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이 없는 탁자는 넓었다. 수현은 그 위에 자기 종이를 더 펼쳤다가 곧 한 장을 접었다. 자리가 비었다고 모두 자기 몫이 된 것은 아니었다.
백아흔째 아침, 견습은 그릇 가게에 갔다. 명주가 전날 저녁 길모를 통해 보낸 문의는 계산판을 다시 고쳐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주문을 접어 뒤로 넘기는 방법을 써 보니, 얇은 종이 두 장이 서로 달라붙어 함께 넘어가는 때가 있었다.
조일이 그 자리를 보며 자기 방식으로 종이를 나눠 줄 수 있는지 묻는 말이었다.
수현은 자기 이름으로 답하지 않았다. 견습이 직접 할 수 있는지 들어야 했다. 조일은 아침의 짧은 동안 실제 주문을 보되 돈을 대신 받거나 그릇 수를 책임지는 일은 맡지 않겠다고 답했다.
종이를 나누고 접는 일을 해 볼 값도 자기 입으로 정했다. 명주가 그 범위로 받겠다는 말을 돌려보내고 나서야 오늘 외출이 정해졌다.
문을 나설 때 조일은 가방에 큰 계산판을 넣지 않았다. 종이 몇 장과 낡은 연필만 있었다. 수현은 돈을 잘 세라는 말을 하려다가 잘 다녀오라고 했다.
견습은 오늘 세지 않을 돈까지 맡기지 말아 달라고 웃었다. 수현도 웃고 문 앞까지 따라갔다가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손이 근질거려 검사 자가 있는 쪽을 보았다. 보관집은 평평했고 새 띠는 밖으로 늘어져 있지 않았다. 오늘도 도구를 쓸 수 있는 날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가 옆에서 그를 막고 있지 않으니 자기가 정한 말을 자기 혼자 지키는 감각이 조금 달랐다. 수현은 자 대신 물병을 잡았다.
가게 앞에 손님이 왔다. 헌 검집을 든 노인이었다. 그는 안내를 읽고 감정을 안 받는 것은 알지만 끈만 묶어 주는 일은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물건을 받아 안으로 들이지 않고 현재 수리도 손의 경과에 따라 먼저 범위를 정한다고 답했다. 노인은 검을 뽑아 보이지 않았다. 해진 끈 끝을 자기 손에 걸고 서 있었다.
수현은 끈이 단순히 풀린 것인지 낡아 바꿔야 하는지 지금의 눈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은설에게 바느질 문의를 보낼 수는 있으나 그녀가 물건을 보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은 그 일꾼의 자리를 물었다.
수현은 길모가 알려 준 문의 방법을 종이에 적어 줬다. 자기가 대신 품을 받거나 납기를 정하지 않았다.
“손이 아프면 손님이 많이 오지.”
노인이 말했다. 수현은 농담인지 원망인지 알아맞히지 못했다. 자기는 오늘까지 두 분밖에 못 봤다고 답했다.
노인이 웃고 돌아갔다. 대답을 잘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당장 고칠 수 없는 물건 하나가 자기 탁자 위에 쌓이지는 않았다.
그는 문간에 오래 서 있었다. 사람이 간 뒤에도 몸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끈 하나쯤은 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물건이 없어진 뒤 더 쉬워졌다. 그는 실제로 잡아 본 적 없는 끈을 잘 묶었을 자기 모습을 믿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손을 폈다가 놓았다.
정오가 되기 전에 길모가 잠깐 들렀다. 맡겼던 나무 자투리를 찾아가러 온 것이었다. 수현이 상자를 가리키자 목수는 자기 물건이 다음 품의 견본이 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수현은 그럴 수도 있었으나 아직 안 맡겼다고 답했다. 길모는 웃고 조각을 챙겼다. 남의 재료가 자기 가게에 오래 있으면 누구의 일인지 자꾸 흐려진다고 했다.
수현은 명주의 판이 어땠는지 물었다. 길모는 오늘 아침에 자기가 거기 들른 것은 아니어서 모른다고 답했다. 어제 전갈에는 판이 넘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 뒤 장사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일이 나갔으니 돌아와 자기 본 것을 말할 수 있었다. 자기가 먼저 모든 결과를 모아 놓을 필요는 없었다.
