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돌은 햇볕 아래에서도 처음에는 그대로 하얬다.
세라는 두 돌을 올려놓은 받침 앞에 앉아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돌 하나는 어제, 다른 하나는 오늘 바다 길을 붙들었다. 사용한 날은 달랐지만 충분한 충전을 시작한 것은 둘 다 오늘이었다.
바렌은 창문에 기대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보고 있다고 빨리 맑아지진 않아.”
“혹시 놓치면요?”
“그럼 맑아진 돌을 보게 되겠지.”
세라는 조금 웃고 기록지를 옆으로 옮겼다. 점심을 넘긴 햇빛을 첫날 몫으로 전부 세지는 않았다. 해가 떠 있던 날과 돌이 실제로 빛을 받은 날은 달랐다. 완전한 사흘을 채우려면 내일 아침부터의 햇볕이 더 필요했다.
빛실에는 부두 표지를 지킬 빛만 남아 있었다. 그것을 떼어 마루섬으로 돌리면 돌아올 배의 마지막 입구부터 어두워졌다. 맑은 돌 두 개를 눈앞에 상상하는 일로 오늘의 자원이 늘지는 않았다.
아래방에서 티오의 망치가 세 번 울렸다. 네 번째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소년은 피곤하면 망치 끝이 옆으로 간다며 작업을 멈췄다. 세라는 그가 쉬는 일을 남의 허락 없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자기는 종이를 내려놓으면 마루섬이 더 멀어질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갔을 때 바람풀 잎 끝에 새 잎 하나가 말려 있었다. 세라는 소금 없는 물을 조금 주고 접시를 닦았다. 처음엔 등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가져온 자기 짐이 부끄러웠다. 이제는 작은 화분도 계속 살아 있게 하려면 매일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날 남은 시간에는 주민들을 찾아갔다. 세라가 빈 지도를 펴자 흰 머리 여인이 손자 이름부터 적으려 했다. 그녀는 잠깐 멈췄다가 위쪽 빵집을 가리켰다.
“이 집부터 봐요. 이름은 다음에 써도 되고.”
세라는 연필을 건넸다. 여인은 벽 두 개를 그리더니 지우개를 찾았다. 반듯하지 않아서 부끄럽다고 했다.
“그대로 두세요. 어떤 길이 올라가는지만 알아도 돼요.”
여인은 웃었다.
“내가 평생 걸은 길이 네 종이에서는 비뚤어졌네.”
세라는 그 말에 연필을 내려놓았다. 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종이가 모자랄 수 있었다. 종루와 빵집을 잇는 경사를 다른 장에 크게 그렸다. 집들이 가지런한 해도보다 그 길이 더 쉽게 읽혔다.
주민들은 건물 높이를 서로 다르게 기억했다. 두 층이라는 집이 어떤 사람에게는 세 층이었다. 경사진 땅에 붙어 아래쪽에서 보면 문이 하나 더 보이는 집이었다.
세라는 층수에 줄을 긋고 기준을 바꿨다. 종루 문지방보다 얼마나 높은지, 빵집 저장실에서 어느 창으로 바다가 보이는지 물었다. 그제야 기억이 같은 지점에 모였다.
마루섬에서 돌아온 천의 긴 선 세 개와 짧은 선 하나는 아직 높이로 바뀌지 않았다. 어느 벽의 어디를 그렸는지 누메의 설명만으로는 모자랐다. 세라는 천 옆에 기준점 필요라고 썼다.
첫 번째 온전한 햇볕 날, 돌의 아래쪽에서 작은 투명한 점이 생겼다.
세라는 손바닥을 받침 밑에 넣었다. 빛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어제와 달리 돌 안쪽의 파문 하나가 보였다. 그러나 바렌은 시험 점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회복 중인 빛을 확인하겠다고 다시 쓰면 남은 시간이 바뀌었다.
티오는 받침 둘레에 낮은 난간을 만들었다. 촛대가 기웃거렸기 때문이었다. 염소는 새 나무를 한 번 핥고는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
“이것도 먹지 마. 나무값은 네가 안 내잖아.”
소년이 말했다. 세라는 웃다가 마루섬 쪽을 봤다. 아침 신호판에는 아홉 명 확인이라는 표시가 돌아왔다. 잠깐 들었던 웃음이 죄처럼 느껴져 입을 다물었다.
