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는 약속한 부두에 없었다.
세라는 서쪽 마을의 마른 돌바닥에서 쪽지를 다시 폈다. 낮, 창고 옆 작은 부두. 장소는 맞았다. 바다 쪽에는 돛을 내린 배 두 척과 그물을 말리는 사람 셋이 있었다. 그중 누구를 관측자로 보아야 할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안 왔거나, 우리가 못 알아보거나.”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세라는 몸을 돌렸다. 스물아홉쯤 된 여자가 비스듬한 나무통을 끌고 있었다. 통 안에는 물이 아니라 돌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여자는 그것을 처마 밑에 놓은 뒤 손을 털었다.
“어느 쪽부터 확인하려고 했어요?”
“일마 씨가 전해 준 약속을 다시 읽으려고 했어요. 그다음에는 기다릴 시간을 정하려고요.”
여자는 조금 웃었다. 자기 이름을 리브라고 말했다. 세라는 들고 온 지도를 바로 펴지 않고 자기 이름과 로안에서 온 목적을 말했다. 뒤에 있던 누메는 배를 빌리러 온 것은 아니라고 먼저 밝혔다.
폐쇄 통지 나흘째였다. 두 사람은 로안에서 마을길을 걸어왔다. 전날 과수원 비탈보다 완만한 길이었다. 세라는 중간에 무릎을 쉬고, 돌아갈 낮 시간을 남긴 채 도착했다. 맑은 예비 돌 둘은 로안에 그대로 있었다.
에딘은 등대에 남았다. 리브가 감독관과의 첫 만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라는 그 요청을 감독관에게 전했고, 오늘 이야기를 어디까지 보고할지 리브와 먼저 정하겠다고 했다. 기록을 숨겨 준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리브는 창고 문 안을 가리켰다. 안에는 탁자가 없고 넓은 바닥이 있었다. 세라가 앉으려 하자 낮은 걸상을 가져다줬다. 무릎 때문에 자꾸 발을 바꾸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바닥에서 보면 이 섬도 낮아 보여요. 서서만 본 지도는 못 쓰는 사람이 많죠.”
세라는 헤른의 창가 눈높이를 떠올렸다. 그 이야기를 하려다가 본인의 사적인 사정을 낯선 사람의 신뢰를 얻는 데 쓰지 않았다. 앉은 관측 높이를 남기고 있다는 일의 범위만 말했다.
리브는 오래된 기록 한 장을 폈다. 나전 돌담에서 본 배의 표지와 시각이었다. 이름 옆에는 공식 지도사 번호가 없었다. 세라가 일마에게서 본 사본의 원래 종이였다.
“제 눈으로 대조해도 되나요?”
세라가 묻자 리브는 오늘 기록을 읽는 데만 동의했다. 보관하거나 다른 곳에 옮기는 것은 내용과 이름을 어떻게 쓸지 정한 뒤라고 했다. 누메는 창가에 기대 바다를 봤다. 세라 혼자 모두 대답해야 하는 협상이 되지 않도록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원본에는 사본에서 잘 보이지 않던 선이 있었다. 바람 때문에 중지한 구간이었다. 세라는 그 선이 자기 지도에 있는 중지 표지와 다른 모양인 것을 보았다. 뜻을 물으니 리브는 관측자가 물러났다는 표시라고 했다. 길이 영원히 닫혔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걸 공식 기록으로 바꾸면 편하겠어요.”
세라가 말하자 리브는 종이를 접었다.
그제야 세라는 쪽지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가져갈 것은 없다고 했던 말이었다. 그녀는 손을 내리지 않고 자기 말을 고쳤다.
“바꾸겠다는 뜻으로 말했네요. 죄송해요. 두 모양의 뜻을 같이 적을 수 있는지 물어야 했어요.”
리브는 종이를 즉시 다시 펴 주지 않았다. 세라는 그 시간을 견뎠다. 사과 한마디로 접힌 신뢰가 곧장 열리지 않을 수 있었다. 누메는 창가에서 바람 소리만 들었다.
한참 뒤 리브가 물었다.
“로안을 살리려고 온 건가요, 나전 기록을 고치려고 온 건가요?”
