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푸른 잎, 손바닥 스물세 개, 다래의 접수번호.
검은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이 평소보다 낯설었다. 다래는 영상을 다시 틀지 않고 재생 시간을 적었다. 짧은 말을 여러 번 들으면, 말한 사람이 없는 자리에 뜻을 더 붙이기 쉬웠다.
“원본 파일 보존할게요. 촬영 날짜가 장비 시계하고 맞는지는 확인이 필요하고요.”
다래가 말하자 오진경 등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오는 통신기 너머에서 한참 동안 소리가 없었다.
“세오 씨?”
“저 잎 뒤에 걸린 주름 관요. 배기 관이에요.”
“위험한가요?”
“그것만 봐서는 몰라요. 다만 누가 방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는 건 맞겠네요.”
다래는 독립 단말을 진경 쪽으로 돌렸다. 영상 아래에는 작은 첨부 파일이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에는 읽기 안내문인 줄 알고 열지 않았던 파일이었다.
저출력 비상 통신.
예약된 송신 시각 세 개와 주파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안테나가 가려지면 목소리가 끊겨요. 세 번 다시 부를게요.'
“다음 시각까지 열두 분이에요.”
다래가 말했다.
진경은 단말에서 주파수를 확인했다.
“시설 비상 채널 대역입니다. 안전실 통해야 합니다.”
“연결해 주세요. 제가 혼자 무전기 뜯어 만들 시간은 없으니까요.”
진경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럴 권한도 없습니다.”
“시간하고 권한 둘 다 없네요. 그럼 있는 분께 부탁하죠.”
다래는 상자를 닫지 않고 안전 점검 중이라는 표식을 붙였다. 세오가 직접 도착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격리 레일도 잠갔다.
그녀는 단말과 원본 보존 장치를 몸에 고정했다. 진경이 먼저 통로를 나갔다. 다래는 그 뒤를 따라 북쪽 견인 포트로 향했다.
축 통로의 손잡이를 하나씩 잡아 몸을 밀었다. 급하게 밀면 멈출 때 벽에 부딪쳤다. 걸어서 서두르던 버릇을 버리는 데 정거장 생활 첫 달을 다 썼다.
회전환으로 이어지는 문을 지날 때, 방향이 잠깐 뒤집혔다.
발끝에 약한 무게가 돌아왔다. 손잡이를 잡은 팔이 천천히 내려갔고, 작업복 무릎에 접힌 자국이 생겼다. 다래는 밑창을 바닥에 대고 걸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국을 그릇에 담아 먹었다.
축 화물구에서 불과 몇 개의 문을 지났을 뿐이었다.
식당 옆을 지나며 다래는 따뜻한 김 냄새를 맡았다. 미등록 시설의 사람이 영상 속 관으로 내보냈을 공기는 어떤 냄새였을까. 그녀는 생각을 멈췄다. 느낌으로 위험도를 정할 수는 없었다.
북쪽 포트 앞에서 남자가 길을 막았다.
정확히는 막으려고 한 게 아니라, 통로를 가득 채운 공구함을 옮기는 중이었다. 남자는 공구함 뚜껑 위에 올린 자두 한 알을 먼저 집었다.
“지나가세요. 그거 밟으면 오늘 점심 끝납니다.”
다래가 자두를 피하자 진경이 남자를 불렀다.
“한무진 조종사. 안전실 연결됐습니까?”
“연결은 됐고, 저출력 수신 준비 중입니다. 누가 이거 받아 왔어요?”
다래가 손을 들었다.
“분실물 보관소 연다래예요.”
“물건 찾는 데 우주선까지 쓰는 건 처음 보네요.”
“오늘은 주인을 못 찾아서요.”
무진은 자두를 주머니에 넣고 공구함을 닫았다. 낡은 조종복 소매에 수선 자국이 있었다. 다래는 자기 상자 완충재를 떠올렸다.
“선실 말고 통신실로요. 아직 날아갈 위치가 없습니다.”
무진이 앞장섰다.
포트 통신실의 창은 보관소보다 넓었다. 바깥에는 구조선 나래가 붙어 있었다. 앞부분이 뾰족하지도, 날개가 달리지도 않은 작은 선박이었다. 몸통 옆에 화물 고정대가 접혀 있었고, 조종석 창은 햇빛 가리개로 덮였다.
