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명이라는 숫자는 두 번 적혀 있었다.
구역별 확인란에 한 번, 종이 맨 아래 합계에 한 번. 서린은 두 숫자 사이의 서명을 손가락으로 따라가지 않고 눈으로만 읽었다. 여섯 줄 모두 남기준의 이름이었다.
“이 구역을 전부 직접 보셨나요?”
기준은 공실 확인서를 내려다봤다. 오후 빛이 창틀에 막혀 종이 절반만 밝았다.
“주요 출입구는 봤지요.”
“각 방 안까지라는 뜻인가요?”
“문이 잠겨 있으면 밖에서 확인했고요.”
서린은 펜을 들었다. 주요 출입구, 잠긴 문 바깥. 어느 것도 전 구역 안쪽을 봤다는 말은 아니었다. 첨부 점검표의 하층 사용 중이라는 문구를 옆으로 옮겼다.
“이쪽은 열여섯 시 사 분에 사용 중이라고 적혀 있어요.”
“짐 찾으러 들어온 분이 있었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기준은 입술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그날 오후는 여러 사람이 왔습니다. 지금 딱 누구라고는 못 하겠어요.”
윤재가 자리를 바꾸었다. 기준의 정면을 막지 않고 출입대장이 놓인 쪽에 섰다.
“현재 안에 있는 인원부터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출입 담당에게 연락할게요. 어제 기록은 별도로 남기고요.”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속 어제 사람을 찾는 동안 오늘 사람이 빠지면 안 됐다. 직원이 무전으로 허가 구역별 현원을 물었다. 관리실, 정문, 외부 통로의 답이 차례로 돌아왔다. 제한된 연결부는 지정 담당 둘이 문 밖에서 확인 중이었다.
모은경이 가방에서 자료 목록을 꺼냈다.
“공실 확인서의 형식은 일괄로 만들었습니다. 관리인께 확인받은 내용을 업무지원에서 옮긴 거예요.”
“여섯 줄을 한 번에 서명받았다는 뜻인가요?”
“그건 관리인께서 말씀하셔야죠.”
서린은 기준을 보았다. 기준이 의자 아래로 한 발을 당겼다.
“빈 종이에 이름을 쓴 건 아닙니다. 구역 이름은 있었어요. 시간을 따로 안 적은 거고.”
“열다섯 시는 누가 적었나요?”
이번에는 은경도 종이를 보았다. 여섯 칸의 시각은 같은 글꼴이었다. 서명만 손글씨였다. 서린은 그 차이를 사진에 남겨 달라고 담당자에게 부탁했다. 같은 글꼴이라고 같은 순간 작성됐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그래도 물어볼 대상은 분명해졌다.
업무지원 담당과 통화가 연결됐다. 은경은 스피커를 켜기 전에 상대에게 누가 듣고 있는지 알렸다.
“자료 확인 종료를 세 시로 잡아서 넣었어요. 그때 현장에 간 건 아니고요.”
젊은 목소리가 말했다.
서린은 질문을 짧게 했다.
“각 구역을 직접 본 시각이 아닌가요?”
“네. 관리인님이 오후 확인했다고 보내 주셔서요. 양식에 시간이 필수라서.”
누군가에게 필수였던 빈칸이, 다른 사람에게는 여섯 개의 방문 사실이 되어 있었다. 서린은 그 설명을 자기 말로 부드럽게 고쳐 적지 않았다. 통화 일시와 설명한 사람의 직무를 함께 남겼다.
“작성 전 자료와 발송본을 보관해 주세요. 지금 시간만 고친 파일로 바꾸지 마시고요.”
상대는 수정본을 만들어 보내면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서린은 현재 문서가 무엇을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경이 원래 파일을 유지하고 추가 설명을 별도 문서로 보내 달라고 전달했다.
통화가 끝났을 때 기준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눌렀다.
“시간 하나 잘못 넣은 것 아닙니까.”
“시각만의 문제인지 보려는 거예요. 하층 안쪽을 직접 확인한 분은 누구인가요?”
기준은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곧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서린은 빈 대답을 채우는 대신 하층 확인 방법을 미확인으로 썼다. 바깥에서 비닐을 끄는 소리가 났다. 출입 담당이 비 예보에 맞춰 장비 덮개를 정리하고 있었다.
