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판타지 전체 이용가 16화

섬은 남아 있다

본문 5,326자 ·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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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의 관측 칸을 비우는 데 밤 한 번이 걸렸다.

세라는 이름을 지운 것이 아니었다. 배가 떠난 뒤의 시각을 따로 나누고, 그때 높은 돌길에 아무도 없다고 적었다. 대신 로안 빛실과 물창고의 두 관측이 같은 배 표지를 계속 볼 수 있는지 확인할 계획을 붙였다.

누메는 두 점이 있다는 말보다 배가 어디에 있을 때 둘 다 보이느냐고 물었다. 세라는 대답할 수 있는 구간만 짚었다. 큰 돌 바로 뒤의 짧은 그늘은 높은 빛실에서 표지가 가려질 수 있었다.

그 부분은 오르가 보던 자리였다. 거기를 그대로 지나가면서 빈칸을 참조하는 길을 만들 수는 없었다. 배는 바깥 곡선을 조금 더 길게 돌아야 했다. 선폭과 선회 여유, 빛돌에 필요한 시간도 달라졌다.

그녀는 한밤중에 성공했다고 적지 않았다. 다음 아침 빈 배로 해당 구간을 확인하고, 맞지 않으면 세 사람을 태우기 전에 중지하기로 했다. 종으로 관측자의 눈을 대신하지도 않았다.

해가 뜨자 바렌은 둘째 돌을 꺼냈다. 충분한 사흘 햇빛을 받은 뒤 상자에 남겨 둔 돌이었다. 첫 돌은 전날 항해를 마치고 다시 탁해져 충전 받침에 있었다. 오늘 쓸 수 있는 새 빛은 하나였다.

누메는 하늘과 물을 보고 출항을 허락했다. 긴 널판, 낮은 의자 받침, 식수와 담요가 배에 올랐다. 티오는 아픈 손을 쓰지 않고 묶인 곳을 가리켰다. 실제 매듭은 미란과 선장이 확인했다.

미란은 로안에 남았다. 헤른이 내리면 받을 넓은 자리와 걸상을 준비했다. 렌은 부두 줄을 맡았다. 어제 먼저 건너온 두 사람이 오늘은 남은 세 사람의 돌아올 곳이 됐다.

세라는 주머니 속 조약돌 셋을 만졌다. 오르, 헤른, 다호. 배는 세 이름을 향해 나아갔지만 이름을 부른다고 물결이 비켜 주지는 않았다.

바깥 큰 돌에서 첫 관측이 맞았다. 로안의 높은 빛과 낮은 판이 같은 시각을 돌려줬다. 오르도 보았지만 그 구간의 연결에는 그의 값을 쓰지 않았다. 어느 관측을 사용했는지 세라가 따로 표시했다.

그늘이 깊어지는 곳에서는 높은 표지가 잠깐 사라졌다. 세라는 곧바로 중지판을 들었다. 누메는 미리 정한 넓은 물로 물러났다. 첫 시도에서 길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생긴 실제 결과였다.

“한 번 더 바깥.” 선장이 말했다.

“더 돌면 귀항 시간도 늘어요.”

“그래서 지금 빈 배잖아. 사람을 태우고 처음 알 일은 아니지.”

세라는 새 곡선을 그렸다. 이전 실패선을 없애지 않고 다음 시각을 붙였다. 두 번째에는 검은 표지를 조금 낮은 위치로 옮겨 돛의 윗부분과 혼동하지 않게 했다. 관측 높이도 로안에 다시 알렸다.

같은 표지를 보았다는 확인이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 돌아왔다. 큰 돌이 사이를 가르지 않는 바깥 곡선이었다. 길은 더 길어졌으나 선장이 돌아설 여유가 남았다. 둘째 돌의 사용 끝 시각 안에서도 귀항할 수 있었다.

그때야 누메는 높은 턱으로 배를 붙였다.

오르는 먼저 주민 수를 확인했다. 셋. 헤른은 높은 방 안에 앉아 있었고 다호는 옆문을 열어 뒀다. 밤사이 즉시 위험은 없었지만 벽 아래 젖은 선은 더 짙어졌다. 남은 물과 곡식은 가지고 갈 것과 남길 것을 나눠 놓았다.

세라가 배에서 내리자 오르는 종루 열쇠를 보여 줬다. 문을 잠그면 다시 열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세라는 자기 지도가 언제 다시 그 섬을 허락할지 약속하지 않았다.

“잠글지는 여기서 사는 분들이 정해 주세요. 관측이 중지된 시각은 제가 적어요.”

