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량 한 칸이 내려갔다는 말은, 바로 끝난다는 말은 아니었다.
세오가 그 말을 먼저 했다. 다래는 알았다고 답했지만 손에 힘은 남아 있었다. 사람의 남은 시간을 네모 칸으로 보여 주는 기계라면 너무 불친절했다.
“칸이 몇 개죠?”
“다섯 개요.”
마루가 답했다.
“숫자로 자세히 볼 수 있는 계기도 있나요?”
“아저씨가 옆 화면 열고 있어요.”
첫 수신 화면이 흔들렸다. 통신창이 끝나기 직전이라 그림의 아래쪽이 깨졌다. 세오는 읽힌 숫자를 바로 적지 않았다. 단위가 잘린 값은 온도일 수도, 잔량일 수도 있었다.
안전실이 다음 예약 교신을 확인했다. 중계 안테나를 바꾸는 동안 몇 분의 빈 구간이 생겼다. 가까운 우주라고 목소리가 언제나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두 물체 사이에 라온의 구조물이 들어오면, 신호는 그 금속 벽을 저절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래는 송신기에 대고 다시 묻지 않았다. 끊긴 통신기를 붙잡아도 상대의 전력만 더 쓰게 할 수 있었다.
세오는 다음 질문을 종이에 써서 다래에게 건넸다.
압력. 이산화탄소. 온도. 습도. 흡착통 잔량. 측정 시각과 단위.
“제가 읽어도 돼요?”
“읽어 주세요. 저는 들어오는 값하고 계통 도면을 맞출게요.”
다래는 질문 순서 옆에 답을 쓸 자리를 만들었다. 인수대장보다 빈칸이 많았지만 쓰는 법은 비슷했다. 모르는 값을 그럴듯한 숫자로 채우면 받는 사람이 다쳤다.
무진은 새 접근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화면에는 나래와 S-6이 만날 구간 옆에 작은 회색 띠가 있었다. 관측 오차를 포함한 범위라고 했다. 선 하나보다 띠 하나가 더 정직한 지도일 때가 있었다.
“도착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다래가 물었다.
“지금 출항하면 한 시간 반보다 조금 더요. 점검과 다음 관측을 마쳐야 출항 시각을 정합니다.”
그는 바로 덧붙였다.
“근처에 도착하는 시간입니다. 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아니고요.”
다래는 문 열기 전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보관소에서도 배송 완료와 인수 완료는 달랐다. 우주에서는 그 사이가 훨씬 넓었다.
통신실 문이 세 번 울렸다.
다래가 고개를 돌리자 당직자가 작은 물품 주머니를 내밀었다. 보관소에서 챙겨 온 다래의 여분 손목 고리와 이름표였다.
“단말만 묶고 펜은 안 묶으셨던데.”
“펜이 먼저 출항할 뻔했네요.”
그녀는 손목에 고리를 걸었다. 주머니 안에는 보리차 한 팩도 있었다. 다래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것도 고정했다. 도움을 받는 일이 연료표에는 작은 질량으로 적혔고, 자기 손에는 익숙한 촉감으로 남았다.
예약 시각이 되자 수신 표시가 켜졌다.
먼저 세 번의 짧은 신호가 왔다. 마루가 보낸 확인 신호였다. 다래는 송신을 허가받은 뒤 같은 간격으로 응답했다. 목소리가 나오기 전부터 저쪽에 사람이 손을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이 S-6입니다. 이번 창에서는 여덟 분 가능해요.”
마루가 말했다.
“주변에서 통신 들을 수 있는 분 몇 명인가요?”
다래가 물었다.
“제가 읽고, 해성 아저씨하고 다른 성인 두 분이 값을 확인해요.”
해성이 자기 이름을 밝히고 마루 옆의 사람들을 확인했다. 다래는 그들의 전체 신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계기를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와 인원 확인 역할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면 됐다.
화면이 왔다.
이번에는 수치와 단위, 측정 시각이 함께 보였다. 압력은 선내 유지 범위, 산소 계통은 정상 표시였다. 이산화탄소 분압은 0.46킬로파스칼. 온도 30.4도. 상대습도 67퍼센트.
