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장갑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구청 별관 앞 벤치에서 강이준을 기다리던 사람이 일어섰다. 얇은 작업 장갑의 손목이 말려 있었다. 그녀는 인사하면서도 오른손으로 그 끝을 만졌다. 이준은 그 손부터 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강이준입니다. 면담 요청하신 분이죠?”
“한지완이에요. 장갑 안에 든 걸 먼저 보여 드려야 하나 해서요.”
“아뇨. 앉을 자리부터요.”
벤치 한쪽이 젖어 있었다. 이준은 마른 쪽을 가리키고 윤단을 소개했다. 지완은 동행자가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밖의 연락과 기록을 맡았다. 이름을 밝힌 뒤에도 여자는 신분증을 내밀지 않았다. 이준은 요구하지 않았다.
밤 열한 시가 막 지났다. 이준은 전날 하루를 쉬고 오늘 출근했다. 새 봉합은 없었고 손목에 채무 표시도 없었다. 비어 있는 여력이 지완에게 필요한 답을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지완이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손목 안쪽에 흰 선이 있었다. 이준의 자국과 같은 방향으로 가늘게 휘었다. 그 아래 사십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떠 있었다.
이준은 자신의 소매도 걷었다. 지완의 눈이 두 손목 사이를 오갔다.
“저 숫자, 보이세요?”
“네. 반장님은 제가 읽어 드려야 합니다.”
윤단이 자기는 자국만 보인다고 말했다. 지완은 팔을 내리고 긴 숨을 내쉬었다. 혼자만 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온 사람의 숨 같았다. 이준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기록할 말로 바꾸지 않았다.
“누가 저더러 선배라고 했습니까?”
그가 물었다. 지완이 봉투를 펼쳤다. 안내지에 기존 수리자와의 상호 확인을 권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도겸 쪽 작업 배정 창구에서 받은 연락 경로였다. 사적인 번호 대신 센터의 기존 문의 창구로 연락했고 오늘의 면담이 잡혔다.
이준은 그 이름을 듣고 얼굴부터 굳히지 않으려고 봉투의 날짜를 읽었다.
지완은 외부 시설 보조 일을 하다가 야간 표식을 보게 됐다고 했다. 시범 구역 보강 때 배정을 받았고 그 뒤에도 별도 작업이 있었다. 앞선 누수 두 곳과 그 보강의 인과를 아느냐는 질문에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준도 자기가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말했다.
지완은 손목보다 종이 쪽을 더 자주 봤다. 안내에는 새 작업자의 인수 부담이 적혀 있었다. 기존 수리자 미상환분 팔십 분을 초기 승계하고, 실제 작업 대가는 별도로 정산한다는 내용이었다.
“제가 그분을 밖으로 나오게 한 값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누가 나왔는지는 안 알려 주더라고요.”
이준의 손이 잠깐 멈췄다. 선재는 나오지 않았다. 자신도 누가 자신을 대신해 잠을 갚았다는 안내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는 문장에서 그 이름을 먼저 꺼낼 수는 없었다.
“저한테 알려진 규칙에는 본인 채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지완은 고개를 곧바로 끄덕이지 않았다.
“알려진 규칙 말고, 지금도 그런지 보고 싶어요.”
맞는 질문이었다. 이준이 먼저 왔다는 이유로 새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는 미서에게 지완 본인의 해당 정산 내역과 안내 문구를 대조할 수 있는지 요청했다. 다른 수리자의 이름과 부채는 필요하지 않았다.
윤단은 두 사람에게 오늘 현장 작업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한 봉합은 없었다. 지완은 그 말을 듣고 접힌 작업표를 가방에서 꺼냈다. 수락 여부를 아직 보내지 않은 새 의뢰였다.
“여기 오면 이것도 받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이준은 자신이 처음 창구에 들어가던 밤을 떠올렸다. 설명을 듣는 것과 일받는 것이 섞이는 속도는 빨랐다. 그는 먼저 미수락 상태를 연락 창구에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거절문을 작성해 주지는 않았다. 지완이 읽고 자기 답을 정해야 했다.