오르는 주민 둘에게 물었다. 헤른은 젖은 낮은 방을 봉하고 높은 방은 응급 대피자가 들어올 수 있게 잠그지 말자고 했다. 자기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라는 그 결정의 범위도 적었다.

종루 안의 기록지는 마른 보자기에 들어갔다. 개인의 부탁과 주민 명단이 섞인 원본은 오르가 직접 안았다. 세라에게 모두 내주지 않았다. 공식 검증에 필요한 사본은 이미 동의한 범위만 있었다.

마지막 상태 종이 울렸다. 셋이 아직 섬에 있다는 정해진 확인이었다. 그다음에 섬을 비운다는 긴 문장을 종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로안에는 사전에 합의한 관측 종료 시각과 승선판으로 알렸다.

세라는 종의 울림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바람이 달랐는지 소리는 이전보다 가늘었다. 오르가 줄을 놓자 종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섬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돌벽과 나무문은 그대로 있었다.

헤른이 옆문을 넘는 동안 세라는 앞의 턱이 비었는지 봤다. 미란 대신 오르가 앞에서 받침을 들고 다호가 뒤에서 속도를 맞췄다. 헤른은 발끝이 걸릴 때마다 먼저 멈추라고 말했다.

마당에서 한 번 쉬고, 낮은 돌길의 꺾인 곳에서 다시 쉬었다. 누메는 배에 남아 선체와 널판을 지켰다. 세라가 조급해 뒤를 자꾸 보자 헤른이 말했다.

“내 숨도 그 종이 안에 넣었소?”

세라는 연필을 들었다가 웃었다.

“빠뜨렸네요. 지금부터 넣을게요.”

말을 듣고 걷는 속도가 빨라지지는 않았다. 대신 멈출 때마다 실패한 것처럼 얼굴을 굳히지 않을 수 있었다. 세라는 실제 걸린 시간을 기록했다. 다음 사람의 호흡이 들어갈 여백이었다.

널판 앞에서는 의자에서 잠깐 일어서야 했다. 헤른은 다호 팔을 잡고 발을 놓을 자리를 봤다. 배 안의 낮은 걸상과 등받이는 약속한 곳에 있었다. 오르가 먼저 건너 받침을 고정했고 누메가 그 매듭을 다시 확인했다.

그사이 세라는 널판 가운데를 비웠다. 자기가 가까이 서 있으면 도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자리의 무게가 더해질 수 있었다. 무릎이 아직 아픈 사람에게는 뒤로 물러나는 역할도 있었다.

파도가 배를 한 번 들었다. 헤른은 첫발을 놓기 전에 기다렸다. 널판이 낮아지고 양끝이 받는 것을 누메가 확인했다. 다호가 옆에서 손이 아니라 팔을 받쳤다.

한 발.

다음 발.

세라는 숫자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헤른이 자기 속도를 셀 수 있게 뒀다. 걸상에 앉은 뒤 담요를 무릎에 얹고서야 헤른은 고개를 들었다.

“됐네.”

그 말에 오르의 어깨가 크게 움직였다. 다호가 뒤이어 배에 올랐다. 세라는 남은 짐이 통로를 막지 않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널판을 건넜다. 누구도 종루로 뛰어 돌아가지 않았다.

오르는 이미 배 안에 있었다.

누메가 널판을 거뒀다. 높은 돌길은 비었다. 세라는 마루섬 관측 종료 시각을 적고 로안의 두 확인을 받았다. 저쪽에서 자기들을 보던 사람 하나를 마음속에 더 만들어 세우지 않았다.

귀항의 첫 곡선은 길었다. 바깥 물에서 배가 흔들리자 헤른이 걸상 가장자리를 잡았다. 누메는 속도를 줄이고 선체가 비스듬히 받는 물을 골랐다. 빈 배 시험과 하중이 달랐으므로 같은 곡선 안에서도 각도는 같지 않았다.

오르는 자꾸 섬을 봤다. 세라는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가 품의 보자기를 무릎 위에 단단히 놓자 종이 끝에서 소금 한 줄이 떨어졌다. 종루 안의 시간이 배 바닥에 남았다.

로안 물창고의 판이 돌아왔다. 높은 빛실의 신호도 이어졌다. 세라는 시각과 표지가 맞는 동안만 연결을 유지했다. 마루섬 반사판은 이제 응답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실패가 아니라 계획에 있던 빈자리였다.

마지막 굽이에서 세라는 섬을 돌아봤다. 종루는 작은 점이었다. 점이 지워진 것이 아니라 그 점에서 오늘의 관측을 마친 것이었다. 지도에는 둘을 다르게 쓸 말이 필요했다.

