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닷새째에는 바람이 먼저 문을 흔들었다. 수현은 바깥 돌이 마른 것을 보고 아침 물을 마셨다. 전날 붓을 쥔 피로는 조금 남았지만 새로 심해지지는 않았다. 그는 명주에게 정한 만큼 다녀가겠다는 답을 보냈다. 오후와 저녁까지 같은 몸일 거라고는 약속하지 않았다.
조일은 종이 모형 위에 얹은 나무쪽을 보여 줬다. 밤새 날아간 장은 없었다. 수현은 밤에 문을 닫아 두었으니 바람을 막는 힘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견습은 자기 종이가 밤에 얌전했다는 것만 알겠다고 답했다. 작은 농담 덕분에 아침부터 시험을 늘리지 않아도 됐다.
명주의 가게에는 길모가 먼저 와 있었다. 그가 만든 시험용 틀은 기존 판보다 낮고 넓이는 좁았다. 명주 쪽에만 종이 끝을 받는 낮은 나무가 붙어 있었다. 위로 잡아당기지 않고 옆으로 밀어 꺼내기 위한 자리라고 했다. 수현은 자기 그림 속 네모가 그대로 자라난 것이 아님을 봤다.
길모는 자기 제작 품과 수현의 관찰 품이 다르다고 먼저 말했다. 틀을 고치려면 자기가 하고, 실제 사용하는 손은 명주가 맡기로 했다. 수현은 벽 쪽에 앉아 숫자를 볼 사람이 서는 자리도 함께 보았다. 오늘은 그릇 쟁반을 어디로 치웠는지부터 물었다. 쟁반이 다른 통로를 막지는 않았다.
명주가 손님에게 보여 줄 장을 기존 판에 놓았다. 새 틀에는 아래 장이 눕듯 놓였다. 두 장이 서로 닿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보여 줄 장을 가볍게 짚고 왼손으로 자기 쪽의 빈 줄을 찾았다. 종이가 함께 돌아가지 않았다. 수현은 첫 동작의 끝을 적었다.
명주가 얼굴을 폈다. 어제 한 판에서 다투던 두 손이 각자 종이에 가 있었다. 수현도 반가웠다. 그러나 그녀가 새 수량을 적으려고 붓을 들자 소매 끝이 틀의 모서리에 닿았다. 붓이 멈추고 잉크 한 점이 빈 곳에 떨어졌다. 가게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종이만 둘로 나눈다고 팔도 둘이 되는 건 아니네요.”
명주가 말했다. 수현은 원래 팔도 둘이라고 답할 뻔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오늘의 불편은 웃기려는 말로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방금 닿은 곳을 명주가 직접 가리키게 했다. 길모는 틀을 바로 깎지 않고 소매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다시 봤다.
소매를 접어 올리면 안 닿을 수도 있었다. 명주는 지금도 그릇을 나를 때는 묶지만 계산하는 동안 풀어 둔다고 했다. 늘 묶어야 하는 틀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길모는 모서리를 낮춰도 종이가 바람에 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무를 덜어 내는 것만이 쉬운 답은 아니었다.
수현은 명주에게 붓을 내려놓을 때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녀는 붓집 옆으로 손을 뻗었다. 소매가 또 같은 곳에 걸렸다. 새 틀이 기존 붓받침과 손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수현은 종이를 나누는 동안 다른 물건의 길을 잠깐 잊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자기 그림의 빈 곳에 붓받침을 더했다.
길모가 틀을 손바닥 폭만큼 안쪽으로 옮겨 보자고 했다. 명주가 직접 종이를 들어 비우고 목수가 빈 틀을 옮겼다. 수현은 움직이는 나무를 잡지 않았다. 새 자리에 두니 팔이 지나갈 폭은 생겼다. 그러나 명주가 아래 줄을 보려 몸을 더 숙였다. 손님 장의 가장 낮은 숫자는 시야에서 다시 가려졌다.
명주가 한숨을 쉬었다. 돈을 쓰고 더 오래 생각하는 날이 됐다는 말이었다. 수현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오늘 다른 문제를 만들었으니 어제 품은 돌려줘야 하는지 스스로 묻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그 마음을 명주에게 떠넘기지 않고 방금 가려진 줄을 정확히 적었다.
