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는 햇빛을 종이에 가뒀다.
정확히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자리를 그렸다. 로안 관측실 창 아래에 작은 상자를 놓고 나전에서 옮겨 온 덮개 그림을 세웠다. 아침 해가 움직이자 종이 안쪽의 그림자는 돌의 흰 띠와 다른 방향으로 길어졌다.
“닮았다고 겹쳐 놓으면 안 되네요.”
그녀가 중얼거리자 바렌은 지팡이 끝으로 빈 의자를 가리켰다. 세라는 앉았다. 전날 과수원 비탈을 내려온 무릎은 아침 층계에서 다시 뻐근했다. 해의 길을 재느라 자기 다리 길이를 잊을 뻔했다.
폐쇄 통지 사흘째였다. 로안의 첫 돌은 회복을 마치고 상자에 있었고, 둘째 돌은 마지막으로 필요한 충분한 하루의 햇볕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 해가 좋다고 아침부터 완충으로 쓸 수는 없었다.
나전 보관인은 전임 관리인과 함께 점심 무렵 로안에 왔다. 전날 보낸 열람 요청을 받고, 걷기 편한 마을길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낡은 덮개를 멋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허락된 부품 그림과 당시 수리표 사본을 가져왔다.
전임 관리인은 일마라고 했다. 머리를 짧게 묶었고 손목에는 해가 덜 탄 좁은 띠가 있었다. 세라는 먼저 빛돌의 탁함 그림을 보여 주려다 멈췄다. 어느 그림을 보았느냐에 따라 기억도 그쪽을 향할 수 있었다.
“돌이 잘 회복되지 않던 때부터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일마는 창밖을 보았다. 그날의 하늘을 지금 창에서 찾는 듯했다. 처음에는 흐린 날이 길었고, 다음에는 덮개를 바꿨다고 했다. 갈라진 유리 덮개 사이로 소금물이 들어와 바깥 테를 새로 댔다는 설명이었다.
“새 테가 들어간 뒤에도 햇볕 사흘을 셌나요?”
“날짜는 셌지요. 그런데 안쪽까지 해가 닿는지는 따로 안 그렸어요.”
그녀가 손목의 흰 띠를 문질렀다. 세라는 그 동작이 변명인지 후회인지 고르지 않았다.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 물었다. 일마는 돌 받침을 오전과 오후에 돌렸지만, 새 덮개는 고정 테 때문에 예전만큼 기울이지 못했다고 했다.
티오는 두 그림을 나란히 놓았다. 손가락 천은 아직 감겨 있었고 망치는 창고에 남았다. 소년은 바깥 너비가 닮은 것보다 안쪽에서 돌을 가리는 높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옆에서 보면 높은데, 위에서 보면 얇아 보여.”
세라는 자기가 그려 온 외곽만으로 원인을 찾으려 한 것을 깨달았다. 보관인이 가져온 새 부품 그림에는 안쪽 턱이 있었다. 바닥의 모양과 높이를 함께 알지 못하면 그림자는 맞출 수 없었다.
일마는 가져온 나무 본을 탁자에 놓았다. 당시 테 수리를 부탁할 때 만든 치수 본이었다. 오래돼 가장자리가 조금 닳았으므로 지금 덮개 실물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세라는 그 차이도 종이에 남겼다.
티오는 본에 맞춰 얇은 종이턱을 세웠다. 돌 대신 빈 둥근 나무통을 넣었다. 건강한 빛돌을 가려 시험하다가 충전 시간을 잃을 필요는 없었다. 나무통에 놓인 흰 종이에 빛이 닿은 테를 그리면 됐다.
아침에 세라가 만든 그림자와 다른 띠가 나타났다. 해가 서쪽으로 움직일수록 좁은 면 하나가 계속 그늘에 남았다. 받침을 예전처럼 돌리려 하면 종이턱에 걸렸다. 세라는 작은 경이를 느꼈다. 실패가 드디어 손으로 가리킬 수 있는 모양을 가졌다.
그러나 고장 돌의 흰 띠가 이 그림자 때문에 생겼다고 아직 다 말할 수는 없었다. 일마는 테를 바꾸기 전에도 회복이 느린 날이 있었다고 했다. 노후와 소금물, 충분치 않은 빛이 함께 작용했을 수 있었다.
