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는 다섯 사람이 있었다.
강이준은 열일곱이라는 숫자를 지우고 다섯이라고 적었다. 장부가 틀린 건지, 이미 떠난 사람이 있는 건지는 아직 몰랐다. 지금 손전등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섯이었다.
노인은 빈 장바구니 손잡이에 기대 있었다. 젊은 남자는 목에 작업용 수건을 걸쳤고, 나란히 앉은 여자 둘은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봤다. 마지막 한 사람은 벤치 끝에 누운 동료의 발이 길로 나오지 않도록 자기 가방을 받쳐 주고 있었다.
다섯이 아니었다. 이준은 펜을 멈췄다.
“반장님, 누운 분까지 여섯입니다.”
“다시 세면 돼. 먼저 상태 보고.”
누운 남자는 부르자 몸을 일으켰다. 막차를 놓쳐 눈을 붙이고 있었다고 했다. 이준은 그가 깨어 대답하는 것을 확인한 뒤 교통 담당자에게 인원을 넘겼다. 숫자가 사람을 가리는 건 장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방금 버스 갔다는 거예요?”
작업 수건을 두른 남자가 물었다. 교통 담당자는 배차실의 확인 내용을 다시 말했다. 마지막 차는 새 정류장을 정상 통과했다.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임시 승강장이었다.
여자 하나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지도에는 여전히 이 정류장이 찍혀 있었다. 벤치 위의 시간표에도 막차 시각이 남아 있었다. 오 분 전이었다.
“여기서 기다리래서 기다렸는데요.”
이준은 가로등 아래 선 간판을 봤다. 흰 글씨는 멀쩡했다. 밤에만 보이는 노란 선이 정류장 이름에서 도로 반대편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선 중간에는 목적지 대신 빈 네모가 떠 있었다.
그는 간판을 건드리지 않았다. 담당자가 막차를 놓친 승객들의 이동을 먼저 확인했다. 배차실은 회차 중인 차량의 임시 경유 가능 여부를 검토했다. 윤단은 길가로 나온 사람들을 벤치 안쪽으로 안내했다.
“시간이 다르게 가는 건 아니죠?”
잠들었던 남자가 말했다. 이준은 휴대폰과 정류장 전광판을 번갈아 봤다. 분 단위 표시는 같았다. 아까 버스가 통과한 시각도 배차 기록과 맞았다.
“시간보다 장소 안내가 어긋난 것 같습니다.”
“그럼 기다린 건 돌려줘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는 웃지도 않았다. 출근이 늦는 것보다 귀가가 늦는 게 나을 줄 알았는데, 둘 다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준은 손목을 봤다. 자정이 넘어 전날의 출구 봉합도 이십사 시간 범위에서 빠져나갔다. 상환도 확인했으니 세 번의 여력은 있었지만, 지금 저 남자의 기다린 시간을 고칠 수는 없었다.
“오늘 이동부터 연결하겠습니다. 안내 누락 접수도 남기고요.”
그는 할 수 있는 것만 말했다. 남자는 잠깐 이준의 얼굴을 보다가 가방에서 구겨진 근무표를 꺼냈다. 필요한 차편을 담당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오가 가져온 이전 접수 사본이 보닛 위에 놓였다. 원본은 센터에 있었다. 교통 담당자의 문서와 태오의 사본은 이전 날짜가 같았다. 철거 항목에는 완료가 찍혀 있었고 새 간판 설치도 완료였다.
그런데 안내물 부착과 노선 정보 변경은 둘 다 다음 담당에게 넘어가 있었다. 다음 담당의 이름은 없었다.
“낮에는 확인 차량이 왔어요.”
옆 건물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관리인이 말했다.
“간판 사진만 찍고 갔는데. 벤치도 없어지는 줄 알고 우리가 의자까지 안쪽에 빼 놨죠.”
이준은 벤치 다리 밑의 끌린 자국을 봤다. 가벼운 일처럼 보이는 변화에도 누군가는 자기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주민들은 통지를 전혀 받지 못한 게 아니었다. 자기 몫의 통지는 받았는데 승객에게 건너갈 통지가 끊겼다.