“생각보다 작네요.”
다래가 말했다.
무진이 의자를 고정했다.
“안에서 보면 더 작아요.”
안전실 담당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파일의 송신 조건을 대조하고, 정거장 수신 장비를 예약 시각에 맞췄다. 수신에 필요한 권한과 장비는 이미 있었다. 목적지만 없었다.
“위치는 송신자가 말하는 대로만 믿지 않겠습니다. 교신하면서 관측도 하죠.”
담당자가 말했다.
다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단말에 수신 시각을 적을 빈칸을 만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예쁜 주소가 아니었다. 대답할 사람이 있는 곳을 놓치지 않을, 작은 표시 하나면 됐다.
약속된 시각이 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송신 표시가 켜졌다 꺼졌다. 창밖의 나래 표면으로 정거장 안테나의 가느다란 그림자가 지나갔다.
잡음이 짧게 일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라온 수신소, 사이입니다. 응답 가능하면 짧게 부탁합니다.”
영상 속 목소리였다.
다래는 진경을 봤다. 진경은 안전실 담당자를 봤다. 담당자가 송신 권한을 넘겼다.
“라온 분실물 보관소 연다래입니다. 상자 7-B 받았어요. 영상도 확인했고요.”
잡음이 멎었다.
응답이 없었다.
다래가 송신기를 고쳐 쥐려 할 때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진짜 보관소예요?”
“네. L-204 접수했던 곳이요.”
“그럼 화분도 기억해요?”
“입구를 천으로 묶은 화분이요.”
상대가 숨을 들이마셨다.
“노해성 아저씨가 그 얘기 했어요. 흙이 아니라 사람 이삿짐이라고 적어 준 분이 있다고.”
다래는 기억했다.
분실물 유형에 '폐모듈 잔재'가 자동으로 잡혔던 날이었다. 그녀는 침구와 식기를 보고 '생활용품'으로 고쳤다. 유형을 고치면 추가 설명을 써야 해서 그날 퇴근이 조금 늦었다.
그 정도의 일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문장으로 돌아올 곳을 정했다.
“성함이 어떻게 돼요?”
“마루요. 통신 담당 견습이에요.”
“옆에 책임자 계세요?”
“해성 아저씨 있어요. 잠깐만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멀리서 마루에게 끈을 다시 걸라고 했다. 곧 낮은 남자 목소리가 통신기를 채웠다.
“노해성입니다. 다래 씨 기억합니다.”
다래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살펴볼 정보가 필요해요. 안전실 같이 듣고 있습니다.”
해성은 감사 인사부터 길게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이 몇인지, 부품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말했다.
거주 인원 스물세 명.
주 이산화탄소 제거 계통 고장. 예비 흡착통 사용 중.
산소 공급은 현재 정상. 열 배출 능력 저하.
세오가 통신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숨이 조금 가빴다. 그는 다래 옆에 앉자마자 수치를 받아 적었다.
“세오 씨, 필터는요?”
“보관소 안전 담당자께 인계했어요. 뜨거운 물건 혼자 두고 오진 않았습니다.”
그는 이어 해성에게 물었다.
“흡착통 남은 양을 사람 수로만 계산하셨나요? 습도하고 유량도 알려 주세요.”
통신기에서 금속 걸쇠 여는 소리가 났다.
해성이 값을 읽었다. 세오는 바로 시간을 말하지 않았다. 계기 단위와 마지막 교정 시각부터 확인했다.
“마루 씨, 나이가 어떻게 돼요?”
다래가 물었다.
“열일곱이요. 통신기는 만져도 되는 거예요. 점검표 다 배웠어요.”
빨리 덧붙이는 말에서 누가 먼저 걱정할지 아는 기색이 났다.
“잘하고 있어요. 바깥에 나가는 일은 누가 하세요?”
“어른들이요. 저도 나가고 싶은데 안 된대요.”
“오늘도 안 나가는 쪽으로요. 지금 계신 자리에 발이나 몸 고정돼 있어요?”
“네. 테이블에 걸었어요.”
