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열나흘째 아침, 빗물이 처마 끝에서 한 줄로 떨어졌다. 수현은 문턱 안쪽에 앉아 그 선을 보았다. 나루에서 소리를 들은 다음 날이라 귀가 쉽게 피곤했다. 오늘은 새 관찰을 받지 않고 쉬겠다고 곽두에게 먼저 답했다.
표 그림을 다시 그려 달라는 문의에는 바로 값을 정하지 않았다. 작은 종이 하나라고 손의 떨림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곽두는 알겠다고 답했고 오늘은 직원들이 실제 표를 먼저 보여 주며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림이 없다고 나루 일이 멎는 것은 아니었다.
조일은 창가에 놓인 빈 상자를 안쪽으로 옮겼다. 견습의 읽는 받침은 마른 탁자 위에 있었다. 그런데 비를 피하려고 가져온 주문 묶음이 그 앞에 쌓였다. 수현이 종이를 받침에 다 올릴까 물으려 하자 조일이 한 장만 남기겠다고 먼저 말했다.
견습은 자기 붓통을 뺄 자리를 찾았다. 탁자 끝에는 수현의 빈 컵이 있었다. 조일은 컵을 치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가게에 사람 둘인데 물건이 사람보다 목소리가 크다고 답했다. 견습은 물건에게도 자릿값을 받자고 했다.
오늘 아침 새 수입은 없었다. 수현은 전날 받은 돈에서 쌀과 작은 부식에 나간 몫을 확인했다. 남은 돈이 있다고 손의 쉬는 시간을 덜어 팔지는 않았다. 정밀 감정대는 닫힌 채였고 결청도 쓰지 않았다. 모루 아래 낡은 검사 자는 제자리에 있었다.
윤초에게서 비가 조금 잦아들면 잠깐 들러도 되느냐는 말이 왔다. 그녀는 모임에서 받은 질문지를 직접 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수현은 오늘 뒤방에서 쉬고 있으니 짧게 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녀의 일을 대신 수락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점심 무렵 윤초가 문을 두드렸다. 젖은 겉옷 끝을 털고 안으로 들어왔다. 수현은 뜨거운 물이 든 컵을 한꺼번에 두 개 들려다가 하나씩 옮겼다. 그녀는 먼저 받은 컵을 탁자 가운데로 밀어 자리를 만들었다. 누가 더 성한 손을 가졌는지 말하지 않아도 같이 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
윤초는 종이를 펼쳤다. 내일 짧게 앉아서 실제 운송 경험을 설명하는 한 자리였다. 사람 수와 쉬는 때를 맞췄고 자기 경험 밖의 경로를 묻는 줄은 빠졌다. 그녀는 그 범위로 받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수현은 그제야 축하한다고 했다.
“아직 말한 건 아니야.”
그녀가 답했다. 그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축하는 실제 일을 끝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범위를 골랐다는 데 붙였다. 윤초는 잠깐 웃더니 그 말이라면 받겠다고 했다. 대금은 내일 약속한 설명을 마친 뒤 받을 예정이었다.
수현은 자기가 가면 편할지를 물었다. 윤초는 잠깐 생각하더니 내일은 혼자 가 보겠다고 했다. 문 가까운 자리를 골랐고 모임을 맡은 사람이 중간에 나가도 된다고 답했기 때문이었다. 수현은 그 대답을 자기 필요가 없다는 말로 읽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일이 끝나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자기 쪽에서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다. 같이 버틴 시간이 있다고 앞으로의 모든 자리도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조금 커졌다. 수현은 잠깐 말을 멈추고 귀가 어떤지 말했다.
윤초는 질문지를 접었다. 오늘 자기 부탁도 짧게 끝내겠다고 했다. 수현은 듣기 싫어서 멈춘 것이 아니라 소리가 겹치면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알아들었다고 답했다. 그가 자기 몸을 말할 때 상대의 얼굴에서 실망부터 찾던 버릇이 조금 늦게 움직였다.