실물 작업표와 각자의 표식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은 윤단과 함께 들어갔다. 같은 문으로 돌아올 시간을 맞췄다. 지완이 문턱에서 멈추자 이준도 멈췄다. 처음 보는 0층은 아니지만 혼자 들어왔을 때와 다르다고 했다.
“나올 때도 숫자를 세나요?”
그녀가 물었다.
“네. 오늘 들어간 셋하고 나온 셋이 맞아야 합니다.”
미서는 창구 바깥 의자를 하나 더 놓았다. 지완은 앉기 전에 여기가 설명을 듣는 자리인지 물었다. 미서는 그렇다고 답하고 새 작업표를 접수 서랍에 넣지 않았다. 그 작은 구분을 지완이 눈으로 확인했다.
대조에는 시간이 걸렸다. 지완은 어젯밤 자기가 한 작업 하나의 번호를 내놓았다. 실제 조치와 다음 담당을 확인한 뒤 봉합했고 다음 수면 대가 사십 분을 수락했다고 했다. 그날 낮에는 자지 못하고 정산 안내만 찾았다고 덧붙였다.
윤단이 얼굴색을 보고 물을 권했다. 지완은 물병을 받았지만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는 않았다. 손이 아직 무겁다며 오늘 추가 작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준은 그 말을 자기 뜻처럼 보태지 않았다.
미서가 일반 규정의 해당 문장과 지완 본인의 작업 정산란을 나란히 놓았다. 실제 봉합 한 건의 사십은 본인 수락 기록과 일치했다. 초기 승계 팔십은 별도 배정 안내에만 있었고, 정식 수리자 채무로 인수된 기록은 없었다.
지완이 손목을 들었다.
“그럼 저는 백이십이 아니라 사십인 겁니까?”
“현재 확인되는 본인 수면 채무는 사십 분입니다. 타인의 채무를 승계하는 항목은 이 정산 규정에 없습니다.”
미서가 말했다. 숫자는 또렷했다. 이준은 처음 창구에 왔을 때도 그 문장을 들었다. 그때는 자기 잠이 얼마나 나가는지 물었다. 오늘은 다른 사람에게 같은 문장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보고 있었다.
지완은 팔십이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렸다. 아직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제가 그 사람 대신 갚기로 서명은 했어요. 설명 받았다고.”
미서는 지완이 가져온 서명지를 읽었다. 수령 확인과 승계 동의가 한 칸에 붙어 있었다. 그 서명이 정산 규정에 없는 채무 이전을 새로 허용해 주지는 않았다. 별도 금전 청구나 다른 부담이 연결됐는지는 배정 창구에 공식 확인이 필요했다.
미서는 안내지의 정정 요청과 채무 범위 확인서를 발급했다. 지완은 원본을 돌려받고 필요한 사본만 남겼다. 서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서명으로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문서가 하나 더 생겼다.
“이걸로 이미 덜 잔 잠도 돌아옵니까?”
지완이 물었다.
미서가 잠깐 펜을 멈췄다.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표시된 사십 분은 아직 상환 전입니다. 오늘 쉬신 뒤 실제 상태와 정산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지완은 고개를 숙였다. 이준도 자기 첫날의 기록을 떠올렸다. 잠든 시각과 피로를 적었지만 정확히 사십 분이 줄었다고 시계로 증명하지는 못했다. 잘못 들은 안내 때문에 밤새 걱정한 시간까지 숫자로 고칠 수는 없었다.
그는 지완에게 오늘 운전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여자는 버스로 왔다고 했다. 돌아갈 차편과 동행 연락을 확인했고, 다음 면담은 수면 뒤 가능한 시간으로 잡았다. 지금 쉬어야 한다는 말이 또 다른 수락 의무가 되지 않게 각자 할 일을 나눴다.
