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흔하루째 오전, 이준은 자료실에서 온 정한 후속을 윤단과 함께 읽었다. 현재 담당이 첫 반납과 수거를 받았고 문과 함의 물리 상태에서 추가 이상을 발견하지 않았다고 했다. 쪽지 상자는 옮긴 자리에 있었으며 위치를 묻는 방문자는 남아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직원이 안내했다. 이준은 종이를 읽고 난 뒤 손목부터 보지 않았다.
윤단은 이번 배정을 닫았다. 일반 보수와 한 구간의 봉합, 그 뒤 현재 담당의 실제 사용 확인을 받은 범위였다. 백예순아흐레째 한 건의 대가는 전날 실제 수면에서 상환했다. 오늘 닫는 표에 새 수면 빚은 없었다. 그렇다고 도시 어디에도 고장이 없다는 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준은 완료 칸에 자기 담당 범위를 맞춰 적었다.
작업표를 넣으려다 받침 판의 사진을 다시 봤다. 함의 빈 공간을 가렸던 물건이었다. 현재 역할과 보관 위치는 기록돼 있었다. 다른 현관에서 보관 중인 얇은 받침의 원래 용도는 여전히 모른 채였다. 이준은 사진 둘을 같은 폴더로 옮기지 않았다. 닮은 물건의 쓰임을 따로 남겨 두는 것도 나중에 틀린 설명을 줄일 수 있었다.
태오는 정한 원본을 인계하고 자기 자리에 돌아왔다. 그림 모임의 방 사용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진행자가 받은 시간은 백일흔이레째 저녁이었다. 참가 여부를 물은 연락이었고 태오의 그림을 보는 순서는 아직 없었다. 이준은 일정표를 먼저 보려다가 손을 멈췄다. 태오가 자기에게 같이 가 달라고 한 말은 없었다.
“가 볼 생각이야?”
“그림을 들고요. 보는 방식부터 다시 물어보려고요.”
그림을 보러 가는 사람이 그림을 들고 가도 되는지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 태오에게는 조금 우스운 모양이었다. 이준은 그렇다고 답을 이미 안다고 놀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책을 읽는 모임에 식탁 그림을 펼치는 일은 종이 크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방에 모이는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쓰는 것이었다.
태오는 자기 문의를 직접 보냈다. 그러고 나서야 이준에게 그날 낮 배정이 있는지 물었다. 이준은 아직 정한 일정이 없다고 말했다. 다 같이 가면 좋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태오는 연락을 더 받고 본인이 먼저 골라 보겠다고 했다. 이준은 자신의 참석 여부가 태오의 선택을 대신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점심 전 창고에서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새로 온 공구 상자 하나가 잘못된 선반에 놓여 있었다. 이준은 어제 자기 손으로 나눈 상자를 알아봤다. 받는 장소를 보고 나누기는 했지만 옮긴 뒤 위치까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태오에게 누구 실수냐고 묻지 않고 현재 필요한 사람에게 상자를 먼저 돌려줬다.
필요한 도구를 찾던 동료는 조금 늦었지만 일이 시작되기 전에 받았다고 했다. 이준은 늦지 않았으니 문제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확인하지 않은 마지막 이동이 있었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시간을 썼다. 태오는 현재 인수 위치를 기록에 맞췄다. 문과 바람길을 고친 사람도 상자 하나의 자리를 틀릴 수 있었다.
윤단이 지나가며 무슨 일이었는지 물었다. 이준은 자기가 나눈 물품의 최종 위치를 놓쳤고 지금 돌려줬다고 답했다. 말이 길어지지 않았다. 윤단은 다음부터 최종 받는 쪽까지 맞추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오늘 닫은 현장이 있다는 사실을 자기 작은 실수를 덮는 천으로 쓰지는 않았다.
점심에는 센터 식당에서 국수를 먹었다. 면을 뜨다가 태오의 종이 위 식탁에 국수 그릇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태오는 그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밥은 선 몇 개로 보이는데 면은 너무 쉽게 실이 된다고 했다. 이준은 실이 든 밥그릇을 상상하다가 웃었다. 태오는 실제로 그려 둔 것을 꺼내 보였다.