앞방에서 조일이 작은 소리를 냈다. 종이를 눌러 두려 놓은 빈 나무그릇이 기울어 먹물이 조금 번졌다. 견습은 자기 손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수현이 일어나려 하자 그는 다친 것은 없고 탁자 위 종이만 젖었다고 먼저 말했다.
수현은 문간까지만 갔다. 지금 젖은 것은 새 주문 내용이 아니라 빈 뒷장이었다. 조일은 실제 주문 한 장을 따로 들어 올리고 탁자의 젖은 자리를 비웠다. 견습의 받침은 읽는 물건이었고 먹물을 눌러 두는 물건으로 바꿀 이유는 없었다. 둘은 마른 종이를 먼저 옮겼다.
윤초는 지나갈 자리를 물은 뒤 물그릇을 안쪽으로 가져왔다. 자기 손목이 괜찮다는 시범처럼 무거운 것을 집지는 않았다. 조일이 작은 천을 가져와 닦았다. 셋은 누가 구해 줬는지 말하지 않고 각자 만진 물건을 제자리로 돌렸다. 먹물 자국은 탁자 한쪽에 남았다.
견습은 이번에는 지붕이 아니라 자기 그릇이 문제라고 중얼거렸다. 수현은 비를 핑계로 그릇을 몰래 무죄로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윤초가 그릇에게 변호인을 붙여 주겠느냐고 물었다. 조일은 쌀을 먹는 변호인은 안 된다고 답했다.
웃음이 조금 길어져 수현의 귀가 다시 당겼다. 그는 뒤방에 앉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좋은 시간이 몸을 안 쓰는 시간은 아니었다. 윤초도 따라 들어와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골랐다. 서로 즐거웠다는 이유로 더 오래 버티자고 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 컵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수현은 자신이 그린 두 컵과 실제 컵을 번갈아 봤다. 윤초는 그림을 보고 싶으면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꺼내도 괜찮다고 답하고 상자에서 종이를 꺼냈다. 앞서 그린 세 손가락의 손이 함께 나왔다.
그녀는 손 그림을 한동안 봤다. 고양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무엇을 보고 그렸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자기 손을 보다가 셋에서 멈췄다고 답했다. 윤초는 남은 두 개를 안 그리니 잡으려는 손인지 놓는 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현은 자기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 손이 그녀의 손이라고 설명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 손목을 생각해 그렸을까 봐 잠깐 긴장했다. 그는 그런 뜻을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초는 그 말이 고맙다고 답했다. 자기 손목이 언제나 두 사람 이야기의 제목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손을 종이 옆에 놓았다. 손목을 돌리거나 증상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냥 손가락을 편 손이었다. 수현은 그려도 되는지 물었고 그녀는 오늘은 보게만 두겠다고 답했다. 그는 붓을 찾지 않았다. 허락받지 않은 그림을 잘 그리는 일보다 지금 대답을 듣는 일이 먼저였다.
손이 종이 옆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수현은 손가락 사이의 그림자를 봤다. 결청으로 들을 수 있는 물건도, 정밀 감정으로 값을 붙일 재료도 아니었다. 누군가 자기 손을 그 자리에서 잠깐 펴 두었다. 그 이상을 알아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윤초는 손을 거두고 내일 질문 가운데 어려운 줄을 다시 말했다. 짐을 놓쳤을 때 누구 책임이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겪은 계약에서 무엇을 확인했는지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수현은 그게 회피처럼 들릴까 걱정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 그림에서도 표를 안다고 길 전체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내일 그녀가 실제로 말할 자기 장면이 있다고 말했다. 윤초는 그 줄을 짧게 읽어 줬다. 그는 문장의 법적 옳고 그름을 대신 판단하지 않고 자기 귀에 어떻게 들렸는지만 답했다.
윤초는 다시 읽을 때 끝을 조금 줄였다. 자기 잘못이 없었다고 먼저 말하는 대신 당시 자신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부터 시작했다. 수현은 그 편이 듣기 쉽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도 숨이 덜 막힌다고 답했다. 그 한 번의 읽기는 내일 모임 전체를 끝낸 연습이 아니었지만, 오늘 자신의 말을 한 번 들은 시간은 됐다.
