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은 감정대를 열어도 좋다는 글이 아니었다. 수현은 그걸 다 읽고서야 덮개를 보던 눈을 종이로 돌렸다.
백일흔이레째 아침, 성안 진료소에서 현재 상태를 살필 수 있다는 회신이 왔다. 내일 낮 짧은 진찰을 받을 때가 있었고, 지금 손과 귀의 불편이 어떤 일에서 커지는지 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 낫는 날을 적어 보내지는 않았다. 수현은 그 빈 날짜가 서운했지만 모르는 날을 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조일은 종이를 그의 물컵 옆에 놓고 밥솥으로 돌아갔다.
오늘 밥에는 새 쌀이 들어 있었다. 조일은 어제 맛으로 수량을 감정하지 말라고 한 말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그 정도 경고는 기억한다고 답했다. 견습은 그렇다면 오늘도 한 그릇은 똑같이 받는 것이라고 했다. 수현은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손끝이 떨릴 때 밥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릇을 가까이 뒀다. 진료 회신이 왔다고 아침 손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오늘부터 검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어제도 했다고 빈 종이에 적었다. 결청을 한 차례도 쓰지 않았지만 오래 글을 읽은 뒤 귀와 어깨가 무거웠던 날이 있었다. 큰 상자를 내려놓는 소리에 몸이 먼저 굳었다는 것도 썼다. 그때 들은 소리를 다시 흉내 내 볼 필요는 없었다. 상태를 설명하려고 불편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일은 의원에게 감정대 그림도 가져갈 것이냐고 물었다. 수현은 손을 오래 대고 듣는 일을 말로 설명하겠다고 했다. 결청을 보여 주는 진찰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진료소가 그의 재료 감각을 대신 보증할 수도 없었다. 견습은 그럼 검사 자는 두고 가겠다고 말했다. 수현은 자기가 말하지 않은 것을 잘 짚었다고 답했다. 모루 밑의 낡은 자가 잠깐 더 무겁게 느껴졌다.
문밖에 사람이 멈췄다. 수현은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낯선 남자는 짧은 천 꾸러미를 안고 있었으나 새 안내를 읽고 문턱을 넘지 않았다. 조일이 나가 현재 자료를 먼저 가져오지 말라는 말을 설명했다. 남자는 이것은 종이가 아니라고 했다. 수현은 안쪽에서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자료’라는 글을 너무 쉽게 읽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문 가까이 가되 꾸러미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남자는 검집 받침을 맡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새 검 감정은 받지 않는다고 읽었지만 받침은 칼이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수현은 현재 목재 받침의 수리도 내용과 몸을 먼저 봐야 하며 지금 받은 일은 없다고 답했다. 남자가 천을 풀려 하자 그는 지금 보여 달라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남자는 자기를 소반을 만드는 공방의 일꾼 정완이라고 했다. 공방에서 검집을 받치는 나무틀도 조금씩 만들었는데 오래된 한 벌이 자꾸 기울어진다고 말했다. 수현은 그 설명을 듣고도 낡은 틀의 결함을 상상으로 찾지 않았다. 몇 벌인지, 어떤 무게를 받는지, 지금 위험한 상태로 쓰고 있는지 짧게 물었다. 정완은 현재 사용을 멈추고 안쪽에 따로 뒀다고 답했다.
꾸러미에는 틀 전체가 아니라 빼 놓은 받침 한 조각이 있었다. 정완은 이것만 고치면 될 것 같아 가져왔다고 했다. 수현은 조각만 보고 전체가 안전해진다고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목재를 깎거나 붙이는 품이 필요한지 현재 배치가 다른지 먼저 봐야 했다. 그는 물건이 지금 위험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답을 확인하고, 방문 가능 여부는 진찰 뒤에 알려 주겠다고 했다.
정완은 장명상단의 검을 다룬 사람이면 받침 하나쯤은 금방 알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칭찬처럼 시작했지만 수현의 어깨에는 다른 무게로 내려왔다. 그는 자기 이름에 달린 과거의 감정을 오늘 몸의 여력으로 바꾸지 않았다. “받침 하나도 지금 제가 볼 수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조일이 문 앞의 종이를 다시 봤다.
