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흔이틀째 아침, 이준은 식탁에 엎어 둔 종이를 다시 폈다. 어젯밤 그린 의자의 다리는 셋뿐이었다. 나머지 하나를 어디에 붙일지 몰라 종이 가장자리까지 긴 선이 나가 있었다. 실제 의자는 그의 몸 아래에서 아무 문제 없이 버티고 있었다. 매일 앉는 물건을 그리는 데는 매일 앉았다는 경력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의자를 뒤집어 볼까 하다가 밥부터 먹었다. 오늘 센터에는 오후 일반 배정만 있었다. 오전을 자기 손으로 만든 어려움 하나에 다 줄 필요는 없었다. 국을 뜨는 동안 종이가 조금 밀려 그릇 아래에 들어갔다. 이준은 먼저 그릇을 옮겼다. 그림 속 의자를 고치기 전에 실제 식탁을 덜 젖게 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태오에게 사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림을 시작했다고 누군가에게 곧장 진척을 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다리를 빼고 의자 앞에 잠깐 쪼그려 앉았다. 앞다리 하나가 뒤의 다리를 가리고 있었다. 없는 것을 찾아 그린 셈이었다. 이준은 종이의 긴 선을 지우고, 보이지 않는 다리는 보이지 않는 채 두었다.
그렇게 하자 앉는 부분이 갑자기 넓어 보였다. 실제보다 너무 넓었다. 그는 웃으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접수번호도 완료란도 없는 종이는 틀린 채 다음 날을 기다릴 수 있었다. 창밖으로 쓰레기 수거차가 지나갔다. 이준은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설거지를 했다. 오늘 그 차의 돌아오는 시간까지 맡지는 않았다.
오후 창고에서 윤단은 접이식 안내대를 분류하고 있었다. 주말 임시 운행 쉼터로 나갈 물품이었다. 이준은 큰 것부터 들려다가 받는 쪽 이름을 읽었다. 며칠 전 공구 상자를 나눈 뒤 최종 위치를 놓쳤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이번에는 선반에 내려놓고 끝내지 않고 인수할 동료와 자리를 맞췄다.
“그다음 사람까지 확인했어?”
윤단이 물었다. 이준은 동료가 실제로 받았다고 답했다. 잘 배웠다는 큰 칭찬은 없었다. 윤단은 다른 안내대의 부러진 손잡이를 가리켰다. 이준은 사용에서 빼고 별도 위치에 놓았다. 끝낸 일이 하루 종일 그를 지켜 주는 면허가 되지는 않았다. 손잡이가 부러진 것은 그 물건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였다.
태오는 휴게 시간에 식탁 그림을 꺼냈다. 모서리에 그렸던 의자는 여전히 반대편에 있었다. 새로 생긴 것은 의자 아래의 신발 한 짝이었다. 사람이 앉았는지, 잠깐 벗어 둔 것인지 이준은 알 수 없었다. 태오는 신발을 둘 그리니 주인이 너무 빨리 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그림의 다리 하나를 지운 이야기를 처음 했다.
태오는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실제 의자에는 네 다리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준은 그렇지만 내가 앉아 보는 자리에서는 셋만 보였다고 답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잠깐 그곳에서 멈췄다. 태오는 자기도 그림 속 사람이 반드시 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이준은 둘이 앉으면 편하겠다는 말을 삼켰다. 자신이 지금 앉은 식탁에는 태오가 있었지만 그 그림의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는 대신 신발은 왜 벗었는지 물었다. 태오는 그 질문에는 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의자를 먼저 채우기보다 신발을 벗은 이유를 정하면 사람이 앉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었다. 이준은 그다음 종이가 궁금해졌다.
퇴근 무렵 새 현장 문의가 들어왔다. 남쪽 순환차의 임시 대기 쉼터에서 의자 한쪽이 움직이고 비 온 뒤 받침 주변이 젖는다는 내용이었다. 시설 담당은 승객을 다른 대기 위치로 안내하고 해당 의자의 사용을 막았다고 했다. 이준은 사진만으로 나사 문제라고 답하지 않았다. 물이 어디서 오는지와 의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실제 확인이 필요했다.