세라는 폐쇄 기한이 열엿새 남았다고 말했다. 가장 가까운 관측점 하나를 조사했지만 돌과 받침의 조건이 맞지 않았다. 기존 보고에서 충전 조건을 줄여 쓴 흔적을 찾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두 길이 있어요.”
리브는 접은 종이 위에 손가락 둘을 놓았다. 정식 관측자로 다시 신청하고 기존 양식에 맞춰 자료를 내는 길. 또는 각자 기록의 주인을 유지한 채 제한된 비교와 시험만 함께 하는 길이었다.
첫째 길에는 심사와 자격 확인 시간이 들었다. 허가되면 공공 기록으로 다룰 범위가 분명해질 수 있었다. 둘째 길에는 지금 못 하는 시험을 작은 구간에서 준비할 여지가 있었다. 대신 관측자의 기록이 곧바로 공식 항해 허가가 되지는 않았다.
“둘째를 택하면 감독관 몰래 빛을 켜자는 건가요?”
세라가 묻자 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관측은 내 눈으로 해요. 배를 내보내는 일은 선장이 정하고 허가 범위도 따라야죠. 내 이름을 해도원 번호로 만들지 않아도 그건 같아요.”
누메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말은 기록해도 되겠네. 내 배에 몰래 용기를 더 싣는 사람은 싫거든.”
리브가 짧게 웃었다. 세라는 처음부터 서로 싸울 문장을 고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가까워 보이는 길도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달랐다.
“첫째 길은 왜 원하지 않으세요?”
리브는 자격이 없어서 기록이 사라진 날이 있었다고 했다. 그 말로 곧바로 해도원 전체를 믿을 수 없다고 덧붙이지는 않았다. 대신 원본을 누가 가졌는지, 요약할 때 누구에게 물었는지 확인하겠다는 조건을 말했다.
세라는 일마의 보고에서 빠진 한 줄을 떠올렸다. 자기 지도의 붉은 점 일곱 개도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리브의 경험을 같은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해당 기록이 남아 있는지 물었다.
리브는 있다고 했다. 오늘은 그것을 보여 주려고 부른 것이 아니었다. 먼저 함께 볼 상대를 정해야 했다. 세라는 다음 질문의 답을 얻으려고 오늘의 조건을 건너뛰지 않기로 했다.
작은 부두에서 고함이 났다. 바람에 마른 그물 끝이 풀렸다. 그물은 물에 떨어지지 않고 계단 난간을 감았다. 한 사람이 힘껏 잡아당기자 낡은 난간이 같이 움직였다.
리브가 먼저 일어났다. 세라를 보지 않고 낮은 길로 내려갔다. 누메도 뒤따랐다. 세라는 걸상에서 급히 일어났다가 무릎이 당겨 잠깐 멈췄다. 더 빨리 가려는 마음으로 다리의 경고를 덮을 수는 없었다.
리브는 그물을 당기는 대신 묶은 줄을 느슨하게 하라고 말했다. 누메가 바다 쪽 장력을 받고, 어부가 마른 쪽 매듭을 풀었다. 세라는 다른 사람들이 그 난간을 짚지 않게 돌 하나를 앞에 놓았다.
그물이 풀리자 난간은 제자리로 조금 돌아갔다. 리브는 그냥 괜찮아졌다고 두지 않았다. 어부에게 그 흔들림을 보여 주고 보수 전까지 쓰지 말 표지를 달았다. 계단 아래로 내려갈 다른 길을 함께 찾았다.
세라는 창고로 돌아오며 리브가 아는 지형을 더 묻지 않았다. 일을 하나 도왔다고 그 사람이 아는 길 전부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서 있을 자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조금 알게 됐다.
누메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로안에서 배 손질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세라는 오늘 안에 협업을 확정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삼키지 않고 리브에게 말했다. 급하지만, 급하다는 이유로 전부 가져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둘째 길의 조건을 종이 한 장으로 좁혔다. 우선 나전과 로안의 기존 관측 사본을 함께 읽는다. 옮겨 적을 부분은 각자가 확인한다. 이름을 공개할 범위는 따로 묻고, 정해진 육상 조사 밖의 배 시험은 새로 판단한다.
