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결은 빈 의자 하나의 값을 먼저 물었다.
“제 뒤에 앉을 사람은 없습니까?”
수현은 합의회 앞방의 문을 보았다. 정해진 입회인 이외에는 들이지 않겠다는 답을 서린이 했다. 문밖에는 관아 사람이 있었고, 상단 측 연락인은 떨어진 마당에서 기다렸다. 도문결은 그 거리를 확인한 뒤에야 앉았다.
사건 스물이틀째 아침이었다. 수현은 손을 오래 쓰지 않아 떨림이 조금 덜했으나 길에서 들은 수레 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오늘은 감각을 검사할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 탁자에는 물과 빈 종이, 도문결이 보낸 면담 요청 사본뿐이었다.
“도망가는 사람처럼 보이십니까?”
도문결이 웃으며 물었다. 수현은 대답을 고르다가 그의 신발을 보았다. 앞코가 멀쩡했다. 검은 가죽 옆면에는 가는 진흙띠가 말라 있었다. 그걸 보고 어느 길을 다녀왔는지 아는 척할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서 도망가시는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좋군요. 아직 질문을 하기 전이니.”
도문결은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펴 놓지는 않았다. 서린이 임의 제출물인지 묻자, 오늘은 협상의 근거를 보여 주러 왔다고 했다. 유리한 기록은 내고 불리한 기록은 협상물로 부를 수 있었다.
수현은 종이보다 그의 손을 보았다. 처음 가게에 왔을 때 은전 주머니를 넣던 손이었다. 오늘은 가운데 손가락의 살이 벗겨져 있었다. 새 살이 붉었다. 무슨 일을 한 상처인지는 모른다. 그 손도 편한 곳에만 놓여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만 눈에 들어왔다.
도문결은 자기 요구를 읽었다. 규격 변경에 따른 검사 집행 책임을 더 묻지 않을 것. 하급자 전출과 자료 정리를 상부 지시의 이행으로 볼 것. 본인이 내놓을 자료에 관한 책임자 목록에서 이름을 제외할 것.
“대신 무엇을 내십니까?”
서린의 질문에 그는 접은 종이를 조금 폈다. 장명 내부의 비용 집행 번호와 북쪽 별고의 보관칸이 적혀 있었다. 원본은 아니었다. 도문결이 작성한 위치 안내였다.
“바뀐 규격을 쓰면서도 예전 검사비를 청구한 회계 장부입니다. 변경 지시가 붙어 있지요. 어느 곳에서 돈을 아꼈는지, 어느 곳에서 그 돈을 받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수현은 목이 말랐다. 갈흔골에서 비운 밥그릇 셋이 먼저 떠올랐다. 한 사람 하루로 줄인 검사와, 장부에 남은 다른 값. 숫자를 이어 놓으면 막연한 상부라는 말이 지불한 손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문결은 물을 먼저 마셨다. 기다리는 사람이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아는 동작이었다. 수현은 조급해진 자기 무릎을 왼손으로 눌렀다.
“그 번호가 실제 원본을 가리킨다는 근거는요?”
“제가 그 장부를 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요?”
도문결의 미소가 얇아졌다. 그는 지금 진술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먼저 조건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서린은 종이 위에 요구라고 쓰고, 확인됐다고는 쓰지 않았다.
“제게 책임을 안 묻는다는 종이 한 장이면 됩니다.”
“제게 그 한 장을 드릴 권한이 없습니다.”
서린이 말했다. 도문결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관아 결정권자가 올 때까지 자료의 위치를 제한하겠다고 했다. 거래를 못 하는 사람에게 거래 방법을 알려 주는 목소리였다.
수현은 그가 내민 안내의 절반을 보았다. 보관칸 아래에 작게 이동 예정이라고 적혔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장부가 옮겨지면 위치 안내만으로는 못 찾게 될 수 있었다. 그는 손끝이 아니라 배 속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없어진다는 뜻입니까?”
“없앤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움직인다는 지시를 누가 내렸습니까?”
