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초가 보낸 첫 답에는 가겠다는 말이 없었다. 수현은 백아흔이틀째 오전에 도착한 짧은 전갈을 두 번 읽었다. 어제 저녁 보내겠다던 질문을 오늘 아침 표국에 실제로 전했고, 지금은 답을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종이를 검사 자의 집 위에 놓지 않았다. 물병 옆의 마른 자리를 골랐다. 윤초의 새 일이 자기 도구를 깨우는 신호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거기 두면 물을 따를 때마다 읽게 될 것 같아서였다.
조일은 장부 한 귀퉁이에 걸린 자기 연필을 찾고 있었다. 그릇 가게에서 따로 산 연필과 백가에서 쓰는 것이 바뀐 듯했다. 수현이 길이가 긴 쪽 아니냐고 묻자 견습은 자기가 깎은 면을 보면 안다고 답했다.
“값이 다르냐.”
“아뇨. 제 걸 잃어버리는 연습부터 할 필요는 없잖아요.”
수현은 웃다가 탁자 아래를 봤다. 의자 다리의 안쪽에 짧은 연필이 끼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으나 허리를 숙인 채 손끝으로 집기는 어려웠다. 그는 조일에게 위치를 말했고 견습이 자기 물건을 꺼냈다.
그 작은 동작 때문에 어제 윤초가 고른 창가 자리가 떠올랐다. 아직 손이 떨렸고 소리 많은 곳에서는 귀가 먼저 지쳤다. 밥을 같이 먹었다는 사실은 손의 상태와 다른 줄에 남았다.
점심 전에 길모가 목재를 실은 작은 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수현에게 부탁이 아니라 인사만 할 셈이었다. 수레 한쪽의 천이 바퀴에 닿을 듯 펄럭여 수현은 문밖에서 그 끝을 가리켰다.
길모는 바로 멈춰 섰다. 천을 묶었던 매듭이 풀린 것이 아니라 나무가 뒤로 밀려 천 아래가 늘어난 것이었다. 그는 짐을 도로 밀어 넣지 않고 수레를 벽 옆의 넓은 곳으로 옮겼다. 조일이 길을 지나려던 사람에게 잠깐 비켜 달라고 말했다.
수현은 문턱에 남았다. 자기 눈앞에서 물건이 불편하게 움직이면 손부터 내밀던 버릇은 아직 있었다. 길모가 받침을 놓고 무게를 내리는 동안 그는 수레 뒤의 빈 길을 봤다.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지 말해 줄 수는 있었다.
“한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갑니다.”
길모가 알겠다고 답했다. 목수는 혼자 들 수 있는 짧은 목재만 먼저 내리고 긴 것은 싣는 방향을 바꿨다. 움직이던 천이 멎었다. 수현은 그제야 천 끝보다 짐 전체가 먼저 달라져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길모는 천을 당겨 묶는 것만으로 끝냈으면 다음 모퉁이에서 다시 걸렸을 거라고 했다. 수현은 자기에게는 끝만 보였다고 말했다. 목수는 그래서 멈춘 것만으로도 쓸모 있었다고 답했다. 그 일은 서로 값을 정하고 맡긴 수리 품이 아니었다.
그가 떠나자 조일이 방금 윤초에게 이야기할 거냐고 물었다. 수현은 왜 그러느냐고 했다. 견습은 요즘 표사가 짐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수현은 오늘 본 일을 말할 수는 있지만 표국의 짐에도 같은 문제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조일은 그럼 이야기 첫머리에 그 말을 놓으면 되겠다고 했다. 수현은 대답 대신 견습이 찾아낸 연필 끝을 봤다. 어른이 되려면 언제나 더 긴 말을 해야 하는 줄로 여겼던 때가 조금 우스웠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천이 놓였던 길에 나무껍질 하나가 남은 것을 보았다. 수현은 그것을 빗자루로 끌어 모으려다가 자루 끝이 의자에 걸려 멈췄다. 늘 조일이 서는 쪽으로 자신도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자를 먼저 당겨 길을 냈다. 작은 나무껍질을 치우는 데 쓴 시간이 길모가 짐을 고쳐 실은 시간보다 길었다. 조일이 자기가 할까 물었지만 수현은 지금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 더 쓸어 담고 나니 손 안쪽이 묵직했다.
