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선은 이름표를 만들지 않았다.
재단하고 남은 흰 천을 카운터에 올려 두었지만 글자를 쓰지는 않았다. 강이준이 신원 심사 일정을 전하자 그녀는 천을 반으로 접었다. 돌려받기 전에 먼저 꿰맸다가 또 옷만 기다리게 될까 봐서라고 했다.
이준은 그 말에 자기 파일을 더 단단히 쥐었다. 같은 날짜의 낮 두 시였다. 새벽 두 시 반에 귀가해 아침까지 잔 뒤 다시 낮잠을 보탰다. 깼을 때 손목의 사십은 사라졌다. 미서의 상환 확인도 받았다. 영 시 사십육 분의 봉합은 아직 이십사 시간 안에 한 건으로 남았다. 잠을 갚았다고 사용 횟수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몸이 무거웠다. 그는 세탁소 의자에 먼저 앉았다. 효선은 눈 밑을 보더니 차 대신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늦자 안쪽에서 작은 도시락을 꺼냈다.
“오빠 이름 찾는 날이라고 네 점심을 빼면, 그 이름이 밥도 못 먹게 하는 이름이 되잖아.”
이준은 젓가락을 받았다. 누군가를 되찾는 일이 오늘 살아 있는 사람의 점심을 밀어내서는 안 됐다. 그는 반쯤 먹은 뒤에야 서류를 펼쳤다.
태오가 가져온 목록에는 대조가 끝난 항목과 오늘 확인할 항목이 나뉘어 있었다. 옛 근무표, 급여 기록의 해당 기간, 수령 경위가 남은 작업복 사진, 현존 확인. 계좌와 주소는 가려졌다. 원본은 담당 기관에 남아 있었다.
효선의 종이 띠와 회색 작업복도 가게에 있었다. 오늘 가져갈 것은 정해진 사본뿐이었다. 그녀는 원본이 자기 곁에 남는다고 해서 일이 덜 된 것 같다고 하지 않았다. 기록은 가방 안에 많을수록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
오후의 원본 대조에는 기록 담당자와 신원 확인 부서 직원이 함께 왔다. 이준은 직접 본 사람의 위치와 관찰 시각만 설명했다. 선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을 대신 골라 주지 않았다. 효선은 갈색 실 한 땀의 이유를 다시 말했다.
직원은 그 설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어느 한 가지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사진 속 손과 얼굴, 연속된 근무 번호, 반환되지 않은 종료 기록을 함께 대조했다. 태오는 그들이 읽을 수 있는 종이를 정해진 순서대로 건넸다.
“이분의 전부를 증명하는 건 아니군요.”
이준이 말했다.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같은 작업자라는 대조입니다. 과거의 선택이나 모든 채무까지 확인하는 절차는 아닙니다.”
그 대답이 차갑게 들리지 않았다. 이름 하나를 돌려받기 위해 한 사람이 자기 인생 전체를 변호할 필요는 없었다.
옛 자료의 한쪽에는 선재가 바꾼 부품 번호가 연필로 적혀 있었다. 태오가 그것을 가리키자 효선이 웃었다. 오빠는 영수증 뒷면에도 부품을 적었다고 했다. 집에 와서 다른 말을 물으면 그 숫자부터 대답했다.
“그럴 때는 내가 사람 얘기 하라고 했지.”
효선의 웃음이 짧게 멎었다. 이준은 선재가 처음 자신을 보고 새 부품이 왔느냐고 묻던 순간을 떠올렸다. 물건의 이름을 말하던 사람이 자기 이름보다 먼저 일을 지키고 있었다.
낮의 대조는 끝났다. 최종 확인은 밤에 본인이 선택해서 받을 차례였다. 효선은 저녁 장사를 닫고 같이 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오늘 허가받은 동행 범위와 선재의 의사부터 물었다.