수현은 종이를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져온 질문지를 가게에 남겨 복사해 두지도 않았다. 윤초는 자기 종이를 접어 챙겼다. 일을 받는 사람은 그녀였고 내일 대답할 사람도 그녀였다. 같이 앉아 들었다는 사실은 그 몫을 반으로 나누는 계약이 아니었다.
오후 빛이 조금 밝아지자 그녀는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수현은 문 앞까지 함께 갔다. 윤초가 젖은 길을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어떤 뜻인지 물었고 그녀는 낮은 턱을 내려갈 동안 잠깐 잡아 달라고 했다. 그는 그 손을 잡고 발이 바닥에 닿은 뒤 놓았다.
그 짧은 동작에서 회복의 속도를 재지 않았다. 윤초는 턱 아래에서 고개를 들고 내일 끝나면 자기가 소식을 주겠다고 했다. 수현은 기다리겠다고 답했다가 하루 종일 문 앞에 서 있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그럼 그림 하나쯤은 쉬게 둘 수 있겠다고 웃었다.
가게 안으로 돌아오자 조일이 남은 먹물 자국을 보고 있었다. 닦아도 조금 남았다고 했다. 수현은 탁자를 새것으로 만들 약속은 없었다고 답했다. 견습은 값표를 거기에 놓으면 덜 보인다고 했다가 손을 멈췄다. 글씨가 더 안 보일 수 있었다. 둘은 종이를 마른 쪽에 뒀다.
수현은 뒤방에서 눈을 쉬었다. 오늘도 새 수입은 없었다. 대신 윤초가 자기 일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자기 종이를 함께 볼 사람에게 오늘의 허락을 물었다. 그것들을 장부의 빈 수입 칸에 대신 적지는 않았다. 돈 아닌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쌀값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늦은 오후 곽두가 보낸 현재 표 한 장이 왔다. 그림을 다시 부탁할 때 참고하도록 보내온 사용하지 않는 빈 양식이었다. 수현은 그 물건을 책상 위에 놓고 실제 크기와 모서리를 봤다. 당장 붓을 잡지는 않았다. 내일 현재 손으로 작은 안 하나가 가능한지 답할 자료를 받은 것이었다.
표를 뒤집으니 뒷면은 비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종이를 돌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어느 모서리로 건네면 표 그림이 다른 방향이 되는지 실제 양식을 들고 볼 수 있었다. 종이를 잡는 이 짧은 동작에도 손이 조금 떨렸다. 그는 표를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 앉았다.
저녁에는 조일과 남은 밥을 데웠다. 견습은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자기 받침을 길모에게 잠깐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수현은 가게 앞 배정을 맞춘 뒤 다녀오라고 답했다. 견습의 물건을 누가 보고 어떻게 고칠지는 견습이 먼저 말할 일이었다.
냄비 바닥의 밥이 조금 눌었다. 조일은 자기가 불을 오래 봤다고 말했다. 수현은 오늘 종이는 안 눌렀으니 밥이 대신 눌린 것이냐고 했다. 견습은 그러면 받침을 냄비 밑에도 사야 하느냐고 물었다. 둘은 밥을 그릇에 나누고 눌은 것은 따로 덜었다. 덜 맛있는 한 끼가 오늘 쉬기로 한 선택을 틀린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정밀 감정대의 천을 정리했다. 닫혀 있는 날이 길어진다고 그 자리가 자기 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다시 맡을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오늘 몸이 그 약속을 해 주지는 않았다. 수현은 천을 걷어 스스로를 시험하지 않고 먼지만 털었다.
밤에는 세 손가락의 종이를 컵 그림 뒤에 넣었다. 윤초가 옆에 두었던 실제 손은 종이에 남지 않았다. 그리지 않은 손목을 기억하는 일이 그림을 빼앗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빈 두 자리를 오늘 그대로 남겼다. 내일 그녀가 자기 말로 맡은 자리에 앉을 때, 자신은 자기 손이 할 수 있는 한 장을 다시 고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