교통 담당자가 서류의 야간 이관 도장을 가리켰다.
“이걸로 완료 취급한 게 이상하네요. 저희 쪽 인수자가 없습니다.”
윤단은 도장만 보고 위조라고 하지 않았다. 누가 보냈고 누가 받았는지 확인 요청부터 넣었다. 담당자는 임시 안내를 붙이는 작업과 정보 수정 요청을 나눠 진행했다.
그사이 버스가 돌아왔다. 길 건너에서 황색 표시등이 깜빡였다. 승인된 경유 노선으로 돌아온 차였다. 기사는 승객이 다 탈 때까지 문을 열어 두었다.
이준은 노인의 빈 장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바퀴 한쪽이 손에 걸렸다. 지하차도에서 만난 그 노인이 맞았다. 약 봉투는 없었지만 손잡이에 감은 녹색 끈이 같았다.
“이번엔 비도 안 오는데 자네가 또 있네.”
“이번엔 물 말고 안내가 샙니다.”
노인이 짧게 웃었다가 좌석을 봤다.
“나야 집에 가면 되지만 저 젊은 사람은 다시 나와야 해. 잠을 언제 자겠어.”
이준은 돌아봤다. 작업 수건의 남자는 내릴 정류장을 기사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귀가 후 두 시간만 지나면 아이를 맡기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 전에 배송장에 들러 다음 조에 보관함 열쇠도 넘겨야 한다고 했다. 누구에게 하는 푸념도 아니었다. 맞출 수 없는 시간표를 소리 내 읽는 것 같았다.
여섯 사람이 올라탔다. 윤단이 숫자를 되읽었고 기사가 확인했다. 차가 출발하자 노인은 유리창 너머로 손을 들었다. 이준은 장바구니 바퀴에서 떨어진 흙을 장갑으로 털었다.
작은 현장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간판의 노란 선은 여전히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미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앙 연결구의 같은 장부에 대기 중 여섯, 이동 여섯이라는 숫자가 함께 찍혔다고 했다. 이준은 방금 센 인원이 바뀐 것을 설명했다.
“열일곱은 현재 인원이 아닙니다. 앞선 기록들의 합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남겨 두겠습니다. 다만 같은 시간 항목이 이동 뒤에도 닫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갔는데 계속 기다린다고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실제 시간을 돌려놓거나 바꾸는 뜻은 아닙니다.”
이준은 간판 가까이 갔다. 종이에 붙은 완료 도장 주변으로 빛이 돌았다. 이전된 정류장과 남은 정류장이 하나의 장소로 겹쳐 있었다. 이동 여섯은 새로운 곳으로, 대기 여섯은 지워지지 않은 옛곳으로 묶여 있었다.
“사람이 떠난 걸 접수 안 하는 건 문하고 같네요.”
윤단이 말했다.
“같아 보인다는 건 알겠어. 여기 원인은 확인했나?”
이준은 실물 간판, 수정 중인 안내 정보, 담당자가 인수한 접수번호를 차례로 불렀다. 윤단은 안내 수정이 실제로 반영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준도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마음이 먼저 일을 끝내려고 달려가고 있었다.
교통 담당자는 오래된 안내판을 가리고 임시 안내물을 붙였다. 새 정류장의 위치는 길을 아는 사람에게만 통하는 약도로 끝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걷는 방향에서 보이는지, 벤치 뒤로 가려지지는 않는지 직접 확인했다.
이준은 반대쪽 골목으로 걸어가 읽어 봤다. 가로등 때문에 글자가 번졌다. 담당자는 게시 위치를 고쳤다. 그 작은 수정을 세 번이나 하는 동안 아무 숫자도 신기하게 줄어들지 않았다. 대신 지나가는 사람이 멈춰 서서 새 승강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새 정류장까지 길을 안내하고 돌아오자 태오가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위치 정보도 수정 접수됐고, 첫차 출발 전 현장 확인 담당까지 정해졌다. 즉시 바뀌지 않는 지도 서비스에는 별도 안내가 필요했다. 완료 대신 확인 대기라고 남겼다.
“내일 아침에도 누가 여기에 서 있을 수 있어요.”
태오가 말했다.