에딘이 일마의 폐쇄 보고 사본을 펼쳤다. 로안에 있던 요약에는 돌 노후로 인한 회복 불량이라고 적혔다. 일마가 보관한 발송 사본에는 다른 문장이 있었다. 덮개 교체 이후 회복량 감소, 충전 조건 점검 필요.
세라는 두 문장의 길이를 손가락으로 쟀다. 짧아진 것은 여덟 글자쯤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수리해야 할 부품 하나가 사라졌다.
“누가 이렇게 줄였죠?”
그녀가 묻자 에딘은 문서 번호부터 보자고 했다. 요약본을 만든 담당자가 현장 보고를 직접 받았는지, 중간 정리표를 옮겼는지 확인해야 했다. 일마도 자기가 발송한 뒤 문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못 봤다고 했다.
세라는 갑자기 바렌을 봤다. 그가 서랍에 남겨 둔 흰 띠 그림을 알았다면 이 문장도 알았을까. 바렌은 자기 사본에는 이 발송 면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침묵의 다른 이유까지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에는 보관인이 가져온 빵을 나눴다. 일마는 해도원 이야기가 나오자 그릇을 조금 멀리 밀었다. 세라는 질문을 멈추고 차를 따랐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점심을 심문 시간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돌이 늙어서 그런 거라고 들었어요.”
일마가 먼저 말했다.
“오래 쓴 건 맞으니, 내가 사흘을 잘못 센 것도 그냥 같이 넣었지요.”
세라는 종이모형을 보았다. 시간은 채웠어도 빛이 닿지 않을 수 있었다. 오래된 물건이라는 이유가 다른 잘못을 묻지 않아도 되는 답이 됐던 셈이었다. 그렇다고 일마가 돌을 망가뜨렸다는 한 문장으로 줄여서는 또 같은 일이 될 터였다.
“오늘 확인한 건 돌 속 전체가 아니에요. 충전하는 자리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 자리를 고치면 돌이 돌아올지는 별도이고요.”
일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 자신에게도 필요한 구별이었다. 답을 얻는 기쁨 때문에 새로운 예비 돌 하나를 마음속 상자에 먼저 넣지 않을 수 있었다.
오후에는 햇볕 기록을 대조했다. 마을 과수원에서 적은 건조일과 등대의 충전일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과일이 마른 날이 돌에 충분한 빛이 닿은 날을 대신하지 못했다. 다만 해가 오래 난 날까지 받침 한 면이 가려질 수 있었음을 모형으로 확인했다.
티오는 종이턱을 낮추자는 말을 했다가 멈췄다. 실제 덮개를 자르면 비와 소금물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림자만 없애고 다른 고장 원인을 만드는 수리가 될 수 있었다. 바렌은 먼저 현물의 틈과 배수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세라는 수리 요청에 그 항목을 넣었다. 나전 돌은 현지 함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수리를 위해 이쪽으로 옮긴 물건도 없었다. 오늘 한 것은 원인 후보를 좁힌 비교였다. 항로를 켤 수 있는 돌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세라는 첫 모형의 그림자 선을 두 번째 종이에 옮기려다 연필을 내려놨다. 같은 그림을 두 번 그리는 것으로 비교가 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 같은 자리에 놓고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그녀는 자기 숫자를 가리고 일마에게 빈 나무통을 다시 놓아 달라고 했다. 일마는 돌을 돌보던 버릇대로 손을 넣었다가 종이턱에 걸렸다. 아침에 세라가 고정한 방향과 달랐지만 가려지는 면은 가까운 자리에 남았다. 티오는 옆에서 선의 끝만 읽어 줬다.
두 값은 정확히 같지 않았다. 세라는 지우개 대신 넓은 빗금으로 둘 사이를 칠했다. 모형이 허용하는 오차였다. 그 빗금 너머까지 고장 원인을 말할 수 없었고, 그 안의 그늘이 있다는 사실을 없애서도 안 됐다.
“내가 그때도 이렇게 그렸으면 좋았겠네.”
일마가 말했다. 세라는 지금 그렸으니 괜찮다고 위로하지 않았다. 놓친 시간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대신 오늘 그림에 일마의 이름과 실제로 한 동작을 함께 적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일마는 자기 손이 걸린 방향까지 넣어 달라고 했다.
