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별관 승강기에는 0층 버튼이 없었다.
강이준은 주머니의 종이를 다시 봤다. 분명히 0층이었다. 지하 1층도, 민원실도 아니었다. 이전 작업자 미귀환이라는 문구 아래로 아주 작은 안내가 붙어 있었다.
정산은 선택이며, 미방문으로 불이익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그걸 먼저 쓸 것이지.
이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섯 시에 교대가 끝난다기에 끌려가는 줄 알았다. 센터 의자에 잠깐 앉아 있으려다 결국 별관까지 와 버렸다.
시각은 세 시 십이 분이었다.
“딱 설명만 듣고 올게요.”
그는 윤단에게 통화로 말했다.
“나 위치 공유 켰다. 십 분마다 답해.”
“귀가하셨다면서요.”
“귀가했다고 전화를 못 받는 건 아니야.”
이준은 통화를 끊지 않은 채 승강기에 올랐다. 금속 문에 비친 자기 얼굴이 낯설었다. 평소에도 야간 근무 뒤엔 멀쩡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눈 아래가 한 겹 더 꺼져 있었다.
종이를 대자 1층 버튼 아래의 철판이 희게 빛났다. 숫자 영이 나타났다.
승강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문이 다시 열렸다.
방금 전의 로비가 아니었다. 복도는 낮고 길었다. 천장에는 오래된 배관이 이어졌고, 맨 끝 창구에서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복도 입구의 비상구 표지는 방금 나온 승강기를 가리켰다.
이준은 문턱에 작업화를 걸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창구 안쪽에서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방문하신 분이 먼저 계십니다.”
“저 말고요.”
“현재는 없습니다.”
여자는 이름표를 바로 세웠다. 미서. 성도 직급도 없었다. 책상에는 번호표 기계와 작은 주전자, 접수 서류가 있었다. 생김새로는 평범한 야간 당직자였다.
이준이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통화는 이어져 있었다.
“반장님, 복도 들어왔습니다. 돌아오는 문 바로 앞이에요.”
윤단이 주변에 무슨 표지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하나씩 읽어 줬다. 미서는 기다렸다. 이준이 전화를 잠깐 내려놓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오늘 봉합하신 건의 정산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제가 뭘 했는지부터요.”
“원인이 확인된 이음을, 실제 조치 뒤에 연결하셨습니다.”
“그게 뭡니까.”
미서가 점검표 한 장을 밀었다. 동하 지하차도 접수번호가 적혀 있었다. 펌프 연결부, 실제 조치 완료, 다음 담당 윤단. 낮의 서류와 같은 항목이었다.
맨 아래만 달랐다.
야간 이음 잠정 봉합. 강이준. 수면 채무 40분.
“이음은 시설을 유지하겠다는 약속과 실제 일을 연결하는 겁니다. 둘 중 하나가 끊기면 균열이 생깁니다.”
“부품이 없어서 고장 난 걸 약속 탓으로 돌리는 겁니까?”
미서의 손이 멈췄다.
“그렇게 쓰이면 안 됩니다. 부품도, 사람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물리적인 조치가 먼저입니다.”
이준은 종이를 당겨 읽었다. 모르는 용어는 많았지만 그 말은 알아들었다. 책임감으로 없는 부품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럼 저 사십 분은 뭘 빼 간다는 거예요?”
“다음에 잠드실 때 수면 가능 시간에서 차감됩니다. 일찍 잠이 깨고, 그만큼 피로가 남습니다.”
“왜 남의 고장을 고쳤는데 제 잠을 받아요?”
미서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만 났다.
“봉합을 유지하는 대가입니다. 합당한 보상인지는 저도 답할 권한이 없습니다.”
“좋네요. 요금은 확실하고 이유는 담당 부서가 다르네요.”
그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미서가 이번에는 별도의 안내문을 꺼냈다.
“추가 작업은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이십사 시간 안에 최대 세 건. 수면 채무가 해소되지 않으면 다음 날에도 여력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 번째 뒤에는 균열을 볼 수 없습니다.”