“그래서 첫차 시간에는 사람도 남겨 둡니다.”
교통 담당자가 대답했다. 이준은 그 사람의 조끼에 붙은 이름을 한 번 더 읽었다. 다음 담당은 이번에는 비어 있지 않았다.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전기 설비가 없는 안내판의 기둥으로 손을 뻗었다. 위험 상태 확인과 통행 통제가 끝난 자리였다. 실제 원인은 안내와 인수의 끊김이었다. 물리적인 안내와 다음 확인은 이미 이어졌다.
[대가: 다음 수면 40분.]
이준은 조건을 읽고 수락했다. 옛 정류장에서 나가는 선을 붙잡아 새 이름 아래로 옮겼다. 손끝에 느껴지는 저항은 끈적했다. 지나간 시간을 되감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미 이동한 사람들을 아직 거기 있다고 부르는 잘못된 매듭을 푸는 쪽이었다.
숨을 내쉬자 선이 짧아졌다. 빈 네모에 확인 대기라는 글자가 들어갔다. 빛은 안내판 아래에서 희미하게 멎었다. 잠정 봉합이었다. 해가 뜬 뒤에도 실제 확인을 해야 했다.
이준은 무릎에 손을 얹었다. 첫 번째였는데도 눈 밑이 뜨거웠다. 사용 횟수가 비었다고 피로까지 빈칸은 아니었다. 윤단이 물을 건넸다.
“이번엔 내 이름만 쓰지 말고요.”
이준이 말했다. 반장이 그를 봤다.
“담당자 이름, 기사님 이름, 여기 있던 사람들도 다요. 제가 고친 것처럼 끝나면 또 틀려집니다.”
윤단은 그의 메모를 받아 접수표 뒤에 붙였다. 이미 교통 담당자가 자기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준은 말을 너무 늦게 했다는 생각에 조금 웃었다.
태오가 미서에게 결과를 전달했다. 잠시 뒤 이준의 휴대폰에도 답이 왔다. 대기 항목은 닫혔고 중복 부과는 확인 보류로 묶였다. 그러나 앞서 빠져나간 대기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돌려받은 건 아니네요.”
이준이 말했다.
“지금 더 빠지는 걸 막은 겁니다.”
미서의 목소리에는 위로가 없었다. 그 편이 나았다. 놓친 막차와 줄어든 잠이 한 번의 봉합으로 없어진다면, 처음부터 버스에 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태오가 기록을 분리했다. 실제 귀가 지연, 정류장 등록 누락, 장부의 시간 부과. 앞의 둘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아직 이준의 관찰과 정산소의 기록에 머물렀다.
“이 도장을 누가 찍었는지 찾으면 연결할 수 있을까요?”
태오가 물었다. 이번에는 말끝이 흐려지지 않았다.
윤단은 야간 이관 도장이 남은 사본을 봉투에 넣었다.
“도장 주인이 할 말도 듣고. 그전에 원본이 없어지지 않게 보존 요청하고.”
길가의 빗물이 차가 지나갈 때마다 반짝였다. 비가 새로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의 물이 낮은 곳에 남아 있었다. 이준은 그 물을 피해 새 정류장 쪽을 한 번 더 봤다.
어느 쪽이든 기다리는 사람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차가 지나갔다고 길이 제 일을 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미서가 다시 전화했다. 봉합한 정류장 항목 아래에 두 장의 연계표가 남았다고 했다. 하나는 새벽 배송장 적재 승강기, 다른 하나는 그 위의 공용 대피 통로였다.
윤단이 교통 담당자와 분리해 센터 출동 요청을 받았다. 막차에 탔던 작업 수건의 남자가 배송장에서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집에 가기 전 열쇠를 넘기러 들른 곳이었다. 그 작은 인계마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승강기는 정지했고 사람은 밖에 있대. 그런데 위층 통로에 작업자가 남았어.”
이준은 손목의 사십을 봤다. 남은 여력은 두 건이었다.
전화 너머에서 남자가 말했다. 버스 기사에게 목적지를 설명하던 그 목소리였다.
“여기는 퇴근했다고 뜨는데, 우리 반장님은 아직 문 안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