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은 쪽지를 불쏘시개 통에 넣지 않았다.
“이걸 태우면 제가 먼저 화낸 것밖에 안 남잖아요.”
소년은 작업대 위 마른 천에 인쇄 쪽지를 폈다. 사건 열아흐레째 아침이었다. 수현이 돌아온 전날에는 윤초의 재출석과 출장 기록 인계, 가게의 남은 일부터 마쳤다. 쪽지의 이름을 보았다고 밤중에 판매점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백가 검사법 대조 완료. 결청 감정 통과. 큰 글씨 밑에는 검의 길이와 무게가 적혔다. 수현은 자기가 만든 적 없는 검사법의 제목을 오래 보았다. 손끝으로 느낀 것을 거래할 수 있는 도장처럼 찍어 놓았다.
“누가 가져왔어?”
“물건 찾으러 온 손님이요. 장터에서 받았대요. 인쇄한 집은 모르고.”
조일이 짚은 것은 손님이 직접 준 한 장이었다. 가게 문 앞에서 주웠다는 두 번째 것은 따로 뒀다. 같은 문구여도 누가 어디서 얻었는지 섞으면 실제 배포 경로가 달라졌다.
수현은 쪽지 위에 손가락을 대지 않고 서린에게 보낼 목록을 썼다. 자기 이름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진술, 실제 감정품 번호, 공개한 소견의 범위. 거짓이라고 화내는 말만으로는 손님이 어느 검을 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 앞에서 발이 멎었다. 가죽 칼집을 든 남자가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새 검을 샀는데 수현의 확인을 한 번 더 받고 싶다고 했다. 쪽지에 백가라는 이름이 있어 믿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현은 먼저 검을 뽑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작업대 위 칼날이 있어야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가 화를 냈다.
“당신 이름 보고 샀는데 이제 자기 물건 아니라고요?”
“제가 확인한 적은 없습니다. 그 말을 드릴 책임은 있습니다. 어디서 어떤 설명을 듣고 사셨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남자는 칼집을 세워 놓으려다 미끄러뜨렸다. 조일이 받침을 밀어 줬다. 작은 동작 덕에 칼집이 바닥을 치지 않았다. 수현은 그 뒤에야 남자 이름을 물었다. 어제 맡길 배를 놓친 짐 운송인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인의 명예가 아니라, 이미 낸 돈과 내일 쓸 물건이었다. 수현은 오늘 당장 안전 여부를 보증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판매 문구와 자기 실제 소견의 차이를 설명한 종이를 줄 수 있었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칼은 주는데 답은 종이로 주는군.”
수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맞는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그 불만을 잠재우려고 칼끝을 눌러 봐도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서린이 도착할 때까지 남자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서린은 진술서 대신 작은 영수증부터 봤다. 판매점 이름과 날짜가 있었다. 새 검의 제조 번호는 적혔지만 제칠차라는 말은 없었다. 수현은 같은 상단이 공급한다는 이유로 사건 검과 같은 쇠라고 쓰지 않았다.
“구입 취소는 누구에게 요청해야 합니까?”
남자가 묻자 서린은 합의회 접수 창구와 판매점의 설명 책임을 나눠 알려 줬다. 수현이 개인 돈으로 검값을 대신 돌려주면, 누가 어떤 허위 문구로 팔았는지가 가려질 수 있었다. 그보다 가게에 그 돈도 없었다.
수현은 남자에게 기존 사건의 짧은 공개 소견을 읽어 줬다. 제칠차 출고 묶음의 연결, 일부 물건의 결함, 아직 확인 못 한 범위. 새 검 전부를 안전하다고 판정한 적은 없었다. 남자는 듣는 동안 칼집 입구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럼 새 검이 나쁘다는 말도 아닌 거요?”
“그건 이 물건을 따로 봐야 합니다.”
“답이 늘 옆으로 가네.”
남자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수현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참과 거짓을 가를 줄 하나를 그으면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잘못 붙은 이름과 아직 모르는 물건 상태는 같은 답으로 고칠 수 없었다.