윤단이 말했다. 현재 통로는 현장 인원만 들어갈 수 있고, 가족 방문은 별도 안전·출입 검토가 필요하다고. 이름 복원이 곧바로 방문 허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효선은 접은 천을 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오늘 내 말을 들어도 되는지 먼저 물어봐. 내가 말하고 싶은 것만 있으면 안 되니까.”
그녀는 전화 앞에서 울지 않을 거라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이준은 그 약속을 요구할 수 없었다. 효선의 번호가 적힌 쪽지만 별도 칸에 넣었다.
밤 열한 시 십오 분, 별관 뒤 통로에 도착했다. 담당자는 전날 남쪽의 배수 확인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쪽은 재점검 뒤 급수가 돌아왔으나 추가 안내가 남았다. 도시는 한 사람의 이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이준과 윤단은 표식과 실물 작업표를 함께 확인하고 같은 문으로 들어갔다. 새 봉합은 필요하지 않았다. 손목에는 숫자가 없었다. 최근 사용 횟수 한 건이라는 메모가 파일 첫 칸에 있었다.
미서는 창구 위의 이름란을 흰 종이로 가리고 기다렸다.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선재에게 보여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신원 확인 담당자는 허용된 출입 범위 안에 동행해 있었다. 밤의 글자를 볼 수 없는 사람이 확인할 실물 자료도 따로 준비됐다.
계단 아래 선재는 등받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새 작업복은 벽에 걸려 있었고 무릎에는 효선이 보낸 수건이 놓였다. 그가 이준을 보더니 물었다.
“오늘은 내 이름 물으러 왔나.”
“네. 다만 대답을 기억으로만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이준은 낮의 대조가 어디까지 끝났는지 설명했다. 담당자는 절차를 천천히 읽었다. 선재는 두 번 되물었다. 이름을 올리면 다른 사람의 빚을 자기 것이었다고 인정하는지, 여기서 바로 나가야 하는지.
두 질문 모두 아니었다.
미서는 불리한 부분까지 먼저 말했다. 작업자 등록은 회복할 수 있지만 중앙 관리 잠금과 시민 연계 채무는 별도 심사가 남는다. 복원에 동의하더라도 그 부채의 적법성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종이에 적었다.
선재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내가 여기 있었던 걸 적는 데, 남의 잠까지 내가 받았다고 쓰지 않는 거지.”
“그렇습니다.”
미서가 대답했다. 선재는 수건을 접어 옆에 놓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이준은 펜을 대신 쥐어 주지 않고 받침을 안정된 자리로 옮겼다.
담당자가 본인 확인 질문을 했다. 기억이 불확실한 것은 선재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옛 근무 구역은 알고 있었고, 일부 연도는 틀렸다. 직원은 틀린 답을 지우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확인한 물리 자료와 본인 진술을 나눠 기록했다.
이준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 속에서 조여 있던 것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 선재가 정답을 전부 말해야만 이름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선재는 자기 이름을 직접 썼다.
고선재.
첫 글자가 조금 기울었다. 재차 반듯하게 쓰겠다는 말에 담당자는 읽을 수 있으며 다시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서는 해당 등록과 잠겨 있던 일반 조회를 분리하고 복원 시각을 적었다.
이준의 눈에 창구의 노란 글자가 움직였다. 미확인 작업자라는 표시가 사라지고 이름 세 글자가 남았다. 그러나 선재의 발목에서 배관으로 이어진 종이들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서 한 걸음 나왔다가 다시 멈췄다.
물리적인 쇠사슬은 없었다. 오늘도 나갈 수 없는 이유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가벼워지지는 않네.”
선재가 말했다. 이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서가 복원 사본을 내밀었다. 노인은 그것을 받고 한동안 이름 위에 엄지를 얹었다.
“그래도 이제 누구 거냐고 묻지는 않겠네.”
그가 천천히 웃었다. 이준은 그 웃음을 보고서야 숨을 내쉬었다. 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기 손에 든 종이가 자기 것이라는 작은 문이 열렸다.