흰 머리 여인이 그녀 옆에 앉았다.
“웃었다고 배가 늦어지는 건 아니지요?”
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웃어요. 내 손자도 남의 입까지 묶어 두는 아이는 아니니.”
여인은 작은 신발을 수선하고 있었다. 뒷축의 실이 닳아 가늘어졌다. 바다에 가지 못하는 동안에도 다음 발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세라는 바늘에 실 꿰는 일을 도왔다.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들어갔다. 숫자를 센 덕에 불안이 조금 줄었다. 아홉이라는 숫자도 제일 무서운 표지로만 남겨 둘 필요는 없었다. 각자 걸어올 발이 있는 숫자였다.
두 번째 햇볕 날에는 구름이 오래 머물렀다.
달력만 보면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빛돌 표면의 맑은 범위는 전날 아침보다 조금만 넓었다. 세라는 모래시계 그림 옆에 구름이 가린 시간을 덧붙였다.
티오가 불평했다. 하늘을 닦을 천만 있으면 되겠다고 했다. 바렌은 천이 충분히 크면 일단 자기 방 창부터 닦으라고 했다. 소년은 투덜대면서도 실제로 창을 닦았다. 굳은 소금이 떨어지자 햇빛이 넓게 들어왔다.
그 정도만으로 사흘을 줄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받을 수 있는 빛을 놓치지 않는 일은 할 수 있었다.
세라는 낮 동안 소금계단을 위에서 살폈다. 관측대가 잠겼던 자리에 긴 물풀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찾으러 내려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 비싼 물건값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였지만 무릎은 계단 몇 칸만 내려가도 당겼다.
물창고의 받침은 남아 있었다. 티오는 판 아래 습기를 닦고 젖은 매듭을 갈았다. 새 발판을 바다 쪽으로 더 내밀자는 세라의 제안에는 고개를 저었다.
“나무가 버티는 데와 네가 볼 수 있는 데가 같지는 않아.”
세라는 길을 늘려 그리려던 연필을 멈췄다. 종이에 사람을 올려놓는 일이 나무에도 사람에도 무게를 준다는 걸 잊을 뻔했다.
오후 신호에서 마루섬의 판이 조금 높아졌다. 낮은 창고 앞이 아니라 뒤쪽 경사에서 같은 반짝임이 왔다. 오르가 관측 위치를 바꾼 듯했다.
그곳에서 방위가 달라진 것인지, 섬까지의 접힘이 바뀐 것인지 구별해야 했다. 세라는 옛 값 옆에 새 값을 적고 안전 연결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두 관측점이라고 부르려면 서로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누메가 절벽 밑까지 와서 말했다.
“물창고 바닥이 젖으면 저 사람도 더 높은 곳으로 가겠지. 우리한테 맞춰 낮게 서 있으라고 할 순 없어.”
“위치가 달라지면 길을 다시 재야 해요.”
“그럼 다시 재야지. 종이가 사람보다 먼저 마르면 안 되잖아.”
선장의 농담은 짧았지만 세라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지도는 다음 사람이 건널 자리를 남기는 물건이었다. 사람을 지도에 맞추기 시작하면, 섬을 지워 버린 해도와 얼마나 달라질까.
방으로 돌아오니 주민들이 식탁 위에 그릇을 엎어 놓고 있었다. 빵집은 큰 사발, 종루는 길쭉한 물병, 마당이 넓은 집은 나무 접시였다. 천 조각을 접어 바다 쪽 낮은 자리에 깔자 어느 집의 문이 먼저 젖는지 눈에 들어왔다.
세라는 종이를 펴려다가 그릇들 사이에 앉았다. 주민 한 사람이 물병을 뒤로 옮겼다. 오르가 종루에서 빵집으로 가려면 큰길이 아니라 담 밑 좁은 길을 써야 한다고 했다. 큰길 바닥은 바닷물이 닿기 전에 배수구에서 물이 먼저 올라왔다.
“그건 지도에 없어요.”
“길 아래는 지도사도 안 보지요?”
여인이 물었다. 핀잔보다 궁금함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세라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배수구가 어느 담과 이어지는지 다시 물었다.
주민 둘은 위치를 놓고 의견이 달랐다. 세라는 한 사람 말을 고르지 않고 두 개의 작은 콩을 놓았다. 현장에서 볼 때 확인해야 할 점들이었다. 틀릴 수 있는 점을 놓는 손이 이번에는 자기 혼자만의 손이 아니었다.
