면적을 먼저 읽었다. 같은 콩이어도 자라는 속도와 필요한 물이 달랐다. 은빛콩을 그대로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공동 온실이 원한 대가는 삼실 한 꾸러미와 두 차례의 운반이었다. 첫 운반은 로델에서 물건을 보내고, 다음은 해빙 뒤 공동 온실의 빈 상자를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운반자 품삯은 교환과 별도로 로델이 부담해야 했다.
다온의 얼굴이 굳었다. 남은 삼실만으로 끝나는 거래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유리는 답장을 탁자에 펼치고 총부담을 다시 셌다. 마차와 마부를 세온이 그냥 내준다고 적을 수는 없었다. 그 차량도 다른 일에 배정돼 있었다.
세온은 대행실 운반표를 가져왔다. 오늘 비어 있는 왕복은 없었다. 내일 오전 장작 운반을 마친 수레가 일부 길을 돌아올 수는 있었다. 마부와 이용자에게 확인했고 추가 구간의 값도 받았다. 그는 그것을 무료 지원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봄을 더 쓰는 것보다 싼 건가요?”
다온이 물었다. 유리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잠든 다른 품종을 받는 일과 이미 깬 은빛콩을 보온하는 일은 서로 대체되는 일이 아니었다. 씨앗이 늘어도 오늘의 장작은 덜 들지 않았다.
유리는 표를 두 장으로 갈랐다. 살아 있는 현재 종자 보호와 다음 파종의 선택. 한 장에서 빼고 한 장에 더하면 그럴듯해지는 계산을 피했다. 상대 온실에도 싹을 틔울 봄을 보내 달라는 추가 요구는 하지 않았다.
아까 은빛콩을 더 살려야 한다던 농부가 찾아왔다. 그는 다른 콩의 품종 설명을 읽고 물이 더 필요하면 자기 밭에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리넷은 좋은 소식을 밀어내는 것처럼 입술을 물었다. 유리는 그 농부에게 어느 밭이면 조건이 맞을지 물었다.
농부는 답하지 않다가 북쪽 낮은 밭을 가리켰다. 그곳 주인이 논의를 원하면 보관분 일부를 시험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유리는 그 사람의 의사를 대신 쓰지 않았다. 다온이 직접 불러 묻기로 했다. 네 주머니를 온 마을의 해결책이라고 부르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 뒤에야 진짜 교환 이야기가 시작됐다.
상태가 설명과 다르면 어떻게 돌려보내는지, 눈길에서 젖으면 누가 확인하는지, 상대 온실도 운반을 거절할 수 있는지. 유리는 자기가 아는 조합이니 믿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받은 서류의 빈 부분을 표시해 수레와 함께 온 보관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는 마을 창고에서 다른 인수를 마치고 찻방에 와 있었다.
곁에서 세온이 젖은 탁자를 닦았다. 잔을 옮기는 동안 유리의 서류 아래에 마른 판을 받쳤다. 그녀가 고맙다고 하자 그는 잠깐 시선을 들었다.
“지금 이 부분은 제가 할 수 있어서요.”
유리는 판 위로 종이를 옮겼다. 답을 대신 정해 주지 않고 종이가 젖지 않게 하는 도움. 오늘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이 그런 쪽이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됐다.
오후의 협의에서 보관 담당자는 답장에 빠진 조건을 덧붙였다. 종자 상태를 인수 때 함께 확인하고 설명과 다르면 그 자리에서 되돌려도 된다고 했다. 로델이 발아를 새로 시험한 결과까지 하루 안에 보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분됐다.
공동회는 네 주머니 중 두 주머니만 먼저 교환하기로 했다. 삼실의 절반과 줄어든 운반 몫을 상대가 받을지는 다시 물어야 했다. 유리는 양을 줄이면 자동으로 조건도 절반이라는 식으로 쓰지 않았다. 상대도 짐을 준비하는 데 고정된 수고가 들었다.
리넷은 지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씨앗 오기 전에 종이만 키우네요.”
유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온도 처음으로 웃었다. 세온은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럼 종이를 조금 접고, 밥을 먹을까요.”
그가 남에게 식사를 권하는 동안 자기 그릇도 함께 가져왔다. 유리는 그릇이 작아지지 않은 것을 보고 숟가락을 들었다. 창밖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셋째 날의 해는 이미 낮은 지붕에 닿기 시작했다.
보관 담당자가 수정 조건에 서명할 때 유리는 온실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위임받은 범위 안에서 줄인 거래를 받아들였다. 두 주머니를 골라 봉해 보내고 삼실 상태는 인수 때 확인하기로 했다. 그런데 운반 수레는 내일 낮에야 올 수 있었다. 오늘의 볕으로 깨울 수 있는 종자는 아니었다.
리넷이 창밖을 봤다.
“그러면 오늘 안에 온실로 못 들어오네요.”
“네. 잠든 채로 받아 따로 보관해야 해요.”
유리가 대답했다. 도착할 씨앗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사흘 계약을 늘릴 수는 없었다. 공동회도 그 조건으로 교환을 택했다. 다온은 삼실 꾸러미에 다른 집의 표찰이 섞이지 않았는지 풀어 확인했다. 남은 절반은 보수 창고로 돌려보냈다. 종자가 오기 전에 무엇을 내어 줬는지부터 마을 사람들 눈에 보여야 했다. 아직 물건이 온 것은 아니었다. 인수와 운반 비용은 남았다.
세온이 교환표를 접고 온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봄 일곱 병이 있었다. 낮은 빛이 병 아래에 길게 고였다. 유리는 그 빛을 보고 손을 잠깐 멈췄다. 온실을 한 번 더 따뜻하게 하면 끝내기가 덜 아플 것 같았다.
그러나 따뜻한 끝을 만들기 위해 새 빚을 만들 수는 없었다.
리넷은 빈 종자 선반에 손을 대고 섰다. 시계가 든 상자는 아직 닫혀 있었다. 밖에서 숲 확인을 맡은 교대자의 종이 울렸다. 종료를 지켜볼 준비가 됐다는 신호였다.
세온이 유리에게 물었다.
“다른 씨앗이 오는 날까지, 이 온실은 어떻게 됩니까?”
그녀는 소매를 접고 공동 열쇠의 홈을 봤다. 빌린 봄은 오늘 일몰에 끝났다. 내일의 씨앗을 위해 먼저 돌려줘야 할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