길모가 간 뒤 수현은 점심을 데웠다. 냄비를 옮기는 대신 작은 그릇에 국을 덜었다. 손이 떨려 국물이 가장자리에 조금 묻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스스로 한숨을 쉬었다. 조일이 있었으면 바로 행주를 가져왔을지도 몰랐다. 오늘은 행주가 놓인 데까지 자기 두 걸음을 더 쓰면 됐다.
그 두 걸음 때문에 견습을 돌아오게 할 일은 아니었다. 수현은 젖은 상판을 닦고 그릇 아래에 마른 천을 놓았다. 문간에서 손님이 부를까 귀를 세우다가, 그 버릇이 오히려 피로를 늘리는 것을 느꼈다.
점심 동안 잠깐 문을 닫고 안내를 걸었다. 가게가 열려 있어야만 밥값을 받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밥을 먹다 보니 숙부와 둘이 먹던 때가 생각났다. 조일이 오기 전에도 가게에는 다른 손의 자리가 있었다. 기억 속 숙부는 늘 도구를 제대로 놓는 사람으로 남기 쉬웠다.
그러나 수현은 숟가락을 찾느라 밥상을 한참 뒤지던 아침도 기억했다. 잘못한 검사를 남긴 사람과 밥을 늦게 뜨던 사람은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 기억을 교훈으로 다듬지 않았다. 오늘 국이 조금 싱거웠고 숙부는 싱거운 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소금을 더 넣기보다 그대로 먹었다.
자기 점심에 고인의 입맛까지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었다. 그릇을 씻어 놓고 나자 가게가 다시 조금 넓게 보였다.
조일은 정한 때보다 늦지 않게 돌아왔다. 얼굴은 평소와 비슷했고 옷의 팔꿈치에 마른 먹이 조금 묻었다. 수현이 밥부터 먹겠느냐고 하자 견습은 이미 가게에서 따로 사 먹고 왔다고 했다.
일을 맡았다고 주인의 점심을 공짜로 받지는 않았다는 말을 붙였다. 수현은 알겠다고 했다.
견습은 오늘 한 일을 펼쳐 보였다. 주문 종이를 두 묶음으로 나누되, 끝난 것과 남은 것의 모서리를 다른 방향으로 접었다. 새 종이를 크게 쓴 것은 아니었다.
글씨를 안 읽어도 어느 묶음의 끝을 잡아야 하는지 손에 걸렸다. 명주가 직접 접어 보았고, 서로 붙었던 두 장은 한 번에 당기지 않고 모서리를 벌려 넘겼다고 했다.
수현은 그 방법을 본 사람이 자기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조일은 주인이 세 번 해 봤고 그중 한 번은 남은 주문까지 접었다고 답했다. 그는 그때 종이를 다시 펴서 주인의 실제 주문과 맞췄다고 했다.
완벽하게 익혔다는 말은 없었다. 바꾸는 날에는 손이 옛 동작으로 가기도 했다.
그릇 가게에서 돈을 대신 셌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현은 질문을 삼켰다. 견습이 먼저 그 이야기를 했다.
손님 하나가 바쁜 주인 대신 조일에게 동전을 내밀었다. 그는 자기 일이 종이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명주를 불렀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손님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민망했다고 덧붙였다.
“제가 빨리 세면 끝나는 거잖아요.”
조일이 말했다. 수현은 그렇다고 답했다.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을 알았다.
견습은 거기에서 계산까지 맡으면 다음에 자기 값이 어디부터 늘어나는지 말을 못 할 것 같았다고 했다. 수현은 그 답을 듣고 오늘 아침의 해진 끈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참 잘 참았다는 말로 하루를 닫지 않았다. 명주의 실제 돈은 명주가 받았고, 노인의 끈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그 뒤로 누구의 일이 이어질지는 그 사람이 정할 문제였다.
조일은 오늘 받기로 한 돈을 실제로 받았다고 말했다. 견습의 돈주머니가 그의 손에서 탁자 위로 내려왔다.