그림 속 두 사람이 앉을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멀리 놓인 그릇 하나에는 짧은 선이 곱게 엉켜 있었다. 국수 같기도 했고 누군가 풀어 둔 실타래 같기도 했다. 이준은 어느 쪽인지 고르지 않고 오래 봤다. 태오는 무슨 음식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설명할 때 조금 덜 떨릴 질문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자리부터 물었을 텐데.”
이준이 말했다. 태오는 어느 의자에 앉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림에는 의자가 없었다. 그가 그 점을 짚자 태오는 지금까지 의자를 그리지 않았다는 걸 새삼 보는 얼굴이 됐다. 이준은 틀린 그림이라는 말로 들릴까 봐 조금 긴장했다. 태오는 그러면 서서 먹는 식탁일 수도 있다고 하고 종이를 돌려 봤다.
이준은 자기 국수 그릇 옆을 보았다. 의자는 몸 아래에 있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림을 볼 때는 없다는 사실이 먼저 보였다. 자기가 실제로 기대 앉은 물건을 늘 다른 사람의 종이에서만 찾고 있었던 셈이었다. 태오가 의자를 그려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건 네가 고르는 거라고 답했다. 대신 있으면 자기는 이쪽에 앉고 싶다고 한 모서리를 가리켰다.
태오는 그 자리에 작은 표시만 했다. 바로 의자를 완성하지 않았다. 이준은 자신이 그림을 바꾸게 했다는 점수를 가지지 않았다. 태오가 나중에 그 표시를 지울 수도 있었다. 지금 같은 식탁에서 누군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말했고, 그 말을 받은 사람이 현재 종이에 무엇을 할지 고르고 있었다. 그 정도의 참여는 조용히 남을 수 있었다.
오후에 진행자의 답이 왔다. 태오는 본인 종이를 책상에 놓고 원하는 사람과 짧게 볼 수 있는 시간을 받았다고 했다. 작품 발표처럼 모두에게 설명하는 순서는 아니었다. 장소와 날짜, 현재 방식이 확인된 것이다. 누가 실제로 앉을지와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없었다. 태오는 가겠다고 답한 뒤 이준에게도 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은 그 말을 받고 자기 일정표를 봤다. 현재 낮 배정과 겹치지 않았고 몸 상태도 그날 따로 볼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은 갈 생각으로 남겨 두되 당일 일을 맞춘 뒤 알리겠다고 했다. 태오는 알겠다고 했다. 혼자 가야 하면 안 간다는 조건은 붙지 않았다. 그림은 이미 태오가 들고 갈 일로 남았다.
퇴근 뒤 이준은 읽던 책을 반납하러 갔다. 북문 생활자료실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자기 책의 반납 안내는 원래 빌린 도서실을 가리켰다. 같은 도시의 책이라고 아무 함에 넣으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 읽은 마지막 장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지 확인하고 뺐다. 얇은 종이에는 아침에 적은 한 줄이 남아 있었다.
새 책을 빌리기 전 긴 의자에 앉았다. 근처의 아이가 큰 그림책을 혼자 넘기고 있었다. 페이지마다 의자가 하나씩 나오는 책이었다. 이준은 자기가 오늘 의자를 너무 많이 생각한다고 웃었다. 아이는 웃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낯선 어른에게 자기 이야기를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전날 읽은 소설의 다음 권을 찾았다. 검색대에는 현재 대출 중이라고 나왔다. 반환 예정일이 있었지만 그날 꼭 책이 돌아온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준은 잠깐 예약을 고민했다. 앞권의 마지막 장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자기는 그 뒤를 당장 알고 싶었다. 기다리는 것이 싫다는 마음과 책을 받을 순서는 따로 있었다.