“보기만 하는 것도요?”
“그렇습니다.”
“타인한테 넘길 수는 없고요?”
“본인 채무는 본인에게만 부과됩니다.”
윤단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튀어나왔다.
“지금 무슨 약관 듣는 거야?”
이준은 놀라 전화를 집었다.
“저도 이해 중입니다.”
“이해 안 되면 서명하지 마.”
미서가 빈 서명칸 위에 손을 올렸다.
“설명을 들었다는 확인도 원하지 않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준은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녀도 피곤해 보였다. 다만 피곤함을 수습하는 데 오래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했다.
“명단의 교대 종료는 뭡니까. 제가 오늘 다섯 시에 끝난다고 돼 있던데.”
미서가 종이를 받아 앞뒤를 확인했다. 미간에 아주 작은 주름이 생겼다.
“명단 갱신 시각입니다. 정산 등록을 마치지 않은 방문자에게도 자동 인쇄가 된 것 같습니다. 생명에 관한 문구가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게 써 놓고 자동이라고요.”
“맞습니다. 고쳐야 합니다.”
미서가 펜을 들어 문구에 밑줄을 그었다. 변명보다 그 동작이 조금 더 믿을 만했다.
“그럼 미귀환은요.”
“그건 실제 기록입니다.”
창구 안쪽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누가 안 돌아왔는데요?”
“고선재. 오래전 등록 수리자입니다. 현재 작업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준은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런데 왠지 익숙했다. 작업표의 여섯 이름 중 첫 번째였다.
“찾는 사람 없어요?”
“있었습니다.”
“있었다고요?”
미서가 입술을 다물었다. 이준은 잠깐 기다리다가 종이를 돌려받았다. 모르는 곳에서 담당자의 침묵을 캐기에는 자신이 너무 피곤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들을게요.”
“출구는 들어오신 문입니다. 새벽 다섯 시 뒤에는 표식이 닫힙니다. 늦지 않게 나가셔야 합니다.”
“그런 건 처음에 말씀해 주세요.”
그가 승강기로 돌아가려는데 미서가 불렀다.
“강이준 씨.”
“또 요금 있어요?”
“흰 선이 뜨거워지면 쉬십시오. 고장이 보인다고 전부 본인 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을 넘자 평범한 로비였다. 승강기 층 표시에는 여전히 1이 켜져 있었다. 밖에서는 청소 차량이 지나갔다. 그는 자동문 앞 벤치에 앉아 윤단에게 방금 들은 말을 모두 전했다.
반장은 긴 한숨을 쉬었다.
“일단 집에 가. 오전에 병원도 가고. 몸에 이상 없는지 봐야지.”
“네.”
“그 종이 원본은 잃어버리지 말고.”
“믿으세요?”
“네가 이상한 걸 봤다는 건 믿어. 그게 진짜 뭔지는 아직 몰라.”
그 구분이 고마웠다.
이준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 전등은 여전히 깜빡였다. 오늘만큼은 고치고 싶지 않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손목의 흰 선을 휴대폰으로 찍자, 이번에는 사진에도 희미한 자국이 남았다.
알람을 맞출 틈도 없이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창밖은 밝았다. 정확히 몇 분을 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계와 어젯밤 통화 기록만으로 사십 분이 차감됐다고 증명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몸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이준은 침대 끝에 앉아 물을 마셨다. 안내문의 예측과 실제를 같은 것처럼 적지 말자. 그는 점검표 뒷면에 잠든 추정 시각, 깨어난 시각, 느낀 피로를 따로 썼다.
초능력이 생겼을지 몰라도 영수증은 챙겨야 했다.
오후에 센터에 들렀을 때 태오가 서류 더미를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윤단은 이준에게 운전과 단독 작업 금지라고 다시 말했다. 기본 진료에서 응급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피로 관찰은 필요했다. 그것이 균열의 정체를 증명해 주지는 않았다.
“이거 보세요.”
태오가 두 장을 펼쳤다.
한 장은 전산 접수 출력물. 교체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한 장은 원본 인계지였다. 부품 미도착 아래에 반납이라는 도장이 있었다.
