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메가 내려놓은 밧줄은 반듯하게 펴지지 않았다.
젖은 동안 굽은 자리가 굳어 있었다. 세라는 그 곡선을 어젯밤 지도 위에 겹쳤다. 바람이 바뀌면 배가 밀리는 쪽도 달라진다고 선장은 말했다. 지도 위 붉은 세모 하나는 그 변화를 다 담지 못했다.
“급류를 점으로 찍으면 안 됐어요.”
“점이 배를 잡아당기지는 않지.”
누메는 손톱으로 종이 옆면을 두드렸다.
“어디까지 돌아야 하는지도 적어 줘. 내가 돌 수 있을 만큼 남겨 놓고.”
세라는 붉은 세모를 지우지 않았다. 그 옆에 어제 관측한 범위와 오늘 다시 볼 범위를 다른 선으로 둘렀다. 해도원에서는 선이 겹치면 지도를 다시 그리라고 했다. 지금 다시 그리면 어제의 잘못부터 사라졌다.
부두에는 빈 물통 대신 뚜껑을 묶은 작은 통들이 준비돼 있었다. 마른 곡식과 식수였다. 구조된 주민들이 남겨 두고 온 식량 위치를 짚으며 고른 양이었다. 누메는 배에 싣기 전에 통을 하나씩 들어 봤다.
사람을 태울 자리까지 짐으로 채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약속도 없었다. 어제 반사판을 든 해안은 날씨가 바뀌며 작은 파도마저 바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물건을 줄 수 있다고 사람을 받는 자리가 되는 건 아니야.”
선장은 부두 위 사람들에게도 들리게 말했다. 흰 머리 여인은 작은 신발을 오늘 배에 싣지 않았다. 대신 식수통 뚜껑을 한 번 더 눌러 보고 손을 거뒀다.
세라는 그 손이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바렌은 마지막 예비 빛돌을 빛실로 가져갔다. 세라는 층계를 함께 오르며 사용 전의 투명함을 그렸다. 돌 안에 작은 파문이 여러 겹 떠 있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것 안에 온 바다가 쉬는 것 같았다.
그 바다를 쓰고 나면 햇볕 사흘이 필요했다.
로안의 평상시 표지에 쓰던 돌은 이미 오래 운용한 상태였다. 그 빛을 새 구조 길에 전부 돌리면 부두 입구 표지까지 잃었다. 남은 예비가 있다는 말은 마음대로 쓸 빛이 많다는 뜻이 아니었다.
바렌은 맑은 돌을 끼운 뒤 아직 켜지 않았다.
“저쪽 눈부터.”
세라는 아래 물창고로 내려갔다. 전날 물이 들이친 바닥보다 한 단 높은 곳에 티오가 받침을 옮겨 놓았다. 들보는 그대로였고, 고정 쐐기는 젖어 조금 헐거워졌다. 소년은 마른 쐐기로 바꾸고 자기 손으로 흔들어 봤다.
“괜찮아. 오늘은 무릎까지 안 올 거야. 적어도 이 판 위는.”
그는 마지막 말을 작게 덧붙였다. 세라는 판 밑의 물 높이를 확인하고 철수할 표시를 골랐다. 낮은 자리가 필요해도 젖은 자리까지 견딜 의무는 없었다.
마루섬의 흰 벽이 보였다. 그 앞에서 반사판 하나가 움직였다. 세라는 자를 받침에 대고 시각을 적었다. 저쪽에서 같은 배를 볼 수 있는지 출항 전 신호를 보냈다.
응답이 왔다. 잠시 뒤 사람 수를 알리는 기존 비상 신호가 이어졌다. 긴 반복과 짧은 반복을 세라와 티오가 따로 세었다. 둘 다 아홉이었다.
아홉 줄 옆에 오늘 확인이라는 작은 글씨가 생겼다.
출발 직전 누메가 마른 빵을 한 조각씩 나눴다. 세라는 관측을 시작했다며 거절하려다가 받아 들었다. 전날에는 배가 돌아온 뒤에야 무릎에 힘이 없다는 걸 알았다. 오늘은 길이 열리기 전에 자기 몸부터 준비해야 했다.
티오는 빵을 반으로 나눠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세라가 왜 남기냐고 묻자 긴장하면 배가 두 번 고프다고 했다. 둘은 짧게 웃고 종이 위에 빵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돌렸다.