직원에게 현재 예약 방법을 물어 정한 방식으로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직장이나 고친 자료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책을 빌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만 전했다. 직원은 준비되면 안내가 간다고 했다. 이준은 그때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책을 읽기 위해 모든 날짜를 앞당길 수는 없었다.
돌아오며 효선의 가게 앞을 지났다. 안쪽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오늘도 의자를 빌리러 들어가지는 않았다. 효선이 문 앞에서 작업복을 털다가 그를 알아봤다. 선재의 책은 현재 받는 곳에 반납했다고 했다. 이준은 잘됐다고 답했다. 자기가 안내하지 않은 반납도 제 경로로 끝날 수 있었다.
효선은 다음 권이 없어 심심하겠다고 했다. 이준은 책을 다 읽은 얼굴이 그렇게 보이느냐고 웃었다. 그녀는 빈 가방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의 가방에는 공구도 책도 없었다. 손으로 들어 보니 정말 가벼웠다. 같은 가방을 메고 다녀도 무엇을 남기고 왔는지에 따라 몸에서 느끼는 자리가 달랐다.
선재는 안에서 끈을 꿰고 있었다. 그가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가방을 가리키며 오늘은 고칠 것이 없느냐고 했다. 이준은 자기 맡은 것은 현재 끝났다고 답했다. 선재는 그럼 집에서 쉬면 되겠다고 했다. 이준은 그 말에 거창하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다음 주 그림을 보러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조금 하고 인사했다.
집 앞 건널목에서 태오가 그림 사진을 한 장 보냈다. 모서리의 작은 표시 옆에 의자가 생겼다. 이준이 고른 쪽이 아니라 반대편이었다. 태오는 이쪽에 두니 그릇 두 개가 한 사람 몫처럼 보인다고 썼다. 이준은 사진을 확대하려다가 신호를 봤다. 먼저 길을 건넌 뒤 가만히 서서 다시 화면을 폈다.
실제로 그랬다. 멀리 있던 그릇이 긴 식탁 반대편에 앉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새 의자 하나 때문에 옆의 큰 그릇이 나눠 먹는 음식으로 보였다. 이준은 자기가 본 변화를 그대로 답했다. 태오는 한 사람을 그릴지 두 사람을 그릴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이준은 빈 의자여도 좋다는 말을 쓰다 지웠다. 이미 태오가 그려 볼 차례였다.
그는 저녁을 준비하며 가방을 의자에 걸었다. 자료실 배정은 닫혔고 이번 한 건의 대가도 갚았다. 진행 중인 그림과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책은 자기 밤을 잡아가는 접수가 아니었다. 밥솥에서 김이 났다. 그는 그릇을 하나만 꺼냈다가 반찬 놓을 작은 접시도 꺼냈다. 사람 하나의 식탁에 그릇이 둘일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 태오에게 참석 여부는 당일 오전에 다시 알려 주겠다고 한 번 남겼다. 실제 약속의 현재 범위를 확인하는 말이었다. 서로를 억지로 편하게 해 주려는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창밖에는 불이 켜진 집들이 서로 다른 높이로 있었다. 이준은 그중 무엇이 고장 났는지 찾지 않고 오늘 자기 방에 의자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먼저 느꼈다.
설거지를 마친 뒤 말라 있던 컵을 선반에 넣었다. 어제 남겨 둔 빈자리가 오늘 작은 일을 덜어 줬다. 이준은 내일도 똑같이 될 것이라고 적지 않고 불을 하나 줄였다. 자기 방은 그 정도의 반복으로도 조금 편해질 수 있었다.
밤 열한 시 전, 그는 새 책 대신 책갈피의 뒷면을 폈다. 태오의 그림에서 자기가 앉고 싶었던 모서리를 짧은 선으로 그려 봤다. 생각보다 못 그렸다. 의자를 놓을 자리가 종이 밖으로 나가 있었다. 이준은 웃고 한 장 더 꺼냈다. 남의 그림에 물었던 질문을 자기 손으로 받아 볼 밤이었다. 접수번호 없는 종이 위에 첫 다리가 비뚤게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