태오는 도장을 옆으로 돌려 보여 줬다.
“반납이 아니었어요. 야간. 잉크가 번져서.”
그 옆에 작은 네모가 찍혀 있었다. 미서의 이름표 뒤에 있던 표시와 같았다.
이준은 손목을 내려다봤다.
“이거 예전에도 있었어요?”
“찾아보니 있어요. 오래된 공사 인계지에도요. 근데 전산화되면서 도장 부분이 잘렸어요.”
태오가 오래된 서류 한 장을 더 꺼냈다. 이준은 이름을 보고 손을 멈췄다.
고선재.
작업 종료 대신 인계 대기라고 적혀 있었다.
“이분 아세요?”
태오가 물었다.
“아뇨. 찾는 사람이 있었다고만 들었어요.”
윤단이 서류의 비상 연락처를 읽었다. 고효선. 온별 세탁소.
“잠깐만요.”
태오가 서류를 다시 가져갔다. 연락처가 적힌 부분을 종이로 가리고 이름과 작업 구역만 복사했다.
“이건 원본 보관 기록 남겨야 해요. 그냥 들고 나가시면 제가 누락시킨 게 됩니다.”
이준은 처음으로 태오의 책상을 봤다. 모니터 옆에 보존, 확인 중, 반송이라는 작은 상자들이 있었다. 야간조가 부품을 나누듯 그는 종이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네가 같이 가면?”
윤단이 물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데까지만요.”
태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원본을 봉투에 넣는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준은 자기 작업표도 펼쳤다. 미서에게 들은 대가와 거절권을 옆에 적었다. 대체니 인계니 하는 말이 있어도 자신이 모르는 계약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두 줄을 그었다.
윤단은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현상이 사람을 끌고 가든, 누가 종이 장난을 치든, 네 동의 없이 일 시킬 권리는 없어.”
“근데 실제로 사람이 갇혀 있으면요?”
“그 사람을 구하는 거하고 네가 갇히는 건 다른 일이야. 둘을 붙여서 말하는 사람부터 의심해.”
이준은 대답 대신 볼펜 뚜껑을 닫았다. 자기가 이미 둘을 붙여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들켰다.
센터를 나올 때 태오가 작은 파일 하나를 건넸다. 비닐 주머니 안에 원본과 복사본을 따로 담을 수 있었다.
“젖으면 구분 안 돼요. 어제 현장처럼요.”
이준은 그것을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정체 모를 능력보다 지금은 그 파일이 더 쓸 만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센터 작업복을 맡기는 곳이었다. 늘 터진 무릎부터 만져 보고, 사람은 안 다쳤느냐고 묻던 주인.
세탁소 문에는 겨울 이불 세탁 안내가 붙어 있었다. 고효선은 다리미를 내려놓고 세 사람을 봤다. 윤단이 먼저 종이의 이름을 보여 줬다.
“이분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효선은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가는 세탁기 안에서 지퍼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그 이름을 어디서 봤어?”
“센터의 옛 인계 기록입니다.”
“그럼 마지막 줄도 봤겠네.”
윤단이 기다렸다. 효선은 카운터 아래에서 납작한 철제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단추와 바늘, 낡은 작업표가 있었다.
“내 오빠야. 출근만 하고 퇴근은 안 했지.”
이준은 미서의 침묵을 떠올렸다. 찾는 사람이 있었다는 과거형은 틀렸다. 이 사람은 아직 찾고 있었다.
효선이 작업표를 펼쳤다.
오래된 종이였지만 오늘 날짜가 찍혀 있었다.
이준이 한 걸음 다가갔다. 효선은 종이를 빼앗길까 봐서가 아니라, 그가 제대로 보게 하려는 것처럼 가장자리를 펴 주었다.
고선재. 작업 구역: 중앙 연결구.
복귀 경로: 0층.
그리고 마지막 줄.
대체 작업자 도착 시 귀환 가능.
그 아래 새로 인쇄된 이름을 보고 이준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대체 작업자: 강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