견습은 수현이 빗자루를 내려놓은 뒤 자루를 제자리로 옮겼다. 수현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말을 들고 끝까지 서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빗자루를 잡은 선택과 다음 청소를 혼자 하겠다는 약속은 달랐다. 그는 다음에는 의자부터 비우자고 말했다.
“그럼 의자가 먼저 일하는 거네요.”
조일이 빈 의자를 보며 답했다. 수현은 의자에게 품을 주면 쌀은 누가 사느냐고 물었다. 견습이 그 질문은 자기 것을 빼앗아 간다고 했다. 둘이 웃고 점심 그릇을 따로 들었다. 웃음 뒤에도 손의 묵직함은 있었지만, 오늘은 그 사실을 웃지 못할 이유로 삼지는 않았다.
윤초의 다음 전갈은 해가 낮아질 무렵 왔다. 칠목의 담당 표사가 실제 설명 자리를 두 번으로 나눌 수 있다고 답했으며, 시연은 현역 표사 하나가 맡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그 답을 들고 저녁 전에 잠깐 백가에 들르고 싶다고 했다.
수현은 지금은 조용히 앉아 들을 수 있다고 답했다. 오래 있어도 좋다는 말은 넣지 않았다. 오늘은 수레가 지나간 뒤 한동안 쇠바퀴 소리가 귀 안에 남았고, 그 사실을 누군가와 잘 만났다는 이야기로 지울 수 없었다.
윤초는 편지를 접은 채 들어왔다. 그녀의 손목 받침은 어제와 같았다. 그는 의자를 내밀다가 어느 쪽에 앉고 싶은지 물었다. 윤초는 문이 덜 보이는 안쪽을 골랐다. 어제의 창가가 오늘도 좋은 자리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실제 받은 답을 펼쳤다. 백아흔나흘째 오전, 짐을 싸는 설명을 짧게 두 번 하고 사이에 쉴 시간을 두겠다는 문장이 있었다. 반나절 모두를 묶어 두는 대신 앞뒤 준비는 담당 표사가 맡는다고 적혀 있었다.
수현은 그녀가 가고 싶은 마음이 어떤지 물었다. 윤초는 이번에는 조금 더 가고 싶다고 답했다. 질문을 보내자 일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실제 모양이 보였다고 했다. 보이지 않던 반나절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은 안 든다.”
그녀가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덧붙였다.
“자네 앞에서 다짐하는 게 아니야. 표국에 그렇게 답할 거야.”
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증인이 된 듯 앉아 있던 어깨를 풀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것과 그녀가 정한 범위를 지켜 주는 책임자가 되는 것은 달랐다. 윤초가 시연할 표사의 이름을 읽었다. 새로 소개된 성인 표사 담영이었다.
두 사람은 그를 안다고 하지 않았다. 윤초는 짐을 실제 들어 본 경험과 그날 자기가 다루지 않을 시연을 담당자에게 다시 물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수현은 잠깐 그 담당자가 자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오늘 수레의 긴 목재를 떠올렸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옆에 있어 주려는 사람만은 아니었다. 실제 짐을 들 수 있고 설명을 듣다가 멈출 줄 아는 표사가 필요했다. 수현은 그 사람과 먼저 맞춰 볼 시간이 있는지 물었다. 윤초는 내일 짧게 짐 없는 상태로 말의 순서를 맞출 수 있다는 답도 받았다고 했다.
값은 한 번의 설명 품으로 정하되 준비에 쓰는 짧은 만남도 포함된 액수였다. 윤초는 그 문장을 가리키고, 포함이라는 말을 쓰면 내일 하루 전체를 쓸 수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수현은 자기였다면 준비 시간을 따로 적었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종이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 답을 고치겠다고 했다. 필요한 질문을 전부 하고 나면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덜 두려워질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다른 떨림이 남았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할지 아직 못 골랐다는 것이다.
