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있어.”
고효선은 천 조각을 보자마자 물었다. 이준이 준비한 설명보다 손이 빨랐다. 비닐 파일을 잡은 그녀의 손톱이 투명한 면 위에서 희게 눌렸다.
“중앙 연결구 안입니다. 살아 계셨어요.”
다리미에서 김이 올라왔다. 효선은 그것을 세워 놓지 않았다. 윤단이 플러그 쪽을 살피며 한 걸음 움직이자 그제야 손을 놓고 다리미를 바로 세웠다. 평소라면 손님보다 먼저 했을 일이었다.
“그럼 차 가져와. 문 열렸을 때 가야지.”
“지금은 낮이라 밤의 경로가 안 열립니다.”
“밤까지 기다리면 또 데리고 나와야 할 사람이 늘어?”
이준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효선이 파일을 내려놓았다. 화를 내려고 힘을 주던 손이 오히려 작게 떨렸다.
그는 의자를 당겼다. 자기 몫이 아니라 효선의 무릎이 닿는 곳에 놓았다. 그녀가 앉지 않자 더 밀지는 않았다.
“저희 둘은 나왔고, 선재 씨는 남았습니다. 발목에 연결된 종이들을 건드리면 무엇이 끊기는지 아직 모릅니다.”
“사슬도 아니고 종이가 사람을 못 나오게 해?”
“저도 그 부분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진 걸 먼저 보여 드리려고 왔어요.”
미서의 수령 기록, 윤단이 찍은 실물 사진, 이준의 관찰 메모. 세 종류를 나란히 놓았다. 사진에는 어두운 계단과 작업복 차림의 노인이 보였다. 일반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것은 금과 숫자였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의 얼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효선이 사진을 들었다. 화면을 확대하지 못해 이준이 휴대폰을 건넸다. 그녀는 뺨이나 눈보다 남자의 엄지를 먼저 오래 봤다.
“손은 그대로네.”
낮은 목소리였다. 이준은 약 넣는 주머니 이야기를 전했다. 옷을 아직 버리지 않았느냐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효선의 입이 잠깐 일그러졌다.
“그 바보가. 버릴 거면 진작 버렸지.”
카운터 아래에서 철제 상자가 나왔다. 효선은 오래된 회색 작업복을 펼쳤다. 지난번에는 팔꿈치의 파란 실만 보였는데, 이번에는 안감의 작은 매듭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덧댐 천의 바깥이 아니라 뒤를 뒤집었다. 수선할 때 접어 넣은 가장자리에 갈색 실 한 땀이 있었다. 처음 고를 때 실이 모자라 다른 실패에서 꿰었다고 했다.
“파란 것만 보면 흔한 옷이야. 나는 이걸 알아.”
이준은 새로 받은 천 조각을 비닐 위에서 돌렸다. 한쪽 끝에 갈색 실이 짧게 남아 있었다. 효선은 조각을 꺼내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태오가 인수 기록에 용도를 더하고 장갑을 내밀었다.
“내가 꿰맨 옷 만지는데 장갑까지.”
그녀는 투덜대면서도 장갑을 꼈다. 천 조각을 옛 작업복에 억지로 붙이지 않고 나란히 놓았다. 파란 실의 굵기, 접힌 폭, 갈색 한 땀. 닮은 점이 늘어날수록 효선은 말이 없어졌다.
태오는 그것만으로 신원 등록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효선의 설명을 언제 들었는지, 두 천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적었다. 여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흔적이 한 줄씩 모였다.
“센터에 근무 자료 남아 있습니다. 사진하고 같이 대조 요청하겠습니다.”
“요청하면 그 사람이 내 오빠가 돼?”
“오빠인 걸 남들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효선은 그 말을 듣고 천 조각을 내려놓았다. 장갑을 벗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손가락 하나를 빼다가 다시 멈췄다.
이준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세탁기 한 대가 멎었다. 젖은 옷이 유리 안쪽에 달라붙었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누군가의 퇴근복일 것이다. 평범한 옷들은 이렇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효선은 마침내 의자에 앉았다.
“어젯밤에는 네가 먼저 나왔다고 했지.”