“그것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문결이 종이를 접으려 했다. 수현은 붙잡지 않았다. 다친 손이 느려서가 아니었다. 억지로 빼앗으면 오늘까지 못 얻은 자료를 모두 얻을 것 같은 마음이, 상대에게는 협상을 계속할 이유가 될 터였다.
그는 대신 면담을 잠깐 쉬자고 했다. 도문결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수현은 밖에 나가 처마 그늘의 긴 의자에 앉았다. 가슴이 뛰는 동안 자꾸 그 이동 예정 날짜만 읽혔다.
조일이 가져온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보리 주먹밥을 전한 것이었다. 견습은 가게를 지켜야 하므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떠나기 전 수현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저 사람이 형 대신 검사해 준대요?”
“아니. 내가 못 보는 장부를 보여 주겠대.”
“그럼 형 손이 좋아져도 똑같은 거래네요.”
수현은 밥을 쥔 왼손을 보았다. 결청을 잃어서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분노를 조금 품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으로 장부의 명령을 들을 수는 없었다. 능력이 멀쩡했어도 오늘의 문은 다른 사람이 쥔 문이었다.
조일은 더 충고하지 않고 돌아갔다. 주먹밥의 소금이 혀에 남았다. 수현은 자기가 얻고 싶은 답과 그 답 때문에 허락하고 싶은 일을 다른 것으로 놓을 수 있었다.
다시 들어갔을 때 도문결은 의자를 바꾸지 않았다. 서린은 쉬는 동안 받은 관아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당장 면책을 심리할 권한자를 부를 수 없다는 답이었다. 도문결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선생의 이름도 그 자료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현을 향한 말이었다.
“백진석 검사인이 잘못 합격시킨 것을 보셨다면, 조카분께서도 모든 이름을 같은 크기로 쓰시겠습니까?”
수현의 손이 밥 묻은 천을 구겼다. 상대는 아직 특정 물건과 검사 결과를 제시하지 않았다. 가능성만으로 숙부를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어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이름을 빼 주면 자료를 받겠다는 답도 할 수 없었다.
“확인하면 그렇게 쓰겠습니다. 지금 확인하지 못한 것을 거래로 맞았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필요한 겁니다.”
도문결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 말은 옳을 수도 있었다. 실행한 사람이 아는 길은 바깥에서 찾는 사람보다 짧았다. 수현은 그 짧음 때문에 지워질 사람들을 생각했다. 석문과 그 가족, 줄을 당기고도 값을 못 받은 사람들. 아직 그들이 어느 지시의 피해자인지도 다 확인하지 못했다.
서린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본인이 아는 사실을 먼저 진술하고 자료 보존을 요청할 수 있었다. 위험이 있다면 관아가 별도로 보호 필요를 검토할 수 있었다. 협조한 사실은 그대로 기록하되 죄가 없어지는 약속을 대신 쓰지는 않았다.
도문결은 웃음을 멈췄다.
“사람을 보호한다고 했지요. 석문을 어디로 옮겼는지도 모르면서 잘 보호됐다고 믿으십니까?”
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서린은 보호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 도문결이 실제로 위협을 아는지, 떠보는지 이 말만으로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구체적인 위험을 아는지 물었다.
도문결은 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가족이 있다고만 했다. 수현은 처음에는 그 말이 비겁하게 들렸다. 그러다 자기 가게에 조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기 가족이 있다는 말은 참일 수 있었다. 남의 가족에게 한 일이 없어지는 뜻은 아니었다.
마당에서 쨍하는 소리가 났다. 물을 데우던 하인이 주전자 뚜껑을 떨어뜨렸다. 수현은 귀를 감쌀 뻔했다가 무릎 위에 손을 놓았다. 도문결은 그 짧은 동작을 보고 종이를 다시 접었다.
“지금은 제대로 판단할 몸도 아니시군요.”
“그래서 여기에는 저 말고 서기가 있습니다.”