서린은 남자의 동의를 받고 판매 설명과 영수증 사본을 접수했다. 검은 소유자에게 남겼다. 내일 제한된 상태 확인을 한다면 물건을 쓰거나 새로 갈지 말고 현재대로 가져오라고 안내했다. 그동안 쓸 대체 장비는 원래 고용처와 협의해야 했다.
남자가 떠나자 조일은 화로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숯이 없으니 분노를 태울 불도 없다고 했다. 수현은 웃지 못하다가 그 말끝의 흔들림을 보고 조금 웃었다.
“웃으라고 한 건 아닌데.”
“그러면 더 미안하네.”
둘은 긴장을 잠깐 놓았다. 가게에 쌀을 사 올 사람이 필요했다. 조일은 서린의 접수에 필요한 원본 대조를 마친 뒤 시장으로 갔다. 견습에게 소문을 캐오라고 덧붙이지 않았다.
수현과 서린은 판매점으로 갔다. 윤초는 관아 연락소에 남아 있었고, 수현의 이름을 되찾으러 함께 걸을 수 있는 동행이 아니었다. 오늘 갈 곳을 넓히는 것은 수현과 서린의 일이었다.
판매점 주인은 쪽지를 보자 본사에서 받은 안내라고 했다. 수현이 자기를 밝히자 주인의 눈이 손바닥으로 내려갔다. 붕대가 얇아진 손으로도 물건을 못 보는 검사인이냐고 묻는 시선 같았다.
“이 안내를 누구에게 받으셨습니까?”
서린이 물었다. 주인은 장명 납품인이라고 답하고 인수 묶음의 겉표를 내놨다. 인쇄 원판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쪽지 아래의 작은 줄을 가리키며 별도 민간 의견이라고 썼으니 공식 안전 증서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현은 그 작은 줄을 읽었다. 큰 글씨는 전부 안전 확인이었다. 그 아래의 한정 문구를 본 손님도 있었겠지만 아침의 운송인은 보지 못했다. 작은 글씨가 큰 약속을 저절로 지우지는 않았다.
“여기 있는 제 이름과 감각은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이후도 같은 안내로 파실 생각입니까?”
주인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쪽지를 거두면 자기 물건에 실제 하자가 있다는 뜻으로 퍼질까 두렵다고 했다. 수현은 하자 확정과 안내 중단을 구별해 써 주겠다고 했다. 잘못된 보증만 먼저 멈출 수 있었다.
서린이 매장 게시 문장을 정리했다. 백가 수리점의 새 검 일괄 감정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해당 안내는 대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주인은 자기 말투로 바꿔도 되는지 물었다. 손님이 알아볼 정보가 같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남은 쪽지를 전부 내놓으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거래 서류라며 보급소 답을 먼저 받겠다고 했다. 서린은 강제로 압수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확인한 배포물 수와 거절 사유, 보존 요청을 남겼다.
수현은 매장 안의 검들을 봤다. 모두 반짝였고 자루를 감은 가죽도 새것이었다. 그중 하나가 제 앞의 종이보다 훨씬 설득력 있어 보였다. 검을 들고 한 번에 옳고 그름을 들려주면 소문도 멎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그 생각을 숨기지 않고 서린에게 말했다. 가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시 결청을 할 수 있으면 빨라지겠지요.”
“한 자루에서 들은 것으로 이 매장 전체를 답하시겠습니까?”
수현은 걸음을 늦췄다. 서린은 비꼬지 않았다. 자기가 빨라지고 싶은 자리를 정확히 묻고 있었다. 수현은 아니라고 답하고 오른손을 폈다.
오후에 의원을 찾았다. 살은 붙고 있었으나 깊이 쥐는 일은 더 기다리라고 했다. 가벼운 접촉도 당기거나 저리면 멈춰야 했다. 의원은 결청의 미세한 피로까지 대신 판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수현은 할 수 있다는 허락장을 받으러 왔던 자기 마음을 알아차렸다. 의원의 말은 내일 반드시 감정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약값을 내고 상처를 깨끗한 천으로 다시 가렸다.
가게에서는 조일이 쌀보다 작은 봉투를 먼저 내밀었다. 합의회에 보낼 민원 접수표였다. 서로 다른 구매자 셋이 같은 쪽지를 가지고 왔다. 견습은 물건을 받지 않고 내일 안내받을 시간을 적어 줬다.