물창고 열린 벽 너머로 낮은 구름이 지나갔다. 햇빛은 끊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반사판도 그때마다 어두워졌다. 세라는 그림자가 덮인 관측을 따로 표시했다. 오르가 신호를 멈춘 것과 구름이 빛을 가린 것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먼 판이 바람에 뒤집혀 흰 점이 길게 흔들렸다. 그녀는 그때 출발 표시를 내리지 않았다. 저쪽 사람이 다시 판을 고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곧 오르의 팔이 높이 올라왔고 정해진 응답이 돌아왔다.
세라는 망설임이 적힌 빈 시간을 그대로 남겼다. 배가 아직 부두에 있는 동안 잃은 시간은 누구의 목숨도 빼앗지 않았다. 누메는 그 지연에 화를 내지 않았다. 선장은 멀리 있는 눈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오히려 돛줄을 느슨히 잡고 바람을 한 번 더 살폈다.
바렌이 빛을 열었다. 물 위의 길은 전날보다 짧고 비스듬했다. 세라는 누메에게 수정한 귀항 범위를 표시판으로 보여 줬다. 배는 선장이 고른 바람을 받아 천천히 나아갔다.
처음에는 잘 맞았다. 배가 붉게 표시한 바깥 물결을 피해 안쪽으로 기울자 길의 끝도 그 옆에 붙었다. 세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려다 참았다. 나간 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 가운데에서 돛이 잠깐 두 개처럼 보였다.
접힘의 가장자리였다. 하나는 배의 흰 돛이고 하나는 물결에 뒤틀려 늘어난 빛이었다. 세라는 위쪽 것을 목표로 잡으려다가 누메가 미리 달아 둔 검은 천을 찾았다. 천이 달린 쪽이 실제 돛이었다.
그녀는 눈금 옆에 관측 대상을 다시 적었다. 저쪽 오르도 같은 천을 보고 있어야 했다. 종루 신호가 정해진 리듬으로 돌아왔다. 두 시각의 오차가 허용 범위 안에 들자 길의 흔들림이 줄었다.
티오는 모래시계를 뒤집고 손가락으로 남은 시간을 보였다. 말이 길어지면 바다 쪽 신호를 놓칠 것 같았다.
누메의 배는 마루섬 해안 가까이에서 속도를 낮췄다. 선장이 높은 팔 동작으로 배를 댈 수 없다는 신호를 했다. 낮은 돌 계단 위로 흰 물이 연달아 부서졌다. 사람을 건네받는 널빤지를 놓을 자리가 없었다.
세라는 그 틈을 넓혀 그리면 될 것 같은 유혹을 느꼈다. 종이에서는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됐다. 하지만 바위와 파도는 같이 비켜 주지 않았다.
누메는 정박 대신 바람을 받는 각도를 유지했다. 해안에서 오르가 나타났다. 그는 높은 돌에 몸을 고정하고 배에서 건넨 보급 통을 받았다. 길게 오가는 작은 통이 물결을 건널 때마다 세라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통을 끌어 올리는 일은 저쪽 사람이 했다. 여기서 보고 있다는 이유로 세라가 더 빨리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관측점을 놓치지 않고 누메의 배가 밀리는 범위를 기록했다.
마지막 통이 해안에 올라갔다. 오르는 높은 길을 가리켰다. 흰 벽 뒤로 이어진 경사, 그 위 작은 지붕. 다음으로 물독을 가리키고 뚜껑을 두드렸다. 선장이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은 보였다.
세라는 그 동작의 뜻을 혼자 풀어 쓰지 않았다. 물과 사람 상태는 누메가 돌아온 뒤 직접 들을 일이었다. 지금 적을 것은 배가 해안에 닿지 못한 지점과 그때의 파도였다.
돌아서는 배 옆에서 물빛이 어두워졌다.
세라는 전날 그린 급류 세모를 봤다. 누메가 지적한 안쪽으로 검은 고리가 이동해 있었다. 아니, 고리가 움직인 것인지 조석에 따라 보이는 물이 바뀐 것인지 아직 몰랐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배가 향하는 길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티오가 붉은 표시판을 들었다. 세라는 손에 든 자를 내려놓고 수정 범위판을 펼쳤다. 큰 선과 작은 선이 겹쳐 있어 소년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세라는 순간 답을 고르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배와 종이에 적은 범위가 맞지 않았다. 숫자를 빨리 외치는 대신 위험 중지 표시를 보냈다.