윤재에게 현장 담당자의 연락이 왔다. 보관칸 물품 촬영을 마치다 그 옆 작은 대기 공간에서 새로 나온 종이 조각이 있다는 말이었다. 원래 보존 경계 안쪽이었다. 물건을 옮기기 전 상태 사진을 보냈다.
은색 음식 봉투였다.
잘린 윗부분이 고리 옆 수납망에 걸려 있었다. 아래에는 날짜 인쇄와 손으로 그은 짧은 세로줄 세 개가 보였다. 서린은 날짜가 어제라고 소리 내어 말하려다 사진을 더 크게 열었다.
인쇄된 것은 소비 날짜가 아니라 포장 날짜였다.
“이걸로 어제 먹었다고는 못 하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도운이 화면 한쪽을 짚었다.
“저 수납망은 오늘 설치한 게 아니네요. 첫날 통로 찍은 사진 끝에도 조금 보입니다.”
그는 자기 원본을 열고 해당 부분을 찾아 보여 줬다. 같은 벽 못, 같은 찢어진 망이었다. 봉투는 첫 사진에 가려져 있었다. 어제부터 있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서린은 담당자의 동행 아래 안전 경계까지 내려갔다. 관리실에 남은 사람과 돌아올 시각을 먼저 알렸다. 계단참의 빛은 아침보다 낮아져 있었다. 파란 문은 담당자가 운영했고, 문 옆에는 현재 출입 인원이 적힌 판이 걸렸다.
사진에 담긴 수납망은 사람이 기대앉던 자리보다 더 안쪽에 있었다. 하은이 구조된 곳과 같다고 한꺼번에 묶을 수 없었다. 서린은 선을 넘지 않고 담당자가 비춰 주는 벽을 보았다.
낮은 선반 아래에 이름 없는 작은 종이표가 붙어 있었다.
컵은 씻어 뒤집기.
글씨 아래 물방울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업무용 창고에서 컵을 쓸 수는 있었다. 음식 봉투가 있다고 거주 공간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 구역을 비었다고 쓴 사람이 이 선반과 수납망까지 봤는지는 다시 물어야 했다.
담당자가 선반 안쪽 사진을 보여 주었다. 크기가 다른 컵 세 개와 접힌 얇은 방석이 있었다. 방석에는 눌린 선이 겹쳤다. 서린은 누군가 여기서 잤겠다는 생각을 보고서에 옮기지 않았다.
“사람이 쉬거나 음식을 먹은 흔적은 있어요. 언제까지 누가 썼는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그 범위까지만 말했다.
컵 옆에는 구겨진 버스 시간표가 있었다. 도림시 외곽 노선이었다. 마지막 차량 시간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다음 날 첫차 시각이 손으로 적혀 있었다.
도운은 그 종이를 오래 보았다. 서린도 자기 퇴근길 버스가 끊기면 어디서 기다릴지 생각했다. 흔적을 날짜와 숫자로 분리해 적는 일이 그 사람의 사정을 모른 척하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 모르는 사정까지 대신 결론내리지 않기 위한 일이었다.
관리실로 돌아오자 하은이 막 나가려는 중이었다. 친구가 출입문 밖에서 목발이 들어갈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하은은 투명 봉투를 가방에 넣다 서린을 봤다.
“오늘 또 뭔가 나왔어요?”
“하층 확인서하고 실제 확인 범위가 달라요. 자료 보존을 요청하려고요.”
서린은 다른 사람의 생활 물건을 하은에게 바로 보여 주지 않았다. 하은이 그 물건의 주인이거나 설명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다음 연락 때 확인하고 싶은 것은 옛 대기 공간의 위치라고 말했다.
하은은 잠깐 생각하다가 자기 봉투에서 사진을 다시 꺼냈다. 이름과 얼굴을 종이로 가린 채 건물 안쪽 문 하나만 보였다.
“여기 말인가요? 엄마가 기다리던 곳은 이쪽이었대요. 문이 복도로 열려서 사람 오면 의자를 옮겼다고.”