윤단은 백일흔나흘째 오전의 일반 점검 배정을 제안했다. 그 전날까지 운영 측은 현재 대체 대기 위치를 유지하고, 상태가 달라지면 정한 창구로 새 경과를 보내기로 했다. 이준이 오늘 밤 혼자 들러 볼 이유는 없었다. 그는 현재 가능한 근무를 확인하고 배정을 받았다. 야간 봉합까지 포함한 요청은 아니었다.
“또 의자네요.”
그가 말하자 윤단은 그림 얘기냐고 물었다. 이준은 어떻게 아느냐는 얼굴로 태오 쪽을 봤다. 윤단은 휴게 탁자에 연필이 있고 둘이 의자 다리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 이상 대화가 퍼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태오는 자기 종이를 가방에 넣으며 이번 의자는 그리지 말고 먼저 보라고 했다. 이준은 현장에는 지우개를 안 가져가겠다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는 새 배정의 위치를 확인했다. 늘 타는 노선의 정류장은 아니었다. 멀리서 본 낡은 쉼터 기억이 있었지만 그것이 같은 곳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 속 지붕 색을 작업표에 쓰지 않았다. 내일 쉬는 날을 현장 사전 방문으로 바꾸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오늘 그곳을 맡고 있었다.
이튿날 낮에는 도서실의 예약 안내가 왔다. 기다리던 다음 권이 준비됐다는 소식이었다. 이준은 저녁까지 맡아 두는 현재 조건을 읽고, 몸이 편할 때 다녀왔다. 창구 직원은 그가 앞권을 어떻게 읽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책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빈 가방이 가벼웠던 날과 다른 무게가 어깨에 붙었다.
첫 장은 문을 두드린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집의 아침이었다. 이준은 몇 줄 읽다가 앞권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미 반납한 책이었다. 그는 자기 기억이 맞는지 검색하려다 그만뒀다. 작가가 순서를 바꾼 데는 아직 읽지 않은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오늘은 새 방의 아침을 조금 따라가 보기로 했다.
책 속 사람은 식탁을 방 한가운데에서 벽 쪽으로 밀었다. 이준은 자기 식탁을 봤다. 벽에 붙이면 부엌에서 오는 길은 넓어지고 의자 하나의 자리는 사라질 것이었다. 그는 당장 가구를 옮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 봤다. 앉아서 본 방과 걸어서 본 방은 길이 달랐다. 새 쉼터의 사진에서 의자만 크게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업무 전화를 켜 사진을 다시 확대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근무 때 승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기다리는지도 물어보겠다고 수첩 한 귀퉁이에 적었다. 의자 받침이 움직이는 것과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는 이유는 다를 수 있었다. 둘을 한 원인으로 합치지 않되 같은 장소에서 볼 필요는 있었다. 그 질문 한 줄이면 오늘 준비는 충분했다.
오후에는 바람이 세졌다. 창문이 한번 울자 이준은 닫힘을 확인하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바람이 분다고 쉼터 지붕까지 자기 창문처럼 볼 수는 없었다. 현재 운영 담당에게서 긴급 변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그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을 안전 증명으로 쓰지 않고, 자기 추가 출동의 근거도 만들지 않았다. 현재 정해진 점검은 내일이었다.