수현은 잠깐 그것을 자기 장부 쪽으로 당길 뻔했다. 견습은 손을 주머니 위에 올렸다. 수현이 바로 손을 거뒀다.
조일은 오늘 돈은 자기가 받은 별도 품이니 어떻게 둘지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수현은 알겠다고 했다. 백가에서 배운 손이 백가 밖에서 한 일이었다.
그는 가게 문을 닫고 혼자 남은 동안 쓴 시간을 견습의 수입에서 빼야 하는지 떠올렸다. 그러나 오늘 그런 조건을 정하지 않았다. 뒤늦게 빠져나간 몫을 찾아 조일의 돈에 붙일 수는 없었다.
다음 외출 때 가게를 누가 지킬지와 실제 비용을 어떻게 볼지는 미리 따로 말해야 했다. 조일도 그 점에 동의했다.
견습은 오늘 받은 것 가운데 자기가 종이와 연필을 산 값을 먼저 남기겠다고 했다. 남은 돈 전부가 곧 자기 쓸 돈인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종이를 대신 사 줄까 말하지 않았다.
조일이 지금 자기 일의 값을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기특하다는 말보다 조금 낯설다는 말이 먼저 마음에 왔다.
그는 그 낯섦을 조일에게 말했다. 견습이 자기 없어도 집이 무너지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국을 조금 흘렸고 행주를 직접 가져왔다고 답했다.
조일은 그 정도면 앞으로도 자기가 가끔 없어도 되겠다고 웃었다. 수현도 웃었지만 웃음 끝에 목이 조금 잠겼다.
“네가 내 손을 대신하는 사람으로만 남을까 봐.”
그가 말했다. 조일은 잠깐 종이를 봤다. 그러고는 때로는 대신해 주는 일도 자기가 고를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수현은 그 말이 자기 걱정을 한 번 더 고친다는 것을 느꼈다. 조일을 붙들어 두지 않으려는 마음조차 견습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미리 정할 수 있었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다. 다음에 부탁할 때 실제 할 일과 시간부터 말하겠다고 했다. 조일은 오늘도 부탁할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지금은 없고 나중에 나무집을 옮길 때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견습은 오늘 밤에는 자기가 가게에 있으니 그때 다시 물어 달라고 했다. 서로의 하루가 한 번 더 구체적인 모양을 얻었다.
오후의 백가에는 큰 문의가 없었다. 명주에게서 짧은 전갈이 왔다. 조일의 종이를 써 보며 오늘은 남은 주문이 뒤로 넘어가지 않게 천천히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현에게 받침을 다시 고쳐 달라는 말은 없었다. 그는 그 답을 조일에게 건네고 견습이 자기 종이 옆에 넣는 것을 보았다.
해 질 무렵 수현은 윤초에게 내일 낮의 약속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 감정은 하지 않았고 집에 있었으나 손과 귀의 피로는 남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손목도 멀리 걷기 좋은 상태는 아니므로 밥집 한 곳만 정하자고 답했다.
수현은 전에 햇빛을 놓친 자리보다 문 소리가 덜 들어오는 안쪽을 먼저 물어보겠다고 했다.
윤초는 내일 해가 좋으면 밥 뒤에 자기는 잠깐 볕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함께 있을 시간을 줄이는 말로 듣지 않으려 했다. 각자의 기분이 다를 수 있었다.
그는 자기도 그때 몸을 보고 말하겠다고 답했다. 밥 한 끼의 약속이 하루 전체를 빌리는 문서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밤에 검사 자를 옮길 때 그는 조일에게 지금 가능한지 물었다. 견습은 자기 돈을 세던 종이를 접은 뒤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수현은 기다렸다.
빈 천의 띠는 조일 손에서 곧게 펴졌고 자는 따로 받쳐 옮겨졌다. 두 동작 사이에 돈주머니가 끼어들지 않았다.
수현은 방으로 들어가다가 낮에 넓어 보이던 탁자를 돌아봤다. 조일의 종이와 자기 물병이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견습이 돌아왔다고 탁자가 좁아진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일을 모조리 펴 놓으려 하면 좁아질 터였다. 그는 내일 밥집에 가져갈 작은 돈주머니 하나만 자기 옷 곁에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