수현은 표사라면 칼을 빨리 뽑는 방법을 기대하겠느냐고 물었다. 윤초가 그를 보았다. 그는 조일이 아는 표사는 윤초가 거의 전부라 자기의 추측도 그만큼 좁다고 덧붙였다. 윤초는 웃으며 처음 맡은 짐을 내리지 못했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짐을 단단히 묶는 것만 배워 한참을 묶고 나서, 받는 사람이 어디를 풀어야 하는지 몰랐다는 이야기였다. 뒤에 온 표사가 칼로 끈을 끊었고 그 끈값이 자기 품에서 빠졌다. 물건은 멀쩡하게 갔지만 그날 밤 자기는 매듭을 다시 풀어 보았다고 했다.
수현은 그때 본 짐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윤초는 천으로 싼 솥 두 개였다고 했다. 검도 비밀 문서도 아니었다. 수현은 표사의 첫 짐이 솥이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녀가 왜냐고 묻자 지금 가게에도 솥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지만 자기가 들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 좋은 짐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군.”
“둘 다일 수 있지.”
윤초가 웃었다. 수현은 그녀가 자기 지난 잘못을 재미있게 말하는 동안에도 그 일을 고생을 통한 지혜로 바꿔 주지 않았다. 끈값이 실제로 아까웠을 터였다. 그녀는 맞다며 그날 밥을 싼 걸 골라 먹었다고 했다.
수현은 길모의 수레 이야기를 짧게 했다. 늘어진 천을 먼저 봤는데 짐이 밀린 것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윤초는 그 이야기를 자기 설명에 써도 되는지 물었다. 수현은 자기가 본 장면을 그녀가 들었다는 출처를 남기는 조건으로 좋다고 했다.
그러고는 멋진 수리공이 천을 구해 냈다고 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윤초는 자기가 들으니 수리공은 문턱에서 길만 봤다고 했다. 그 말이 그에게는 조롱보다 정확한 선물처럼 들렸다. 그는 실제로 그랬다고 답했다.
대화를 오래 하자 오른쪽 귀 안에서 소리가 조금 뭉쳤다. 수현은 물잔을 내려놓고 지금은 쉬고 싶다고 말했다. 윤초는 펼친 종이를 자기 쪽으로 모았다. 끝내지 못한 문장이 있었지만 급히 다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간 뒤 수현은 자리에 곧장 눕지 않았다. 창문을 반쯤 닫고 조일에게 잠깐 응대를 맡길 수 있는지 물었다. 견습은 식사 전까지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수현은 문간 손님을 다른 장부로 넘길 때 할 말만 짧게 맞추고 안으로 갔다.
누워 있으니 윤초가 말한 솥 두 개가 떠올랐다. 손에 들지 않은 짐의 무게가 머릿속에 남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오늘 자신의 정밀 감정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손은 쉬어도 여전히 가볍지 않았다.
저녁이 지난 뒤 윤초에게서 실제 보낸 답의 사본이 왔다. 준비 만남은 내일 짧게 한 번, 설명은 모레 두 차례이며 각 사이에 쉬고, 짐은 담영이 든다는 내용이었다. 금액도 적혔지만 수현은 그 돈을 이미 받은 품으로 장부에 올리지 않았다.
칠목이 다시 동의한 답은 아직 없었다. 윤초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적었고, 가게에 들러 이야기한 덕에 첫 문장이 조금 정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매듭이 잘 묶였는지보다 받는 사람이 어디를 풀지부터 묻겠다고 했다.
수현은 답장을 쓰기 전에 자기 손을 봤다. 그녀가 새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닫힌 감정대가 잠깐 더 어두워 보였다. 그 마음을 없애야 그녀를 좋아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일을 그녀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그는 첫 문장을 듣고 싶다고만 답했다. 오늘도 자기 손으로 쓰는 글씨 끝이 조금 흔들렸다. 조일이 종이를 받아 전달할 때 수현은 종이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 문밖에서는 길모의 수레가 저녁 짐 없이 돌아갔다.
낮보다 수레 소리가 가벼웠다. 소리만 듣고 나무를 모두 잘 넘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현은 그가 자기 문 앞을 지날 때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길모는 마지막 받침 하나가 남아 내일 다시 가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모든 짐이 오늘 다 내려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늘 내린 것들이 있었고, 처음부터 다시 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물병을 안쪽으로 옮기고 내일 아침에 마실 물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