이준은 효선의 제안을 전했다. 전화를 받을지, 오늘은 쉬고 다른 날 들을지 선재가 정해도 됐다. 노인은 주머니를 만지려다 새 옷이 아직 벽에 있다는 것을 보고 손을 내렸다.
“지금 해도 되나. 길게는 못 하겠어.”
윤단은 통화가 가능한 안전 구역과 담당자의 대기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은 선재의 무릎 앞 작은 받침에 놓였다. 녹음은 하지 않았다. 이준은 효선에게 먼저 상대가 짧은 통화를 원한다고 전했다.
신호가 두 번 울렸다.
“오빠.”
효선은 그 말 뒤에 아무것도 잇지 못했다. 선재도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배관 물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이준은 화면을 보지 않고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선재야.”
노인이 말했다. 이름을 확인하는 데 쓰던 낮은 목소리였다.
“알아.”
효선이 대답했다. 그 뒤에 작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네 이름 내가 더 오래 불렀는데, 누가 모른대.”
이준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전화 너머에서 누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 이렇게 많은 허락과 기다림이 필요할 줄 몰랐다. 그래도 통화는 돌아왔다는 보고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아직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다.
선재는 새 작업복 주머니가 반대쪽이라고 말했다. 효선이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에는 맞춰 주겠다고 했다. 언제인지 정하지 못한 약속이었지만 누구도 오늘 다 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짧은 통화가 끝났다. 선재가 먼저 손을 들었다. 몸이 피곤하다고 했다. 이준은 휴대폰을 받았고 윤단은 담당자에게 상태를 전했다. 선재는 의자에 기대 복원 사본을 옆 상자에 놓았다.
“저 이름은 밖에 전해도 돼. 오늘 한 것까지.”
노인이 말했다. 남은 날에 관한 비공개 말은 여전히 따로였다. 이준은 전할 범위를 다시 확인하고 더 묻지 않았다.
창구로 돌아오자 미서가 어젯밤의 시민 동의 항목을 펼쳤다. 이름 복원으로 이준에게 남의 기록을 볼 권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름과 시간을 가린 연결 부분만 보여 줬다.
그 줄에는 개인 동의 대신 지역 유지 대표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확인 문서의 원본 번호는 있었지만 당사자별 서명지는 첨부되지 않았다. 그것이 원래 없는지 다른 곳에 있는지는 아직 몰랐다.
“선재 씨의 복원이 이 문서를 통과시켰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서가 먼저 말했다.
“그러면 누가 대표였는지 물어야겠네요.”
이준이 대답했다. 미서는 원본 대조 요청의 경로를 적었다. 도겸의 이름은 그 칸에 없었다. 오늘 밤 안에 보고 싶은 마음으로 빈칸을 채울 수는 없었다.
윤단은 연결 문서와 실제 시설 도면의 번호를 나란히 적었다. 태오에게 확인을 부탁하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태오가 말했다.
“센터가 받은 도면에는 그 중앙선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관 목록에는 같은 번호의 부속도가 한 장 더 있어요.”
이준은 복원 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되찾은 이름 뒤로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일이 길게 이어졌다. 이름은 이제 누락된 사람이 아니라 이 일을 물을 사람의 것이기도 했다. 그는 담당 부서에 부속도 열람 신청을 남겼다.
출구 앞에서 미서가 그를 불렀다. 첨부 목록을 더 읽은 모양이었다.
“그 부속도는 시설지원센터로 정식 배포된 자료가 아닙니다. 중앙 유지 승인자의 서명이 있어야 시행되는 도면입니다.”
윤단이 돌아섰다.
“그럼 실제로 시행됐는지와, 누가 승인했는지를 같이 봐야겠네요.”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 아래에서 선재가 자기 이름을 한 번 더 읽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두고 문을 나서기 직전, 태오가 새로 확인한 보관처를 말했다.
시범 사업 문서함이 아니라, 총괄국의 미배포 부속도 보관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