수현은 대답했다. 제 몸 상태가 약점이 된 것은 불쾌했다. 그러나 혼자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를 숨길 필요도 없었다. 그는 서린 쪽으로 빈 물잔을 밀고 오늘 말을 천천히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린은 도문결에게 작성 가능한 진술을 분리해 읽었다. 본인이 직접 집행한 변경, 다른 사람에게 들은 지시, 장부를 직접 본 사실, 보관 위치의 현재성. 그중 무엇을 말할지는 본인이 정하되 하지 않은 말까지 사전 보장해 줄 수는 없었다.
도문결은 두 번 종이를 폈다 접었다. 수현은 첫날 은전 주머니가 들어가던 속도보다 느리다고 생각했다. 그 느림이 양심의 움직임인지 다음 계산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자기 쪽에서 더 나쁜 값을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마침내 상대는 비용 집행 번호 하나와 별고 보관칸을 읽었다. 서린은 그 말을 듣고도 장부가 확보됐다고 쓰지 않았다. 번호 확인과 보존 요청을 관아에 접수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었다. 도문결은 동의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넘기지 않았다. 이동 예정의 지시자도, 규격 변경의 전달자도 말하지 않았다. 오늘은 위치를 보존할 기회만 열어 둔 것이라고 했다. 수현은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지 않고, 화가 난다고 짧게 말했다.
“자료가 있는 곳을 아시면서도 사람 이름을 빼는 조건을 먼저 내셨으니까요.”
“모든 것을 내준 뒤에는 제 말을 누가 사겠습니까?”
수현은 그 대답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감정값을 정할 때는 결과와 무관한 품삯을 받겠다고 배웠다. 도문결은 자기 책임까지 결과에 붙여 팔고 있었다. 둘 다 값을 말했으나 파는 물건은 달랐다.
면담은 정한 시각에 끝났다. 도문결이 나가기 전 서린은 오늘 발언을 읽었다. 요구 조건과 말하지 않은 항목도 포함됐다. 그는 한 문장을 고쳤다. 이동 지시를 받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이동 예정표를 보았다는 말이라고 했다.
수현은 그 정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상대가 책임을 줄이려는 것 같아도 듣지 않은 명령을 들었다고 적을 수는 없었다. 도문결이 확인한 종이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있었다.
서린은 보존 요청을 보낸 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수현이 밥값을 내겠다고 하자 자기 몫은 따로 내겠다고 했다. 오늘 자기가 지킨 것은 수현 의뢰의 값만이 아니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는 억지로 그릇값까지 갚으려 하지 않았다.
가게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제 만난 검 소유자가 다른 칼집을 들고 지나갔다. 고용처에서 빌렸다고 했다. 자기가 받은 검사표는 품에 그대로 있었다. 수현에게 검을 더 보여 주지는 않았다. 오늘 필요한 하루를 자기 방법으로 마련한 사람이었다.
수현은 그 뒷모습에서 눈을 뗐다. 도문결의 장부를 얻지 못하면 세상 모든 일이 멈출 것 같았는데, 사람들은 다른 물건을 빌리고 다른 품삯을 내며 내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이미 치른 값을 내일 한 번의 좋은 거래로 지웠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북쪽 별고의 회답이 왔다. 해당 번호의 장부가 목록에 있었고, 관아 담당이 양쪽 보관인에게 이동 보류를 알렸다. 내용을 열어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존재하는 목록 하나가 사라지는 시간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다.
그 아래에는 도문결의 두 번째 쪽지가 붙었다. 내일 다시 출석하겠다는 답이었다. 이번에도 종이는 접혀 있었다.
‘보호가 면책이 아니라면, 제가 먼저 한 일을 어느 줄까지 쓰겠습니까.’
수현은 답장을 대신 쓰지 않았다. 서린이 빈 기록지 맨 위에 도문결의 이름을 또박또박 썼다. 내일 그 아래에 들어갈 첫 문장은 상부의 이름이 아니라, 그 손이 실제로 한 일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