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표국까지 가는 길을 지도 없이 셀 수 있었다. 그런데 백아흔사흘째 아침, 윤초가 내일 자리를 잠깐 보러 오겠느냐고 묻자 처음부터 다시 세어야 했다. 몇 번의 모퉁이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칠목의 답은 실제로 와 있었다. 전날 보낸 준비 시간과 설명 두 차례, 쉬는 동안의 대기 의무가 없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품의 값도 서로 합의했고 지급은 설명을 마친 날이라는 답이 붙었다. 윤초는 오늘 먼저 담영을 만나 말과 시연의 순서를 맞추러 간다고 했다.
수현은 그 자리에 자기 역할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없다고 답했다. 손님으로 보고 싶은지 묻는 것이며 물건을 듣거나 검사해 달라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수현은 그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조금 서운했다. 쓸모 없어도 와도 된다는 말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내일 첫 설명을 조금 보되 끝까지 있을 약속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윤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아야 자기 품이 잘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수현은 평가하러 갈 생각이었느냐고 스스로 되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렇게 들었다는 뜻은 아니라며 웃었다.
오늘 필요한 일은 내일의 관람을 잘 계약하는 데 있지 않았다. 수현은 어제 길모에게 들은 남은 받침 이야기를 떠올렸다. 목수는 오늘 그릇 가게가 아니라 천을 파는 집에 작은 발판을 가져다줘야 한다고 했다. 두 가게의 물건이 섞인 줄 알고 있던 것은 수현이었다.
그는 낮에 길모를 만나면 물어보기로 했다. 모든 전갈을 바로 불러 세우면 다른 사람의 수레는 백가 문 앞에서 하루를 보낼 터였다. 조일이 오늘 가게에 남을 수 있다고 했지만, 수현은 견습의 저녁도 비워 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침의 백가에는 새 무기 의뢰가 없었다. 문간 안내를 읽던 사람이 밖에서 발길을 돌렸다. 수현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정밀 감정을 안 받는다는 글이 손님 하나를 놓친 것이고 동시에 아직 안 한 약속 하나를 막은 것이었다.
그는 간판 뒤에 남은 물자 목록을 조일과 맞췄다. 오래된 못과 철편은 손으로 하나씩 세지 않았다. 무게만으로 정확한 수를 안다고 하지도 않았다. 견습이 분류된 작은 상자를 현재 장부와 대조하고, 다른 것과 섞인 둘은 따로 뺐다.
조일은 그릇 가게에서 배운 종이 접는 방법을 이 상자에도 쓰자고 했다가 손을 멈췄다. 주문의 끝난 줄을 구분하는 접힘과 날카로운 철편을 넣는 보호는 다른 일이었다. 그는 글자를 밖으로 돌려 두는 것만 오늘 시험하겠다고 했다.
수현은 그 선택이 마음에 들었으나 길게 칭찬하지 않았다. 상자 하나의 글자가 너무 아래에 붙어 뚜껑을 닫아야 읽혔다. 견습이 다시 밖에 붙였고, 둘은 상자를 여닫는 손에 종이가 걸리지 않는지 봤다. 배운 것을 옮기려면 옮기는 자리도 바뀌었다.
점심 무렵 윤초가 짧게 들렀다. 표국의 준비 만남이 끝난 뒤였다. 그녀가 바로 말하지 않자 수현은 물부터 권했다. 윤초는 담영이 새 표사가 아니라 기존 운반 경험이 있는 성인 표사이며 오늘 빈 짐틀로 동작을 맞췄다고 말했다.
첫 시도에서 그녀는 말을 너무 빨리 했다. 담영이 끈을 한 바퀴 두르는 사이에 윤초는 다음 두 순서까지 설명했다고 했다. 뒤에 듣던 담당자가 지금 어느 매듭을 보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직접 손을 쓰지 않으면 말도 느려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대였다고 했다.
