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 아래 눈금이 둘이었다.
수현은 규격표를 빛에 비췄다. 위의 종이는 얇고 아래의 종이는 두꺼웠다. 가장자리에 바른 풀이 말라 들떠 있었다. 잡아당기면 두 숫자가 아니라 두 장의 종이가 함께 찢어질 터였다.
“떼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데부터 보겠습니다.”
그가 말하자 관리인은 받침을 가져왔다. 사건 열엿새째 오후였다. 오전 모연의 면담을 마친 뒤, 일행은 승인된 남은 열람 시간 안에서 되돌림 기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원본은 빛이 들어오는 탁자에 비스듬히 세웠다. 사본을 만들 서린은 표의 첫 줄부터 옮겼다. 완성 검의 규격이 아니라 제철장에서 보내는 평강의 인수 구분이었다. 길이, 두께와 이음 상태를 어떤 용도로 받아들이는지 정한 표였다.
수현은 가장자리에서 읽히는 옛 숫자와 위쪽 숫자를 나눠 적었다. 길이 허용 범위는 같았다. 달라진 것은 안쪽 이음의 판정 문장이었다. 겉으로 닫힌 이음은 추가 검토라는 문장이, 겉모양에 벌어짐이 없으면 인수 가능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추가 검토가 없어졌군요.”
“다른 검사로 넘겼을 수도 있소.” 관리인이 답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공정에서 절단하거나 다시 단련하기로 했다면 인수 구분이 달라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조건이 실제 어디에 적혔느냐였다. 그는 새 표 아래의 부속 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는 장명 보급소의 재분류 쪽지와 이어졌다. 관리인이 당시 실무 담당에게서 받아 둔 사본이었다. 원본은 담당이 일하는 다른 마을에 남아 있었고, 사본의 확인 표지는 관리인이 그 문서를 받았다는 뜻에 그쳤다.
윤초가 문 가까운 의자를 옮기려다 오른손을 뺐다. 호송인이 의자를 밀어 줬다. 그녀는 가까이 오지 않고 수현에게 물었다.
“쇠를 빼돌린 게 아니라 이름을 바꿨다는 건가?”
“이 물건들을 어떤 기준으로 받는지가 바뀌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빼돌렸는지는 이 표에서 모릅니다.”
수현은 대답한 뒤 자기가 너무 작은 말만 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쇠를 훔치지 않아도 검은 위험할 수 있었다. 숫자가 맞고 상자 수가 같아도, 안쪽에 남겨 둔 틈이 다른 이름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 실무 담당이 문밖에 도착했다. 먼저 보낸 연락을 받고 온 사람이었다. 사십을 넘긴 남자로, 한쪽 신의 밑창을 새로 댔다. 관리인은 수현에게 곧장 설명해 달라 하려다 서린의 손짓에 멈췄다.
남자는 자기 이름을 두겸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평강을 나누어 출고표에 옮겼고, 지금은 물레방앗간 쇠부품을 만든다고 했다. 오늘 문답 때문에 쉰 시간의 품삯과 왕복 운임을 먼저 확인했다. 서린은 승인 범위 안에서 정산할 항목을 읽어 줬다.
그는 수현이 그린 화살표를 보지 않은 채 당시 구분을 설명했다. 용접 이음이 있는 평강과 한 덩어리로 뽑은 평강은 같은 무더기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제철장 안에서는 용도별로 구분했으나 보급소에서 받는 이름은 하나로 합쳐졌다.
“왜 합쳤습니까?”
“길이와 무게가 맞으면 같은 값으로 치겠다고 했소. 우리는 이음이 있다는 표를 남겼지. 그 뒤 어느 검에 썼는지는 못 봤소.”
그는 스스로 면죄할 말처럼 들릴까 봐 말을 멈췄다. 수현은 다시 물었다. 이음 표시를 남긴 물건이 검 재료에서 제외된다는 약속이 있었는지. 남자는 없었다고 답했다.
“그럼 검에 안 쓰일 거라고 생각하신 건요?”
“내 생각이었지. 쐐기와 틀 받침에 보낸 것도 많았으니까.”