그는 오후에 쉬면서, 도서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원 벤치에 앉았던 일을 떠올렸다. 가방을 옆에 놓으니 누군가 앉을 자리를 차지한 듯해 무릎으로 옮겼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쪽으로 오지 않았다. 이준은 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싶다가 조금 더 들고 있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배려도 가끔은 자기 무릎을 불편하게 했다.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바로 옆 나무 아래에서 한 사람이 전화 통화를 끝냈다. 그는 빈 벤치를 보고도 앉지 않고 나무에 등을 기댔다. 앉는 곳이 있다는 것과 그 자리를 쓰고 싶다는 것은 다를 수 있었다. 이준은 새 쉼터에서 승객들이 왜 지붕 밑을 택하는지 듣기 전에는 의자가 모자라서라고 적지 않기로 했다. 그림 속 빈자리에도 자신이 아직 듣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
집에 와 가방을 내려놓자 어깨가 가벼워졌다. 책을 꺼내다 빌린 날짜가 찍힌 종이를 봤다. 한 권을 기다렸다는 마음 때문에 받아 온 날까지 잊을 뻔했다. 그는 현재 반납일을 확인하고 자기 달력에 적었다. 다음 책을 읽을 권리와 지금 책을 돌려줄 책임은 함께 왔다. 그 정도의 달력은 쉬는 날을 줄 세우기보다 나중의 자신을 덜 다급하게 했다.
그 생각을 마치고 컵에 물을 따랐다. 식탁에서 자기 그림을 치웠다. 종이를 냉장고에 붙일까 생각했지만 그곳에는 이미 필요한 안내가 있었다. 그는 그림을 책장 아래 빈 상자에 넣었다. 작품이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러웠고 낙서라고 부르면 내일 다시 볼 마음을 작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름은 정하지 않았다. 자기가 꺼낼 수 있는 위치 하나만 정했다.
태오는 그림의 신발을 지웠다고 연락했다. 없애니 오히려 누가 잠깐 일어났던 식탁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준은 지우개가 사람을 산책 보냈다고 답했다. 태오는 한참 뒤 그 말은 자기 노트에 적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러라고 했다. 농담을 듣고 종이에 남기는 일에도 상대가 고르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그린 의자를 다시 보았다. 다리 셋이 모두 같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연필을 들었다가 손을 놓았다. 오늘은 어디가 이상한지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전날보다 달랐다. 종이를 고칠 때마다 누군가 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은 없었다. 실제 쉼터에는 그런 책임이 있었고, 그래서 자기가 아닌 여러 사람의 손과 권한이 필요했다.
저녁을 먹은 뒤 효선이 빌린 우산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준에게 빌린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 가게에 잠깐 들렀을 때 누가 가져갔는지 보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그때 출입문 쪽을 계속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효선은 알겠다고 했다. 모른다는 답 하나 때문에 통화가 어려워지지는 않았다. 그는 내일 비 소식이 있는지 묻지 않고 인사를 마쳤다.
새 책에서는 첫 집에 없던 아이가 다른 집 식탁에 앉았다. 이준은 앞권의 질문이 이제야 옆으로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문을 두드린 사람을 모르고 있었다. 독자가 아는 것을 모든 인물이 함께 알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 줄을 읽고 자기 수첩의 짧은 질문을 떠올렸다. 현장에 가면 담당이 이미 아는 길이 있을 것이었다.
잠들기 전 근무 가방에 필요한 장갑과 수첩을 넣었다. 다음 날의 배정은 낮 점검 하나였다. 지난 봉합은 백예순아흐레째였고 그 대가는 백일흔째 실제 수면에서 갚았다. 오늘 새 봉합도 새 빚도 없었다. 그렇다고 더 늦게 자도 되는 날은 아니었다. 그는 가방 지퍼를 닫고 불을 줄였다.
침대에서 눈을 감으려는데 운영 담당의 정한 경과가 센터를 통해 왔다. 사용 금지한 의자는 그대로였지만 승객들이 대체 대기 위치보다 원래 지붕 밑에 서려 한다고 했다. 이준은 오늘 밤 해결할 수 있는 새 약속을 보내지 않았다. 내일 사람의 동선까지 함께 볼 질문이 실제 쓰임에서 생겼다. 그는 수첩의 의자 옆에 지붕을 짧게 그렸다. 이번에는 다리보다 그 아래에 서 있는 사람부터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