그림 속에는 손님이 없었다. 수현은 문득 자기 의자가 손님 자리보다 너무 높다는 것을 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높이를 맞추려다가 멈췄다. 오늘 의자는 몸을 쉬게 하는 데도 필요했다. 명주에게 실제 손님 쪽 낮은 자리에서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그쪽으로 가서 마지막 숫자를 말했다.
끝의 여섯이 잘려 셋처럼 보였다. 기존 판의 턱에 종이가 조금 내려앉은 탓이었다. 새 틀만 옮겨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길모는 손님 장이 서는 판의 받침 폭도 봐야겠다고 말했다. 명주는 원래 판을 전부 갈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목수는 아직 아니라고 답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장사가 들어왔다. 명주는 물건을 맡기고 가는 사람이니 잠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수현은 관찰을 중지하고 종이를 접었다. 그 사이에도 정한 짧은 시간이 흘렀다. 길모는 자기가 명주와 제작을 계속 협의할 수 있으니 수현은 지금 본 데까지 정리하고 가도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반가움보다 아쉬움이 먼저 났다. 수현은 좋은 끝을 못 보고 돈을 받아도 되는지 잠깐 망설였다. 명주는 가게 일을 끝내고 와서 오늘 팔이 걸리는 곳을 실제 찾았으니 충분히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있었다고 완성품의 보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늘 본 것과 못 본 것을 나눠 전달했다.
그는 품을 받고 일어났다. 길모가 뒤에서 종이를 조금 더 높이는 얇은 받침의 값을 명주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그 값에 자기 관찰료를 덧붙이지 않았다. 이미 끝난 범위였다. 문을 나가기 전에 다음 그림이 필요하면 새로 묻되, 이번 일은 둘이 마쳐도 괜찮다고 말했다.
명주가 고맙다고 했다. 좋은 틀이 되면 보여 주겠다는 말도 했다. 수현은 보여 달라는 말을 새 방문 약속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귀가 피로했고 햇빛이 눈에 가늘게 번졌다. 바로 집으로 서두르기보다 그늘에 앉았다.
바람이 길 건너 천을 부풀렸다. 그는 종이 두 장 사이에도 그 바람이 들어갈 수 있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가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의무로 만들지는 않았다. 목수와 쓰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수현이 없는 동안 해결되는 일도 자기 관찰을 헛일로 만들지는 않았다.
쉬고 돌아오니 조일이 물을 새로 받아 놓았다. 견습은 오늘 틀이 어땠는지 묻다가 수현의 굳은 어깨를 봤다. 먼저 앉을 것인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가게 문이 반쯤 닫혔다. 설명은 물 한 모금 뒤로 미뤄도 아직 자기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수현은 소매와 붓받침 이야기를 했다. 조일은 자기 상자에도 붓을 놓을 곳을 안 그렸다고 말했다. 그가 오늘 가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똑같은 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견습은 실제 쓰는 작은 붓통을 모형 곁에 가져와 봤다. 상자를 열지도 않았는데 손이 먼저 돌아갔다.
“집도 안 샀는데 이웃이 많네요.”
조일이 말했다. 수현은 그래서 땅을 먼저 봐야 하나 보다고 답했다. 견습은 자기 탁자 땅값은 얼마냐고 물었다. 그는 오늘 저녁 자기 컵을 옮길 정도라고 했다. 조일은 그건 내일도 받는 세금이냐고 물었다. 둘이 웃으며 실제 컵과 붓통의 사이를 조금 벌렸다.
낮에는 수현이 그림을 꺼내지 않았다. 손이 피곤할 때 더 좋은 선을 만들겠다고 잡으면 낮의 짧은 일을 저녁까지 늘이게 됐다. 그는 윤초에게 오늘 낮 다녀온 뒤 쉬고 있다고만 알렸다. 저녁에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약속은 아직 보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녀의 길을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 뒤 윤초에게서 답이 왔다. 오늘은 자기 볼일이 늦어져 백가 앞을 지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수현은 그림이 두 사람의 하루를 기다리게 만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조금 아쉬웠다. 그는 그 두 마음을 모두 두고 다음에 실제 시간이 맞으면 보자고 답했다.