수현은 목재의 현재 수리와 증거품의 처리는 다르다는 말도 했다. 정완은 지금 물건에 분쟁이나 압류가 걸린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그 말만으로 천을 받아 보관하지는 않았다. 오늘 백가에 맡긴 물건은 없었다. 남자는 꾸러미를 다시 묶었다. 가져온 손이 돌아갈 때까지 같은 것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답을 분명하게 했다.
그는 그냥 길모에게 물었어야 했느냐고 말했다. 수현은 그 이름을 알아듣고 잠깐 멈췄다. 버들나루 안쪽에서 목재 받침을 만드는 남자였다. 정완은 그 사람에게 공방 일을 종종 맡긴다고 했다. 수현은 그 관계를 오늘 처음 알았다. 자신과 심우의 옛 사본 문의 때문에 길모가 일을 못 맡는다는 근거는 없었다. 그는 어떤 수리가 필요한지에 따라 직접 물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정완은 백가를 먼저 찾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받침보다 검집이 무거워진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다른 곳에 있었고 빈 검집만 놓아도 기울어진다고 들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수현은 직접 본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별해 물었다. 정완은 빈 검집을 놓은 장면은 자기가 못 봤다고 고쳤다. 그 작은 정정이 처음으로 틀의 그림을 덜 기울게 했다.
지금은 쓰지 않고 있다는 답은 정완이 직접 확인한 것이었다. 수현은 그 범위로만 문의 제목을 남겼다. 나무틀의 현재 배치와 지지 상태에 관한 질문이었다. 무게의 진상이나 감춰진 검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답은 진찰 뒤에 할 수 있었고 그때에도 새 감정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정완은 가능 여부만 알려 달라고 했다. 오늘 들은 짧은 문의에 별도 품은 생기지 않았다.
그가 떠난 뒤 조일은 안내의 ‘자료’ 뒤에 ‘물건’도 넣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현은 그렇다고 답했다. 새 종이를 바로 붙이지는 않았다. 원래 글은 보관하고 지금의 실제 뜻을 고른 다음 바꾸기로 했다. “물건부터 놓고 가지 마세요.” 조일이 읽었다. 수현은 문 앞에서 말하기엔 조금 날카롭다고 했다. 견습은 주인이 직접 말하면 더 길어진다고 웃었다.
그들은 짧은 문의의 때를 먼저 정하며 물건은 맡기로 한 뒤 가져온다는 두 줄로 맞췄다. 새 감정은 받지 않는다는 기존 말도 남겼다. 수현은 검을 기다리게 하는 간판이 아니라 자기 현재 일을 설명하는 문장인지 다시 읽었다. 조일이 실제 문 앞에서 보고 왔다. 날이 흐려도 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글씨를 예쁘게 만든 것과 사람들이 언제든 따르는 것은 다르지만 오늘 할 고침은 있었다.
낮에 윤초가 전갈을 보냈다. 내일 진찰 때 같이 갈지 묻는 말이었다. 수현은 자기 기록을 자기가 설명할 수 있으니 함께 가는 것을 부탁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대신 돌아온 뒤 가능한 때에 짧게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손목과 일정도 있었다. 동행을 거절하는 것이 그녀를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그 말을 길게 변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 내일 낮 뒤에 현재 답을 받겠다고 했다. 수현은 그 회신을 읽고 자기 종이를 다시 봤다. 검을 다시 보고 싶다는 문장이 여전히 맨 위에 있었다. 그 아래에는 지금 손이 떨린다는 말도 남아 있었다. 원함을 먼저 적었다고 불편을 숨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둘을 같은 면에 둘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편했다. 덮개를 걷지는 않았다.
조일은 오늘 공방에서 받은 낮 안내의 글이 실제로 잘 보인다는 답을 전했다. 다음 밤 글의 요청은 여전히 없었다. 수현은 그럼 새로운 일거리가 곧 생기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견습에게 다음에 무엇을 해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조일은 남의 계산판을 읽기 쉽게 만들어 보고 싶지만 아직 누구에게 맡아 달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원하는 일에는 먼저 받을 사람이 없어도 됐다.