“네.”
“잘했어.”
그가 고개를 들었다. 효선은 사진을 보고 있었다.
“옷은 사람 돌아온 다음에 꿰매. 너까지 안 돌아오면 옷만 늘어.”
이준은 대답 대신 컵을 받아들었다. 물은 따뜻했다. 오전 내내 잤는데도 손끝이 무거웠다. 자는 동안 사십이 두 번 빠져나갔다는 것을 시계만으로 증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깨어난 뒤에는 팔십 표시가 없었고, 미서는 정산 장부의 상환란도 확인해 주었다.
완전히 회복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윤단은 오늘도 운전을 맡기지 않았다. 이준은 그 지시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젯밤 계단에서 자기 다리가 접히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약은 가져가도 되죠?”
효선이 물었다. 낡은 작업복의 안주머니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윤단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오래된 약을 그대로 드리면 안 됩니다. 건강 확인을 받도록 연결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담당자에게 확인하겠습니다.”
효선은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다. 기다린 세월만큼 준비해 둔 것이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빈 약 봉투를 꺼내 별도의 봉투에 넣었다.
“그럼 이건 이름 확인하는 데만 써. 먹으라고 주는 거 아냐.”
그녀가 스스로 용도를 고쳐 말했다. 이준은 그 봉투가 천 조각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센터로 돌아가자 태오는 원본 기록을 꺼냈다. 그가 선재의 근무지를 읽고 윤단이 현장 사진 번호를 불렀다. 이준은 둘 사이에서 다른 시간의 종이를 넘겼다. 옛날 사진의 엄지는 지금 사진보다 조금 곧았지만, 굽은 방향이 같았다.
고선재는 기록상 사망자도 퇴직자도 아니었다. 근무 종료란이 비어 있었다. 그 빈칸 때문에 급여나 실종 절차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했다. 태오는 모르는 답을 지어 붙이지 않았다.
“신원 확인용 사본은 이만큼만 나갑니다. 주소랑 계좌는 가립니다.”
“이름 찾자고 딴 걸 다 넘길 수는 없지.”
윤단이 말했다. 태오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당연한 일을 허락받은 사람의 모습 같았다.
이준은 자기 관찰 메모를 다시 읽었다. 어젯밤에는 정류장 구역명을 틀리게 적은 줄 알았다. 센터 기록의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된 도면을 펼치자 두 이름이 같은 곳에 있었다. 이전 전, 이전 후.
“바뀐 건 장소가 아니라 접수 이름일 수도 있겠네요.”
그가 말했다. 윤단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건 가서 확인해.”
오늘 밤의 순서가 정해졌다. 중앙 연결구에서는 신원 대조와 선재의 상태를 확인하고, 정류장은 교통 담당자의 점검에 동행한다. 한 번에 선재를 데려오겠다는 계획은 만들지 않았다. 구체적인 질문을 가져가는 일이 먼저였다.
해가 질 무렵 효선이 센터에 왔다. 손에는 옷걸이가 들려 있었다. 오래된 작업복을 빨거나 다시 꿰매지 않고 그대로 천 덮개에 넣었다. 수선 흔적을 보존하라는 태오의 말을 지킨 것이었다.
“새 옷도 한 벌 넣었다. 옛것만 들고 가면 그거 입으라고 할까 봐.”
천 덮개 안에서 새 작업복의 접힌 소매가 보였다. 이준은 목 안이 잠깐 막혔다. 밖으로 나올 때 무엇을 입을지까지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윤단이 옷을 받으며 전달 가능한 범위를 설명했다. 사진 대조가 끝나도 잠금이나 연결이 곧바로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효선은 한 번만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온다고 말하지 마. 어디 있는지부터 잊지 마.”
“네.”
이준은 그 대답을 자기 수첩 맨 위에 적었다. 다음에 할 수 있는 약속이 조금 더 커지기를 바라면서.