서린은 그 생각을 실제 사용처와 갈랐다. 수현은 검사인의 밥그릇을 다시 떠올렸다. 사람 하나가 줄면 다음 사람은 앞사람이 본 줄 알았다. 여기서는 물건 이름 하나가 줄어든 뒤 다음 사람이 어느 용도인지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겸은 가져온 작은 판 두 개를 풀었다. 자기 연습 공정에서 만든 현재 견본이었다. 사건 당시 물건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나는 겹친 쇠를 단련한 것이고 하나는 다른 방식으로 만든 것이었다. 육안으로 공정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부러진 끝을 남겨 놨다.
관리인은 그것을 문제 평강 옆에 놓으려 했다. 수현이 손을 들었다.
“같은 받침에 섞지 마십시오. 설명용 물건은 저쪽에 두겠습니다.”
두겸은 오히려 안도한 듯 웃었다. 자기 방앗간 물건까지 관아 사건으로 가져가면 내일 일을 못 한다고 했다. 수현도 웃었다. 웃음 덕에 견본을 보여 주는 손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쇠를 겹쳐 단련했다고 모두 불량은 아니었다. 잘 붙은 이음은 제 기능을 했다. 불완전한 접합을 어떤 힘이 걸리는 물건에 쓰는지가 문제였다. 두겸은 얇은 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모양과 중량만 같아도 안쪽의 버티는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현은 그 말을 결청으로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 감각을 쓰면 설명이 쉬워질 것 같았지만 오늘은 문서와 공정의 관계를 보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실제 검 두 파편과 시편은 하안성에 있었다.
두겸이 사건 당시 평강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관리인이 번호를 읽고, 서린이 움직인 자리를 적었다. 겹쳐 찍힌 두 표지는 빗금의 방향이 달랐다. 되돌림 뒤에 별도 용도로 재분류했다는 그의 설명과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표지를 속였다는 결론은 아직이었다. 두겸은 자기가 새 표지를 친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그때 받은 지시는 되돌림 구분을 바꿔 다시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새 검사 결과를 받았느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표만 바꿨습니다. 녹이거나 다시 두드리지 않았소.”
수현은 바뀐 종이와 그대로인 쇠를 번갈아 보았다. 허용 규격을 바꾸면 불합격이라는 말은 지울 수 있었다. 그 말이 사라져도 안쪽 틈은 종이를 따라 닫히지 않았다.
서린이 지시를 누구에게 받았는지 물었다. 두겸은 보급소에서 온 전달 쪽지라고 했다. 쪽지를 읽은 사람과 구분표를 고친 사람은 서로 달랐다. 오늘 가지고 온 것은 자기에게 남긴 업무 사본이었다. 최종 결재자를 이 사본만 보고 지목할 수는 없었다.
“도문결 이름이 있습니까?”
수현이 물었다. 이름을 묻는 자기 목소리가 빨랐다. 두겸은 문서에서 보급소 확인 인장을 짚었다. 개인 이름은 없었다. 서린은 수현의 질문을 접고 쪽지 전달일과 보관을 물었다.
두겸은 받아 쓰는 일을 했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되돌림 물건에 새 시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더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로 누구의 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바뀐 표지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 손을 거쳤다는 길이 남았다.
두겸은 자기 견본을 다시 보자기에 넣다가 수현의 자를 빌렸다. 평강 끝의 길이를 읽어 보라는 것이었다. 수현은 숫자를 말했고, 두겸은 재는 시작을 바꿔 같은 쇠를 다시 쟀다. 끝의 비스듬한 부분을 포함하자 숫자가 달라졌다.
“이렇게 속였다는 말이오?”
윤초가 물었다. 두겸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 표에는 비스듬한 끝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다른 곳에서 어디부터 재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서로 정직해도 숫자가 달라진다는 설명이었다.
수현은 자 끝을 닦아 돌려받았다. 측정하는 사람을 믿느냐고 묻기 전에 눈금의 시작을 물어야 했다. 그는 오늘 사본에 재는 자리의 그림을 더했다. 문장을 좁히느라 일이 느려졌지만, 다음 사람이 똑같이 틀릴 구멍 하나는 막을 수 있었다.