누메가 돛을 풀었다. 배가 돌아서는 대신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밀렸다. 선장은 자기 배가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세라는 선체가 지나간 자리를 보고서야 귀항 선을 더 넓은 곡선으로 잡았다.
마루섬의 종이 같은 박자로 울렸다. 오르도 배를 놓치지 않았다. 세라는 받침에 몸을 고정하고 두 번째 값을 읽었다. 처음 값과 맞지 않았다. 그녀는 둘을 평균내지 않았다.
“첫 값은 중지 뒤 이전 위치야.”
티오가 모래시계 옆에 놓인 기록을 가리켰다. 소년은 기구를 몰라도 언제 판을 바꿨는지는 알았다. 세라는 시각 한 줄을 고치고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길이 배 옆에 붙었다.
물 위에 작고 고요한 틈이 열렸다. 누메는 그 틈을 곧게 가르지 않았다. 급류에서 밀려난 거리를 남겨 두고 크게 돌아 부두 쪽을 향했다. 돌아올 길은 지도 한 줄보다 훨씬 넓은 물을 요구했다.
빛실의 돌이 하얗게 흐려졌다.
바렌은 아직 남은 빛을 줄여 쓰고 있었다. 세라는 그 사실을 창 위의 느린 신호로 알았다. 마지막 구간을 좁히되 선폭 아래로 줄이지 말 것. 누메는 이미 돛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가 부두에 닿자 세라는 줄을 잡으러 뛰지 않았다. 티오와 부두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받았다. 그녀는 마지막 방위를 적고, 배가 완전히 묶인 뒤에야 반사판을 내렸다.
무릎은 앉았던 자세대로 굳었다. 일어서려면 양손으로 받침을 짚어야 했다. 티오는 먼저 올라가겠다고 큰소리쳤다가 한 걸음 뒤에서 어지럽다고 말했다. 둘은 천천히 함께 나왔다.
누메는 아홉 명 모두 살아 있고 높은 빵집 방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물독은 아직 쓰지만 비가 오래 오지 않으면 넉넉하지 않았다. 방 두 개 중 낮은 쪽 바닥에는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르는 여유가 있는 척했으나 멀리 계단을 오르는 사람 둘이 부축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누메는 보급 통을 건네고 곧 돌아와야 했다. 좁은 돌계단으로 사람을 옮길 파도 틈은 오지 않았다.
흰 머리 여인은 손자 신발을 가슴에 안았다. 누구도 빈 배라고 말하지 않았다. 배 안에는 젖은 관측 기록과, 다음에 닿을 수 없는 장소의 이름이 돌아와 있었다.
세라는 지도 위의 위험 범위를 마무리했다. 기존 세모를 지우는 대신 첫 관측 시각을 붙였다. 오늘 확인한 물길과 선회 여유를 그 옆에 남겼다. 보기에는 더 복잡해졌다.
누메는 한참 들여다보더니 손가락으로 넓은 곡선을 따라갔다.
“이제 돌아설 자리도 있네.”
세라는 그 말에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바렌은 거의 탁해진 두 번째 예비 돌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쓴 돌도 아직 충전을 시작하지 못한 상태였다. 둘 다 오늘부터 햇볕을 받아야 했다. 구름이 덮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늘었다.
세라는 깨끗한 종이에 돌 두 개를 그리고 아래에 빈 칸을 셋씩 만들었다. 사흘은 날짜 세 개가 아니라 실제 빛을 받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마루섬의 바닥이 얼마나 젖을지 따로 보아야 했다.
누메가 젖은 선실에서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 오르가 보급 통에 매달아 돌려보낸 것이었다. 천에는 긴 선 세 개와 짧은 선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빵집 벽에 남은 물높이를 그린 표지라는 설명을 선장이 가까이에서 들었다고 했다.
세라는 그 선들을 지도 옆에 놓았다. 어느 높이인지 알려면 실제 건물의 기준점이 필요했다.
돌을 채우는 사흘 동안, 바다는 그 높이를 기다려 주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