수현은 손이 머무를 자리가 없어 말이 앞서 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윤초는 그럴 수도 있지만 오늘 한 번의 시도만으로 자기 버릇을 다 알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다만 담영이 동작을 끝내고 손을 놓았을 때 다음 말을 시작하니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실제 끈을 잡지 않고 무릎 위에 올려뒀는데 손가락이 자꾸 매듭 모양으로 모였다고 했다. 수현은 자기 물병의 마개를 봤다. 누군가 물건을 고치는 소리를 들으면 손이 먼저 공구를 찾곤 했다. 머릿속에서 한 동작도 실제 몸의 힘을 쓸 때가 있었다.
윤초는 내일 설명 자리에 짐의 이름을 적은 큰 종이를 두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종이만으로 순서가 쉬워질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녀는 자기 말이 빨라지면 어느 줄을 지나쳤는지 자기가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듣는 사람에게 읽기를 맡기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다면 글자를 누가 넘길지부터 생각해야겠다고 말했다. 윤초가 웃었다. 아직 종이에 한 글자도 안 썼는데 수리공이 벌써 걸리는 부분을 찾는다고 했다. 수현은 자기도 오늘은 그냥 듣는 손님으로 남을 연습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빈 종이에 짐, 받침, 풀 곳이라는 세 단어를 적었다. 윤초가 자기 말로 첫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솥 두 개를 묶고 나서 끈을 끊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글로 보면 짧았다. 그러나 누가 어디에서 받는지를 말하려면 그 사이에 사람이 더 들어왔다.
수현은 글이 너무 작아 보인다고 말하려다가 종이를 멀리 놓아 봐도 되는지 물었다. 윤초가 좋다고 했다. 그는 손을 뻗어 종이를 옮기지 않고 조일에게 탁자 끝으로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견습은 자기 장부를 먼저 덮고 종이를 옮겼다.
수현은 의자에서 그 글자를 읽었다. 글씨가 작은 것이 아니라 종이가 바닥 쪽으로 누워 있어 빛을 반사했다. 조일이 나무 상자에 잠깐 받치자 읽혔다. 하지만 상자가 깊어 탁자의 다른 물건을 가렸다. 그들은 이 자리를 그대로 표국에 가져가면 된다고 하지 않았다.
“내 글씨를 잘 읽으려고 수리점이 멈추는군.”
윤초가 말했다. 조일은 가게가 지금 무기를 안 받는다고 종이도 아무 데나 받아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수현은 웃다가 목이 조금 잠겼다. 견습의 말에 장난이 있어 다행이었다. 자신이라면 같은 뜻을 훨씬 무겁게 말했을 것 같았다.
윤초는 종이를 들어 자기 가방에 넣었다. 표국의 실제 자리에서 담당자와 받침을 고르겠다고 했다. 내일 수현이 올 수 있다면 건너편 문에서 첫 설명 전에 만나되, 못 오면 그때 소식만 줘도 좋다고 말했다. 수현은 길을 보고 저녁에 답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떠난 뒤 길모가 돌아왔다. 받침은 새 자리에 놓았지만 처음 만든 높이로는 손님이 올라서기 어려워 한 번 낮췄다고 했다. 수현은 왜 그릇 가게의 계산판 받침이 다시 필요한 줄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길모는 나무를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가게가 같은 받침을 쓰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다고 했다.
수현이 웃자 목수도 웃었다. 천 가게의 발판은 사람이 올라가는 것이고 그릇 가게의 받침은 종이를 보는 것이었다. 길모는 같은 나무라도 누구의 발과 손을 받는지에 따라 다른 물건이 된다고 했다. 수현은 그 말을 윤초의 설명 종이에 바로 붙이지 않았다.
그는 표국까지 가는 길을 오늘 조금 걸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길모는 자기 수레를 잡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수레가 비어도 손잡이를 지팡이처럼 잡으면 짐을 실었을 때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수현은 걸음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길을 말하고 있었으나 그 주의가 타당하다고 답했다.