늦은 오후 바람이 차가워졌다. 수현은 문을 닫기 전에 탁자에서 사본을 옮겼다. 돌아갈 시간은 그대로였고 모연은 저녁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서린은 오늘 확인을 이 지점에서 멈추자고 했다.
두겸은 떠나기 전 수현에게 숙부를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그 검사인이 남긴 표지 가운데 자기가 실제 본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합격과 불합격이 아니라 재검토라고 쓴 짧은 표시였다.
“어느 물건입니까?”
“지금 보고 있는 평강인지 못 가리키겠소. 그때 대표로 놓은 것 중 하나였지. 검이 되기 전이오.”
수현은 그 작은 기억에 매달리고 싶었다. 숙부가 끝내 놓지 않은 선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물건을 제대로 보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그는 직접 본 말과 물건 미특정을 한 줄에 같이 적어 달라고 했다.
두겸이 돌아가자 관리인은 규격표를 원래 받침에 놓았다. 붙은 종이는 떼지 않았다. 아래 숫자를 끝까지 읽으려면 문서 보존을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 눈으로 읽은 부분과 해석한 부분을 분리한 사본만 일행 보따리에 들어갔다.
수현은 마당의 식은 화로를 보았다. 전날에는 누군가 쇠를 훔쳐 바꿨다는 설명이 가장 쉬워 보였다. 오늘은 물건을 움직이지 않고도 생기는 길이 보였다. 인수 기준을 낮추고, 검사용 대표를 줄이고, 다음 공정이 확인할 거라는 말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윤초가 그의 옆에 섰다. 호송인은 몇 걸음 떨어져 기다렸다.
“내가 열지 못하게 막은 상자도 겉모양은 맞았겠군.”
수현은 대답을 고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맞는 것만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상자 안의 쇠가 어느 것인지는 아직 더 이어야 합니다.”
윤초는 다친 손목을 왼손으로 감쌌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짐의 무게와 수현이 본 쇠의 틈 사이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밟은 길을 확인해야 했다.
숙소에서는 왕복 배 시간을 다시 셌다. 내일 내려가야 열여드레째 관아 출석에 맞출 수 있었다. 더 머물면 자료를 한 장 더 얻을지 몰랐지만, 윤초의 통제 기한을 그 기대와 바꿀 수는 없었다.
관리인이 운송인 연락을 전했다. 제철장에서 보급소까지 되돌림 평강을 두 번 실은 사람으로, 내일 하류 중간 나루에 잠깐 머문다고 했다. 장명 일을 아직 받는 사람이라 이름을 공개하면 거래가 끊길까 걱정한다는 말도 있었다.
서린은 본인 의사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수현은 공짜로 잠깐만 만나면 된다고 말하려다가 배에서 자신들을 끌어 올린 인부 둘을 떠올렸다. 잠깐은 다른 사람에게는 다음 배를 놓치는 시간일 수 있었다.
호송인은 지정 귀환 경로 안에서 면담 가능한 장소를 관아 연락소에 묻겠다고 했다. 시간이 안 맞으면 본인과 별도 기록 절차를 정해야 했다. 윤초가 먼저 가도 조사 자체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밥 뒤 수현은 새 규격표의 숫자를 다시 읽었다. 조일이 있었다면 숫자 하나 바뀌어서 누가 얼마를 아꼈냐고 물었을 것이다. 아직 그 대금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절도만 찾아서는 놓치게 될 비용의 모양은 생겼다.
그는 내일 쓸 종이에 운임과 대기료를 썼다. 마지막 줄은 보호 요청이었다. 운송인의 말이 유리할 때만 지불한다는 조건은 넣지 않았다.
문밖에서 전갈을 맡았던 아이가 돌아왔다. 면담을 고려 중인 운송인이 보낸 답이었다. 아이는 내용을 모르며 봉함만 건넸다.
서린이 받아 읽은 뒤 수현에게 돌려줬다. 문장은 둘이었다.
‘내 배가 늦어지는 값은 내가 받겠소. 그런데 내가 말을 한 뒤에, 내 배에 탈 사람은 누가 남겨 주겠소.’