흰 머리 여인이 나무 접시 가장자리의 작은 흠을 가리켰다. 예전에 장마가 들었을 때 그 마당 담장이 흠 아래까지 젖었다고 했다. 무릎 높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는 몰랐던 고임이 눈앞에 생겼다.
세라는 마지막에 그릇의 모양을 베껴 그리지 않았다. 서로 비교할 기준과 아직 모르는 경사만 옮겼다. 식사 때가 돼 그릇들이 다시 뒤집히자, 바다와 집이 있던 자리에는 따뜻한 수프가 담겼다. 주민들은 지도를 치운 식탁에서도 어느 길로 먼저 걸어야 할지 계속 이야기했다.
그날 저녁 식사 때 누메는 북쪽 연안 순시선 소식을 전했다. 마루섬 수역과 다른, 아직 열려 있는 연안 노선을 도는 배였다. 해도원 감독관 에딘이 로안을 확인하러 온다고 했다.
세라는 숟가락을 멈췄다. 자기 붉은 점 일곱 개를 지우라고 했던 선임의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감독관이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해도원이라는 이름에는 비슷한 맛이 있었다.
바렌은 소금통을 넘겨 달라고 했다.
“오는 사람보다 네 기록을 먼저 봐.”
세라는 밤에 기록지를 순서대로 폈다. 성공한 길만 모으지 않았다. 관측대를 잃은 시각, 틀린 급류 범위, 배가 못 댄 해안, 충전 중인 돌, 남은 사람 아홉. 모두 같은 묶음에 넣었다.
세 번째 햇볕은 얇은 구름 뒤에서 늦게 시작됐다.
세라는 성급하게 빈 칸을 채우지 않았다. 구름에 빼앗긴 시간을 더 받아야 했다. 원래 예상보다 반나절이 길어졌고, 그동안 마루섬은 아침과 저녁 신호로 대기 가능을 알렸다. 즉시 위험 신호가 오면 충전 계획보다 주민 보호를 먼저 다시 판단하기로 누메와 바렌이 정해 뒀다.
구조한 주민들은 한 사람씩 식수와 곡식 양을 계산했다. 돌아가는 배에 실을 몫과 로안에서 쓸 몫을 나눴다. 누메는 현재 보급만으로 무기한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 저녁까지 돌을 못 쓴다면 다음 날 다른 지원을 요청할 준비가 필요했다.
세라는 그 기한을 자기 기록 첫 장에 썼다. 기다림에도 끝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마침내 돌의 마지막 흰 줄이 가늘어졌다. 바렌은 받침을 돌려 돌이 고르게 빛을 받게 했다. 투명한 표면 안에서 낮의 작은 파문이 처음처럼 겹쳤다.
세라는 충전 완료 시각을 적었다. 맑아진 것은 돌이지 지도도, 마루섬의 바닥도 아니었다. 오래 기다린 보상을 지금 당장 모두 태우는 데 써 버리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누메는 다음 항해의 목적을 물었다. 세라는 주민들이 그린 경사도를 펼쳤다. 높은 곳에서 새로 잡은 반사점과 물이 닿은 집 사이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넓은 지붕이 있었다.
“아홉 명을 한 번에 태울 배는 아니에요. 배에 오기 전 기다릴 높은 자리가 필요해요.”
“그 자리가 여기 있기를 바라는 거야, 있는 걸 본 거야?”
세라는 종이 위를 짚었다.
“아직은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확인하러 가야 해요.”
아래 부두에서 낯선 종이 두 번 울렸다. 북쪽 연안 순시선의 접안 신호였다. 티오가 창문에서 몸을 내밀었다가 바렌의 말에 두 발을 다시 바닥에 붙였다.
세라는 말라 있는 기록 묶음을 챙겼다. 한 장도 버리지 않으니 꽤 무거웠다. 계단 아래에는 공문통을 든 에딘이 서 있었다.
감독관은 맑아진 돌보다 먼저, 문 앞에 붙은 임시 항로도를 보았다.
“이 길은 아직 허가된 항로가 아닙니다.”
세라는 묶음 맨 위를 펼쳤다.
“네. 그래서 확인한 것과 못 한 것을 나눠 가져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