조일에게 가게 응대를 잠깐 맡기고 나왔다. 견습은 손님이 와도 새 감정과 수리를 받지 않는다는 현재 답을 유지하기로 했다. 수현은 모퉁이의 찻집까지만 걷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칠목까지 다 가 봐야 내일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첫 골목의 쇳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누군가 대문 경첩을 두드리고 있었다. 수현은 소리가 난다는 사실보다 어떤 경첩인지 알아내려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더 피곤했다. 그는 그 집 안을 보지 않고 한 골목 옆의 길로 바꿨다. 길이 조금 늘었다.
옆길에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건너편에서 빈 바구니를 든 사람이 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기 어려워 수현이 넓은 문턱 앞에서 기다렸다. 바구니가 그의 소매를 스치지 않고 지나갔다. 길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계산에 넣은 적이 거의 없었다.
찻집 앞에 닿자 그는 의자에 앉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안 되는지 먼저 확인했다. 주인은 짧게 쉬었다 가는 것은 괜찮지만 점심 뒤 손님이 들면 자리를 비워 달라고 했다. 수현은 그 답을 받고 앉았다. 세상이 온통 자기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물어볼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그는 지금 여기서 표국까지 더 걸을 힘이 있는지 생각했다. 발은 괜찮았고 귀가 피곤했다. 손의 떨림은 아침보다 조금 보였다. 한 부분이 괜찮다고 몸 전체가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더 가지 않기로 했다. 찻집 주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같은 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까의 바구니가 없었다. 소리가 나던 집도 망치를 멈췄다. 그래도 길이 절반으로 짧아지지는 않았다. 수현은 쉬었다 오면 돌아오는 길은 저절로 쉬워질 거라는 생각을 버렸다. 집에 닿을 때까지 쓸 힘은 자기 몸에 따로 남겨야 했다.
백가 문이 보였을 때 조일은 손님과 말하고 있지 않았다. 혼자 장부를 보고 있었다. 아무 일이 없었느냐고 묻자 견습은 물을 달라는 이웃에게 우물 자리를 말해 줬다고 했다. 수현은 집에 있던 물을 주어도 됐겠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조일이 자기 혼자 판단한 응대였다.
그는 현재 피로를 견습에게 말하고 안쪽에서 쉬었다. 저녁에 윤초에게 첫 설명의 앞부분만 볼 생각이라고 답했다. 표국 담당자가 그 시간에 앉을 작은 자리를 내줄 수 있는지 먼저 물어 달라는 요청도 붙였다. 자신이 손님으로 갈 수 있는 범위를 자기가 구했다.
답은 해가 진 뒤 왔다. 출입을 맡은 담당자가 문에서 가까운 자리를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윤초는 자기가 설명하던 중 그가 나가도 인사를 받으러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웃었다. 머무는 것만이 상대의 일을 존중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저녁밥은 조일과 시간차를 두고 먹었다. 수현이 먼저 식사하는 동안 견습은 자기 연필을 깎았고, 조일이 밥을 뜰 때 수현은 문간 의자에 앉았다. 오늘 밖에 나갔다는 이유로 둘 다 한꺼번에 늦게 먹을 필요는 없었다. 작은 교대가 있어야 다음 외출도 같은 부탁으로 남을 수 있었다.
수현은 조일에게 내일도 오늘만큼 응대를 맡길 뜻이 있는지 물었다. 견습은 아침은 가능하나 오후에는 자기 종이를 사러 가고 싶다고 답했다. 수현은 내일 방문을 오전으로 정한 덕에 그 일이 겹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서로의 계획은 누군가를 배려해 지워야만 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었다.
밤에 그는 내일 입을 옷의 소매를 미리 접어 두지 않았다. 내일 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일이었다. 조일이 물병을 채워 줄까 묻자 지금 부탁한다고 답했다. 견습이 병을 놓은 뒤 수현은 첫 모금만 마시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문밖의 길은 어두웠다. 내일 그 길 끝에서 윤초는 짐을 들지 않고 사람들 앞에 앉을 것이었다. 수현은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시작하는 첫 문장은 실제로 자기 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그만큼의 길을 자기 쪽에서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