“한꺼번에 오라고 안 했어요. 형 손이 문 닫는 시간도 모르니까.”
수현은 세 시간을 보았다. 사이에 밥과 쉬는 시간이 들어 있었다. 조일은 한 사람의 검을 보고 모든 검을 말해 달라는 부탁이 있으면 먼저 거절하겠다고 했다. 손님 설명을 배운 만큼 견습도 가게의 범위를 정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작은 경첩 의뢰가 들어왔다. 아이가 문을 세게 닫아 축이 빠졌다는 물건이었다. 수현은 오늘 강한 수리를 못 한다고 설명했지만, 손님은 못 박을 집은 따로 찾았다며 빠진 부품 이름만 적어 달라고 했다.
그는 경첩을 들지 않고 받침에 놓게 했다. 조일이 자로 지름을 읽고 수현은 축과 테가 함께 휜 것은 아닌지 눈으로 봤다. 마모된 자리와 단순히 빠진 자리는 달랐다. 의견 기록값을 설명하자 손님은 동전을 미리 꺼냈다.
“검 이야기 때문에 여긴 아무것도 못 맡기는 줄 알았지.”
손님이 말했다. 수현은 기록지를 쓰다 고개를 들었다. 가게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에 휘말렸는지를 먼저 알리는 간판이 돼 있었다. 그는 내일이면 다 풀린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본 경첩의 상태와 다른 공방에서 확인할 치수만 정확히 읽어 줬다.
손님이 간 뒤 조일은 받은 동전을 가게 돈함에 넣었다. 쪽지 수거 비용과 감정 선금은 다른 쪽이었다. 수현은 한 번도 결청을 쓰지 않고 번 작은 수입을 보았다. 그 돈이 부끄럽지 않은데도, 내일 사람들 앞에서는 손끝을 보여 줘야 할 것처럼 느끼는 자신이 이상했다.
해 질 무렵 장명 측 회답이 도착했다. 도문결의 면담 제안은 아니었다. 납품 담당 이름으로 새 검은 새 허용 규격에 맞으며, 백가의 관찰법을 참고했으므로 허위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수현은 참고한 것이 무엇인지 요청했다.
서린은 표현을 그대로 접수했다. 규격에 맞는 것과 특정 감정인이 실제 확인한 것은 다르다고 답했다. 합의회는 배포 중단 요청을 심리하고 물건별 대조를 받을 예정이었다. 자격을 곧바로 박탈하거나 전 물건을 압류한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내일 쓸 받침을 준비했다. 사건 증거품이 아닌 소비자가 맡길 새 검 세 자루, 판매점이 대조를 위해 자발 제출하겠다는 한 자루. 개별 번호와 소유자, 손대도 되는 범위가 달랐다. 전부 한 줄로 놓고 먼저 좋은 답을 고를 수는 없었다.
조일이 모루 위의 작은 망치를 치웠다. 수현은 망치가 없으니 손이 더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손끝이 자꾸 허공을 찾았다. 쉬어 온 여러 날 동안 감각이 흐려졌을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내일 검사할 물건보다 자기 이름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었다.
문을 닫기 전 아침의 운송인이 돌아왔다. 내일 일찍 맡겨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만 안전 확인을 받으면 동료들도 같은 검을 사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수현은 그에게 네 번째 검까지 대신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남자는 실망했지만 검사 전 사용을 보류하겠다고 답했다. 칼을 못 쓰는 하루의 손실은 실제였다. 수현은 그 손실을 자신의 조급함을 정당화하는 값으로 쓰지 않으려 했다.
그가 떠난 뒤 조일은 받침 셋 사이를 더 벌렸다. 수현은 손님에게 말한 것과 달리 내일만큼은 빨리 끝내고 싶었다. 종이 속의 가짜 손끝보다 자기 손끝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바람이 쪽지 모서리를 들었다. 결청 감정 통과라는 문장이 등불 아래에서 반짝였다.
수현은 그 문장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불을 끄고 나서도, 자기 이름을 되찾으라는 소리는 귀 안에서 먼저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