밤 열한 시 삼십오 분, 별관 뒤편에 도착했다. 전날 임시로 고친 문은 담당자들이 재점검한 뒤였다. 손상 구간은 통제되어 있었고, 안전한 통행선이 따로 표시됐다. 새 봉합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손목의 흰 선과 작업표가 함께 반응했다. 금을 보는 시야도 돌아왔다. 이십사 시간 안의 지난 작업은 이제 출구 봉합 한 건만 남아 있었다. 수면 대가는 갚았으나 이준은 남은 횟수를 쓸 이유부터 찾지 않기로 했다.
윤단과 미서가 진입 시각을 맞췄다. 태오는 밖에서 기록을 맡았다. 이준은 옷걸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에는 덮개가 흔들리지 않았다. 어젯밤의 작은 수리가 발밑에서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선재는 같은 배관 옆에 앉아 있었다. 물병의 수령 표시가 벽에 붙어 있었다. 노인은 새 작업복을 보고 천천히 몸을 폈다.
“아직 나는 데리고 못 나가는 모양이네.”
이준은 걸음을 멈췄다.
“오늘은 신원부터 맞추러 왔습니다. 건강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요.”
“좋아. 사람 바뀌었다고 해 놓으면 그다음 말은 전부 못 믿게 하니까.”
선재는 자기 이름과 예전 작업 구역을 말했다. 효선이 남긴 수선 설명도 들었다. 갈색 실 한 땀을 묻자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내가 파란 거 사 오랬는데 검은 봉지째 가져갔거든. 걔가 나한테 실 심부름 다시는 안 시켰지.”
효선에게 들은 이야기에 없던 뒷부분이었다. 이준은 기록해도 되는지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하나가 진위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앞뒤가 맞는 작은 조각이었다.
윤단이 선재에게 가족에게 어디까지 전해도 되는지 물었다. 노인은 잠깐 생각한 뒤 자기 얼굴과 몸 상태는 알려 달라고 했다. 시민 이름이 적힌 종이는 보여 주지 말라고 덧붙였다.
“걔가 남의 것까지 자기가 갚겠다고 할까 봐.”
이준은 효선의 화상 난 손등을 떠올렸다. 여기 있는 사람과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서로가 짊어질 짐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제멋대로 괜찮다는 말을 넣지 않기로 했다. 허락받은 사실을 전하고, 모르는 부분은 비워 두는 일이 오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서는 원본과 사진 대조 결과를 장부에 첨부했다. 현존 확인. 추가 심사 요청. 이름 옆의 관리 잠금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사라진 위치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의 상태를 묻는 단계로 넘어갔다.
선재는 옛 작업복을 받지 않았다. 수선 흔적이 필요한 동안 밖에 두라고 했다. 새 옷은 옆 벽걸이에 걸어 달라고 했다. 이준이 손을 뻗을 수 있는 안전한 위치였다.
“밖에 나가면 입을 거니까.”
노인이 말했다. 이준은 옷깃을 펴 주다가 잠깐 멈췄다. 그 한마디가 이번 밤에 가져온 다른 종이들보다 먼저 가슴에 닿았다.
“효선 씨한테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말투는 좀 덜 늙게 전해.”
“그건 자신 없습니다.”
선재가 웃다가 기침했다. 윤단은 확인해 둔 건강 지원 절차와 통신 시간을 다시 맞췄다. 눈앞의 노인을 오랜 증거처럼 다루지 않으려면 쉬는 시간도 정해야 했다.
이준이 돌아서려는데 선재가 발목의 종이 하나를 가리켰다. 어젯밤 본 정류장 이름이었다. 오늘은 그 옆에 작은 선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그쪽도 옷만 바뀌었어. 정류장 간판.”
“이전된 곳 말입니까?”
“사람들은 옛자리에 있어. 내가 소리를 들어.”
이준은 장부를 들여다봤다. 종이에는 도착 영 명, 대기 열일곱 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실제 현장 인원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밖의 태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통 담당자가 정류장으로 먼저 나가 봤다고 했다.
“안내판은 옮겼는데요. 이전 공지가 그쪽에는 하나도 안 붙어 있답니다.”
이준은 눈앞의 선을 다시 봤다. 종이 맨 아래에 있던 첫차 운행 전이라는 문구가 검게 번졌다.
그리고 새 항목이 찍혔다.
대기 시간, 다음 구간으로 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