부두에서 렌이 줄을 받았다. 미란은 헤른의 걸상이 놓일 마른 자리를 가리켰다. 배에 태울 때와 다른 널판 높이를 맞추느라 잠깐 더 기다렸다. 세라는 물 위의 길이 남았다고 사람을 빨리 내리게 하지 않았다.

마지막 발이 로안의 돌에 닿았다. 관측 종료판이 올라갔다. 바렌은 둘째 돌의 빛을 닫았다. 돌 아래쪽은 다시 흐렸고 다음 항해에는 상태 확인과 충전이 필요했다.

로안 스무 명.

마루섬 잔류 영 명.

세라는 숫자를 쓴 뒤 명단을 한 번 더 읽었다. 처음 열한 명, 다음 네 명, 어제 두 명, 오늘 세 명. 오르를 주민 수 밖에 따로 세거나 오늘 선원까지 구조된 사람으로 더하지 않았다.

오르는 부두의 넓은 돌에 앉았다. 종루 기록 보자기를 풀지 않은 채 손을 폈다. 반사판이 없는 손은 어색해 보였다. 티오가 물을 내밀자 그는 받아 마셨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그의 컵을 채웠다.

신발을 되찾은 아이가 오르에게 다가왔다. 종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오르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커서 배에 싣지 못했고, 다음에 가는 사람에게 남겨 뒀다고 했다.

아이는 조금 실망한 얼굴로 자기 신발 끈을 봤다.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돌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종소리와는 달랐다. 다만 오르가 웃었다. 세라는 그 웃음이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인지, 본인이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된 것인지 정하지 않았다.

헤른은 숙소 문 앞에서 뒤를 돌아봤다. 오르에게 쉬었다 오라고 했다. 세라는 그 말을 듣고 조약돌 셋을 다른 열일곱 곁에 놓았다. 돌은 모두 같은 크기였으나 오늘 걸린 숨의 길이는 같지 않았다. 그녀는 명단 여백에 쉬어야 할 사람의 자리도 남겼다.

세라는 이름이 적힌 임시 지도를 가져왔다. 마루섬 칸에 주민 대피 완료 시각을 썼다. 섬 자체를 폐기 표시로 덮지는 않았다. 돌아갈 정기 항로는 아직 없고, 오늘의 임시 연결은 오늘의 범위에서 검증됐다.

에딘은 그 차이를 보고 접수 문장에 넣었다. 전원 대피와 항로의 영구 안전을 같은 항목으로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무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지우지도 않았다.

늦은 오후 북쪽 연안 순시선이 예정한 순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마루섬 새 항로를 타고 온 배가 아니었다. 선원 하나가 감독관 앞으로 온 공문통을 내려놓았다.

세라는 에딘이 문서를 읽는 동안 헤른의 의자를 숙소로 옮기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켰다. 기쁜 날에도 저녁밥과 마른 방이 필요했다. 티오는 몸을 쓰는 대신 문턱 높이를 알려 줬다.

바렌이 감독관을 부르러 왔다. 세라는 공문 끝의 붉은 인장을 보고 가슴이 조금 굳었다. 해도원 인장은 성공한 기록에도 내려앉을 수 있었다.

에딘은 사람들 앞에 곧바로 문서를 펼쳤다. 로안 등대의 노후 시설과 현재 공공 관측망 조건으로는 정식 운항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폐쇄 기한은 오늘부터 이십 일 뒤 일몰이었다.

스무 사람을 구한 날, 마지막 등대가 닫힐 날짜가 생겼다.

누메는 공문을 빼앗지 않았다. 선장은 해가 내려가는 바다와 자기 배를 번갈아 봤다. 바렌은 불편한 다리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세라는 에딘이 든 종이의 아래쪽을 읽었다.

기한 전 대체 관측 계획과 시설 보완 결과를 제출할 수 있다는 항목이 있었다. 제출하면 반드시 폐쇄가 취소된다는 문장은 없었다.

세라는 지우개를 주머니 안에서 만졌다. 기한을 지울 수 없고 구름을 지울 수도 없었다. 오늘 지도에는 스무 사람이 남았고, 바다 건너 섬도 남아 있었다.

“닫힌 여섯 등대의 마지막 기록을 볼 수 있나요?”

그녀가 묻자 바렌이 고개를 들었다. 잠깐 긴 침묵 뒤 그가 등대 안쪽을 봤다.

“서랍 하나는, 아직 내가 안 열었지.”

16화 끝

Written by Grapheme · Published by Aldus Lib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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