수현은 자기 수리점의 계산판은 어떠냐고 물었다. 견습은 남의 품으로 하려면 먼저 범위와 값을 정하자고 했다. 둘은 웃었다. 수현은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 실제 의뢰가 되려면 자기 가게에서 무엇이 불편한지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오늘 당장 새 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견습은 자기 연습 종이를 꺼내고 수현은 진료에 가져갈 두 장을 나눴다. 각자 자기 종이의 주인이었다.
오후에 바람이 세져 문이 한 번 울렸다. 수현의 귀가 따갑게 당겼다. 그는 바로 창가에서 안쪽으로 옮겨 앉았다. 조일이 현재 문을 고정하고 바깥 상황을 봤다. 큰일은 없었고 이웃 수레가 바람을 피해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수현은 잠깐 멈춘 시간을 자기 기록에 적었다. 진찰 하루 전이라고 몸이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의원이 이 기록을 보고 다시는 검을 보지 말라고 할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조일에게 말할지 망설였다. 견습은 붓을 씻다 그를 보고 지금 손이 아프냐고 물었다. 수현은 손보다 답을 듣는 일이 겁난다고 했다. 조일은 답을 안 들으면 검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오늘 겁난 것까지 들고 가면 되겠다고 견습이 말했다.
그 말이 모든 두려움을 없애지는 않았다. 수현은 다만 덜 꾸민 문장으로 내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손 떨림이 줄어드는 때와 커지는 때, 소리를 피한 뒤 얼마 동안 읽기 어려웠는지 기억하는 범위만 썼다. 오래전 일을 정확한 시각처럼 만들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적을 수 있는 종이였다. 그는 마지막 줄에 다시 맡을 수 있는 일을 알고 싶다고 썼다.
저녁 밥을 준비할 때 조일은 혼자 들기 어려운 물그릇을 나눠 옮겼다. 수현은 자기 몫을 갑자기 더 받지 않았다. 숟가락과 빈 그릇을 현재 손으로 옮겼고 쌀을 씻는 무거운 물은 견습이 받았다. 누가 더 많이 움직였는지 숫자를 세지 않았지만 실제 일이 누구에게 갔는지는 알았다. 조일은 내일 진찰 대금도 생활비와 나눠 둬야 한다고 말했다. 수현은 이미 따로 뒀다고 답했다.
오늘 새 수입은 없었다. 장부에 영을 쓰는 일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생활비의 빈 칸을 채워 주지도 않았다. 수현은 그 숫자를 보고 내일 상태를 잘 설명하면 새로운 돈이 생길 거라는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정완의 받침 문의도 아직 받은 품이 아니었다. 오늘은 실제 있는 돈에서 진료 몫을 남겼다. 작은 그릇들이 밥상에 놓였다.
윤초의 마지막 답에는 내일 만나면 진찰 결과만 듣지는 않겠다는 말이 있었다. 수현은 그게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녀는 밥은 먹었는지도 묻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먹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그럼 한 가지는 미리 끝났다고 했다. 수현은 웃으며 밥을 한 숟갈 더 떴다. 둘 사이에는 어느 검도 없었고 손목도 갑자기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 안부는 그 상태로 충분했다.
밤에 조일이 새 안내를 붙였다. 원래 종이는 날짜와 함께 따로 보관했다. 수현은 물건을 맡기로 한 뒤 가져오라는 줄을 읽었다. 오늘 정완이 천을 풀지 않고 돌아간 장면이 떠올랐다. 말 한 줄이 실제 손에서 무엇을 멈추게 했는지 알고 나니 종이가 조금 덜 추상적이었다. 그렇다고 내일 누구도 다시 잘못 들지 않으리라 믿지는 않았다.
그는 진료에 가져갈 종이를 작은 보자기에 넣었다. 안에는 기록 두 장과 정한 대금만 있었다. 검사 자나 금속 조각은 없었다. 천을 묶어 드는 동안 무게가 아주 가벼웠다. 가볍다고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그것을 침상 옆에 두고 감정대의 덮개를 마지막으로 봤다. 내일은 천을 열기 전에 자기 손을 설명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