일을 멈출 수 있는 조건도 넣었다. 관측이 안 맞거나 현장 위험이 커지면 중지한다. 불리한 결과를 숨겨 달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는다. 일한 시간과 운임은 내용이 유리한지와 무관하게 정산한다.
조건을 읽는 사이 바다 쪽에서 소금날개 하나가 물밖으로 등을 내밀었다. 세라는 처음 로안에 오던 날처럼 흰 날개를 따라 눈을 돌렸다. 리브는 그 동물이 나타난 때를 적지 않았다. 오늘 정한 관측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든 걸 적는 줄 알았어요.”
세라가 말하자 리브는 자기 공책의 빈 면을 보여 줬다. 지켜본 것과 지켜볼 힘이 없던 날이 나뉘어 있었다. 빈날에도 사람이 바다를 보고 살 수는 있지만, 그걸 전부 맡은 기록으로 부를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세라는 자기 역할표의 긴 선들을 떠올렸다. 오르가 쉬겠다고 말할 때마다 줄인 선이었다. 리브와 일을 같이 한다는 약속에도 며칠 내내 창가에 서 있으라는 뜻을 몰래 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 열람 시간만 정하고, 이후 일정은 첫 결과를 본 뒤 다시 묻자고 썼다. 리브가 그 문장을 읽는 동안에는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리브는 세라가 적은 한 문장을 지웠다. 기록 제공이라고 쓴 자리였다. 그 대신 공동 열람이라고 썼다. 원본을 내준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게 하려는 수정이었다.
세라는 고친 글씨가 남게 하고 자기 사본에도 같은 수정을 했다. 이것이 거창한 공동망의 부활은 아니었다. 한 관측자와 한 지도사가 다음 종이를 같이 읽는 약속이었다. 지금은 그 크기가 필요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왔을 때 리브는 나무통 속 돌을 다시 옮겼다. 세라가 무엇을 하는 물건이냐고 묻자 어망 끝의 무게를 맞추는 돌이라고 했다. 아침에 그것을 관측 장비일 거라 생각한 자신이 우스워 세라는 웃었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일의 물건만 보이네요.”
“그럼 오늘 점심도 지도에 넣겠어요?”
리브가 물었다. 누메가 이미 빵값을 내고 있었다. 선장은 지도에 넣기 전에 돌아올 품삯부터 넣어 달라고 했다. 세라는 접은 합의지와 빵을 서로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
로안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세라가 말을 덜 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굽이를 지날 때마다 리브가 원본을 접던 손이 떠올랐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만으로 다른 사람의 종이를 펴게 할 수는 없었다.
에딘은 약속의 범위를 읽고 기존 조사 안에서 공동 열람을 접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리브의 정식 관측자 자격이나 해상 운항 승인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리브는 그 차이를 직접 듣고 싶다고 미리 말해 두었다. 감독관은 다음 면담에 본인이 오겠다고 답했다.
바렌은 리브라는 이름을 듣고도 오래된 사적 봉투를 열지 않았다. 세라는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오늘 받은 약속부터 정리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바렌의 지난 침묵까지 열릴 차례는 아니었다.
저녁에는 두 돌 상태를 확인했다. 둘 다 전날 회복 뒤 사용하지 않아 맑았다. 부두 표지를 지키는 평상시 돌은 따로였다. 새 관측자 한 명을 만났다고 빛과 배의 자원이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리브는 약속한 일부 사본과 내일 열람할 문서 목록을 보내 왔다. 전달자가 가져온 것은 원본이 아니었고, 이름 공개도 아직 제한된 범위였다. 세라는 목록에서 뒤집어 볼 면이 있다는 표시를 발견했다.
해도원 배포 지도에는 없는 주민 관측 칸이었다. 그 옆에는 접수된 적 없음이 아니라, 이면에 남김이라는 작은 표지가 있었다.
세라는 종이를 뒤집으려다 멈췄다. 오늘은 목록뿐이었다. 진짜 뒷면은 내일 리브가 직접 들고 오기로 했다. 정면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어떤 종이 뒤에 남아 있는지, 이제 두 사람이 함께 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