다래는 읽은 대로 반복했다.
“이산화탄소 분압 0.46. 산소 잔량을 뜻하는 숫자는 아니고요.”
세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두 계통은 따로 봐야 해요.”
흡착통 잔량 화면에는 53퍼센트가 표시돼 있었다. 다섯 칸 화면에서 한 칸이 사라져도 실제 잔량이 갑자기 같은 폭으로 줄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표시 경계를 지난 것일 수 있었다.
다래는 자기 종이의 한 칸 옆에 53이라는 숫자를 썼다.
작은 수치가 공포를 없애지는 않았다. 다만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양을 주었다.
세오는 계기 교정 날짜와 센서 위치를 물었다. 해성은 카메라를 돌려 표찰을 보였고, 성인 담당자가 안쪽 대기 구역의 별도 측정기 값을 읽었다.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센서의 오차와 공기 흐름 차이가 있었다.
“가장 좋은 값만 고르지 않겠습니다.”
세오가 말했다.
“사람들이 밀집한 쪽 상태도 같이 봐요. 유량 기록 부탁드립니다.”
해성이 통신기에서 잠깐 떨어졌다. 마루는 대신 화면이 꺼지지 않게 했고, 옆의 성인이 고정된 측정기를 비췄다. 다래는 아이가 일하는 모습을 칭찬하려다 일을 더 맡기는 말이 될까 멈췄다.
“다음 교신은 다른 분하고 교대해도 돼요.”
그녀가 말했다.
“읽는 건 제가 제일 빨라요.”
“쉬는 건 속도하고 상관없어요.”
마루가 대답을 늦췄다. 해성이 돌아와 다음 창에서는 성인 담당자가 송신 버튼을 맡겠다고 했다. 마루는 자료 정리만 도울 수 있었다. 다래는 그 계획을 저쪽이 정하도록 두었다.
세오는 받은 값으로 예상 범위를 만들었다. 사람 수는 아직 신고값 스물세 명. 지금 활동량과 환기 조건이 비슷하게 이어지고 다른 고장이 생기지 않을 때, 예비 흡착 능력은 대략 여덟 시간에서 열한 시간의 범위였다.
“정확히 열한 시간 뒤 멈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해성에게 먼저 설명했다.
“아래쪽 범위를 기준으로 지원을 준비하겠습니다. 다음 측정에서 짧아지면 바로 계획을 바꿔요.”
다래는 7-B 기한을 따로 띄웠다.
아직 서른 시간이 훨씬 넘게 남은 상자 처리 시계. 그 옆에는 여덟 시간에서 열한 시간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이제야 두 시계를 같은 화면에서 다르게 볼 수 있었다.
“이쪽이 진짜 급한 거네요.”
그녀가 말했다.
“흡착통만의 예상이에요. 열과 전력, 건강 상태도 따로 봐야 합니다.”
세오가 답했다.
넉넉한 숫자 하나가 모든 문을 열어 주지는 않았다. 다래는 온도 옆에도 새 측정 시각을 적었다. 낮추라는 말만으로 열이 우주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영상 속 마루가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물주머니를 건넸다. 마루는 한 모금 마신 뒤 남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밀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전했다. 떠 있는 물건을 쫓아갈 필요가 없게 하는 움직임이었다.
다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스물세 명을 다시 생각했다. 숫자에 맞는 흡착량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좁은 곳에서 서로 손을 내밀 수 있는 간격도 필요했다.
안전실 담당자가 정기 교신 계획을 보냈다. 교신창마다 읽을 최소 항목과 연락이 안 될 때의 재시도 시각이 있었다. 나래 출항 후에는 직접 가시선이 확보되는 구간에서 선박과도 연결할 예정이었다.
해성은 전력 예산을 확인했다.
“계속 영상을 켜 두면 안 됩니다. 목소리와 숫자 위주로 보내겠습니다.”
“필요한 사진만요.”
다래가 답했다.
화면이 사라지자 검은 단말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저쪽은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보여 주는 데 쓰던 전력을 안쪽 사람들에게 돌린 것이었다.
다래는 자기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맛이었다. 저쪽에도 마실 물이 있다는 확인을 받은 뒤에야 목마름이 돌아왔다. 그녀는 팩을 놓아 버리지 않고 다시 벽에 묶었다.