사진 속 문은 누런 회색이었다. 현재 손지도에서 직원 대기로 표시된 자리와 비슷했지만 문 방향은 달랐다. 서린은 촬영한 시기와 누가 장소를 설명했는지만 적었다. 하은이 원하면 위치 부분의 사본을 추후 보낼 수 있다고 했고, 지금 발목에 체중을 싣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은은 봉투를 넣었다.
“이번에는 제가 제대로 본 줄 알았는데, 또 틀렸을 수도 있네요.”
“어느 부분인지 같이 확인하면 돼요. 틀렸다고 전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친구가 가방을 받았다. 출입 담당은 두 사람이 나가는 시각을 적었다. 서린은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 보고서를 열었다.
제목을 공실 확인서 오류라고 쓰려다 지웠다.
전 구역 확인 근거 및 잔류 흔적 보존 요청.
그 아래 문서 이름과 현장 사진 번호를 각각 붙였다. 열다섯 시가 일괄 기입됐다는 설명, 하층 내부 방문자 미확인, 음식과 휴식 흔적, 서로 다른 문 방향. 사람 수는 비워 두었다.
회사 책임자가 통화로 물었다.
“오늘 결론은 공실이 아니라는 거예요?”
“공실이라고 확인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실제 잔류 여부와 인원은 더 봐야 해요.”
대답을 하면서 서린은 자기 손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결론을 미루는 것처럼 들릴까 봐, 더 센 말을 쓰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 봤다는 사실을 안 봤다고 말하는 데도 결론이 필요했다.
회사는 보존 요청을 공식 창구로 발송하고 접수번호를 회신했다. 현장 자료는 기존 보존 담당에게, 업체 발송 자료는 해당 보관 주체에게 각각 요청됐다. 서린은 자기 이름만으로 건물 전체를 봉쇄했다고 쓰지 않았다. 오늘 조치는 자료 보존과 제한 구역의 유지였다. 해체 일정의 최종 중지 여부는 아직 다른 절차에 있었다.
윤재가 요청 목록을 읽고 한 항목을 더 물었다.
“물품 이동 기록도 포함하셨습니까?”
“추가하겠습니다. 컵하고 방석이 어디서 왔는지도 필요하겠어요.”
은경은 수신 확인을 보냈다. 협조하겠다는 말 뒤에는 자료가 흩어져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붙었다. 서린은 모두가 오늘 밤 안에 나타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누가 어느 자료에 답할지와 다음 확인 시각을 받았다.
서린은 요청서 수신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관리실 출력물만 남겨서는 공실 확인 시각을 누가 채웠는지 돌아갈 길이 없었다. 업무지원이 받은 관리인 메시지와 최초 양식도 목록에 넣었다. 기준은 메시지에 사적인 전화번호가 섞여 있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관련 부분을 확인할 절차를 안내하고, 무관한 대화를 지금 모두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기준은 그제야 자기 전화를 꺼냈다. 화면을 서린에게 곧바로 건네지 않고 담당자 쪽으로 돌렸다. 서린은 한 걸음 물러났다. 필요한 자료가 남는다면 자신이 모든 화면을 먼저 볼 이유는 없었다. 담당자가 기록한 보관 항목이 요청 목록과 맞는지만 나중에 확인했다.
도운은 식은 물을 새 컵에 따라 주었다. 서린이 받다가 컵 밑면을 확인하자 그가 말했다.
“그건 오늘 뜯은 겁니다. 증거를 마시라고 드리진 않아요.”
서린은 짧게 웃고 컵을 받았다. 아무 컵이나 오래 들여다보게 된 자기 눈을 잠깐 쉬게 했다.
그때 현장 담당자가 새 사진을 보냈다.
대기 공간 맞은편 창고의 열린 출입구였다. 오늘 물품 확인을 위해 지정 직원이 연 문이라고 설명이 붙었다. 문짝은 안쪽으로 접혀 있었고, 바깥쪽 벽에는 의자 등이 쓸어 만든 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린은 하은이 보여 준 옛 사진을 떠올렸다.
복도로 열리던 문.
현재의 문과 옛 의자 자국 사이, 벽에는 쓰이지 않는 경첩 구멍이 두 쌍 있었다.
그리고 새 사진 오른쪽, 떼어 낸 경첩 두 개가 투명 상자 안에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