옆에서 해성이 다시 확인해 줬다. 마루는 실내 안전 구역에 있고, 나머지 인원도 성인 담당자별로 확인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래는 저쪽에서도 누군가가 사람 수를 세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했다.
그 순간 단말에 영상 한 장이 추가로 들어왔다. 거주구 안쪽이었다. 천장도 벽도 같은 재질인데도 어디가 식당인지 알 수 있었다. 둥근 식탁 가운데 스푼들이 고무줄로 묶여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을 걸고 앉아 있었다. 접시 대신 뚜껑 있는 작은 통이 스물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지도에서 찾지 못한 장소가, 사진 한 장으로 다래가 아는 집의 모양이 됐다.
다래는 모니터 옆 타이머를 봤다.
7-B 판정 기한 35시간 31분.
그 숫자가 갑자기 엉뚱해 보였다. 상자를 언제 처리할지 세는 시계였다. 저쪽 사람들이 언제까지 괜찮은지 알려 주는 시계가 아니었다.
“이 기록으로 긴급 보존 요청하겠습니다.”
진경이 안전실 담당자에게 말했다.
“소유권 판정은 뒤에 하죠. 물건과 구조 대상자를 연결할 확인이 필요합니다.”
담당자가 응급 화물 보존을 승인했다. 다래는 타이머 아래 상태를 바꿨다.
임의 폐기 금지.
기한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기한 때문에 물건을 버리는 선택지가 닫혔다.
해성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마루, 주머니 닫고 움직여. 씨앗 나오겠다.”
마루가 작게 대답했다.
“닫았어요.”
다래는 영상 속 푸른 잎을 떠올렸다.
“식물을 키우세요?”
“조금요. 먹는 양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해성이 말했다.
“그럼 왜요?”
“새잎 나오는 걸 보려고요. 여기서는 날짜가 잘 안 보이니까.”
다래는 창밖을 봤다.
지구 위로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시의 빛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낮과 밤이 자주 바뀌는 곳에서 잎 하나가 시간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생각했다.
통신실 온도는 일정했다. 벽 안쪽을 흐르는 냉각수가 조용하게 열을 가져갔다. 다래는 지금껏 그 소리를 환풍기 소리와 구분하지 못했다. 밖이 차가우니 더운 공기를 내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공 속에서는 바람이 대신 열을 가져가 주지 않았다. 넓은 방열판이 제 일을 해야 했다.
세오가 전송된 열 배출 값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라온만큼 시원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우선 장비가 허용하는 범위로 낮춰야 해요.”
그는 저쪽에 해 줄 수 있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구분해서 설명했다. 확신을 파는 목소리가 아니어서, 다래는 오히려 송신기를 놓을 수 있었다.
무진이 조용히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남은 교신 시간이 짧다는 뜻이었다.
안전실 담당자가 해성에게 위치 자료를 요청했다. 해성은 마지막 수신 궤도값과 관측용 점멸등 주기를 전송했다. 새 좌표라고 주장했지만 측정 시각이 오래됐다. 그대로 비행 목표로 삼을 수는 없었다.
“현재 기동 가능합니까?”
무진이 물었다.
“불가능합니다. 추진기는 전원이 끊겨 있어요.”
“자세 제어는요?”
“작은 것만 됩니다. 큰 회전은 못 잡습니다.”
무진의 표정이 달라졌다. 겁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문장을 더 짧게 고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예전 북쪽 포트로 접근해도 됩니까?”
답 대신 잡음이 왔다.
담당자가 안테나를 조금 조정했다. 해성의 마지막 말이 끊겨 들어왔다.
“북쪽은 안 됩니다. 연결부가…….”
목소리가 사라졌다.
다래는 송신기를 놓지 않았다. 마루가 세 번 부르겠다고 썼다. 아직 두 번은 남아 있었다.
첫 번째 재호출은 잡음뿐이었다.
두 번째에 마루의 목소리가 잠깐 살아났다.
“아저씨가 지금 손으로 잡고 있어요. 문이 안 맞아서.”
뒤에서 둔한 충격음이 났다.
마루가 더 빠르게 말했다.
“북쪽엔 오지 마세요.”
말끝이 흔들렸다.
“거긴 이제 바닥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