창구 옆에서 선재의 기침이 들렸다. 지완은 고개를 돌렸지만 계단 쪽으로 가지 않았다. 이준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승계 안내를 고치려고 선재의 생애를 대가로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지완이 물을 마시려다 병뚜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준이 주워 탁자 위에 놓자 여자가 소매로 닦으려 했다. 미서가 새 종이컵을 가져왔다. 오늘 이 창구에서 가장 빨리 끝난 인계였다.
“이런 것도 다 기록합니까?”
지완이 물었다. 미서는 고개를 저었다. 정산과 관련 없는 물 한 컵이라고 했다. 지완은 그 말을 듣고 물을 조금 더 마셨다.
이준은 자기 앞의 빈 컵도 함께 치웠다. 누구의 빚인지 묻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일은 있었다. 처음 와서 모든 물건에 값이 붙을까 걱정하던 밤의 자신에게도 누가 이렇게 설명해 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미서가 지완에게 미수락 작업표를 돌려줬다. 지완은 잠깐 읽고 접수 전 거절 양식을 요청했다. 이준은 자기가 썼던 사유를 알려 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완이 직접 썼다. 오늘은 피로 때문에 안전한 작업을 수행할 수 없으며, 배정 안내의 채무 범위가 정정될 때까지 추가 의뢰를 받지 않음. 시민 부담 전체를 검증했다는 문장은 없었다. 자신의 지금 이유로 충분했다.
도장이 찍혔다. 지완은 사본을 가방의 가장 마른 칸에 넣었다.
“거절하면 오래된 분한테 다시 넘어갈까 봐 못 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준은 대체 작업자라는 자기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돌아와야 할 사람을 내밀면 새 사람의 손을 잡기 쉬웠다.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분 몫을 당신 혼자 받는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지완은 잠깐 이준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가 다 된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머니에 넣은 손은 더는 장갑 끝을 뜯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기 전 미서가 두 사람을 불렀다. 안내지의 발급 경로를 정식으로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준은 그 말에서 도겸의 지시를 이미 찾았다는 뜻을 듣지 않았다. 누가 작성하고 승인하고 전달했는지 각자 다른 질문이 남았다.
지완은 미서에게 자기 자료 사용 범위를 다시 물었다. 감사 자료 보완에는 이름을 가리고 쓸 수 있었고 다른 수리자들에게 알릴 때는 새로 확인받기로 했다. 이준은 그 선택을 듣고 자기 파일의 빈칸을 덮었다.
별관 앞 벤치의 젖은 부분은 여전히 말라 있지 않았다. 이준은 지완의 버스가 오는 쪽까지 함께 걸었다. 오늘 밤 금을 본 손 둘이 아무것도 봉합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장갑 크기는요?”
그가 문득 물었다. 지완이 자기 손을 봤다.
“작은 걸 써요. 왜요?”
“처음엔 그걸 먼저 물으라고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늘도 너무 늦게 물었네요.”
지완이 처음으로 웃었다. 손에 맞는 장갑도 못 받고 선배 빚부터 받았다고 했다. 이준은 그 농담에 웃고 나서 필요한 보호구를 정식 배정 창구에 요청할 수 있다고 알려 줬다. 개인 빚으로 선물할 일은 아니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지완은 창밖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흰 선이 있는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손 한 개가 자리에 앉았다.
태오가 복귀 인원 셋을 확인하고 기록을 닫았다. 이준은 미서에게서 받은 확인서 번호를 읽었다. 새 봉합 영, 새 대가 영. 지완의 사십은 지완 자신의 실제 작업 한 건으로 남았다. 그 값을 대신 갚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오늘은 조금 어려웠다.
그때 별관 안쪽에서 미서의 전화가 왔다. 정정 요청을 넣는 동안 새 공문이 도착했다고 했다. 이준은 아직 벤치 옆에 서 있었다.
“장부 관리 일원화에 따른 원본 회수 통지입니다.”
미서가 말했다.
“오늘 대조한 수리자 정산란뿐 아니라 시민 부과 원장도 대상에 들어 있습니다. 내일 밤까지 인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