통신창이 닫히기 전, 해성이 다래를 불렀다.
“카트리지 보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끼울 수 있는 건지 확인했습니까?”
세오가 답하려는데 다래가 한 번 손을 들었다. 물류 쪽에서 먼저 할 말이 있었다.
“정상 교환품으로 준비했습니다. 고장 난 7-B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건 아니에요. 실물 관리 번호도 보냈어요.”
해성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고장 난 걸 반납하라고 올까 봐 걱정했습니다.”
다래는 말이 잠깐 막혔다. 저쪽에서는 도움을 기다리면서도, 누군가 물건부터 찾아갈까 걱정하고 있었다.
“인계 목적을 다시 적겠습니다. 반환 청구가 아니라 긴급 지원이에요.”
그녀는 실제로 목적 칸을 읽어 줬다. 진경이 옆에서 승인 상태를 확인했다. 말만 바뀐 것이 아니라 누구 책임으로 무엇을 보내는지 달라졌다.
다래는 다음 창에 물을 질문도 적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의료 지원 담당과 따로 연결하는지, 개인 건강 정보를 공용 채널에 말하지 않아도 되는지였다. 지금 화면에 앉은 사람이 스물세 명의 상태를 대신 공개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안전실은 별도 상담 경로를 안내했다. 계속 통신이 열려 있지 않으니 긴급한 변화는 공용 채널에서 위험만 먼저 알리고, 개인별 설명은 연결 가능한 창에 나누기로 했다. 다래는 담당 부호를 해성에게 읽어 주었다. 의학 판단은 자기가 하지 않았다.
“여기 계신 분들, 다 같이 갈 수 있습니까?”
해성이 물었다.
무진이 송신기를 넘겨받았다.
“나래 한 번에 전원 이송은 어렵습니다. 우선 안쪽을 버티게 할 물품과 상태 확인 인력이 갑니다. 이송 계획은 인원과 필요 지원을 직접 확인하고 정합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에도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해성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일부만 데려가고 나머지는 버리는 거라고 듣지 않게, 설명을 같이 보내 주세요.”
무진은 짧은 문장으로 계획을 다시 읽었다. 첫 접근의 목표와 아직 정하지 않은 이송 순서. 아직 붙을 수 있는지조차 검증 전이라는 조건까지. 다래는 그 설명을 해성이 안쪽 사람들에게 전하는 동안 송신기를 내려놓았다. 라온의 허락을 기다리는 화물처럼 주민들을 적어 둘 수는 없었다.
받는 곳에서 질문할 시간이 있어야 인계였다.
다래는 물품표 끝에 수신자 확인란을 만들었다. 해성이 대표로 받더라도 물건을 쓸 사람이 어떤 지원인지 이해할 수 있게, 기술 설명은 세오에게 부탁하고 포장 글씨는 더 크게 쓰기로 했다.
그녀가 펜을 들자 손목 고리가 팽팽해졌다. 새로 받아 든 고리가 조금 짧았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펜이 눈앞에서 멈춘 덕분에 컵과 부딪치지 않았다. 작은 제한이 큰 움직임을 막는다는 것을, 오늘은 물건이 먼저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진이 남은 교신 시간을 가리켰다. 다래는 마지막으로 계통 연결 도면을 요청했다. 해성은 예전 사용 설명서가 아니라 지금 S-6에서 쓰는 구성 사진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해했다.
“분리 뒤 임시 연결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쪽도 보내죠.”
자료는 통신창 끝에서 들어왔다. 절반은 회색으로 뭉개졌지만 세오가 필요한 사진 번호를 골라 다음 창에 재전송해 달라고 했다. 다래는 손으로 그린 화살표 옆 글씨를 읽었다.
재생 열원 미연결.
세오가 자기 물품표를 내려다봤다. 정상 교환 카트리지 옆에 손가락이 멎었다.
“카트리지는 맞아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끼우는 것만으로 정상 재생이 되지는 않겠네요.”
다래는 포트에 고정한 상자를 봤다. 정확한 물건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그 물건이 일할 조건은 따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