자기 그림의 컵들은 그대로였다. 수현은 그것을 말려 둔 판에서 꺼내 탁자에 뒀다. 명주에게 건넨 손 그림과 달리 선이 틀렸다고 고쳐야 할 의무는 없었다. 윤초가 보면 어느 컵이 자기 것인지 물을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른다고 답할 준비를 했다. 그 대답이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해가 기울 때 길모가 백가 앞을 지나며 불렀다. 손에는 낮에 사용한 자가 들려 있었다. 명주가 소식을 전해도 좋다고 했다고 먼저 말했다. 손님 판에는 종이를 높여 받는 얇은 별도 턱을 붙였고 자기 쪽 틀은 붓받침과 간격을 벌려 뒀다는 것이다. 수현은 그 설명을 실제 본 성공으로 바꾸지 않았다.
길모는 명주가 종이를 세 번 바꿔 놓으며 해 봤고 오늘 그 동작에서는 소매가 다시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람이나 더 두꺼운 옷까지 장담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소식을 들었다고 답했다. 자기 눈으로 새 물건을 봐야만 남의 일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제작을 더 해 달라고 자기에게 전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길모는 없다고 답했다. 조일이 옆에서 자기 상자도 목수를 따라가느냐고 묻자, 목수는 상자가 먼저 값을 들고 오면 생각하겠다고 했다. 견습은 자기 돈이 상자보다 빠르게 도망간다고 답했다. 길모가 웃으며 길을 갔다.
수현은 오늘 관찰 품을 장부에 썼다. 목수의 추가 품은 자기 지출도 수입도 아니었다. 명주가 받침을 고쳤다는 소식만 옆의 생활 메모에 남겼다. 이틀 관찰료로 지붕값이 전부 메워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닫힌 감정대를 억지로 열지 않고 돈을 받은 줄이 둘 생겼다.
그 줄을 보자 다시 일을 더 받고 싶었다. 매번 짧게 보면 세 번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왔다. 정밀 감정의 하루 상한과 새 관찰의 피로는 같은 셈이 아니었다. 수현은 아직 두 일을 섞어 한도를 만들지 않았다. 오늘 이미 귀와 손이 피곤하다는 실제 상태가 먼저였다.
조일은 내일 자기 모형을 더 고칠 생각이라고 했다. 수현에게 봐 달라는 부탁은 아니었다. 그는 내일 아침 몸을 보고 잠깐 앉아 있을 수 있으면 같이 차를 마시겠다고 답했다. 견습은 상자보다 차가 먼저 만들어지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잎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문간에서 바람이 또 들어왔다. 조일의 모형 안 종이는 나무쪽 밑에서 조금 들썩였다. 견습은 바로 누르지 않고 종이를 꺼내 빈 모형만 남겼다. 오늘 주문 네 장은 이미 따로 묶어 두었다. 바람을 이기는 상자를 오늘 안에 만들 필요는 없었다. 수현은 그 선택을 보고 가게 문을 천천히 닫았다.
조일이 남은 얇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림 위에 덮어 두면 먼지가 덜 앉겠다는 말이었다. 수현은 새 종이를 사서 덮기까지 할 물건인지 묻자 견습이 뒷면에 자기 계산이 잘못돼 이미 못 쓰는 장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글씨가 그림에 묻지 않게 다 마른 쪽을 확인하고 조심히 얹었다.
덮인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디에 뒀는지 알 수 있었다. 수현은 덮개의 귀퉁이를 접어 그림보다 조금 밖으로 나오게 했다. 내일 손이 덜 편해도 그 끝을 잡으면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물건 하나가 가게 안에 제자리를 얻었다.
어둠이 오자 골목의 그릇 소리가 멀어졌다. 수현은 귀가 조금 편한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명주의 새 턱이 아래 한 줄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자기 그림에도 빈 사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그 사이에 뭔가를 더 채우지 않은 채 오늘 붓집을 닫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