그때 촛대가 문틈으로 코를 넣었다. 종이턱을 향해 혀가 나오자 티오가 급히 빈 상자를 밀었다. 염소는 새 먹이가 아니란 것을 알고 느리게 물러났다. 세라는 그림자를 지킨 상자 옆에 작은 물그릇을 놓았다. 놀란 사람들 사이에서 촛대만 아무 잘못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누메가 배에서 올라와 탁자의 종이모형을 봤다. 등대보다 작은 집을 지었냐고 했다. 티오가 그림자 때문에 바다에 못 나가는 집이라고 답했다. 누메는 그럼 자기 배도 집세를 내야겠다고 했다.
웃음이 나자 일마도 빵 끝을 집었다. 세라는 그제야 그녀가 식사를 끝내지 않았음을 알았다. 질문이 멈춘 시간이 사람을 다시 식탁에 앉힐 수 있었다.
일마는 오후 끝에 자기가 가진 다른 문서를 보여 줬다. 관측실 뒤쪽 땅에서 같은 표지를 본 주민의 기록이었다. 이름 칸에는 지도사 번호가 없었다. 대신 낮은 돌담, 앉은 눈높이, 안개에 못 본 시각이 적혔다.
세라는 마지막 줄을 읽었다. 두 선택이 나란히 있었다. 창 앞 받침을 고치거나, 서쪽 돌담에서 짧게 다시 본다. 어느 쪽도 즉시 성공했다는 말은 없었다. 문장을 쓴 사람이 실패 뒤에 발을 놓을 자리를 둘 남겨 둔 것 같았다.
“이분을 만나도 될까요?”
일마는 주소를 바로 말하지 않았다. 본인에게 먼저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자기 기록이 이름 없이 돌아다니는 일을 싫어했다고 했다. 세라는 가져온 사본을 함부로 더 옮기지 않기로 했다.
에딘은 요약본과 현장 보고의 차이를 확인 요청으로 접수했다. 나전 고장이 단순한 연식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근거, 충전 조건이 바뀌었음을 보여 주는 치수와 증언이 붙었다. 누가 고의로 빛을 막았다는 결론은 없었다.
일마는 나가기 전 나무 본을 챙겼다. 기록의 원본은 본인에게 돌아갔고, 허락된 그림만 로안에 남았다. 세라는 오늘의 면담 품삯과 왕복 비용을 정산하는 감독관을 기다렸다. 선의로 온 사람도 걸어온 길의 값을 받을 수 있어야 했다.
두 사람이 떠나자 관측실이 넓어 보였다. 세라는 종이모형을 옮기려다가 기울어진 턱 하나를 봤다. 바람에 눌린 종이가 조금 주저앉았다. 실제 부품과 다른 모형의 한계가 벌써 생겼다. 그녀는 마지막 비교는 그 전의 모양이었다고 적었다.
저녁 무렵 둘째 돌의 마지막 흐린 면이 맑아졌다. 바렌은 오늘 충분히 받은 빛을 확인한 뒤에만 완료 표시를 했다. 첫 돌과 둘째 돌 모두 맑은 상태로 보관됐다. 오늘 비교에는 어느 돌도 점등하지 않았다.
세라는 두 돌 아래의 날짜를 읽었다. 돌이 돌아왔다고 폐쇄 기한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남은 날은 열이레였다. 스무 주민은 여전히 로안에 있었고 마루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새 조사 때문에 그들의 방과 식사가 저절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저녁 설거지를 맡았다. 무릎을 오래 굽히지 않도록 높은 통을 골랐다. 헤른이 옆에서 마른 그릇을 세었고, 오르는 오늘은 바다를 보지 않고 자겠다고 말했다. 세라는 그의 휴식을 역할표의 빈칸으로 두었다.
밤이 되기 전 일마의 전갈이 돌아왔다. 같은 큰 섬의 서쪽 마을 부두에서 내일 낮에 만나도 된다는 답이었다. 일마가 처음부터 그 사람의 몫까지 정한 약속은 아니었다.
쪽지 아래에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리브.
그리고 만나기 전에 알아 달라는 말이 두 줄 붙었다.
‘내 기록을 공식 번호로 바꾸러 오면 가져갈 것은 없어요. 함께 보러 오는 거라면, 어느 길을 포기할 수 있는지부터 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